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26화 (26/150)

< 26화: 신성 >

이죽거리듯 말한 건 커다란 덩치의 소년이었다.

대개의 남성 학생 선수들이 그러하듯 머리를 반삭하고 있는 소년의 이름은 강찬울.

당당한 16강 진출자이고,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지고 있는 이들 중 하나였으며, 경중고와 함께 고교 ‘빅4’로 불리는 용암고 출신의 선수였다.

‘광천고 새끼가 잘해 봐야 얼마나 잘한다고.’

강찬울은 자신이 빅4 중 한 곳인 용암고 검도부라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고, 그만큼 다른 고등학교 검도부를 무시했다.

빅4가 아니면 제대로 된 검도부 취급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물며 약소부라 소문난 광천고라니.

‘운 좋은 허접일 게 뻔해.’

강찬울은 꿈에도 몰랐다.

바로 그러한 자만심 때문에 경중고의 이중한 감독이 그를 뽑지 않았다는 사실을.

“광천고는 3학년들 빼고 다 별 볼 일 없잖아.”

“2학년 중에서 최영준은 실력 좋아. 아마 정철이 졸업하고 나면 걔가 주장일걸.”

“그래 봤자지.”

강찬울이 피식 웃었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게, 약소부에서 주장을 맡는 것 정도는 지금 당장 그도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럴 이유가 없기에 안 할 뿐이지.

노골적으로 광천고를 무시하는 강찬울의 태도에 옆에 있던 소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무시할 일이 아니야. 아무리 상대가 약했어도 대회 최단 시간 득점 기록을 갈아치우는 게 쉽다고 생각해?”

“뭘 그리 걱정해. 어차피 그래 봐야 광천고잖아. 설마 내가 진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하는 강찬울.

더는 이야기해 봐야 좋은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직감한 소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껏 친구가 걱정해서 해 준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 이런 것이라니.

실력 하나만큼은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의 우승 후보로 꼽힐 만큼 뛰어난 강찬울이 왜 백지호의 아래로 평가받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신만만했고, 나쁘게 말하면 자만심이 과했다.

소년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찬울은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그보다는 백지호야. 이번 대회에서 백지호를 꺾고 우승한 다음, 본격적으로 백성호를 상대할 준비 해야지.”

이미 16강에서 승리한 것 같은 어조였다.

눈을 빛내는 강찬울을 보며 무어라 더 말하려던 소년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오랫동안 친구로 지낸 그는, 뭐라 말한다고 한들 강찬울이 더는 귀 기울여 듣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마침 타이밍 좋게 안내 방송이 들려오기도 했고.

[남자부 16강 경기 곧 시작합니다! A조 배치되신 남자부 선수분들은 경기장으로 와 주십시오!]

“좋아, 갔다 올게.”

“···그래, 갔다 와라. 힘내고.”

강찬울이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곧장 기세등등하게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도착한 그가 가장 먼저 느낀 건, 기묘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시선이었다.

이전에 32강을 치렀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 잔뜩 모여 웅성거리면서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거기서 강찬울은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의 경기 때는 코빼기도 안 비치던 이들이 왜 여기에 모였는지 깨달았기에.

‘기록을 갈아치워서 화제가 됐다 이거지···.’

운 좋게 기록 하나 경신했다고 이리도 관심을 많이 받게 될 줄이야.

하지만 곧 강찬울은 청색 매트에 정좌하고 있는 상대, 이성현인가 뭔가 하는 녀석의 낯짝을 보며 씩 웃었다.

지금 상대편이 받는 관심을 자신에게 끌어오는 방법이 뭔지 깨달은 까닭이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간단했다.

‘내가 이기면 되는 거잖아.’

이성현이 이전 경기의 상대를 압도적으로 이겨서 받은 관심을, 다시 압도적으로 이김으로써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상대를 보러 온 이들이 모두 그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대회 최단 시간 득점이라 했지? 한 이십 초 만에 득점했나? 그럼 그걸 깨 주면 되겠네.’

주심이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본 강찬울이 백색 매트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상대를 박살 내 버릴 것만 같은 투지가 그의 온몸에서 서릿발처럼 뻗어 나왔다.

“청색, 백색, 인사!”

