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52화 (52/150)

52 화 : 광천고 전성시대

회장기 검도 대회 둘째 날.

청송국민체육센터.

“이야아앗-!”

“끼아압-!”

묵직한 중저음이 가득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 경기장에는 날카로운 고성이 넘쳐흘렀다.

그도 그럴 게, 첫째 날에는 남고부 단체전이었지만, 둘째 날이 된 지금은 여고부 단체전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천고 남자 검도부는 관객석에 한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막 32강이 진행 중인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경기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오늘 여고부 단체전에는 광천고 여자 검도부가 출전하니까.

‘어제 응원도 해줬으니 우리도 오는 게 맞지.’

‘같은 광천고 의리가 있으니까.’

‘생각해보니 쟤네 성현이 응원할 때만 목소리 컸었지. 더러운 외모지상주의 같으니라고···.’

마지막 생각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어차피 둘째 날에는 할 것도 없고, 또 어제 응원해준 보답도 해줘야 하니 광천고 남자 검도부가 경기장을 찾은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내일 개인전이 진행되는 마당에 고되게 훈련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얘네 경기 몇 번째래?”

“C-3번이니까 이 다음.”

“상대는? 강하대?”

“몰라. 내가 여고부 쪽 사정을 어떻게 알겠냐.”

“너 이하은이랑 친했잖아. 걔한테 얘기 들은 거 아니었어?”

대현의 물음에 영준이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이하은은 광천고 여자 검도부의 중견을 맡은 소녀로, 영준과는 같은 반 친구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같은 반에 검도부라는 공통점도 있어 자주 대화했는데, 그게 이 주접 넘치는 녀석의 눈에 띈 모양이었다.

“친하긴 뭘. 그냥 같은 반이니까 오다가다 인사나 하는 거지.”

영준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각에서는.

“아닌 것 같은데···.”

“팍 씨. 아니면 뭐 어쩌게.”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누가 뭐라냐?”

대현이 낄낄거리며 몸을 뒤로 젖혔다.

잠시 그와 자신의 주먹을 번갈아 바라보던 영준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내렸다.

쥐어박는다고 멈출 주접이 아님을 알았으니까.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성현이 슥 끼어들어 말한 건 그때였다.

“32강 상대 한주여고인데 딱히 강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그냥저냥 평범한 수준? 저희가 상대한 팀으로 따지면 딱 상포고 정도라네요.”

정보의 출처는 경기를 준비 중인 수연이었다.

성현은 수연과 계속해서 톡을 주고받고 있는지라, 상대가 누구이며 또 얼마나 강한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저들의 의문에 답해줄 수 있던 거고.

대략적으로나마 그것을 짐작한 대현과 영준이 티벳 여우처럼 가늘어진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옹졸하게 다투던 두 사람이 성현이라는 최악의 상대 앞에서 한마음 한뜻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네가 문제가 아니었네.”

“그래. 맞아. 성현이가 있잖아. 나는 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응, 아냐. 은근히 묻어가려고 하지 마.”

“젠장.”

“···?”

어쩐지 생생한 적의가 넘쳐나는 시선에 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궁금해하길래 알려줬는데 반응이 왜 이러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기에, 대현과 영준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외침을 내리눌렀다.

‘이 더러운 커플 같으니!’

친구라면 모를까.

대체 후배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성현이 잘못한 것이라고는 그저 잘 생겼다는 것 하나뿐이거늘.

그저 여자 친구 없는 자신을 탓해야 할 일이다.

‘검도 잘하고 잘생기면 수연이 같은 여친 생기는 거지. 뭐.’

‘검도부 커플이라. 흠···.’

이내 고개를 내저은 두 사람이 시선을 경기장으로 돌렸다.

“······경기나 보자.”

“······그래.”

때마침 경기장은 두 번째 순서의 경기가 끝나고, 광천고 여자 검도부가 나오는 세 번째 순서로 이어지고 있었다.

네 개의 경기장 중 C조가 경기하는 곳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일곱 명의 소녀들.

