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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의 신-7화 (7/150)

< 7 화 : 대회 추천 >

오전 5시 30분.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의 이른 시간.

일반적인 학생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이지만, 성현은 예외 없이 눈을 떴다.

11시가 되기 무섭게 곧장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기에 몸은 피로 하나 없이 가벼운 상태였다.

칠십 대 노인일 때도 이렇듯 아침잠이 없던 것 같으나, 그때는 일어나고서도 온몸이 뻐근했었는데, 그마저 사라지니 정말이지 기분이 끝내줬다.

마치 날아갈 것 같다고나 할까.

‘역시 젊다는 게 좋은 게지.’

벌써 과거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아침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성현이었다.

그만큼 괴로움 없는 아침이 축복과도 같이 느껴졌던 까닭이다.

되찾은 젊음을 만끽하고 있다고 해도 좋고.

여하튼, 그렇게 정해진 시간이 되자마자 일어난 그는 가볍게 씻은 뒤, 곧장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아침 체력 훈련을 위해서였다.

굳이 잠을 더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좋아, 가볼까.”

운동화 끈을 꽉 맨 성현이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조차 잊어버리고 헤맸던 것이 일주일 전이지만, 이제는 주위 지리에 빠삭해진 그였다.

운동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할지 바로 나올 만큼.

몇 번 주위를 돌아다니다 보니 과거의 기억이 차근차근 떠올랐던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놀라울 만큼 머리가 좋아진 것 같다고 성현은 생각했다.

‘어지간한 건 다 기억나기도 하고.’

단순히 집 주변의 지리뿐만이 아니다.

어느 장소를 보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세세하게 떠오르곤 했다.

그 덕에 손쉬웠던 건 바로 공부였다.

과거로 돌아온 첫날에는 외계어에 가까웠던 수업이, 이제는 너무나도 쉬울 지경이었으니까.

되려 너무 한 번에 성적이 팍 오를까 봐 걱정해야 할 정도니 말 다 했다.

“후, 후-”

잡다한 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아침 조깅 코스로 정해둔 한강이 나왔다.

이곳을 조깅 코스로 써먹은 이유는 그의 집이 마포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십 분만 뛰어도 갈 수 있는 곳에 이런 좋은 달리기 장소가 있는데, 써먹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새벽녘의 어스름한 분위기를 벗 삼아 달리기를 한참.

어느새인가 저 멀리서부터 해가 떠올리기 시작할 때쯤, 성현은 마무리를 위해 자리에 멈춰선 뒤,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했다.

“후- 하-”

일렁이는 한강 수면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고 있노라면, 마음까지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다.

성현은 늘 이 순간이 가장 즐겁다고 생각했다.

몸에서 적당하게 힘이 빠지고,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감각이 예리하게 갈려진 찰나.

노인일 적, 도장 근처를 산책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던 그때가 떠오르는 듯했다.

‘돌아가자.’

그리하여 성현이 아침 조깅을 끝내고 집에 되돌아오는 게 6시 40분 정도.

그가 20분 정도를 들여 씻고 교복을 입은 채 나올 때쯤이면, 잠에서 깨어나신 어머니께서 가족들이 먹을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계시곤 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 노릇하게 잘 익은 햄들, 그리고 다양한 밑반찬들까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식단이었다.

“아침 운동은 잘했니?”

“네, 어머니.”

나직이 대답하며, 성현은 처음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다시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솔직히 그는 죽은 부모님을 다시 만나면 굉장히 슬플 것 같다고 예상했었다.

그렇다고 오열하는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눈물 정도는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다.

노인일 당시에는 때때로 가족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곤 했으니.

‘아니었지만.’

하나 현실은 달랐다.

정작 가족들을 재회했을 때, 성현에게 격렬한 감정 변화 같은 건 없었다.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대화했고, 누나와 장난치며 가족의 품에 안겼다.

수십 년 만에 만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그게 ‘가족’이라는 것이리라.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도 자연스레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게.

“요새 운동 열심히 하네?”

성현에게 말한 건 그의 누나인 이성하였다.

대학생인 그녀는 이제 막 일어난 듯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입을 쩍 벌리고 하품했다.

“얘는, 다 큰 애가 뭐하는 거니?”

라고 어머니가 성하를 타박했다.

“검도 선수 하려고.”

