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10화 (10/150)

< 10 화 : 묵상 >

‘전’의 성현은 현역으로 군에 입대해 병장 만기 전역을 한 바 있었다.

당시 그에게 병역 특례를 받을 만한 실력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군 생활을 하며 큰 고생은 없었다.

꽤 걱정이었던 병영 부조리에서도 자유로웠고, 나름 운이 좋았는지 군번도 잘 풀려 선임들이 줄줄이 전역하며 자대 배치 두 달 만에 막내 생활을 탈출하기도 했으니.

보통 남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군 생활을 보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게 군대를 두 번 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이번 인생의 2년가량을 날려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앞에서, 성현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그 덕에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금방 떠올랐다.

‘검도가 올림픽에 등재되는 게 2024년이었나.’

다양한 잡음이 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검도는 올림픽 종목으로 등재된다.

올해가 2020년이니, 앞으로 4년 뒤의 이야기다.

성현이 21살이 되었을 때.

그해 올림픽에서 메달을 얻으면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으니, 2024년이 그가 군대에 입대하느냐, 마느냐의 분수령이 될 확률이 높았다.

‘25살에 있을 LA 올림픽도 가능하겠구나.’

2024년 파리 올림픽.

2028년 LA 올림픽.

올림픽으로는 두 번의 기회가 있는 셈이다.

두 번의 올림픽 중 한 번만이라도 메달을 목에 걸면 되는 거니까.

‘거기에 아시안 게임까지.’

올림픽 정식 종목 등재와 더불어 아시안 게임에도 검도가 등재된다.

거기서 금메달을 따면 올림픽 메달과 마찬가지로 병역 특례를 받을 수 있다.

다만 2022년 아시안 게임에는 검도가 아직 등재되지 않았으니, 사실상 십 년 내로는 기회가 한 번인 셈.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생각보다 병역 특례를 받을 기회가 넉넉함을 깨달은 성현의 표정이 풀어졌다.

무려 육십 년을 거슬러와 다시 죽도를 잡은 그가 설마 이 많은 기회 중 하나를 못 살리겠는가?

단련된 젊은 육체에 완숙의 경지에 오른 기술이 완벽히 합쳐지면,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다시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한 그를 보며, 수연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참, 그러고 보니 아까 대답 못 들었는데-”

“응?”

“주말에 같이 훈련할래? 이번에 아빠 검도장 비거든. 둘이서만 편하게 할 수 있어. ···어때?”

“오, 진짜?”

“응! 완전히 비는 건 아닌데, 오전만 지나면 사람이 없다고 하셨어.”

수연의 제안에 성현이 반색했다.

안 그래도 주말에 학교 검도장을 열지 않아 훈련을 위해 적당한 검도장을 물색하고 있던 그다.

하지만 주말에 운영하는 검도장들이 많지 않은 데다가, 설령 열었다 해도 짧게 오전만 하고 닫는 경우라 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장소까지 제공하며 함께 훈련하자는 제안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을 수밖에.

“좋아, 같이 하자.”

성현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안 그래도 주말에 훈련할 장소 찾는 게 꽤 까다로웠거든.”

수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함께 훈련하자고 제안했던 거고.

주말에 쓸 검도장을 찾은 게 아니라면, 성현은 웬만해서는 제안을 받아들일 테니까.

물론 그녀는 그걸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헤실거리며 웃을 따름이었다.

‘둘이서만 같이 훈련···. 히히.’

‘주말 동안 빡세게 훈련해야지.’

사람들은 보통 이런 모습을 보고 말하곤 한다.

동상이몽(同牀異夢)이라고.

*

광천고 검도부가 본격적으로 훈련을 하는 건 대개 방과 후다.

시간상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옛날처럼 운동부가 일반 수업을 아예 듣지 않고 훈련에만 매진한다면 모를까.

지금은 수업에도 모두 참여한 다음 남은 시간에 운동부 훈련을 해야 하는 상황.

아침에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0교시가 진행되는 한 시간 남짓에 불과하고, 심지어 그마저도 다음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씻을 시간이 있어야 하니 더 짧았다.

