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40화 (40/150)

< 40화: 비운의 천재 >

*

회장기 전국 중·고등학교 검도 대회.

한국 검도 협회에서 개최 및 주관을 담당하는 이 대회는 올해로 29회, 즉 스물아홉 번째 개최였다.

즉, 거의 삼십 년간 매년 열렸다는 뜻이다.

굉장히 전통 있는 대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회장기 검도 대회는 학생 선수가 참가 가능한 대회 중에서는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와 인지도를 자랑했다.

단체전을 진행하는 대회만 본다면, 딱 세 손가락 안에도 들 정도.

춘계 대회, 추계 대회를 제외하면 가장 중히 여겨진다는 뜻이니 이 대회의 중요성을 쉬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와, 사람 겁나 많아···.”

“개회식 때 여기 꽉 차는 거 아니냐?”

“설마. 그래 봐야 이백 명 오는 걸 텐데.”

“이백 명 넘을걸?”

그러한 회장기 대회가 열리는 장소.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청송 국민체육센터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대회 규모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단체전 32강부터 시작하는 대회이니만큼, 출전하는 선수만 이백 명이 훌쩍 넘었으니까.

감독이나 코치까지 따지면 몇십 명은 더 늘어날 테고, 취재를 온 기자나 응원 온 지인들까지 하면 다시 거기서 몇십 명은 더 많아지리라.

검도 단일 종목 대회에 모이는 이들만 사백 명에 가까울 거라는 이야기다.

이래저래 북적북적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 여기구나!”

“네 시간 동안 잤더니 몸이 뻐근해···.”

“혹시나 다치지 않게 잘 풀어 둬라. 알겠지?”

“네, 주장!”

광천고 남자 검도부 주전들이 그곳에 들어선 건, 개회식을 30분가량 남겨 두었을 즈음이었다.

네 시간 동안의 버스 탑승을 끝내고 마침내 대회 장소에 도착한 것이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코트를 가로질러 광천고 마크가 세워져 있는 장소로 향했다.

망설임 없는 걸음이었는데, 그건 작년에 이미 회장기 검도 대회에 참가해 본바, 어디서 대기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다른 선수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정확히는, 중간에 선 성현에게.

“···광천고다.”

“그럼 쟤가 그···.”

“유망주 대회 우승자···?”

성현의 얼굴을 보며 쑥덕거리는 선수들.

한두 명이 알아보니, 다른 이들까지 시선을 보내는 건 순식간이었다.

사실상 개회식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성현 단 한 사람에게 모인 것처럼 보일 정도!

물론 약간 과장 섞인 이야기였지만, 적어도 근처에 있는 선수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검도 유망주 대회의 우승 단 한 번으로 그가 선수들 사이에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빠득.

“······.”

물론, 좋은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는 용암고 주전들 사이에 있는 소년- 강찬울의 시선이 그러했다.

검도 유망주 대회 16강에서 성현을 만나, 방심한 끝에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하고 패배한 강찬울이 성현을 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반드시 설욕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정이었다···.

“이야. 진짜 다 알아보네.”

주위의 시선을 느낀 영준이 감탄하며 말했다.

단지 등장만으로 이처럼 시선을 받을 줄이야.

“워낙에 임팩트가 컸으니까. 방송도 나갔고.”

“하긴. 그렇긴 했어.”

“쪽 안 팔리려면 진짜 잘해야겠다. 다들 주목하는데 바보짓이라도 했다간··· 어우.”

윤호가 장난스레 몸을 부르르 떨었다.

피식 웃은 대현이 대답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우리 보는 사람은 없을걸.”

“다른 선수들이야 그렇지만 기자들은 분명 볼 거라고. 그리고 우리가 지면 막 발목을 잡았다, 뭐 그런 식으로 쓰겠지.”

“전에 정철 선배 때처럼?”

“그래. 그때처럼.”

두 사람이 씁쓸하게 웃었다.

‘무관의 제왕’이니, ‘소년 가장’이니 하며 정철을 띄워 주는 데 필요한 건, 무엇보다도 그의 짐이 되는 이들이다.

