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화 : 단체전 우승
다시금, 숨 막힐 듯 이어지는 대치.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긴박감은 첫판 이상이었다.
무겁게 내리깔린 고요함 속에서 성현과 백성호에게서 뻗어 나오는 기세가 사납게 충돌했다.
한 치의 양보조차 없이, 상대를 잡아먹기 위해서.
검도란, 마음의 무예.
평정이 흐려진 자는 이길 수 없다.
성현, 그리고 백성호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저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굳건히 중심을 세우니, 그들에게서 뿜어지는 기백(氣魄)은 경기장 전체를 위압하였다.
꿀꺽.
“······.”
“······.”
자연스럽게 첫판의 결과가 나오며 소란스러워졌던 관람석이 조용해졌다.
이제 겨우 첫판이 끝났을 뿐, 승부가 결정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까닭이다.
검도에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서 필요한 건 2점.
지금 승부에서 백성호가 이길 경우, 연장전까지 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도 아니면 성현의 승리로 일단락되던가.
어느 쪽이든,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는 관객들이었다.
‘미친 새끼들인가.’
‘백성호만으로도 지랄 맞았는데 한 놈 더?’
‘······반드시 꺾는다. 둘 모두!’
성현과 백성호의 경기를 지켜보는 건 관객석에 있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직접 대회에 나왔던 이들.
즉, 회장기 검도 대회에 출전했었던 학생선수들 또한 불타는 눈으로 경기장을 보고 있던 거다.
그들이 드러내는 반응은 다양했다.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하고 좌절하는 이, 또 다른 천재의 등장에 욕지거리를 내뱉는 이, 아주 드물지만, 두 명 모두 자신이 꺾으리라 의욕을 불태우는 이까지.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천재의 경기가 그들에게 지울 수 없는 강한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좋은 뜻으로든, 아니면 나쁜 뜻으로든.
‘저들이야말로 한국 검도계의 미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장기 검도 대회는 한국 검도 협회에서 개최 및 주관을 담당하는 대회다.
그 말인즉, 한국 검도 협회라는, 한국에서 검도를 상징하는 가장 큰 단체의 임원들도 대회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바로 지금 여기, 감격으로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노년의 남성처럼.
‘내 평생 한국 검도에서 이런 이들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적이 없었건만.’
한국 검도 협회 이사, 곽해수는 떨리는 주먹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성현과 백성호, 두 명의 천재가 보여주는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늘 일본에 밀려 2위만 차지하던 한국 검도.
그 오랜 염원의 해답이 보이는 듯했다.
저들이라면.
저 두 사람이라면-
절대로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이 느껴지는 견고한 벽조차, 뛰어넘고 말 테니!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더 많은 실전 경험이다.
저들을 성장시켜줄 밑거름.
곽해수의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계획들이 순식간에 짜올려졌다.
일본과의 교류전부터, 옥룡기와 같은 연승전 방식의 대회, 그밖에도 다양한 계획들이.
물론 그게 오직 저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현 한국 검도계에는 유망주라 부를 만한 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넘쳐나기에.
그들 또한 두루 성장시킬 수 있어야 하리라···.
‘먼저 움직여야 한다.’
고등부 경기 시간은 단 4분.
한데 성현과 백성호가 첫판 대치에서부터 일 합을 나눠 승부를 가리기까지 소모한 시간은, 무려 2분 30초가 넘는다.
즉, 이제 남은 경기 시간은 고작 1분 30초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연장전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 안에 최소한 한 점을 낼 필요가 있었다.
대치한 상태로 기세를 끌어올리던 두 사람 중.
백성호가 먼저 기부림을 내지르며 바닥을 박찬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아아앗-!”
혼을 불태우는 것 같은 기백!
후리듯 휘둘러지는 죽도의 궤적과 방향, 각도는 선명하고 깨끗하다.
동작과 동작 사이에 낭비가 없으니 내지르는 힘은 한 점으로 모이고, 그로써 위력은 무한대에 한없이 가까워졌다.
그야말로 타돌의 극치이며, 완벽한 머리치기라 할 만했다.
누가 이것을 일개 고등학생이 내질렀다 생각할까.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천재는, 아직 미숙할 나이에 이미 대가를 넘보려 하고 있었다.
더욱 무시무시한 것은.
‘그 짧은 사이에, 더 성장했다!’
겨우 몇 분 전에 내질렀던 머리치기보다, 이번의 머리치기가 더 뛰어났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전율을 느꼈다.
하늘이 내린 재능이란 이토록 두려운 것이었다.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경기 내에서 또 한 걸음 나아가는 게 가능하니까.
‘형, 왜 똑같은 공격을?!’
하지만, 그것은 이미 한 번 ‘패배했던’ 기술이다.
분명 이번의 격자가 이전보다 더 날카롭고, 더 위력적이었을지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를 잘 아는 백지호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 ‘천재’ 백성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그는 꿰뚫어 볼 수 없었기에.
“하아아압-!”
성현은 이번에도 정확히 반 박자 늦게 움직였다.
그의 ‘눈’으로 상대의 머리치기를 완벽히 간파한 뒤,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순간 재차 허리치기를 시도한 것이다.
죽도가 그려내는 선명하고 아름다운 반월!
후웅-!
어느 쪽도 방어 따위는 아랑곳 않은 채, 서로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두 자루의 죽도.
그러나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먼저 상대를 격자하는 쪽은-
‘나다.’ ‘내가 아니야.’
-허리치기를 시도하는 성현이다.
예정되어 있던 결말.
늦게 내서 먼저 베는, 후발선제(後發先制)의 기예를 넘어서지 않는 한, 백성호에게 희망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라 해도 한계는 있는 법.
