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도의 신-8화 (8/150)

< 8 화 : 공공연한 비밀 >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성현의 눈이 커졌다.

검도 대회 추천이라.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가?

아마 그게 흔히 ‘춘계 대회’라 부르는 춘계 전국 중 · 고등학교 검도 대회를 말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건 이미 4월에 치렀고, 지금은 5월이니까.

애초에 춘계와 추계 대회는 추천을 받지 않아도 학생이면 나갈 수 있는 대회기도 했고.

그렇다면 다른 대회라는 말인데.

‘지금 시기에 열리는 대회가 뭐가 있지?’

감독 추천으로 선수가 뽑힌다?

그렇다면 엄청나게 큰 대회는 아니리라.

전국적인 규모의 대회는 신청을 받을 뿐, 추천제로 출전 선수를 선발하지 않으므로.

같은 이유로 ‘~기’나, ‘~배’라며 이름을 내건 대회들도 제외.

보통 대회들은 실력이 덜 올라온 봄보다는 여름이나 가을에 치르는 것을 선호하므로, 지금 치를 만한 대회는 몇 되지 않았다.

그럼 남은 건──

‘아, 혹시.’

문득, 이맘때쯤 유명했던 대회 하나가 성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입니까?”

“그래, 맞다.”

서유나 감독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고등학생 검도 유망주들을 모두 모아, 최강의 유망주를 가린다는 취지를 갖고 열린 대회였다.

출전 선수는 감독 추천을 통해 검도부가 존재하는 고등학교 중에서 1, 2학년 32명을 뽑았고, 이들을 토너먼트 형식으로 싸우게 했다.

이 대회의 재밌는 점은 한 번 출전할 경우, 재출전이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단 한 번의 기회로 유망주 중 최강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게 작년부터 시작이었던가.’

더불어 작년 대회의 우승자는 남자부 백성호와 여자부 임하윤이었다.

두 명 모두 1학년이었고, 또 다른 출전 선수들과 상당한 실력 차이를 보이며 우승했던지라, 제법 파장이 컸었더랬다.

그 두 사람이 이후 고교 검도계에서 승승장구하며 대회의 입지가 높아졌었고.

고교 유망주 대회를 성현이 기억하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초대 우승자 두 명이 모두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엄청난 성적을 거두며 주목받았고, 그들을 배출했다는 역사 덕에 대회가 오랫동안 유지되었기에.

‘전의 나와는 관계가 없는 대회였는데.’

유망주는커녕, 널리고 널린 부원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던 성현이다.

당연히 고등학교에서도 영재, 극히 드물게는 천재라 불리는 유망주들만 감독 추천으로 나갈 수 있는 대회에 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잊고 있었던 대회였는데, 이렇게 추천받을 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원래 추천하시려던 부원은-”

“그건 괜찮다.”

서유나 감독이 딱 잘라 말했다.

아마 추천할 부원이 없었으리라.

광천고 남자 검도부는 이렇다 할 인재가 없는 약소부 중 하나였으니까.

내로라하는 유망주들 사이에 던져넣고 경쟁시킬 인재가 있었다면, 애초에 그렇게 약하다 여겨질 리가 없잖은가.

‘그나마 주장 정도지만, 그 사람은 3학년이니까.’

게다가 이미 작년에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었다.

대회에는 단 한 번만 출전할 수 있는 규정이 있으니, 애초에 못 나가는 셈.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마치 추천을 당연히 받게 된다는 말투구나. 분명 연습 경기의 활약을 본다고 했는데.”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하는 서유나 감독을 보며 성현이 하얗게 웃었다.

상대 학교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연습 경기에서 그가 활약하지 못하는 경우는 단 하나다.

연습 경기 당일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가가 불가능했을 경우.

그게 병이든, 자연재해든, 그도 아니면 초자연적인 무언가든 간에.

뭔가가 그를 방해해 참가하지 못했을 때나 그가 활약 못 할 뿐, 참가만 하면 그가 활약하는 건 정해진 미래나 다름없었다.

“연습 경기는 언제입니까?”

“2주일 뒤. 검도 유망주 대회는 거기서 다시 3주 뒤다.”