저러한 별명들은 결국 그 사람은 잘했는데 팀이 부족했을 때 붙곤 하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대부분의 스포츠 기자들은 그런 식의 표현을 잘 하지 않는다.

설령 한다 해도 안타깝다는 어조로 쓸 뿐이고.

하지만 극히 소수의 기자는 조회 수를 위해 팀을 엉망진창인 짐 덩이처럼 묘사하는 자극적인 기사를 썼었다.

‘그때는 부정할 수 없었지만···.’

‘팀이 짐 덩이가 됐다’, ‘언제나 정철을 방해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 팀에 남아 있는 이유’ 따위의 표현이 쓰인 기사.

그것을 읽었을 때, 대현과 윤호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꺾이지 않았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고, 후배인 성현에게 가르침을 부탁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달라.’

그리하여, 성장한 지금.

대현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약소부 부원이라는 멍에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제대로 된 ‘팀’이라는 걸 보여 줄 각오가.

“──경중고다!”

대현의 상념을 끊은 것은 저 멀리서 들려온 한 줄기 외침이었다.

성현을 비롯한 광천고 검도부 주전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 외침이 들려온 곳으로 쏠렸다.

‘경중고’라는 이름 세 글자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던 까닭이다.

“와씨, 우승기 들고 온 거 봐라. 자랑질인가?”

“전년도 우승자는 원래 저거 들어···.”

“그, 그래?”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저거 쟤네가 들었었잖아. 올해까지 가져가면 삼 년 연속이네.”

수군거리는 선수들 사이로, 우승기를 든 경중고 검도부 주전들이 걸어왔다.

심지어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우승기는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단체전 우승기와 개인전 우승기.

그건, 경중고가 작년도 회장기 검도 대회를 완전히 제패했다는 증거였다.

“······.”

“······.”

주위에서 모여드는 시선에도, 경중고 주전들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저 단호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길 뿐.

이것이야말로 수년간 고교 검도계 정상에서 군림해 온 경중고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백성호.’

성현은 경중고 주전들 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소년- 백성호를.

그는 자신이 얻어 낸 개인전 우승기를 든 채, 주전 중 유일하게 웃는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모습.

하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건 진짜배기 괴물이다.

하늘이 내린 재능.

백 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천재.

차세대 최강자.

훗날 한국 검도계의 염원을 이루어 줄 인재─

이 모든 수식어가 꾸미는 단 한 사람이 바로 백성호였으니까.

심지어 백성호는 재능만큼이나 정신력도 강했다.

어린 나이에 막대한 기대를 받아, 부담감에 망가져 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백성호는, 이 ‘천재’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받은 기대를 전혀 싫어하지 않았고,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며 성장한 끝에, 고등학교에 들어서는 완전한 언터처블이 되었다.

부담감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는 듯이.

아니, 이 정도면 오히려 자신에게 쏟아지는 부담감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었는데-’

성현은 볼을 긁적였다.

이 또한 과거로 돌아온 덕이리라.

그 이전에 한국 검도계를 이끌어 가리라 예상‘되었었던’ 이를 보게 된 건.

“···오?”

당당하게 경중고 자리를 향해 걷던 백성호가 문득 탄성과 함께 멈춰 섰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던 이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재빨리 살필 때, 성현만큼은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어쩐지 그와 시선이 마주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뭐야, 쟤 왜 이리로 와?”

대현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말했다.

그가 한 말처럼, 백성호는 경중고 자리로 가다 말고 광천고 자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던 까닭이다.

그것도 자신이 가는 방향을 숨기지 않고 분명하게 드러낸 채로.

누가 봐도 그는 광천고 쪽으로 오고 있었다!

“동생 진 거 복수하겠다고 저러는 거 아냐?”

“쟤 성격에? 아니 그랬으면 연습 경기 졌을 때 왔겠지. 굳이 지금 오겠냐.”

“그럼 뭔데. 쟤 왜 오는데.”

“···글쎄다.”

