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화 : 괴물 >
‘최고야! 이래서 검도가 재밌는 거지!’
그 사실까지 알지는 못했지만, 상대가 쉽사리 무너지지 않음에 하윤은 그저 기뻐할 뿐이었다.
적이 강할수록 불타오르는 게 그녀였으니까.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기부림을, 그녀는 참지 않았다.
“히야아아앗-!”
죽도와 죽도가 맞부딪친다.
세게 몰아치는 파도와 같은 하윤.
그리고 그 모든 걸 막아 세우는 방파제 같은 성현!
두 사람의 대련은 지켜보던 검도부 부원들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학년이 저런 실력이라고···.’
특히나 크게 주목한 건 남자 검도부원이었다.
단체전에서 절대적인 강함을 가진 주전은 존재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개인전에서야 이야기가 다르지만, 최소한 단체전에서만큼은 1승을 무조건으로 확보하는 셈이니.
그걸 아는 남자 검도부원의 눈이 빛났다.
여자 검도부에 밀려 대우받지 못했던 남자 검도부를 끌어올릴 기회라 여긴 것이다.
“쯧!”
‘젠장. 몸이 안 따라주는군.’
깨질 듯 깨어지지 않던 대련의 균형.
비슷하게 올려져 있던 저울을 기울게 한 것은 하윤이 아니라 성현이었다.
젊어진 몸이라는 괴리가 완벽에 가깝던 그의 기술에 금을 낸 탓에, 본의 아니게 중심이 흐트러졌던 거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빈틈을 파고든 하윤이 성현의 오른 손목을 타격함으로써 대련은 끝이 났다.
완벽한 한판 승부.
그러나 기묘하게도 패배한 이의 표정은 무덤덤하고, 승리한 이의 표정은 찌푸려져 있었다.
얻은 결과가 정반대인 것처럼.
불만족스러운 승자, 하윤은 투덜거리듯 말했다.
“이런 승리를 바란 게 아니었는데.”
“어찌 됐든 이긴 건 이긴 겁니다. 상대의 실수를 잘 파고드셨잖습니까.”
무덤덤한 패자, 성현이 답했다.
그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하윤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좀 더 단련되어 있었다면 지금 같은 실수가 나왔을까?”
성현은 대답 없이 미소지었다.
만약 그의 몸이 좀 더 단련되어 있었다면─
아니, 그저 조금만이라도 더 젊은 몸에 익숙했더라면 방금 같은 실수는 나오지 않았으리라.
승자와 패자 또한 지금과는 반대가 되었을 터.
하지만 굳이 그걸 입 밖에 내서 하윤을 도발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다음에도 대련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훗날의 최강자와 겨루는 건 성현으로서도 환영해야 할 일이다.
끊임없이 성장하여, 전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이 그가 가진 최대의 목표였으므로.
흔쾌히 대답하는 성현의 모습에 만족했는지 씩 웃은 하윤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좋아, 그 말 잊지 마. 나중에 제대로 겨뤄보자.”
“네, 선배님.”
“선배님은 무슨. 그냥 하윤 선배라 불러.”
“알겠습니다, 하윤 선배.”
검도부 부원 중 몇이 부러움이 가득 담긴 시선을 성현에게 보냈다.
‘하윤 선배’라는 칭호는 임하윤이 부원 중에서도 그녀의 마음에 드는 몇 안 되는 이들에게만 허락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검도 실력이 뛰어나야 그녀의 마음에 들기 쉬웠으므로, 대개 그리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촉망받는 유망주이기도 했다.
즉, 성현도 하윤에게 검도부의 미래로 인정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하윤이 호탕하게 웃으며 떠나가고, 고개를 돌린 성현은 움찔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수연이 아까보다도 더 반짝이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까닭이다.
호면을 벗었기에 훤히 드러난 흥분에 찬 얼굴.
그녀는 소꿉친구가 동경하는 선배에게 인정받았다는 기쁨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대-단해!”
수연이 아까처럼 성현의 팔에 덥석 매달렸다.
