53 화 : 신화를 향해
앞서 몇 번이나 설명했듯이.
회장기 검도 대회는 국내 학생선수 대회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와 인지도를 가졌다.
그 말인즉, 대회에 쏟아지는 검도 팬들의 관심 또한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다.
이런 검도 팬들의 관심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가 바로 언더키가 제공한 커뮤니티, ‘검도라이프’였다.
<이번 회장기 진행 예상.txt>
<경중고는 이번에도 우승할 수 있을까요?>
<대진표만 좋으면 그냥 빅4가 4강 진출할 듯>
<슬슬 언더독의 반란 함 조져줘야 되는데···>
대회가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게시판 글의 80 퍼센트는 회장기 관련 이야기로 점령되었을 지경이었으니 말 다 했다.
다만, 이건 회장기 검도 대회만이 가진 특수성이 아니었다.
대회가 있을 시기가 되면 대체로 ‘검도라이프’에 올라오는 글들은 그 대회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물론 회장기 검도 대회는 규모가 큰 만큼 다른 대회가 겨우 50 퍼센트를 넘길 때, 무려 80 퍼센트나 되는 지분을 차지했지만 말이다.
그러한 상황이다 보니.
<속보) 광천고 남자검도부 8강 진출> +댓글 8개
이러한 글이 올라오는 일도 종종 있었다.
강호 검도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도 분명히 존재하는 법.
약소부가 서서히 성장하는 걸 즐긴다든지, 해당 학교 졸업생이라든지, 그도 아니면 그냥 주전 중 한 사람의 팬이라든지.
팀 전력이 약하다 해도 다양한 이유로 그 팀을 응원하는 팬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어디 광천고 남자검도부가 평범한 약소부였던가?
남 · 녀 검도부가 둘 다 존재하는 흔치 않은 곳이고, 두 검도부 입장이 천지 차이며, 특히 주장으로 소년가장이라 불리는 정철이 있는 곳이다.
일반적인 약소부보다 응원하는 팬이 생기기에 적합한 팀이라는 이야기다.
속보) 광천고 8강 진출
글쓴이 : 광천고졸업생(Lv.23)
재작년 이후 첫 8강 진출!
근데 8강 상대가 빅4 용암고···
여기서 탈락할 듯 ㅜㅜ
-겨우 올라왔더니 상대가 빅4 눙물···.
ㄴ와 이건 진짜 너무했다ㄷㄷ
ㄴ얘네가 8강 간 게 더 너무해보임
ㄴ글쓴이 : 말이 심하시네요 ^^;;
-소년가장 정철 가자!
-진짜 칼 갈고 나왔나 보네요
-그래도 8강이면 잘했음. 최고 기록 아님?
ㄴ글쓴이 : 네. 최고 기록이랑 타이입니다 ㅇㅇ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광천고가 용암고를 이길 거라 보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광천고 팬은 빅4 중 한 곳인 용암고보다 훨씬 적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그게 가능했으면 약소부라 불리지도 않았을 테니까.
광천고 팬들은 ‘그래도 8강까지 왔으니 잘했다’라고 평가했고, 용암고 팬들은 ‘8강 대진 개꿀이네요. 쉽게 갑시다!’라며 자축했을 정도니.
그리고 그러한 모든 예상을 깨부수며.
광천고가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진출했다.
속보) 광천고 남자검도부 4강 진출!!
글쓴이 : 광천고졸업생(Lv.23)
8강 상대가 용암고라 꼼짝없이 탈락하리라 생각했었는데···
놀랍게도 광천고가 4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네, 용암고를 이겼어요!!
진짜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요
이거 이대로 우승까지 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이거 신종 어그로임?
-용암고가ㅋㅋ 광천고에ㅋㅋ 뭔ㅋㅋ
-이분 광천고 팬이라 인지 부조화 오셨답니다
-글쓴이 : 아니 여러분;; 진짜예요;; 저 지금 청송 국민체육센터입니다;;
ㄴ헛소리 자제 점여
ㄴ빅4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임?
ㄴ어그로 신박한 거 보소
-암요 우승까지 하죠. 암요, 암욜맨~ 따라다따~
ㄴ? 미치셧나
처음 글이 올라왔을 때만 해도, 이 결과를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저 어그로꾼 취급하며 무시했을 뿐.
광천고와 용암고 사이에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벽이 세워져 있었기에.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경기 영상을 보는 것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보는 걸 좋아하는 검도 팬들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다.
