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알 수 없는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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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음악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두 명의 중년 남성이었다.
두 사람은 기묘하게도 분위기가 판이했는데, 한 명이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면, 다른 한 명은 날카롭고 강인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서글서글한 인상을 준 중년 남성이었다.
“전국 검도 팬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2020 전국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의 캐스터를 맡게 된 손지찬입니다. 해설로 성균관대학교 송학림 교수님과 함께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송학림입니다.”
“어느새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도 2회를 맞이했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송학림 해설님. 우선 이 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시청자 여러분께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예, 이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는-”
강인한 인상의 중년 남성, 송학림 교수가 딱딱한 목소리로 전국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에 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유망주 발굴을 위한 취지로 시작되었으며, 전국의 고등학생 검도 유망주 중 가장 뛰어난 이가 누군지 가릴 수 있는 대회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대회가 아직은 2회밖에 되지 않았지만, 차후 시간이 흐를수록 마치 등용문처럼 발전할 것이라는 예측도 하였다.
“···특히나 1회의 우승자인 임하윤 양과 백성호 군은 일 년이 지난 지금, 고교 검도계의 쌍두마차라고 불릴 정도로···.”
송학림 교수는 자신이 한 예측의 근거로 든 것은 1회의 우승자인 임하윤과 백성호였다.
그들이 대회 우승 후에도 승승장구하여 고교 검도계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실 유망주 대회 이전에 있었던 춘계 전국 대회 때도 훌륭한 활약을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 이 대회 덕분이니 썩 틀린 의견은 아니었다.
“네,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의 진행 방식 및 경기 방식을 가볍게 설명해 드리자면-”
잠시간 이어진 대회의 진행 방식과 경기 방식들에 대한 설명들.
검도를 모르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대회를 재밌게 볼 수 있도록 기초적인 설명을 시작 전에 해두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크게 시간을 쓰지는 않았다.
약 2분에 걸친 설명이 끝난 후에는, 곧바로 카메라가 비추는 장소는 중계진이 있던 스튜디오에서 경기 현장으로 바뀌었으니까.
한쪽 벽면에 ‘2020 전국 고등학교 검도 유망주 대회’라 쓰여 있는 현수막이 걸린 잠실 학생 체육관 내부의 모습이 나온 것이다.
“먼저 보실 경기는 남자 준결승전입니다. 상포고등학교의 장윤백 선수. 2학년이네요.”
이어서 카메라가 비춘 것은 경기 준비를 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
상포고 2학년, 장윤백.
그는 준결승까지 꽤 무난하게 승리를 거두며 올라온 선수였다.
압도적인 승리는 없었지만, 이렇다 할 고전도 없이 준결승에 진출했다고나 할까.
막 자리에서 일어난 그를 보며 송학림 교수가 빠르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작년에는 춘계 전국 대회 때 입은 부상으로 인해 참가하지 못했던 선수입니다. 빅4로 불리는 강호 고등학교 중 한 곳인 상포고 출신으로, 머리치기가 굉장히 날카롭죠.”
“그렇군요.”
중계진이 설명을 마치기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자연스레 돌아가는 카메라.
이번에 비춘 것은 장윤백의 맞은편이었다.
그곳에는 가만히 선 채 심판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성현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처음으로 전국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에 맞서는 선수는 광천고등학교의 이성현 선수입니다. 1학년으로 한 살 어리군요.”
“이성현 선수는 올해 광천고에 입학해서, 이번 대회가 공식적인 첫 대회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준결승까지 진출하면서 현재 가장 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선수입니다.”
송학림 교수의 말에 손지찬 캐스터가 물었다.
“가장 큰 돌풍이라 하심은?”
“32강에서 김재헌 선수를 상대로 대회 최단 시간 득점 기록을 경신했고, 16강에서는 우승 후보였던 용암고 강찬울 선수를 격파, 이어 8강 김중안 선수까지 압도적으로 이기며 올라왔습니다.”
다소 들뜬 어조로 설명하는 송학림 교수.
그도 그럴 게, 1학년이 이토록 압도적인 승리를 연달아 거두며 올라온 건 이미 1회 대회 때도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바로 임하윤과 백성호였고.