“눈이 트여서 그런가? 실력이 확 늘어났네! 나 성현이 네가 하윤 선배랑 비등한 싸움을 할 줄은 몰랐어! 아! 성현이 너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하윤 선배가 그만큼 대단하니까─”
가녀린 목소리로 이어지는 재잘거림.
어쩐지 성현의 눈에는 있을 리가 없는 복슬복슬한 강아지 꼬리가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건 수연의 등 뒤에서 그녀의 기분을 대변해주듯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가만히 수연을 보던 그가 무심코 말했다.
“귀엽구나.”
“분명히─ 읏?!”
예상치 못한 일격에 수연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덜컥 멈춰 섰다.
하지만 그건 잠시였다.
곧 성현의 말뜻을 이해한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귀 끝까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왜?”
“왜냐니! 다른 부원들도 다 있는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까!”
스스로 그렇게 말해놓고서 흠칫 놀란 수연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임하윤이라는 유명인이 모아놓은 시선들이 아옹다옹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몇은 ‘좋은 때다~’라며 깔깔 웃고 있었고, 또 몇몇은 ‘아주 염장을 지르네.’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느 쪽이든, 그들에게 검도부 부원 대다수의 시선이 몰려있던 건 확실했다.
아마, 방금 그 말도 전부 들었을 터.
그 사실을 깨달은 수연의 얼굴이 더욱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여기서 더 빨갛게 변할 수 있었다니.’
성현이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을 정도!
“수연아. 성현아.”
“네?”
“아, 네! 감독님! 말씀하세요!”
서유나 감독이 볼을 긁적였다.
감독이라고 해도, 고등학생들의 청춘사업에 관여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어쩌랴.
그녀의 눈앞에서 이러고 있는 것을.
여기가 검도장이 아니라면 또 모를까.
그것도 아니었으니.
“두 사람이 사이좋은 건 알겠는데, 여기는 검도장이니까 주의하자.”
“네, 넷!”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모를 리가.
“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수연이 거의 머리를 처박듯이 허리를 숙였다.
옆에 있던 성현도 마찬가지였다.
서유나 감독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젓고는, 잰걸음으로 감독실로 향했다.
그때까지도 똑같은 자세였던 수연은 서유나 감독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부원들의 시선마저 흩어졌을 때에서야 머리를 들었다.
좀 더 일찍 일어섰던 성현이 볼을 긁적였다.
“미안, 나 때문에 혼났네.”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수연이 빙긋 웃었다.
“그치만, 다음부터 검도장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줘. 알겠지?”
어째서일까.
분명 환하게 웃는 얼굴일 텐데 상당한 압박감이 느껴지는 것은.
불꽃이 타오르는 것 같은 기세의 수연에게 압도된 성현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따름이었다.
아까의 대련 때 그녀가 이런 기세였다면, 어쩌면 그의 반격을 막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검도장에서는?’
‘다른 장소에서 해달라는 뜻이네.’
‘어휴, 닭살~’
“자, 연습하자. 연습!”
부원들이 쑥덕대는 소리를 무시하려는 듯, 수연이 활기차게 소리쳤다.
“···그래.”
나직하게 대답한 성현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가득한 상태였다.
방금 있었던 임하윤과의 대련.
그에 대해 되짚어 볼 게 많았던 까닭이다.
‘어설픈 데다가, 느리고, 둔했다.’
지켜보는 모든 이들을 경악케 했던 대련이었지만, 성현에게 있어서는 불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젊어졌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움직임 하나, 하나가 전부 부족했던 까닭이다.
죽도를 휘두르는 것은 어설펐고, 발은 느렸으며, 몸놀림은 둔했다.
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점수로 따지면 백 점 만점에 십 점이나 받을까 말까 한 수준.
애초에 그가 지난 생에 쌓아 올린 기술이 아니었다면 아마 열 합 내로 패배하였을 터다.
‘최소한 오십 대 수준의 몸만 됐어도.’
‘전’의 성현이 전성기였던 건 서른 중반부터 쉰 초반까지였다.
오십 대부터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서서히 오는 노화로 인해 점차 몸이 쇠락함에 따라, 기술적 완성도를 끌어올림으로써 검도를 했었고.
