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우승하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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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는 어디인가?
만약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열에 여섯은 ‘언더키(UnderKey)’를 언급하리라.
그만큼 국내 1위 기업 언더키의 인지도가 높다는 뜻이다.
여러 국내 스포츠 브랜드에 쟁쟁한 외국 스포츠 브랜드가 널려 있는 상황에서 그럴 수 있는 건, 그만큼 언더키가 정상의 자리를 확고히 지켰기 때문이었다.
한두 해만 반짝한 게 아니라, 십 년 가까이 쭉 최고로 군림하였으니.
그렇듯 국내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언더키는 순위 인지도나 제품의 품질뿐만 아니라, 후원 금액을 엄청나게 사용하기로도 유명했다.
축구나 야구 같은 인기 스포츠는 물론이요, 평소 들어보기도 힘든 비인기 종목 또한 가림 없이.
오죽하면 업계인들 사이에서는─
‘언더키는 스포츠라면 일단 후원하고 본다’.
─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돌 정도였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후원을 했다는 것이지, 그 금액이 터무니없이 많다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딱 발만 들여놓은 곳도 있었으니까.
체면치레하듯이 가볍게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분명 존재했다.
비인기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인기 종목만큼이나 투자한 끝에, 결국 아예 해당 종목의 저변을 늘려 버린, 그런 경우.
대표적으로는, 검도가 그랬다.
[언더키, 검도 대표팀에 포상금 1억 2천만 원]
[검도는 어떻게 비인기 종목을 탈출했나. ‘브랜드 후원’의 힘, ‘언더키’ 편]
[세계검도선수권 한국 대표 개인전 대활약. 후원 기업 언더키 ‘방긋’]
[유망주 후원··· 언더키의 계속되는 검도 사랑]
언더키는 현역 선수들은 물론이요, 학생 선수인 유망주까지 찾아 키울 정도로 공을 들였다.
아직 국내에서 스포츠 브랜드 최고의 자리를 쥐기 전부터도 그랬으니, 언더키의 끝 모를 검도 사랑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지금의 언더키를 만들어 낸 회장, 천병중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검도를 했고, 젊어서도 꾸준히 했으며, 늙은 지금은 유일한 낙이 검도 대회를 보는 것이라 공공연하게 말하는 그.
맨손으로 국내 최고의 브랜드 기업을 키워 낸 그의 영향은 막대했다.
검도 같은 비인기 종목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 아예 저변을 크게 넓히는 것도 가능할 만큼.
물론 손해만 봤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테지만, 의외로 검도는 생각보다 쉽게 알려졌고, 겨우 흑자를 볼 수준까지 종목 자체가 성장했다.
그래 봤자, 이것저것 고려해 보면 딱 ‘손해만 안 본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그게 어딘가?
각설하고.
국내 1위 스포츠 브랜드의 후원과 그곳 회장의 무한한 사랑을 받아먹으며 성장한 검도에는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저변 자체가 넓어졌다는 표현처럼 학생 선수의 숫자가 크게 늘었고, 겨우 스무 개 남짓하던 실업팀도 그 다섯 배 가까이 증가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바로 검도를 좋아하는 팬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점이다.
‘인기’라는 건 결국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것을 알고 좋아하느냐의 척도!
그 말인즉, 검도의 인기가 늘어났다는 건, 검도를 사랑하는 이들의 숫자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취미 삼아 직접 하는 사람이건, 그도 아니면 그저 ‘보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건 간에.
물론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대개의 스포츠들도 다 그러했으니.
검도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언더키가 그들을 배려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검도라이프’.
이용자들에게는 간단히 ‘검프’라고 줄여 불리는 이 커뮤니티를 만든 건 역시나 언더키였다.
마땅한 검도 관련 커뮤니티가 없던지라, 이곳이 대표적인 검도 커뮤니티가 되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검도의 인기를 만들어 낸 기업이 만든 사이트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아무튼, 이 대표 검도 커뮤니티 ‘검도라이프’를 이용하는 팬들은 대개 두 부류였다.
<요즘 서울시청 팀 어떤가요?>
<부산시청 실업팀 파이팅!>
<공주시청에서도 팀 하나 만들어 줬으면···.>
<백성호 어느 실업팀 들어갈 건지 결정했나요?>
하나는, ‘팀’을 응원하는 팬들.
검도 실업팀 대부분은 시청에서 만든다.
따라서 팀을 응원하는 이들은 대개 연고지에 따라 그곳을 응원하는 이들이었다.
마침 우후죽순처럼 검도 실업팀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었기에, 자신의 연고지 팀을 찾아 응원하기 쉽기도 했으니.
하지만 이들이 대세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팀을 응원하는 팬의 비율은 대략 이 할 정도.
그렇다면 나머지 팔 할, 아니 칠 할 오 푼은 어떤 팬들인가.
<위대한 선수 진짜 이름 그대로네요.>
<이번 강준 선수가 강한 이유 분석.txt>
<올해는 이원영 선수가 트로피 하나는 들어 올리기를···.>
<백성호가 실업 올 날만 기다리는 중.>
바로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이었다.