똑같은 수준의 재능을 지닌 이가 더 많은 세월을 고련 하여 얻어낸 검을 한순간에 뛰어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넘어서는 건, 상대가 아니다.
이전까지의 자신일 뿐!
촤아악!
‘스치듯’ 내뻗어졌던 오른발의 뒤꿈치가, 바닥에 맞닿으며 몸을 멈춰 세운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급격히 제동을 건 백성호의 몸은 마치 누군가 튕겨내는 것처럼 뒤로 밀려 나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타돌에서의 퇴격 전환!
힘의 흐름을 완벽하게 자신의 지배 아래에 두지 않고서는 보여줄 수 없는 신기였다.
‘됐다!’
시도하면서도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던 기예.
이를 성공시킨 백성호의 뇌리에 섬광이 번뜩였다.
분명, 이 경기 이전의 그라면 불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그는 해낼 수 있었다.
해내고야 말았다.
이번 경기를 통해 이전보다도 더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한 단계 진화했다.
그렇게 말해도 좋을 만큼.
‘아, 그래.’
그러나.
‘이 정도는 해내리라 생각했지.’
하늘이 내린 재능을 가진 건.
백성호만이 아니다.
허리치기를 하던 성현의 눈이 검게 타올랐다.
상대가 보여준 신기는 그를 당황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던 까닭이다.
이 정도는 해내리라는 것을.
근거는 지극히 간단했다.
‘나였다면 그랬을 테니까.’
그가 가능하다면, 상대 또한 가능하리라.
실로 간단한 이치 아닌가?
그랬기에 성현은 똑같은 공격을 시도하는 백성호를 보면서도 결코 마음을 놓지 않았다.
무언가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타악!
때문에, 성현의 대처는 재빨랐다.
내디디던 오른발에 힘을 전함으로써 무게 중심을 뒤로 이동시킨 것이다.
확 젖혀지는 그의 몸.
손목 또한 몸에 바짝 붙이듯 당겨졌다.
그건 백성호가 퇴격으로 전환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걸!’
성현의 손목을 노리던 죽도가 허공을 가른다.
유일하게 찾아낸, 승리로 향하는 '길'.
그게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백성호의 표정에 어려있던 기쁨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공격이 실패하여 주도권이 넘어갔을지언정, 아직 패배한 것은 아니므로.
아득하게 적을지라도 기회는 있었다!
‘멈추지 마라. 움직여! 생각해내는 거다! 상대에게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한 수를─!’
──!
성현이 몸을 젖히며 함께 잡아당겼던 두 손.
그것이 당겨진 시위와 같은 모습이라는 사실을 백성호가 깨달았을 때는 늦었다.
이미 성현은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재차 오른발을 내디디며, 양팔을 쭉 펼치고, 두 주먹을 안쪽으로 짜듯이 하여 죽도를 내지른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오는 ‘찌름’.
일찍이 동생인 백지호를 압도하여 무너뜨렸던 찌르기가, 형인 백성호에게도 그 이빨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현이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참으로 재밌는 우연이 아닌가.
“하아아압-!”
급하게 끌어올린 죽도로는 막지 못한다.
몸을 틀어 흘려내는 것 또한 무리.
아직 휘두른 여파가 전부 가시지 않았기에.
즉, 백성호에게 더는 저 찌르기를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먼저 깨달은 백성호가 쓰게 웃었다.
‘졌다.’
타아악-!
“청색, 목!”
번쩍 들어올려진 청색 깃발.
주심을 비롯한 세 명의 심판은 부정할 여지가 없는 찌름 한 판으로 판정했다.
이미 허리치기로 한 점을 따냈으니, 이걸로 2점.
요컨대, 시합 종료였다.
“시합 끝!”
““와아아아-!””
시합의 결과를 본 관객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다만 아까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거기에 광천고 주전들의 외침 또한 섞여 있었다는 거다.
2승 2무 2패의 상황에서 성현이 승리했다는 건.
다시 말해, 광천고가 승리했다는 뜻이니까.
한 대회의 결승전에서 이긴 자를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는가?
“우승-! 우승이다!”
“우리가 우승했다고! 으아아-!”
우승자.
대회를 제패한 이에게만 붙는 명예로운 이름.
우르르 몰려나온 광천고 검도부 주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성현을 감싸 안았다.
2학년이고, 3학년이고 모두 같았다.
그들은 처음으로 맛보는 우승에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관객석에 있는 이들은 그들의 반응을 이해했다.
그도 그럴 게, 8강에서 용암고를 꺾었을 때부터, 이미 광천고에 대한 건 알음알음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었으니.
우승은커녕, 4강 진출도 해본 적 없는 약소부.
그런 곳이 지난 삼 년간 고교 검도계를 지배했던 패자, 경중고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참으로 기적과도 같은 결과였다.
기뻐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진짜, 처음 우승하러 가자고 할 때만 해도 농담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마치 한 덩어리처럼 뭉쳐 있던 중, 대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 건 그뿐만이 아니리라.
아무리 죽을힘을 다해 훈련했다고는 해도 우승할 수 있을 거라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당장 이 많은 관객 중에서도 이런 결과를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을진대.
“-다들 상대랑 인사부터 해야죠.”
“아, 그렇지. 맞아.”
"그래, 다들 정렬하자."
흥분한 주전들을 가라앉힌 건 성현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중시하는 검도는 시작할 때도, 그리고 끝날 때도 상대와 인사를 하여 예를 갖춰야 했다.
결승전이라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
경중고 측은 이미 일열로 늘어선 채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광천고 주전들도 재빨리 그에 맞춰 늘어섰고.
이내 두 학교 중간에 선 주심이 소리쳤다.
“인사!”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제29회 회장기 검도 대회 남고부 우승.
광천 고등학교.
그들이 앞으로 써 내려갈 전설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걸맞은 기록이었다.
<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