그런즉, 지금의 몸은 그때- 쇠퇴기가 왔었던 오십 대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다.
가진 거라고는 오직 젊음 뿐.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검도의 기본부터 몸에 때려 박아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허술하게 쌓은 모래성은 결국 무너지기 마련이니.
‘결국, 답은 단련인가.’
성현이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끝없는 단련을 통해 우선 몸부터 만들어야 했다.
최대한 빨리.
그래야, 그가 추구하던 원래 스타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
검도장 한쪽에 있는 감독실.
의자에 앉아 있는 서유나 감독은 특유의 덤덤한 얼굴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누구에 대한 상념인지는 명확했다.
이성현.
오늘 갑자기 두각을 드러낸 1학년생.
차기 에이스라 점찍어둔 수연이를 이기더니, 현 에이스인 하윤과도 대등한 싸움을 벌인 남자.
그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성현······.’
서유나 감독도 이성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내버려 두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도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필요한 때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우선 그 대상에 대해 확실히 알아야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검도부에 소속된 이들을 남녀 가리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있는 상태였다.
이성현 또한 마찬가지.
문제는 그녀가 기억하는 이성현과 오늘 본 이성현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기억 속 이성현의 정보는 이랬다.
키 181cm, 몸무게 78kg. 오른손잡이.
경력은 중학교 3학년부터 시작해서 이제 일 년.
먼저 치고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공격적인 스타일이고 머리치기가 나름 훌륭함.
다만 성격이 급해 상대의 유인책에 자주 휘말려 빈틈을 드러내곤 함.
‘······전혀 다르잖아.’
반면 오늘 본 이성현은 어떤가?
신체 조건을 제외한 모든 게 달랐다.
수연이를 상대할 때도 그랬지만, 성현은 공격적이기보다는 방어적인 스타일에 가까웠다.
먼저 막아내고 반격하는 타입이랄까.
특히나 하윤을 상대로 방어를 굳혔을 때는 지켜보던 그녀조차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어지간해서는 떠오르지 않는 ‘완벽’이라는 단어가 성현의 방어를 보고 있으면 떠오를 지경이었으니.
그녀의 생각에 그 방어를 뚫어낼 수 있는 건 고등학생 중에서도 몇 되지 않을 듯했다.
‘아마 백성호 수준은 돼야 수월할 테지.’
경중 고등학교 2학년, 백성호.
현재 고등학생이 되어 참가했던 모든 개인전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명실상부한 남자 고교 검도계의 패자(?者).
광천고의 임하윤과 경중고의 백성호라 하면 현재 고교 검도계를 이끌어 가는 쌍두마차였다.
‘그 외에 기껏해야 몇 명 정도.’
서유나 감독이 봤을 때 성현의 방어가 그 정도로 완벽하고 대단했다는 이야기다.
비록 몸이 덜 만들어져서 중간에 자멸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단련한다면 이야기가 다를 거야.’
분명 끔찍할 정도로 강한 검사가 되리라.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서유나 감독을 고민케 하는 건, 두 모습의 이성현에게서 느껴지는 괴리감이었다.
아예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스타일과 실력!
그것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거다.
‘실력을 숨겼을 리는 없고.’
그럴 이유도 없을뿐더러.
만약 그랬다면 서유나 감독의 눈이 못 알아봤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 정도로 발전했다고? 겨우 하루 만에?’
순간, 서유나 감독은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쭉 끼치는 걸 느꼈다.
그녀는 수연과 성현이 대련할 때 보았던 ‘죽도 눌러 머리치기’에서 그가 가진 재능을 엿보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낸 그녀가 내린 결론이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였고.
한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면?
그조차 어설프게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면?
‘지금도 아직 성장하는 도중이라고 한다면······.’
성현의 재능을 과연 천재라는 두 글자로 정의할 수 있을까?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몸, 트인 지 하루째인 눈.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천재 검사라 불리는 하윤과 대등했던 성현이다.
그에게 시간이 주어져서, 만족할 만큼 성장한다면, 그건 과연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괴물.’
그것도 어쩌면.
한국 검도계의 숙원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괴물이라 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