8강 경기를 직관한 그들이 하나씩 글을 올리기 시작하고, 증거 자료라고 사진들을 첨부하기 시작하자, ‘검도라이프’의 팬들은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광천고가, 빅 4 용암고를 꺾고, 4강에 진출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더독의 반란ㄷㄷㄷㄷ>
<광천고가 어디임??>
<경기 영상 언제 올라와~!>
<4강 대진표 확정 : 광천고 vs 호군고 / 경중고 vs 금제고>
<누가 감히 약소부 소리를 내었는가?>
반응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누구도 믿기 힘든 결과였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광천고 팬들마저도 ‘그래, 8강이면 잘한 거지.’라며 탈락을 기정사실로 하던 마당이니 더더욱 그러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반응에 부채질한 건 8강 경기 영상의 업로드였다.
검도 사랑으로 유명한 언더키는 ‘검도라이프’에 모든 대회의 영상을 직접 찍어─자신들이 후원하지 않은 대회조차 교섭을 통해 찍었다!─ 올리곤 했고, 그건 이번 회장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올라온 8강 영상을 본 이들은, 그 내용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와씨··· 4승 1무 2패로 이겼다고?
ㄴ거의 압살한 수준 아닌가요
ㄴ압살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우세한 건 맞음
-선봉이야 그렇다 쳐도, 2위 쟤는 누구임??
-주장전 박살난 거 실화냐ㅋㅋㅋㅋ
ㄴ용암고 주장이면 김규호일 텐데;; 얘가 이렇게 지는 거 처음 보네요ㄴ백성호랑도 비비는 애잖아요
-이성현? 어디서 본 이름인데
ㄴ이번주 검맨 유망주 분석글 주인공입니다
ㄴ아 그 상단세 쓴다던 애구나. 근데 영상에서는 중단인데요?
ㄴ중단도 잘 씀ㅇㅇ
ㄴ유망주 대회에서 결승까지 중단으로 갔어요
-광천고가 원래 빅4인가요?
ㄴ아뇨··· 그래서 더 놀라운 거···
8강에서 치열한 혈투 같은 건 없었다.
광천고는 시종일관 시합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고, 대표전까지 가지도 않은 채 깔끔하게 승리를 거머쥐기까지 했다.
이름만 가린다면 광천고가 용암고처럼 보일 만큼 두 팀 사이에 격차가 있었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서, 더욱 검도 팬들을 혼란에 빠뜨린 건 이어진 4강 경기였다.
<광천고 결승 진출ㅋㅋㅋㅋ>
<호군고 호구행 머임?>
<주장 순서까지 가지도 못하고 지네ㄷㄷ>
<업셋각 떴냐?! 떴냐?!>
<결승전 광천고 대 경중고ㅎㅎ 가슴이 웅장해지는 매치네요>
호군고는 그나마 주장 순서에서 승패가 결정되며 빅4의 자존심을 지켰던 용암고와는 달랐다.
아예 주장 순서까지 가기도 전에 패배!
하지만 경기 영상이 올라온 후, 호군고를 조롱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영상 속 광천고가 강했기 때문이다.
8강보다 더 강해진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슬슬,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대감이 피어오른 게 바로 이때 즈음이었다.
-설마, 진짜로?
-에이, 그래도 상대가 경중고인데···
ㄴ그거 8강이랑 4강 때도 나왔던 말임
ㄴ어어 하다가 결승 진출ㄷㄷ
-오랜만에 흥미진진해지네요. 고교 검도
-회장기 꿀잼이네 진짜ㅋㅋㅋㅋ
남은 건, 대망의 결승뿐.
이제 결과를 예측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빅4를 연달아 격파하며 올라온 언더독, 광천고.
그리고 삼 년간 고교 검도계에 패자로 군림해온 탑독, 경중고.
누가 이길지 도무지 예측불가였으니까.
기존의 성적만 본다면 단연코 경중고였지만, 광천고는 이번 대회에 새로이 전설을 쓰고 있었기에.
그리고 마침내, 결승 결과가 나왔을 때.
-광천고 우승!!!!!!!
-언더독의 반란ㄷㄷㄷㄷ
-와 진짜 주장전 입 쩍 벌리고 봤습니다
-장난 아니다 진짜ㅋㅋㅋㅋ
-회장기 시작할 때 누가 이걸 예측했을까ㅋㅋ
‘검도라이프’ 이용자들은 그야말로 미쳐날뛰었다.
단 한 번 새로고침 해도 수십 개의 글이 올라올 만큼 글을 올려댄 거다.
그러나 이해 못 할 반응은 아니었다.
경중고 원탑, 그리고 그를 뒤따르는 호군고, 금제고, 용암고 구도로 고교 검도계가 굳어진 것이 벌써 삼 년.
슬슬 물리는 것을 넘어 지겹다고까지 느낄 즈음, 이런 대사건이 벌어졌으니까.
다른 빅4가 경중고를 잡는 것도 아니고, 약소부로 무시당했던 광천고─ 언더독이 오버독을 물어죽이고야 말았으니.
이들의 반응이 정점을 찍은 건 결승전 영상이 업로드 된 후였다.