서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성현과 강찬울.

두 사람은 흰색 테이프로 표시된 시작 선 앞에서 동시에 중단세를 취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무덤덤한 성현의 눈빛과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한 열기에 찬 강찬울의 시선이 교차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심판이 이내 힘차게 소리쳤다.

“시작!”

시합 개시 직후.

먼저 움직인 건 두말할 것도 없이 강찬울이었다.

“으랴아앗-!”

거친 기부림과 함께 강찬울이 땅을 박찼다.

묵직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타돌이었다.

하기야, 어지간한 성인보다 큰 덩치가 달려드는데 누가 그를 두려워하지 않으랴.

자신의 덩치가 갖는 이점을 잘 아는 강찬울은 시합 개시 직후 타돌을 시도하여 상대를 위축시키는 운영을 자주 했고,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맞으면 끝나고, 피한다 해도 주도권은 잡을 수 있으니 좋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흉포한 공격!

후웅-

강찬울의 죽도가 마치 손목을 쪼개 버릴 것 같은 기세로 휘둘러졌다.

굳어져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성현을 보며, 강찬울은 순간적으로 ‘맞췄다!’라고 생각했다.

이 공격이 통하면 득점으로 인정되리라.

분명 대회 최단 시간 득점 기록도 경신될 테고, 상대에게 쏠린 관심도 모두 그에게로 올 터.

그의 가슴이 기대로 부풀어 올랐다.

딱, 성현이 양손을 비틀어 손잡이로 죽도를 받아내기 전까지는 말이다.타악!

‘이걸 막았다고?!’

강찬울은 설마 자신의 공격이 막힐 줄은 예상 못 했는지, 눈을 부릅떴다.

상대는 광천고에나 다니는 허접쓰레기!

그런 놈이 그의 공격을 막아 내다니?

방심에서 나온 의문은 그의 몸을 굳게 만들었고, 성현은 그 짧은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하아앗-!”

성현이 짧고 강렬한 기부림을 내질렀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에 불꽃 같은 빛이 스쳐 지나갔다.

오랜 세월 검도를 수련했던 그는 반격을 함에 있어 큰 동작은 필요치 않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요란스레 발을 내디디는 것도, 보란 듯이 죽도를 휘두르는 것 또한 불필요하다.

반격에 요구되는 건 단 하나.

적절한 시기뿐.

그것을 손에 쥔다면, 상대의 공격을 반격하여 치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타악!

군더더기 없는 발 구름의 힘을 살려, 성현의 죽도가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움직임으로 강찬울의 손목을 두들겼다.동시에, 심판 세 명이 청색 깃발을 들어 올렸다.

만장일치로 이루어진 득점 인정이었다.

“청색, 손목!”

쐐기를 박는 주심의 선언까지.

졸지에 무리하게 달려들었다 한판을 빼앗긴 꼴이 되어 버린 강찬울이 붉어진 얼굴로 몸을 떨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의 관심이 쏠린 곳에서 추태를 보였다는 사실에 지독한 수치심을 느낀 까닭이다.

“전 경기도 그렇고, 카운터가 대단한데요?”

“최적의 방어에 이은 반격이라는 느낌이지.”

“받아허리랑 받아손목을 저렇게 하네. 그것도 용암고 상대로. 진짜 끝내준다!”

더욱 강찬울을 부끄럽게 만든 건 주변이 보여 주는 반응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상대의 대단함만 추켜세우는 그들의 대화가 귓가로 들어와 박힌 것이다.

용암고의 자존심이 광천고 따위에게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내가 방심하지만 않았다면-’

본래 강찬울의 실력이었다면 첫 공격이 막혔어도 반격당하지 않도록 자세를 추스르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대를 완전히 무시하다가, 예기치 못한 방어 때문에 허를 찔리고 말았다.

객관적으로 강찬울이 당황했던 건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검도는 단 일 초만 방심해도 한판을 내줄 수 있는 스포츠라는 게 그의 불행이었다.

성현이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실력자라는 것 또한.

빠드득.

이를 간 강찬울이 성현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눈빛에 힘이 있다면, 상대를 갈가리 찢고도 남을 만한 시선이었다.