현성과 경진이 농담 따먹기를 하는 사이.

성현의 바로 앞에 도착한 백성호가 빙긋 웃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이성현, 맞지? 전에 방송으로 봤는데, 실물이 더 낫네. 아, 방송이 못났다는 건 아니고, 그것도 좋은데, 실물이 그보다 더 괜찮다고.”

뜬금없는 칭찬이었다.

아닌 척하며 긴장하고 서 있던 광천고 주전들의 얼굴이 이상해질 만큼.

그러나 백성호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마치 성현과 두 사람만 있는 듯, 성현만을 보며 말을 이었다.

“지호 이기는 거 보고, 꼭 만나고 싶었어. 직접 보면, 제대로 알 수 있을 거 같아서.”

나른한 듯하면서도, 뚝뚝 끊기는 특유의 말투로 이야기하는 백성호.

흥미가 동한 성현이 물었다.

“뭘 알 수 있다는 거죠?”

“네가 나랑 같은 부류인지. 아니면, 그냥 지호보다 강한 것뿐인지.”

가늘게 뜬 백성호의 눈이 새파랗게 타올랐다.

도저히 숨길 수 없는, 광기 어린 불꽃이었다.

송곳니를 드러낸 야수 같은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근데, 보니까 딱 알겠더라. 아, 얘는 나랑 같은 부류구나, 하고.”

성현은 대답하지 않은 채, 자신을 응시하는 백성호의 눈을 마주 바라봤다.

그들의 눈동자 속에서 비슷한 불꽃이 타올랐다.

다른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정체불명의 기묘한 불꽃이.

“······.”

“······.”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

먼저 물러난 건 백성호 쪽이었다.

“그래. 알았으니, 됐어.”

“······.”

“가볼게. 오늘 대회, 열심히 해.”

그 말을 끝으로, 백성호는 훌쩍 물러났다.

성현의 대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였다.

뒤에 남은 광천고 주전들이 “대체 뭐냐, 쟤.”,

“쟤는 원래 이상했어.”

라며 떠들 때, 성현은 가만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아는 백성호의 별명은 천재가 아니었다.

그 앞을 수식하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운(悲運)’이라는.

‘비운의 천재···.’

누군가 말했더랬다.

천재는 죽음으로써 완성되노라고.

압도적인 재능으로 기대를 받던 이가 젊은 나이에 죽게 되면 ‘만약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대단했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백성호는 그렇게 완성되어 버린 천재였다.

‘전’의 그는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고 말았으니까.

‘안타까운 일이었지.’

성현이 한 번도 백성호를 제대로 본 적 없는 게 바로 그 때문이었다.

서로 활약했던 시기가 완전히 달랐기에.

그래서 오늘 처음 백성호를 보았을 때, 그는 등골을 타고 짜르르 울리는 전율을 느꼈다.

상대가 자신과 같은 부류임을 알았기에.

아마 그건 백성호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렇기에 굳이 직접 보러 왔다가 저렇듯 훌쩍 떠나 버린 것이고.

‘···하지만···.’

성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핏 드러난 그의 눈동자 속에서, 순수하게 새카만 불꽃이 타올랐다.

백성호의 것보다 훨씬 거세고, 훨씬 깨끗한.

마치 정수와도 같은 불꽃이.

‘흘려보낸 시간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만약 성현이 삼십 대 중반이었을 때.

그러니까, 이제 막 재능을 깨닫고 개화하고 있을 무렵.

그때 백성호를 만났다면 좋은 상대가 되었으리라.

서로 지고, 이기고 하며 호적수로 성장했을 터.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성현은 그로부터 사십 년간 계속해서 검도를 했고, 그 시간만큼 성장하여 경지에 도달했다.

그렇게 생긴 아득한 시간의 차이를 메우는 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왜 그래. 괜찮아?”

“백성호 실제로 보고 이러는 게, 아무래도 뭔가 포스 같은 게 느껴졌나 본데?”

“···아뇨. 아닙니다. 그냥.”

성현이 흐리게 웃었다.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우승할 수 있을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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