“풋, 네가? 맨날 검도 재미없다고 때려치운다고 할 때는 언제고.”

성현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은 저렇게 해도, 정작 검도 선수가 되고 나서는 성하가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성현이 검도 경기가 있을 때면 휴가를 내서라도 찾아와서 응원해주고는 했다.

저리 사납게 말하는 것도 아마 운동선수라는 힘든 길을 걷는다는 게 걱정되기 때문이리라.

“나 재능 있어. 걱정 마.”

“누가 그게 궁금하대? 어차피 검도도 수연이 꼬시겠다고 시작한 거면서.”

“옛날에는 그랬지.”

아마도, 한 육십 년 전쯤에?

그만 알 수 있는 농담에 성현이 속으로 작게 웃었다.

“옛날은 무슨. 겨우 일 년 전인데.”

“그 정도면 충분히 옛날이지.”

“그래도 엄마는 아들이 운동하는 게 참 보기 좋아. 이참에 성하 너도 같이 운동 좀 하렴.”

항상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어머니다운 말씀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한테까지 툴툴거릴 수는 없었는지, 인상만 찡그린 성하가 햄을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먼저 식사를 하고 계시던 아버지도 옆에서 슬쩍 어머니를 거들었다.

“헬스장 가는 것보다 성현이랑 같이 운동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맞아, 원래 운동은 같이하는 거라잖니.”

“아, 아빠! 엄마! 운동을 동생이랑 같이 하는 게 말이 돼요?”

성하가 심통을 부려도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안 될 건 또 뭐라니.”

“이 씨- 야! 이성현! 너 앞으로 아침에 뛰지 마! 너 때문에 나만 한 소리 듣잖아!”

“싫으면 운동하는 게 어때?”

“성현이 말이 맞다.”

본전도 못 건진 성하는 씩씩대며 방으로 갔다.

그래도 자신이 먹은 그릇은 깨끗이 치우는 걸 잊지 않는 걸 보면, 그리 심각하게 화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단란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 식사가 끝난 뒤, 성현이 싱크대 앞에 섰다.

“어머, 설거지하려고?”

“네. 가끔은 제가 해야죠.”

“우리 아들밖에 없다~ 네 누나도 성현이 너처럼 했으면 좋을 텐데.”

어머니의 말씀에 성현이 킥킥대며 웃었다.

안타깝게도 그런 미래는 없었다.

죽는 날까지도 성하는 성하였으니까.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긴 말이 “너 앞으로 누나가 응원 안 가준다고 질질 짜지 마라.”라는 걸 생각해보면 말이다.

띵동-

“어머, 수연이 왔나 보다.”

성현이가 설거지를 끝냈을 무렵, 벨이 울리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였는데, 지난 일주일 동안 학교 가는 날이면 항상 수연이가 찾아왔었기에, 이미 익숙해진 까닭이었다.

게다가, 깨우러 와주기 전부터 수연이는 자주 들락거리기도 했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안녕, 수연아~”

들어오자마자 어머니를 폭 껴안는 수연.

차라리 모녀지간이라고 해도 믿을 모습이었다.

수연의 어머니가 성현의 어머니에게 이제 자기 딸이 아닌 거 같다며 농담까지 했을 정도였으니 두 사람이 얼마나 친한지 알 수 있으리라.

손의 물기를 털어낸 성현이 수연을 보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가방 가져올게.”

“응응!”

검도부의 아침 연습 시간은 8시부터 9시까지.

성현과 수연이 학교를 향해 출발하는 시간은 대부분 7시 30분 내외이니만큼, 시간이 꽤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 덕에 두 사람은 등교하면서도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대개 그들이 하는 대화의 화제는 검도에 대한 것이었다.

“‘보는’ 건 아직 못 깨우쳤어?”

“응···. 솔직히 하나도 모르겠어. 감이 잘 안 와. 나, 검도에 재능이 없는 걸까?”

“설마.”

그것은 검도가 두 사람 사이에 공통된 화제이기도 했고, 성현이 가르침을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수연이 나서서 배우고 싶어 할 만큼 잘 가르치기도 했다!

노인이 될 때까지 검도를 하며 수많은 후학을 가르쳐 온 성현의 설명은 알아듣기도 쉽고 머리에 쏙쏙 박혔기 때문이다.