“다음 달이군요. 알겠습니다.”

연습 경기까지 2주.

그 정도면 몸 만들 시간은 충분했다.

완벽하게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최소한 이전처럼 허망하게 자멸하지 않을 정도로는 가능할 터.

그리고 거기서 3주 후면 사실상 대회 준비에 주어지는 시간은 5주, 즉 한 달가량이니 썩 괜찮게 할 수 있으리라.

젊은 육체는 성현의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하여 노인이었던 시절 그가 쌓았던 기술들을 체득하고 있는 와중이었으니까.

현재의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리라.

그는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발전하고 있었으니.

“할 얘기는 이게 다다. 그만 가도 좋아.”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업 늦지 말고.”

손을 내젓는 서유나 감독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성현이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그러기 무섭게 한발 먼저 훈련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던 수연이 쪼르르 그에게 달려왔다.

호구를 벗는 그의 옆에 쪼그려 앉은 그녀가  빙긋 웃는 얼굴로 속닥거렸다.

“감독님이랑 무슨 얘기 한 거야?”

“비밀이야.”

“내가 맞춰볼까? ─유망주 대회, 맞지?”

뒷부분은 성현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놀란 눈으로 수연을 바라봤던 성현은, 곧 어째서 그녀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지 깨달았다.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는 남자부와 여자부가 따로 진행된다.

그 말인즉, 한 학교에서 감독 추천으로 출전하는 건 남녀 한 쌍이라는 뜻이다.

현재 광천고 여자 검도부에서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에 출전 가능한 인원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름 아닌 수연이었다.

당연히 그녀에게도 관련 이야기가 전해졌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독님한테 들었어?”

“응! 이번에 연습 경기 잘하면 출전시켜준다고 하셨어. 성현이 너도 그래?”

“그러게, 똑같네.”

아예 내건 조건까지도.

설마 둘 모두에게 연습 경기에서 활약해야 추천해준다는 이야기를 했을 줄이야.

물론 그게 의욕을 고취 시키기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아마 다른 부원도 다 알고 있을걸?”

“유망주 대회 출전하는 거?”

“응응! 당장 나만 해도 아까 하윤 선배한테 힘내라는 말 들었거든.”

“하윤 선배가···.”

하긴, 그럴 만도 했다.

6월에 있는 검도 대회는 오직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뿐이었으니까.

심지어 그냥 대회도 아니고 고교 유망주 중에서 최강을 가린다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대회!

거기에 누가 나가느냐는 모두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고, 다들 두각을 드러낸 사람들이 출전한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더불어 광천고에서 현재 가장 두각을 드러낸 건 성현과 수연이었고.

“여자부는 2년 연속 광천고 우승이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고 수연이 덧붙였다.

성현은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에 관한 이야기를 서유나 감독에게 들었을 때부터 관련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던 까닭이다.

‘여자부 초대 우승자 임하윤, 2대 우승자 강수연.’

임하윤에 이어 강수연까지.

초대와 2대를 모두 광천고 여자 검도부원이 가져감으로써, 여자 검도부는 다시금 명실상부한 강호로 이름을 떨친다.

다만 남자부는 초대 우승자인 백성호가 있는 경중고가 아니라, 다른 고등학교에서 가져갔었다.

제법 강호라는 소리를 듣는 곳이었던가.

그곳의 이름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성현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어디든 상관없을 테니까.

그가 나가게 된 이상,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 남자부 2대 우승자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다들 아는 얘기를 왜···.’

굳이 따로 불러서 비밀인 듯 전한 것일까.

돌연 의아해진 성현이었다.

‘공공연한 비밀. 뭐 그런 건가?’

“둘이서 우승하면 좋겠다. 그치?”

“유망주 남녀 부문 전부 광천고가 제패하는 건가. 나쁘지 않네.”

“그러네~”

수연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사실, 그녀는 광천고가 남녀 부문을 모두 석권하는 건 관심이 없었다.

그건 부가적인 결과에 불과했으니까.

그녀가 바라는 건 우승 커플이 되는 일뿐.

‘그것도 유망주 대회 우승 커플!’