팀 자체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선수 한 명만을 골라 응원하는 팬들.
애초에 검도라는 건 결국 일대일 대결이고, 단체전이라 해 봤자 연달아 일대일 대결을 펼치는 것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복싱이나 이종격투기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개인 대결 성향이 짙은 만큼, 선수 한 명을 응원하는 팬들이 많은 건 합당한 일이었다.
물론 모든 팬이 이 두 부류인 건 아니다.
남은 오 푼, 진짜 검도를 사랑해서, 모든 선수를 전부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남자, 김동안이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오늘은 댓글이 얼마나 달렸으려나.’
김동안은 즐거이 웃으며 검도라이프에 접속했다.
그는 ‘검도라이프’ 사이트 창설일과 거의 비슷한 가입일이 기록된 ‘검맨’이라는 아이디를 가지고 있는 올드비 중 한 명이었다.
더불어, 취미 삼아 직접 도장에 나가 검도를 하기도 하고, 또 대회를 찾아보는 것도 즐기는 진짜배기 검도 팬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는 한 가지 취미가 있었는데···.
<[검맨분석] 차세대 최고 검도 유망주는 누구일까?> +댓글 473개
“와우.”
바로 ‘검도 유망주’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동안은 일단 유망주 소리를 듣는 학생 선수가 출현했다 하면, 직접 발품을 팔아 연습 경기를 볼 만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여태까지 수백 명이 넘는 검도 유망주를 분석했고, 그중 가장 큰 업적은 중학교 1학년이 된 ‘천재’ 백성호를 발견한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천재였던 백성호가 업계 사람들에게 일약 유명해진 계기가 그의 분석 글 덕분이었으니까.
백성호에 대해 분석하며 그가 쓴 한 문장─‘어쩌면 우리는 다시 없을 천재의 탄생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은 아예 백성호를 상징하는 별명으로 정착해 버렸을 정도였으니.
‘오백 개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 많은 댓글은 놀라웠다.
동안이 검도라이프의 유명 네임드라 할지라도, 한 글에 달리는 댓글은 겨우 백 개 내외.
이백 개만 달려도 많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새롭게 올린 글에는 무려 오백 개 가까운 댓글이 달린 것이다.
심지어는, 올린 지 이제 겨우 반나절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김동안은 곧 납득했다.
‘···하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
달칵.
‘이런 내용이라면 말이야.’
<[검맨분석] 차세대 최고 검도 유망주는 누구일까?>
글쓴이: 검맨(Lv.99)
우선,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본 저자는 지난 글 중 ‘[검맨분석] 유망주 124. 백성호 편’에서 했던 이야기를 정정하고자 한다.
전날 저자는 백성호 선수에 대해 분석할 때, “어쩌면 다시 없을 천재의 탄생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라고 썼었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이며, 이 세대에 그에 버금가는 재능은 없을 것이다”라고도.
그건 틀린 말이었다.
왜냐하면, 저자가 백성호를 찾아낸 지 채 사 년도 되지 않아, 새롭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백성호에 버금가는 천재를.
‘이성현’이라는 이름의 소년을 말이다···.
“흐음-”
자신이 쓴 글을 느긋하게 읽으며, 동안은 이 글의 주인공인 ‘이성현’이라는 소년의 정보를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그가 직접 성현의 중학교부터 검도장까지 발품을 팔아 가며 알아낸 정보들을.
이성현.
검도 경력 올해로 2년 차.
중학교 당시에는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고등학생이 되어 완전히 개화한 케이스.
경중고와의 연습 경기에서 ‘천재’ 백성호의 동생, 백지호를 이긴 것으로 첫걸음을 시작.
이후 제2회 검도 유망주 대회에 나가 결승전까지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역으로 2점을 따내며 파죽지세로 승리.
결승전에서는 단 한 번도 드러낸 적 없던 상단세를 사용해 압승.
실력 면에서는 감히 말하건대, ‘측정 불가’.
겨우 2년 동안 검도를 배운 실력이 아님.
그렇기에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유망주.
‘뭐, 간단히 말해서─’
괴물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동안은 정말로 성현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람이어서는 안 됐다.
저런 괴물까지 사람의 카테고리에 넣어 버리면, 사람 평균을 너무 올려 버리기에.
그는 아직도 검도 유망주 대회 결승에서 성현이 보여 준 상단세를 잊을 수 없었다.
맹렬한 불꽃, 그 자체였던 모습을.
그게 어딜 봐서 이제 겨우 경력 2년 차의 상단세란 말인가?
‘심지어 중단이 약한 것도 아니지. 결승전까지 상대를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었던 게 중단이니까.’
워낙 상단의 임팩트가 커서 가려져 있지만, 성현의 중단 또한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했다.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에 입이 쩍 벌어졌었으니까.
두 겨눔세를 모두 수준급으로 사용한다?
그것도 검도 2년 차가?
‘그런 애는 인간이어서는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이성현, 대단한 유망주가 나왔네요. 검맨님 픽이면 믿을 만하죠. 기억해 놔야겠습니다 └저도 기억해 놔야겠습니다 └저도요!!