“네가 재능이 없다니. 다른 사람한테는 그런 말 하지 마. 분명 화낼 테니까.”

“그런-가?”

수연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성현의 말은 진심이었다.

바로 한 학년 위에 임하윤이라는 대단한 사람이 있어 스스로 깨닫지 못했을 뿐, 그녀도 고교 여자 검도 선수 중에는 손꼽히는 천재였으니까.

당장 임하윤이 없었다면 1학년의 몸으로 강호 광천고 여자 검도부의 주전이자 에이스가 되었을 거라 말해지는 실력이었으니 말이다.

그저 성현의 가르침이 지나치게 수준이 높다 보니 아직 성과를 얻지 못했을 뿐.

그런 그녀가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건 다른 이들을 기만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성현이 너는 오늘도 기본기만 할 거야?”

“완전히 몸에 붙기 전까지는 그래야지.”

“벌써 일주일 째잖아.”

“기본기는 평생을 해도 부족해.”

실제로 평생 기본기를 연마했던 성현이다.

그 덕에 늙어서도 검도를 계속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기본기에 관한 그의 의견은 확고했다.

그렇게 다양한─주제는 검도 하나뿐이지만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어느새 검도장 앞에 도달해 있곤 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인사와 함께 들어선 검도장 안에는 이미 드문드문 검도부원들이 있었다.

0교시 시작에 맞춰 검도부 아침 훈련이 시작되니, 아예 미리 와 준비를 하고 개인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대개는 남녀 검도부에서 주전을 맡은 부원들이었는데, 한 시간으로는 부족하다고 시간을 더 내 훈련을 할 만큼 열정적인 이들이니 썩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 중에는 임하윤도 있었다.

‘열심히 하는 게 보기 좋구나.’

하윤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눈 성현은 훈련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도복에 호구까지 착용!

완벽히 준비를 끝내고 나면 이제 비로소 본격적인 훈련의 시작이었다.

‘우선은, 발부터.’

가장 먼저 하는 건 발 운용 훈련이었다.

일주일 전, 서유나 감독은 성현이 눈이 트였다는 걸 알리면서, 검도의 오랜 격언에 대해 말했었다.

일안이족삼담사력(一眼二足三膽四力)!

이는 검도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을 모아 차례대로 말한 것인데, 발놀림은 이 중 두 번째- 이족(二足)에 오를 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수족이팔(手足二八), 검도에서 손은 2요, 발은 8이라고 말하며 그만큼 발놀림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까지 있을 정도!

일안(一眼), 즉 보는 눈만큼은 대가의 경지에 오른 성현이 두 번째로 중요한 발놀림에 신경 써 훈련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겨우 몸에 좀 붙네.’

지난 일주일간, 성현은 아침 훈련 시간은 거의 통째로 발 운용 훈련에 쏟아붓고는 했다.

밀어걷기, 보통걷기, 이어걷기, 뛰어걷기, 벌려걷기의 다섯 가지 발놀림이 완벽하게 체득되도록 끊임없이 반복, 또 반복한 것이다.

지루할 틈도 없을 만큼 계속해서.

발바닥에 굳은살이 더 단단히 박일 정도로.

하나 그러고도 이제 겨우 ‘몸에 붙은’ 정도라고 느끼고 있었으니, 그가 얼마나 높은 기준을 자신에게 강요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후아-”

연속 밀어걷기를 마친 성현이 크게 숨을 토했다.

목표했던 양의 훈련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슬그머니 서유나 감독이 그에게 손짓했다.

‘음?’

“아침에는 늘 발 훈련만 하는구나.”

의아한 표정의 그가 서유나 감독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부원들은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였다.

“꽤 괜찮아 보이는데도.”

“아뇨.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더 매끄럽고, 더 안정적으로 움직여야죠.”

담담한 성현의 말에 서유나 감독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잠시였다.

재빠르게 표정을 정돈한 그녀가 예의 권태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조만간 다른 학교랑 연습 경기가 있을 거다.”

“네.”

“그때 너는 남자 검도부 주전으로 나갈 거고.”

성현이 가라앉은 눈으로 서유나 감독을 바라봤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거기서 네가 제대로 된 활약을 한다면.”

서유나 감독이 씩 웃었다.

“이번에 있을 대회에 널 추천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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