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31화 (31/150)

< 31화: 시상식 >

모든 경기장 정리가 끝난 후.

스태프 한 명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고, 곧 수상을 받을 선수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사실, 선수들이라 해 봐야 결과적으로 모인 건 겨우 네 명밖에 되지 않았다.

전국 고등학교 검도 유망주 대회는 여자부, 남자부 두 개밖에 진행되지 않았을뿐더러, 시상도 우승과 준우승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여자부 준우승, 서울여자고등학교 김민지]

[남자부 준우승, 경중고등학교 백지호]

먼저 진행된 것은 준우승 수상식이었다.

남자부에서는 경중고의 백지호, 여자부에서는 서울여고의 김민지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대회를 주최한 S 방송국의 임원들이 은빛으로 빛나는 트로피와 상장을 두 사람에게 건넸고, 박수갈채 속에서 그들이 그것을 들어 올렸다.

준우승자 두 사람의 사진 촬영이 짧게 진행된 뒤에, 비로소 우승 수상식이 진행되었다.

[여자부 우승, 광천고등학교 강수연]

[남자부 우승, 광천고등학교 이성현]

“축하합니다, 이성현 선수.”

“감사합니다.”

성현은 S 방송국 임원이 웃는 얼굴로 내민 상장과 금빛 트로피를 받아들었다.

전국 고등학교 검도 유망주 대회 우승, 2020년 최고의 검도 유망주라 쓰여 있는 상장과 트로피를 본 그의 표정이 묘해졌다.

굉장히 오묘한 감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이건 ‘전’의 그가 손에 넣기는커녕, 만져 보지도 못했던 트로피였으니까.

‘과거를 바꿨다···. 아니, 이제는 현재인가.’

즉, 이 트로피야말로 이성현이라는 사내가 ‘전’과는 다른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검도를 하며 수많은 트로피를 손에 넣었었음에도 이토록 감명 깊은 건 분명 그래서이리라.

하지만, 그런 감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과거, 아니 이제는 현재가 된 지금을 바꿨다 한들 성현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까닭이다.

그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오직 ‘전’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뿐.

그 외의 모든 것은 그에게 있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평생을 검도에 바쳤으며.

또다시 평생을 바치려 하는 수행자.

그것이 이성현이라는 사내였으므로.

“우승자 두 분 잠깐 사진 촬영하겠습니다!”

이어진 사진 촬영 시간.

준우승자 시상 때는 짧게 찍고 지나갔던 사진 촬영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아무래도 준우승자보다 우승자의 중요성과 상징성이 높은 까닭이리라.

기사에 실릴 사진도 보통 우승자의 것이니까.

S 방송국 임원과도 찍고, 심판들도 끼어서 찍고, 개인 사진도 한 번씩 찍고 하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신나게 셔터를 누르던 사진사가 말했다.

“마지막으로 두 분 찍고 끝내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트로피만 들어 주시고, 좀 더 붙어서. 네, 그렇게 서 주시면 됩니다.”

성현과 수연은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트로피를 든 채 가까이 붙어 섰다.

훤칠하고 예쁜 미남미녀가 함께하는 모습에 주위에서 지켜보던 어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에 대해 성현은 언제나 그랬듯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그의 옆에 선 수연은 달랐다.

해맑게 미소 짓는 겉모습과 달리, 그녀는 속으로 자신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음흉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조금만 더···. 앞으로 조금···!’

‘사진 촬영 언제 끝나지.’

“그대로 계세요. 찍습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채로 마지막 사진 촬영도 끝.

시상식을 마친 성현과 수연이 기다리고 있던 성하와 하윤에게로 걸음을 옮길 때,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의 눈이 번쩍 빛났다.

바로 대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스포츠용품 기업 관계자들이었다!

‘드디어···!’

‘지금을 기다렸다!’

대회 도중에 말을 걸면 혹여나 집중에 방해될까 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던 그들이다.