-아무리 그래도 백성호에 비비는 건 좀;; 이제 겨우 유망주 대회 우승 기록뿐인데;;;
└맞죠ㅋㅋ 백성호가 지금 얻은 트로피만 일렬종대로 세우면 검도장 꽉 차니까요ㅋㅋ└그건 살짝 오바긴 한데··· 음, 아닌가 └재작년, 작년 싹쓸이 생각하면 가능할지도···?
-새로운 천재의 등장이라니
-요즘 검도판 왜 이렇게 재밌죠?
-보기 드문 상단세를 사용하더군요. 심지어 제대로. 기대할 만한 인재가 맞습니다 └그래 봤자 백성호한테는 좀 ^^;;
└일단 백지호는 꺾었는데요? 두 번이나?
└한 번은 연습 경기일 뿐이잖아요
└동생을 이겼다고 형한테 이긴다는 건 진짜 검알못이신데ㅋㅋㅋㅋ└검맨님 분석 못 믿으시나요?
└앞으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지, 검맨님도 확정하는 건 아니신데요?
-고놈 참 자~알 생겼다!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을 듯ㅋㅋ
-작을 거임. 암튼 작을 거임
└작은 거인 엌ㅋㅋㅋㅋ
└?
처음 얼마간 댓글은 평범했다.
그저 새로운 유망주가 나왔구나 하는 반응부터, 백성호급은 아니지 않냐는 이야기까지─동안은 괴상한 ‘유우머’ 댓글을 애써 모른척했다─.
여기까지는 도저히 오백 개 넘게 댓글이 달릴 것이라 보이지 않았다.
바로 다음 댓글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팩트) 1년 뒤면 사라져서 얼굴도 안 보임. 백성호와 비비는 건 말도 안 됨 ㅅㄱ└이분 댓글 목록 보니 진성 백성호 빠시네요└빠고 나발이고 이게 사실인데요?
└본문에 있는 이성현 결승전 영상 보시면 그런 말씀 절대 못 하시는데;
└그건 걍 상단세 대처를 못 한 거고ㅋ
└그리고 왜 동생 이긴 걸 형한테 갖다 붙임?ㅋ
└팩트) 일단 외모로는 백성호가 짐 ㅅㄱ
└지랄하고, 자빠졌네.
└제가 볼 때는 실력에서도 백성호랑 비빌 수 있어 보이는데요ㅋㅋ└상단세에 대가리 깨져 봐야 정신 차림 ㄹㅇ극성 백성호 팬이 단 댓글부터 시작해서, 한바탕 투기장이 열려 있었다.
백성호 팬부터 다른 유망주 팬들, 심지어 이제 성현의 팬이 되었다고 하는 이들까지 한데 섞여 댓글로 치고받고 있던 거다.
동안은 이 부분은 슥슥 넘겼다.
이런 싸움에 정답은 없었으니까.
결국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누가 강한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다.
‘백성호가 원톱이다가 7, 이성현이라면 아직 모른다가 3 정도인가.’
생각보다 성현을 옹호하는 쪽이 많았다.
여태까지 백성호가 보여 준 위용을 생각하면 9 대 1, 못해도 8 대 2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그러나 동안은 왜 그런지 금방 알아차렸다.
성현이 가진 스타성 때문이었다.
잘생긴 외모.
검도 시작 2년 차에 우승한 하늘이 내린 재능.
쉽게 볼 수 없는 겨눔세인 상단세 사용자.
중단세로 이기다가, 마지막은 상단세로 마무리하는 퍼포먼스까지.
팬이 붙을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지 않은가.
특히나, 라이트하게 검도를 좋아하는 여자 팬들이라면 더더욱.
‘뭐, 그래도-’
동안이 슬쩍 달력을 확인했다.
7월이 펼쳐진 그의 달력 중 하나의 날짜에는 빨간 원에 밑줄에 별표까지 그려져 있었다.
‘회장기 전국 고등학교 검도 대회’를 하는 날이라는 문장과 함께.
‘이제 곧 제대로 결판이 나면 알게 되겠지.’
이성현과 백성호.
둘 중 누가 더 강한지를.
*
성현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날카로운 예기를 숨긴 검처럼.
이제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하여 잠시 묵상을 한 까닭이리라.
“······.”
곧 당당히 선 성현이 걸음을 옮겼다.
망설임 따위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거침없는 걸음이 이어졌다.
그는 검도장을 나서서도 단 한 번도 멈춰서지 않았다.
“······.”
“······.”
그런 그의 뒤에 슬그머니 모여든 건 광천고 남자 검도부 인원들이었다.
영준, 대현, 윤호의 2학년 트리오부터, 주장직을 완전히 넘겨 준 정철, 그리고 현성과 경진까지.
간단한 눈인사만 건넨 그들은 자연스레 성현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성현을 중심으로 걸어가는 광천고 남자 검도부.
이것만 봐도, 현재 남자 검도부의 중심이 되는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된 구심점을 찾은 그들이 하나로 완전히 뭉친 것이다!
“한번 가 보죠.”
버스에 오르기 전.
성현이 뒤를 보며 말했다.
입가에 지울 수 없는 진한 미소를 지은 채로.
“우승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