그녀들을 본 광천고 남자 검도부 주전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는, 입을 모아 소리쳤다.

““광천고 파이팅-!””

청송국민체육센터 내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굵직한 목소리!

주위에 있던 관객들의 시선이 잠시 그들에게 모였지만, 그건 말 그대로 정말 잠시였을 뿐이다.

곧 관객석 다른 곳에서도 여러 응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으니까.

물론 끝까지 눈을 떼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업계 관계자들.

딱히 용무가 있지 않은 이조차 광천고 남자 검도부, 특히 성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차세대 최강자를 압도적으로 꺾은, 진정한 차세대 최강자에게 뭐라 말이라도 건네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졸업하고 대학팀 가기로 한 곳 있나?’

‘혹시 대학 안 가고 실업팀 바로 올 계획이라면-’

‘아, 인터뷰하고 싶다.’

‘싸인해달라고 하는 건 예의 없는 짓인가? 조금 이따 나갈 때 슬쩍 부탁하면 안 되려나?’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건, 그게 예의 있는 행동이 아님을 아는 까닭이다.

같은 학교의 여자 검도부를 응원하러 온 이들을 귀찮게 했다가 미운털이라도 박히면 어쩌려고?

아무리 얼마 전까지 약소부였다 해도, 그게 예의 없는 행동이라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그렇게 광천고 남자 검도부를 본 업계 관계자들이 애간장만 태우는 사이, 마침내 광천고 여자 검도부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후우···.”

광천고 여자 검도부에서 선봉으로 나선 건, 다름 아닌 수연이었다.

하윤과 함께 천재로 불리는 그녀는 성현과 마찬가지로 기어코 1학년에 주전 자리, 그것도 선봉 순서를 얻어낸 것이다.

비록 성현처럼 시작부터 주장의 순서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장에 백성호와 비견되는 하윤이 있기 때문일 뿐.

만약 하윤이 없었다면 지금 광천고 여자 검도부의 주장은 그녀가 되었으리라.

‘성현이가 보고 있어.’

수연은 아까 들려온 응원의 외침을 기억했다.

정확히는, 그 속에 섞여 있는 성현의 목소리를.

그건 그녀가 패배해서는 안 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는 뜻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성현이 보고 있는 경기에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으니까.

게다가, 생각해보면 애초에 그녀에게 패배는 허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왜냐하면-

‘나는 성현이한테 배우고 있으니까.’

지난날, 성현이 각성하듯 강해진 이후.

수연은 주말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그에게 검도를 배우고 있었다.

그 말인즉, 겨우 한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2학년 트리오보다도 훨씬 오래, 그리고 더 많이 배웠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상황에서 2학년 트리오는 이번 대회에서 전에 없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과연 그럴 수 있던 원인이 무엇인가는 굳이 추측해볼 필요조차 없었다.

성현에게 배운 덕일 터.

‘그러니, 져서는 안 돼. 아니, 그걸 넘어서 압도적으로 이겨야 해.’

첫 번째 제자─물론 성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로서, 그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압도적인 실력의 격차를 보여줘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다.

“시작!”

경기장에 주심의 시작 구령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수연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성현에게 가장 오래 배웠다는 건, ‘불패의 대가’를 가장 오랫동안 봐왔다는 뜻이다.

그가 힘을 되찾는 그 과정을, 똑똑히.

아마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천재였다.

그것도 백성호, 임하윤보다 한 살 어릴 뿐, 그들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천재.

성현이 단번에 실력을 되찾아가는 모습은 그녀에게 깊은 깨달음을 남기기에 충분했다는 이야기다.

“히야아앗-!”

수연은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성현이 보여준 모든 것을 탐욕스레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그녀는 겨눔세의 흔들림이 줄어들고, 공세가 날카로워졌으며, 칼에 힘이 더해졌을 뿐만 아니라, 발 운용에도 능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를 ‘관(觀)’하는 눈이 크게 늘었다.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장을 했다는 뜻!