대체로 40~50분 정도?

겨우 그 시간에 제대로 훈련을 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 방과 후부터 본격적으로 훈련을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성현이 죽도를 제대로 휘두르기 시작하는 건 보통 방과 후였다.

“······.”

스으으읍, 후우우우-

무릎 꿇고 앉은 성현은 호흡을 차분히 했다.

깊게 내쉬고, 다시 깊게 들이쉰다.

단지 그것을 반복하며 가만히 자신의 숨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있노라면, 정신은 명경지수처럼 맑고 고요해지기 마련.

제대로 된 집중이란, 이러한 흔들림 없는 정신이 온전히 하나에 몰두할 때 생기는 법이다.

‘──’

또한, 이것은 필요 없는 것들을 배제하기 위한 하나의 의식이기도 하다.

검도를 수행함에 있어 가장 필요 없는 것.

그건 바로 잡념(雜念)이다.

대저 생각이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요구되지 않는 것들을 떠올리게 만들며, 그러한 것들은 수행을 방해함이니.

더불어 검을 내지를 때 필요 없는 것이 담기면 필연적으로 칼끝이 흔들리게 되어 위력이 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묵상(默想)을 통해 잡념을 물리치는 것만으로도 검의 위력은 한 단계 올라감이라.괜히 옛사람들이 일념통암(一念通巖)이니,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이니, 전심치지(專心致志)니 하며 정신 집중의 중요성에 대해 논한 게 아니다.

‘좋아.’

십 분간의 묵상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성현은 죽도를 들어 중단세를 취했다.

지금부터 그가 하려는 훈련은 검도에서 ‘후리기’라 불리는 것이었다.

후리기는 정말이지 간단했다.

중단세를 취한 채로, 검을 올곧고 깨끗하게 후리며 그에 맞춰 몸을 나아가는 게 전부이니까.

어디까지나 겉으로 볼 때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후리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검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준비 운동 내지는 마무리 운동쯤으로 여겨지는 후리기다.

하나 본격적으로 ‘달인’이라 불리는 경지에 이른 이들은 다르게 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후리기가 가진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훈련이나 경기에 임하기에 앞서 하는 준비 운동이 아니라, 제대로 된 후리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후리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게 그만큼 많으니까.

‘칼끝의 흔들림을 잡기도 좋고, 몸이 나아가는 방법을 익히기도 좋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매무새를 향상하는 데 도움을 주니까.’

‘손매무새’.

이는 단순히 죽도를 쥐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죽도를 쥐고 휘두름에 있어 두 손목과 열 손가락의 작용을 뜻했다.

그것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검의 위력을 높이는 방법이 바로 손매무새인 것이다.

과거 검을 쓰는 이들 중에는 이 손매무새를 단련하기 위해 3년간 정면을 똑바로 베는(후리는) 훈련만 한 이도 있었으니,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터.

손매무새를 체득하여 통달하게 되면 절로 칼이 날카로우면서도 힘 있게 변하고, 더욱 정확한 타격이 이루어진다.

그러니 손매무새 익히기에 좋은 후리기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이건 성현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 까닭에 후리기를 함에 있어 그가 이토록 공을 들여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다.

“······.”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의 성현이 죽도를 들었다.

머리 위로 곧게 들어 올려진 죽도가 이내 유려한 궤적을 그리며 멈춤 없이 휘둘러졌다.

양손을 안쪽으로 짜는 것처럼 하여, 칼끝의 위치가 정확히 무릎에 다다르는 후려 내림.

동시에 몸은 왼쪽 고관절부터 밀 듯이 나아간다.

이것이 후리기, 그중 정면 후리기의 정석이었다.

후웅-

물론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다시 뒤로 돌아와 중단세를 취한 성현은 똑같은 모습, 똑같은 방식으로 재차 죽도를 휘둘렀다.

죽도는 놀라울 만치 첫 번째 궤적과 흡사한 궤적을 그려냈다.