‘죽여 버린다.’

“두 판째!”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가운데.

주심이 우렁차게 두 번째 판의 시작을 알렸다.

“─우랴아아앗!”

강찬울이 강렬한 기부림을 내질렀다.

한판을 빼앗긴 분노가 담긴 기합이 경기장 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더는 서두르지 않았다.

기록 경신도 깨끗하게 잊었다.

바라는 건 그저 단 하나, 압도적인 승리뿐.

자신에게 수치심을 안긴 상대를 박살 냄으로써 자존심을 세울 생각뿐이었다.

타악!

큰 덩치만큼이나 손아귀 힘이 남다른 강찬울이다.

그는 자신이 상대의 죽도를 두들길 때마다, 매우 큰 충격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점을 살린 게 바로 이 공세다.

묵직하게 나아가는 공세!

상대는 그가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다가, 이내 중심을 잃고 빈틈을 드러내게 되리라.

“······.”

다만, 강찬울에게는 실로 안타깝게도.

그의 상대는 칠십 넘어까지 검도를 수련했던 늙은 괴물이다.

그것도 이제는 젊은 몸을 되찾은.

수십 년의 세월이 완성시킨 공세는, 겨우 힘 밀기로 뚫어 낼 만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성현에게는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대상에 불과하였으니···.

사악-

한 마리 뱀처럼 움직인 성현의 죽도가 강찬울의 죽도를 휘감는다.

막 힘으로 내지르던 상황인지라, 강찬울은 그것을 막지 못했으며, 중력을 타고 나선형으로 들어간 성현의 죽도는 코등이까지 이르렀다.

거기까지 들어간 이상 이야기는 끝이다.

성현은 한순간 힘을 주며 죽도를 위로 들어 올렸고, ‘감겨진’ 강찬울의 죽도는 기어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고야 말았다.

부웅.

“-어?”

“하아앗!”

삽시간에 죽도를 놓친 강찬울이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을 때, 이미 승부는 끝나 있었다.

간결하게 발을 구른 성현이 짤막한 기부림을 내지르며 죽도를 휘둘렀다.

죽도를 잃어버린 강찬울이 그것을 막을 수 있을 리 만무.

성현의 죽도는 정확히 강찬울의 머리를 타격했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청색, 머리! 시합 끝-!”

주심이 지금까지 없었던 큰 목소리로 외쳤다.

최대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할 심판마저 흥분할 만큼 완벽한 기술이 나온 까닭이다.

그야말로 하이라이트 영상에나 나올 법한 ‘감아돌려 머리치기’였다.

‘아···.’

강찬울은 깨달았다. 깨닫고 말았다.

상대와 자신 사이에 있는 간극을.

감히 넘어설 수 없는 ‘격’의 차이를.

단 한 번도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 없었건만, 진짜 괴물을 눈앞에 두니 무릎이 꺾일 것만 같았다.

스스로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에 그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와-! 미친!”

“저렇게 깔끔하게 감아돌리기가 들어가는 것도 오랜만에 보네.”

“저 나이대에 저 정도 기술적 완성도라니.”

“백성호급?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감탄을 넘어선 경악.

경기를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일제히 탄성을 토해 냈고, 2번 경기장 주변은 마치 시장 바닥이라도 된 것처럼 시끌시끌해졌다.

만약, 성현이 평범한 기술로 강찬울을 이겼더라면 구경하던 이들도 이 정도까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가 이긴 과정을 보라.

첫 번째 판은 철저히 절제된 ‘받아손목’으로, 두 번째 판은 아이튜브 하이라이트로나 볼 법한 ‘감아돌려 머리치기’로 승리를 거머쥐지 않았나!

지금 이 경기를 보고 흥분하지 않는 이는 감히 검도 팬이라 말할 수 없으리라.

“······.”

그러나 이번에도 성현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32강에 이어, 16강에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점쳐지던 용암고 선수를 압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기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를 바라보던 주변 구경꾼들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16강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

‘하기야, 우승 후보를 완전히 압살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

이제 구경꾼들은 차라리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과연 이 이변이, 돌풍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새롭게 등장한 신성이 기어코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인지!

성현을 보는 그들의 눈에 짙은 열기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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