-와 진심 미쳤다ㄷㄷ
-광천고가 경중고에 이기다니ㅋㅋㅋㅋ
-백성호가 졌네? 쟤 뭐지;
-검맨님이 백성호 상대로 고른 이유가 있었네···
-주장 순서 애들은 그냥 그대로 실업팀 가도 된다고 느낀 건 저뿐인가요?
ㄴ저도 그렇게 생각함ㄷㄷ
ㄴ걍 어디 던져놔도 우승후보일 듯 ㄹㅇ
-천재 vs 천재네요
-이거 백성호가 그냥 발린 거 아님?
ㄴ그정도는 아닌듯;;;
ㄴ왜 아님? 2대 떡으로 발린 건데
ㄴ경기 내용을 보셔야죠 ^^;;
ㄴ경기 내용도 그렇구만 뭘ㅋㅋㅋㅋ
ㄴ곧 백성호빠들이 모여들 댓글입니다
-소년가장이 결국 빛을 보는구나 ㅜㅜ
‘검도라이프’에 올라온 결승전 영상에는 광천고와 경중고의 시합이 제대로 담겨 있었다.
영상을 찍은 이의 노력이 잘 느껴질 만큼.
그래서 더욱 주장전이 돋보였다.
분명 다른 경기들에 비하면 움직임은 더 적음에도, 화면 너머까지 전해지는 압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비록 직접 관람을 하러 가서 본 이들보다는 못하지만, 집에서 보는 이들도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긴장감의 편린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광천고, 얘네 완전 스포츠만화 같네요ㅎㅎ
글쓴이 : 완벽한머리치기(Lv.57)
약소부로 무시당했던 팀이 회장기 대회 출전
8강과 4강에서 연달아 빅4(사천왕)를 격파
마지막에 나온 건 고교 검도계의 패자, 경중고
그리고 그마저 이기면서 우승···!
완전 스포츠만화 내용 아닌가요?
-진짜 생각해보니 그렇네요ㅋㅋ
-얘네로 만화 한 편 그리면 뚝딱일 듯
-그럼 주인공은 누구죠? 정철?
ㄴ정철은 삼 년동안 무관이라 애매함
ㄴ만약 한다면 지금 주장인 이성현이겠죠ㅋㅋ
ㄴ이성현도 스포츠만화 주인공치고는 너무 강한 거 같은데요ㄴ최종보스보다 센 주인공ㅋㅋㅋㅋ
ㄴ걔는 최종보스가 주인공인 수준임 ㄹㅇㅋㅋ
-라는 내용의 만화 찾습니다
ㄴ현실에 있어요 ㄱㄱ
오죽하면 광천고를 스포츠만화 주인공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사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스포츠만화는 언더독 시점에서 진행되고, 광천고는 바로 그 언더독 포지션의 팀이었으니 말이다.
이윽고, 둘째 날.
광천고 여자 검도부가 여고부 단체전을 우승했을 때, 슬슬 ‘검도라이프’ 팬들은 궁금해졌다.
대체 이들은 어디까지 가려는 것인가.
단체전은 제패했으니, 이제 남은 건 개인전!
만약 거기서도 광천고가 남 · 녀 부문을 모두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면···.
-아, 진짜 직접 보러가고 싶다
-휴가만 있었어도···
-못 참아! 개인전만큼은 내 눈으로 본다!
-개인전 딱대! 지금 숙소 예약하고 내려가는 중
*
회장기 검도 대회 셋째 날.
단체전에 참가한 서른 두 개 팀에서 각각 두 명씩, 총합 예순네 명이 참가하는 남자 개인전이 시작되었다.
셋째 날에는 남 · 녀 개인전이 동시에 진행되는 만큼, 단체전과 마찬가지로 경기장을 네 개로 나누어, 네 경기가 한꺼번에 치러졌다.
그리고 성현이 배정받은 순서는 A-1.
즉, 첫 번째 경기장의 첫 순서였다.
웅성웅성.
경기를 준비하는 성현에게 쏟아지는 시선들.
그러나 성현은 전혀 개의치 않은 채로 담담하게 호구를 착용하고, 죽도를 점검했다.
첫 번째 순서라는 것도, 온갖 감정이 담긴 관심도, 적의 가득한 상대의 눈빛도 그에게는 일말의 가치조차 없었기에.
그가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
이번 대회를 통해, 감히 무너지지 않을 신화를 써 내려가는 것뿐.
“인사!”
전설은 광천고 단체전을 통해 썼다.
그렇다면 남은 건, 그의 이름으로 세울 신화다.
호흡을 고른 성현이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죽도를 ‘들어 올렸다’.
“저건-”
“여기서 이런 선택을?”
“와, 씨. 보러오길 잘했다.”
“허허···.”
상단세(上段勢).
흔히 이르기를 ‘불의 자세’.
성현이라는 이름의 불꽃이 지금, 다시 한번 타오르기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시작!”
< 신화를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