안 그래도 압도적인 재능으로 여성 학생선수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던 그녀다.

그녀가 재차 크게 발전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그건 이번 경기를 보면 알 수 있었다.

타아악-!

“청색, 허리!”

““와아아-!””

상대를 완벽하게 속여 넘기는 허리치기.

수연이 머리로 들어오는 줄 알았던 상대는 어찌 방어할 겨를조차 없이 허리를 내주고 말았다.

아마 지금의 상대가 아니었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그만큼 빈틈없이 이어진 속여 허리치기였으니.

심지어,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두 판째!”

“히야아앗-!”

두 번째 판이 시작된 직후.

날카로운 기부림을 내지른 수연이 땅을 박차고 시도한 찌름은 그야말로 번개 같았다.

번뜩인다 싶을 때 이미 상대의 목을 찌르고 돌아오고 있었으니까.

막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속도였다.

그녀의 찌름을 본 심판들은 당연하다는 듯 푸른 깃발을 번쩍 들어 올렸다.

“청색, 목! 시합 끝!”

이게, 지금의 강수연이었다.

어지간한 상대는 감히 대적조차 불가한 실력자!

그녀의 승리를 똑똑히 본 관객들이 환호성을 내지르듯 소리쳤다.

“진짜 미쳤다!”

“유망주 대회 우승할 때부터 알아봤지!”

“잘한다, 강수연! 다 눌러버려!”

마지막으로 상대와 인사를 나눈 수연이 관객석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당연하게도, 성현을 향해서였다.

성현이 마주 손을 흔들어주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방긋방긋 웃으며 여자 검도부가 대기하는 장소로 돌아왔다.

그녀의 표정을 본 선배, 이하은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주 신났네. 그렇게 좋아?”

“네! 좋아요!”

“으휴. 우리가 너를 어찌 말릴까.”

“냅둬. 보기 좋은데 뭘.”

다른 선배들의 장난기 어린 타박에도 수연의 미소는 걷히지 않았다.

성현이 보러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무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걸 아는 선배들도 그저 귀엽게 볼 뿐이었고.

“······.”

다만 하윤만이 어딘가 어색한 표정으로 자신의 머리를 매만질 따름이었다···.

“언니들 파이팅!”

“그래, 그래.”

“후배 봐서라도 이겨야지.”

활기차게 주먹을 불끈 쥐는 수연.

그런 그녀의 활력이 퍼져나가기라도 한 것일까.

광천고 여자 검도부는 중견에서 일찌감치 4승을 거두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다음 경기도, 그다음 경기도 마찬가지!

광천고 여자 검도부는 파죽지세로 승리를 거두며 나아갔다.

그리하여, 그 끝에 도달한 건.

“우승-!”

경기장에 당당히 선 하윤이 주먹을 번쩍 들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뛰쳐나오는 수연을 포함한 여자 검도부 주전들까지.

결승전 상대였던 세송 고등학교를 꺾어내고, 광천고 여자 검도부가 끝내 회장기 검도 대회 여고부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남고부 단체전이 이어, 여고부 단체전까지!

“바야흐로 광천고 전성시대네요.”

“남고부, 여고부 우승을 한 학교에서 가져간 역사가 있었나? 처음 아냐?”

“심지어 이대로라면 개인전 남녀부문 우승도 가능성 있잖아. 그 정도면 아예 회장기 자체를 지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지켜보고 있던 업계 관계자들이 뒤집어진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한 학교에서 회장기 단체전 두 부분을 동시에 석권하는 경우는 삼십 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아직 끝난 게 아니기도 했다.

내일 있을 개인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한다면?

심지어 남자 개인전에서는 이성현, 여자 개인전서는 임하윤이 유력한 우승 후보이니만큼,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만약 그게 된다면···.’

‘···이번에 세운 기록은 전설이 될 거야.’

어느 누가 했던 말마따나.

광천고 전성시대가 오고 있었다.

< 신화를 향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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