시상식이 끝나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들이 마침내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그들의 눈에서는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그 시선의 종착지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성현이었다.

‘이성현만큼은 절대 뺏겨선 안 돼!’

‘둘 다 얻으면 좋겠지만, 안 된다면 무조건 이성현부터!’

‘어쩌면 이성현이야말로 백성호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상대일지도 몰라.’

성현과의 후원 계약을 절실하게 원하는 관계자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보통 스포츠용품 기업이 선수를 후원하는 건, 그 선수를 통해 이미지 상승을 꾀하기 위해서다.

하여 후원 계약에는 선수의 실력과 이미지가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는데, 성현은 그 두 가지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실력.

이건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검도 유망주 대회를 사실상 박살 내다시피 했으니까.

게다가 어설픈 상대만 만나 이긴 것도 아니다. 빅4에서 출전한 우승 후보들을 꺾고, 심지어 전회 우승자의 동생마저 압살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는 일견 차후 검도계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추측되는 초특급 유망주, 백성호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 또한 성현과 마찬가지로 2점 전승으로 우승을 거머쥐었으니 말이다.

이어서, 이미지는 어떤가.

일단 잘생긴 얼굴 하나로도 먹고 들어갔다.

‘훈남’ 정도인 백성호와는 달리, 성현은 누가 봐도 잘생겼다 할 만한 외모였으므로.

‘잘생기고 실력 있는 소년 검사’라니.

실로 검도 관련 스포츠용품 기업이라면 침을 줄줄 흘릴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성현은 앞선 두 가지에 더해 화제성마저도 어마어마했다.

그는 그 드물다는 상단세 사용자였으니까.

불의 자세, 하늘의 자세라 하며 한 방에 모든 것을 거는 호쾌함의 극치인 자세!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함까지 갖췄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게 단순히 수박 겉핥기식이 아니라는 것도 모두가 알았고.

‘실력에 이미지, 화제성까지. 완벽하다.’

‘어떻게든 후원 계약을 맺어야 해!’

‘언더키가 나서서 채가기 전에 최대한 빨리!’

특히나 마음이 급한 이는 ‘리다스’ 관계자였다.

언제나 언더키에 밀려 2위를 차지하고 있던 스포츠용품 기업인 리다스.

거기서 나온 관계자는 성현을 백성호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보았다.

자연히 다급해질 수밖에.

이만한 슈퍼 루키는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안녕하세요! 이성현 선수, 강수연 선수! 저는 스포츠용품 전문 기업인-”

“반갑습니다, 이성현 선수! 잠시 이야기를-”

“우승 축하드립니다! 혹시 후원 관련으로 관심-”

사냥을 나선 늑대 무리처럼 성현 일행을 둘러싼 관계자들이 한꺼번에 말했다.

본래라면 서로 눈치를 보다 한 명씩 접근했겠지만, 워낙 성현의 가치가 크다 보니 그들도 일단 들이대고 본 것이다.

서로의 말이 겹치며 중간에 끊겼음에도 그들은 단 한 명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슬쩍 눈을 흘기며 기 싸움을 하기까지 했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잠시만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이번에 저희 쪽에서도 야심 차게 준비한-”

“사용하시는 장비 일체는 물론이고, 다양한 소모성 용품까지 전부 제공-”

“음···.”

주위에 몰려들어 떠드는 업계 관계자들을 둘러보는 성현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어쩌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거라 대회에 출전하기 전에 이미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그도 나름 검도계 사정에 빠삭하였으므로.

설마 이렇게까지 반응이 격할 줄은 몰랐지만···.

그의 옆에 있던 수연이 소곤거리듯 물었다.

“어떡하지, 성현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슬쩍 앞으로 나서 수연을 자신의 뒤로 숨긴 성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금방 상황 정리될 거야.”

확신이 가득한 성현의 말.

그것은 이제 곧 나타날 ‘그녀’를 믿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자신감이었다.

그가 아는 그녀라면 당연히 이곳에 왔을 터.