그것은 다음번도, 그리고 다음번도 같았다.

성현이 한 백 번의 정면 후리기 중에서 칠십 번은 마치 똑같은 영상을 복사-붙여넣기 한 것처럼 일치했다.

팔의 움직임, 발놀림, 무게 중심의 변화, 죽도가 그리는 궤적까지.

그 모든 게 완전히 동일했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그가 몸을 완벽하게 자신의 의지 아래에 두었다는 걸 의미했다.

‘나쁘지 않아.’

그마저도 성현에게는 ‘나쁘지 않은’ 수준에 불과했지만.

본래 경지에 이른 검도인의 후리기는 백 번 하면 백 번 모두 완벽하게 같아, 첫 번째 후리기와 백 번째 후리기를 구별하지 못했다.

일찍이 그러한 경지에 올랐던 성현이 현재 본인이 하는 후리기를 평가함에 인색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서두르지 말자.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끊임없이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이전의 경지를 넘어서는 때가 오리라.

그때까지 그저 쉼 없이 단련할 뿐이다.

마음을 다잡은 성현이 다시금 죽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굉장해.’

바로 임하윤이었다.

처음 후리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곁눈질로 보는 수준이었던 하윤은, 오십 번을 넘겼을 때부터는 아예 대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성현의 후리기에서 묻어났기 때문이다.

단순한 후리기에서도 뚜렷하게 느껴지는 기세.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재능이 있기에, 그녀가 천재라 불리는 것이리라.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가··· 어마어마하잖아.’

게다가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성현이 보여주는 말도 안 되는 성장세!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또 다르다.

분명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딱 일 년 경력의 부원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어지간한 검도팀 주장급은 되어 보였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발전 속도였다.

‘이길 수 있을까?’

일주일 전에 있었던 성현과의 대련에서 승리를 거둔 건 하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현의 자멸로 인한 승리였지, 결코 그녀가 실력으로 성현을 이겼다고 볼 수 없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몸으로 한 방어를 그녀는 끝내 뚫어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물며 엄청나게 성장한 지금은 그때와 같은 자멸도 없을 테니, 승산은 오리무중이었다.

‘─아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이를 악문 하윤이 죽도를 들어 올렸다.

머릿속으로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검을 휘두르는 게 옳음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더 많은 수련을 쌓은 자가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게 검도니까.

곧 그녀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해졌다.

“후아-!”

그런 하윤을 알 리가 없는 성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후리기를 끝냈다.

정면 후리기 이백 번, 좌-우 후리기를 각각 이백 번씩, 총 육백 번의 후리기를 하고 나니 이제 확실히 몸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성현이 다소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열심히 하는구나.”

“정철 선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성현에게 다가온 건 정철이었다.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네는 성현을 손을 내저어 제지한 정철이 물었다.

“쉬는 시간이면 잠깐 이야기 좀 괜찮을까?”

“네, 괜찮습니다.”

“좋아. 성현 후배도 괜찮다니 너희도 이리 와.”

정철의 부름에 성현을 향해 다가온 건 뒤에 서 있던 다섯 명의 소년들이었다.

제법 익숙한 얼굴들이었기에 성현은 금방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바로 현 광천고 남자 검도부의 주전 선수들!

한 고등학교의 명예를 걸고 검도를 하는 것이 허락된 소수의 인재였다.

‘한 명이 없는 건- 아, 나 때문인가?’

단체전 주전 선수가 될 수 있는 건 일곱 명뿐.

성현이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는 건, 기존의 다른 주전이 자리를 뺏겼다는 것과 같다.

아마 이 자리에 없는 한 명이 그 희생자일 터.

살짝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뿐.

원래 주전 자리라는 건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계속해서 바뀌기 마련이니.

‘지금 나를 찾아왔단 건···.’

이들의 정체를 깨달은 성현은 왜 그를 찾아왔는지도 금방 알아차렸다.

지금 저들이 그를 찾아올 만한 이유는 단 하나.

“단체전 이야기입니까?”

연습 경기 단체전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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