즉, 지금까지의 모습만 본다면 성현은 백성호만큼이나 뛰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자연히 검도인인 송학림 교수의 목소리에 흥분이 묻어날 수밖에.
“심지어 세 경기에서 전부 2득점 승리를 거뒀습니다. 1회 때의 백성호 선수가 떠오르는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대회의 신성이라고 할 만합니다.”
“네. 그렇군요. 말씀드리는 순간, 장윤백 선수와 이성현 선수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선배의 힘을 보여 줄 것인가, 신성의 돌풍이 계속될 것인가. 지켜봐야겠습니다.”
*
“······.”
상대의 기세는 서늘하고 날카로웠다.
성현은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과연 빅4인 상포고의 2학년이라는 것일까.
이제까지 싸웠던 그 어떤 이들보다 강하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 왔다.
하기야, 우승권 후보라 불리는 강호 고등학교에 갔다면 그 실력이 예사 수준이 아니리라.
심지어 거기서 일 년 동안 갈고닦기까지 했으니.
뛰어나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일 터.
‘하지만 그뿐이야.’
오랫동안 후학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성현이기에 알 수 있었다.
상대, 장윤백의 실력은 제법 뛰어났지만, 안타깝게도 딱 그 정도일 뿐이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번뜩이는 재능 없이 노력으로 완성된 범재라는 느낌이랄까.
아마 16강에서 싸운 강찬울이 일 년 동안 자신을 갈고닦는다면, 지금의 장윤백을 이기는 건 썩 어려운 일이 아닐 터였다.
타악! 탁! 타닥!
「장윤백 선수, 천천히 밀어붙여 봅니다.」
「아마 섣부르게 들어가기는 무서울 겁니다. 오전 세 경기에서 이성현 선수가 보여 준 받아치기 솜씨는 현역 선수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장윤백이 시도하는 공세가 성현에게 있어 썩 위협적이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보통 재능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공세들을 취하고는 했는데, 장윤백의 공세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저 배운 대로, 연습한 대로 해 나가는 듯한 인상이 다분하게 느껴졌다.
‘파악은 끝났다.’
대강 실력 파악을 끝낸 성현은 호흡을 골랐다.
상대에게서 공격해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가 반격하는 게 두려우니, 공격을 들어가기보다 막고 반격하려는 듯했다.
딱히 틀린 선택이라고 하기도 힘든 건, 32강, 16강, 8강 세 경기를 통틀어 성현이 먼저 공격에 나서 득점한 건 32강 첫판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전부 반격으로 득점했으니, 장윤백으로서는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아직 한판을 빼앗긴 것도 아니었고.
‘그럼, 내가 먼저 들어가 주지.’
“하아앗-!”
마음이 정한 순간, 몸은 따르게 되니.
일족일도의 거리에서 공세를 나누던 성현이 발을 박차며 나아갔다.
두 팔을 앞으로 쭉 내뻗는 찌르기!
죽도의 끝, 선혁이 마치 송곳니처럼 날카롭게 찔러 들었다.
「이성현 선수, 먼저 들어갔습니다!」
방심하지 않고 기다리던 장윤백이 잽싸게 몸을 뒤로 빼며 격자 부위를 숨겼다.
아무리 위력적인 찌르기라 해도, 상대가 이미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는 상태에서 득점하기는 쉽지 않은 일.
성현의 죽도가 목 어디쯤 닿기는 했지만, 유효 격자 부위는 아니었으므로, 심판들은 득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네- 이성현 선수가 찌르기를 시도했지만, 장윤백 선수가 잘 막았습니다.」
「대비하고 있던 만큼 깔끔한 방어였습니다. 하지만 장윤백 선수, 반격해야 하거든요? 막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후-”
공격이 막힌 성현은 반 박자 쉬듯 멈춰 섰다.
그런 그를 견제하듯 장윤백이 죽도를 내뻗었다.
득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중심을 막음으로써 멈춰 세우기 위한 ‘중심 막기’였다.
성현의 눈이 빛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래. 이럴 줄 알았지.’
살짝 허리를 세워 죽도가 가슴팍에 닿는 것을 피한 성현이 손을 돌렸다.