이 얼마나 달콤한 울림인가?

게다가 고교 검도 유망주 대회는 S 방송사가 주최하는 대회인지라, 실제로 방송에 나간다.

낮 시간대라는 썩 좋지 않은 시간이기는 해도, 어쨌든 지상파에 송출된다는 뜻이다.

그건 그만큼 많은 이들에게 노출된다는 이야기!

거기서 두 사람이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면?

“─흐히히.”

“왜 웃어?”

“아냐~ 아무것도~”

의아해하는 성현을 보며 수연이 도리질 쳤다.

그에게 말하기는 너무 부끄러운 생각이었기에.

알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눈을 끔뻑거리던 성현은, 이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이었던가?

이제 와서 당황할 이유는 없었다.

금방 다시 정신을 차리기도 했고.

떠드는 사이 다 벗은 호구를 정리하는 그에게, 수연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성현아, 혹시 주말에 약속 있어?”

“아니, 없는데.”

“그럼 우리 같이 연습할까? 어차피 대회도 같이 나갈 테니까. 어때?”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안 그래도 슬슬 대련을 통해 감각을 갈고 닦으려 하고 있었으므로.

성현이 대답을 위해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두 사람의 뒤에서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배. 잠깐 대화 가능할까?”

돌아보니, 거기에는 곰 같이 생긴 소년이 도복을 입고 서 있었다.

어지간한 성인들은 압도하는 덩치에 짧게 깎은 머리카락, 무뚝뚝한 표정까지.

고등학생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삭아 보이는 소년이었다.

옆에 있던 수연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말했다.

“정철 선배···.”

정철.

성현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광천고 남자 검도부의 현 주장이었으니까.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여러모로 유명하기도 했고.

‘광천고의 소년 가장.’

가정의 생계를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어렵게 생계를 유지한다는 뜻의 단어, 소년 가장.

그것을 별명으로 가졌다는 게 무슨 뜻이겠는가.

그렇다.

정철은 약소부인 광천고 남자 검도부를 이끌고 고군분투하는 인물이었다.

실력만 본다면 어지간한 강호 검도부에서도 능히 주장을 맡을 수 있는 인재임에도, 광천고에 와 온갖 고생을 다 하고도 무관의 제왕이라던가.

작년에 남자 검도부를 대표해 검도 유망주 대회에 나갔지만, 하필 4강에서 우승자인 백성호를 만나 탈락하기도 했었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는 인물.

팀운은 물론이고, 대진운까지 없는 이.

그게 바로 정철이었다.

“성현 후배.”

그런 그가 성현을 찾은 것이다.

이유는 뻔해 보였다.

남자 검도부 주전.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 터.

“네, 선배님.”

“정철 선배라 불러도 돼. 그나저나,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진지한 이야기인데.”

“저야 괜찮습니다만.”

성현이 슬쩍 수연을 바라봤다.

굳이 입 밖에 내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정철은 금방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깨달았다.

“수연 후배.”

“아, 네, 선배님!”

“잠시 성현 후배와 둘이서 대화하게 자리를 비켜줄 수 있을까? 부탁할게.”

정철이 수연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양해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데려간들 아무 말도 듣지 않을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굳이 머리 숙여 부탁한 것이다.

자기보다 어린 소녀에게 청하는 것임에도 그의 행동에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었다.

상대를 그만큼 존중하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어리다고, 늦게 들어온 후배라고 무시하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상대를 존중할 줄 알기에 보일 수 있는 대범함이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정철이라는 소년이 가진 리더 십이었다.

세가 미약하기 그지없는 광천고 검도부를 삼 년이나 지탱해온 리더 십.

“네- 네! 물론이죠! 고개 드세요!”

당황한 수연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고마워. 이야기는 금방 끝낼게.”

“아뇨, 길게 하셔도 괜찮아요!”

수연은 성현에게 “밖에서 기다릴게!”라는 말을 남기고 호다닥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철이, 이내 고개를 돌려 성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굳이 말을 돌리지 않았다.

곧바로 묵직한 돌직구를 던졌다.

“성현 후배, 혹시 검도부 주장을 맡을 생각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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