아마 그를 보자마자 그의 재능을 깨닫고 눈여겨보았으리라.

실제로 ‘전’에 막 두각을 드러내고 있던 그를 찾아와 후원 계약을 제안했던 것도 그녀였으니까.

성현은 이번에도 분명히 그러하리라고 예상했고, 그건 정확히 들어맞았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모여든 군중을 헤치며 한 명의 여성이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깨를 살짝 넘는 군청색 머리카락, 테 없는 안경 너머로 보이는 반짝이는 눈,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인상적인 여인이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그녀는 살짝 들뜬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와, 성현의 앞에 섰다.

“천수아 팀장···!”

업계 관계자 중 한 명이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정체를 밝혔다.

현 스포츠용품 업계 1위 ‘언더키’의 마케팅부 산하 선수후원기획팀 팀장 천수아!

처음부터 성현을 유심히 지켜보고, 그의 머리치기를 “아름답다.”라고 격찬했던 그녀의 등장이었다.

“반가워요. 이성현 선수, 그리고 강수연 선수. 저는 언더키에서 나온 천수아라고 해요.”

천수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주위에 있는 다른 업계 관계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듯했다.

안 그러면 성현과 수연만을 바라보며 이처럼 인사를 건네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네, 반갑습니다. 이성현입니다.”

성현은 무덤덤하게 마주 인사했지만, 수연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언더키라구요?”

깜짝 놀란 얼굴의 수연이 소리쳤다.

성현과 함께 언더키 브랜드 스포츠용품점에 갔을 때도 말했듯이, 그녀는 언더키의 후원을 받고 싶어 했던 까닭이었다.

대회가 끝나고 스포츠용품 기업 관계자가 말을 걸어 온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그녀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네, 그래요. 강수연 선수. 언더키예요. 저는 거기서 선수후원기획팀의 팀장을 맡고 있어요.”

“와-”

“이렇게 찾아뵌 건 다름이 아니라, 강수연 선수와 이성현 선수의 후원 관련으로 계약을 맺고 싶어서예요. 혹시 잠시 이야기 가능할까요?”

“저는 괜찮은데, 다른 일행도 있어서···.”

수연이 망설이자, 천수아가 빙긋 웃었다.

“그럼 그분들도 모시고 말씀드리죠. 근처 카페라도 같이 가시는 건 어떨까요?”

“잠시만요. 이야기 좀 해 볼게요.”

“네. 얼마든지 기다릴게요.”

한 가지 놀라운 건, 천수아가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관계자들이 슬그머니 물러났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들이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빠르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현 언더키 회장, 천병중의 손녀가 나타난 이상, 더는 언더키와 후원 계약을 하는 걸 막을 수는 없을 테니까.

개중 경험이 적은 몇은 끼어들어 보려 했었지만, 옆에 있던 베테랑들이 막아 세웠다.

“왜 물러서는 거예요, 선배!”

“아서라. 천 팀장이 나섰으면 글렀으니까. 차라리 다른 사람이 왔으면 해 볼 만했을 텐데. 하필···. 후-”

“아무리 천 팀장이 언더키 회장 손녀라도 어차피 검도는 야구나 축구에 비교하면 비인기 종목이니까 이쪽에서 조건만 잘 걸면 어떻게든···.”

가만히 듣던 베테랑이 혀를 찼다.

“언더키 회장이 제일 좋아하는 운동이 검도야.”

“네?”

“심지어 손녀까지 보내서 직접 챙길 정도로 푹 빠져 있지. 아마 천 팀장이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말 한마디만 하면 무제한으로 지원해 줄걸.”

그제야 전후 사정을 파악한 이들이 탄식을 내뱉었고, 결국 관계자들은 안타까움을 씹어 삼키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건다고 해도, 회장 지원까지 받는 천수아보다 좋은 조건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런 그들을 향해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천수아가 한곳에 모인 성현과 수연, 성하, 하윤 네 사람을 향해 여상히 말했다.

“그럼, 가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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