한순간, 둥글게 반원을 그리는 그의 죽도.
그것이 장윤백의 죽도 중간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리누르며, 끝에 가서는 오른쪽으로 내던지듯이 팽개쳐 버렸다.
일찍이, 그가 용암고의 강찬울을 상대로 보여 줬던 ‘감는 기술’이었다.
「어, 이성현 선수!」
「죽도 제대로 감았습니다!」
“엇···?!”
그나마 장윤백은 머릿속 한구석에서 대비하고 있었는지, 강찬울처럼 죽도를 놓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감는 기술’은 죽도를 놓치게 하는 게 중점이 아니라, 상대의 의표를 찔러 손매무새와 자세를 흐트러뜨리는 기술이다.
죽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다 중심을 잃고 몸이 앞으로 쏠린 지금의 장윤백처럼 말이다!
“하아아압-!”
기부림과 함께 곧바로 ‘퇴격 머리치기’!
오른발을 박차 몸을 뒤로 밀고, 왼발이 땅에 닿기 전에 재차 오른발을 굴리며, 그와 동시에 죽도의 타격이 이루어진다.
자세가 흐트러진 장윤백이 그것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성현의 죽도는 장윤백의 머리를 힘차게 두들겼다.
“청색, 머리!”
유심히 살피던 주심이 청색 깃발을 번쩍 들었다.
부심 두 명 또한 마찬가지.
「깃발 올라갔습니다. 머리를 쳤죠?」
「감는 기술에 이은 퇴격 머리. 깔끔하네요.」
「이성현 선수의 득점!」
「이건 장윤백 선수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16강에서 이성현 선수가 강찬울 선수를 상대로 한 두 번째 득점이 감아돌려 머리치기였거든요? 어설프게 죽도를 내밀면 바로 감을 수 있다는 걸 예상했어야죠!」
“두 판째!”
이어진 두 번째 판 또한 이변은 없었다.
장윤백와의 경기는 이전까지 성현이 치렀던 경기들과 똑같은 전개로 이어졌다.
첫 번째 판을 빼앗기고, 방어하는 성현에게 무리하게 공격을 하다 반격당하는 것으로 두 번째 판까지 빼앗기는 구도 말이다.
무난하게 기량 차이로 이기며 올라왔던 장윤백은, 더 높은 기량의 성현을 만나 무난하게 무너진 것이다.
“청색 손목, 시합 끝!”
「장윤백 선수, 공격을 시도해 봤지만, 이성현 선수가 노련하게 반격하며 2 대 0으로 승리를 가져갑니다.」
「전체적으로 기량 차이가 난 경기였습니다. 장윤백 선수가 초반에 먼저 뛰어들지 않는 판단은 좋았지만, 이성현 선수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패배했다, 정도로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난 뒤.
청색 매트에 앉은 성현은 차분하게 호완을 벗고 질끈 묶은 호면의 끈을 풀어냈다.
이어서 그가 막 성하가 준 ‘무심’ 면 수건을 머리에서 풀어냈을 때, S 방송국의 카메라가 그를 비추고 있었다.
자막을 통해 그의 결승 진출을 알리기 위함이었는데, 그보다 먼저 눈에 띄는 건 호면을 벗으며 드러난 잘생긴 얼굴이었다.
「결승에 오르게 된 이성현 선수입니다. 하하. 굉장히 잘생겼네요.」
「이야, 검도도 잘하고 잘생기기까지 했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검도 하는 사람이 인기가 많거든요? 아마 이성현 선수도 한 인기 할 것 같습니다.」
중계진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는 성현은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돌리다, 자신을 강렬하게 노려보고 있는 백지호와 눈이 마주쳤다.
다음 경기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백지호가 성현을 투지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자신의 경기 상대가 아니라, 이제 경기를 마치고 나가려는 그를.
“······.”
가만히 백지호를 바라보다, 이내 몸을 돌린 성현.
그는 보이지 않게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결승전 경기가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저렇듯 그를 향해 이기고자 하는 열망을 드러내는 백지호가 그의 불꽃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맹화(猛火)에 불타 꺾여 버릴 것인가, 아니면 그마저도 극복하고 계속해서 도전할 것인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