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화 : 그냥, 보였어 >
제대로 된 중단세는 단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억누를 수 있다.
어디로 치고 들어올지, 그리고 어디로 쳐야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드니까.
비록 몸 상태는 안 좋으나, ‘달인’의 경지에 오른 성현의 중단세는 그 정도의 힘이 있었기에, 수연은 압도당함을 느꼈다.
“······.”
하지만 성현은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다.
단순히 표정뿐만이 아니라, 생각도 그러했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인가.’
중단세는 “자세의 극치는 중단이며, 중단이야말로 겨눔세의 기본.”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중요한 자세다.
그런 만큼 중단세의 완성도를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검도에 능통한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
성현이 스스로 판단하기를, 그의 중단세는 간신히 합격선에 턱걸이만 걸친 수준이었다.
느껴지는 문제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아직 무게 중심이 붕 뜬다. 악력도 부족하고, 불필요하게 힘이 들어간 부분도 많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성현이 고등학교 1학년일 때까지만 해도 검도는 그저 부 활동 겸 취미 생활에 가까웠다.
아직 본격적으로 검도를 한 시기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 몸 상태도 제대로 된 검도인이라기보다는, 운동 좀 해본 일반인의 것에 가까웠다.
그런 몸인지라 높아진 그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오직 하나.
꾸준한 단련뿐이었다.
차근차근 몸을 움직여 단련하다 보면, 지금 성현이 느끼는 문제점도 고쳐나갈 수 있으리라.
그때까지는.
‘지금 상태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리고 그건 성현에게 굉장히 익숙한 일이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
노화로 쇠약해져 가는 몸을 이끌고서도 검도를 계속했던 성현이다.
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던 경험은 많았다.
오히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좋은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몸은 덜 단련되었을지언정, 활력만큼은 흘러넘쳤으니까.
‘집중하자.’
“······.”
“······.”
상대의 심리를 살피듯 오가는 움직임.
죽도가 서로를 대변하여 위치를 다툰다.
일족일도(一足一刀)의 거리이니만큼, 수연과 성현 두 사람의 눈빛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방심했다간 한순간에 결판이 날 수도 있는 것이 검도였기에.
“하아앗-!”
두 사람 중 먼저 움직인 것은 수연이었다.
강렬한 기부림과 함께 발을 박찬 그녀가 훅 몸을 짓쳐 들어왔다.
양 주먹을 안으로 짜듯이 돌리며, 쭉 펼친 양팔로 하는 뻗어내는 찌르기!
목을 향해 죽도의 끝이 쑥 파고 든다.
괜히 차기 여자 검도부 에이스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듯, 깔끔한 찌름이었다.
‘흠···!’
그에 대한 성현의 대처는 간결했다.
왼발부터 한 발자국 뒤로 후퇴하면서, 찔러오는 죽도를 아래 방향으로 비스듬히 눌러 칼끝의 방향을 돌린 것이다.
매끄럽게 이어진 그 동작은 수연의 찌르기를 뒤틀어 갑에 부딪치도록 만들었다.
제대로 된 흘려내기였다.
‘아쉽구나.’
다만 가벼이 흘려냈음에도 반격에 나서진 못했다.
수연의 존심(存心)─격자를 한 후에 방심하지 않고 상대의 반격에도 대응할 수 있는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단련 상태가 더 나았다면 그마저 넘어서 반격을 시도할 수 있었을 터이나, 그건 아니었으니.
“하앗-!”
“합!”
“히야아앗!”
대련은 비슷한 구도로 이어졌다.
주로 공세를 취하며 파고드는 건 수연이었고, 성현은 그것을 간결한 움직임으로 흘려내거나 빗겨내는 데 치중했다는 뜻이다.
거칠게 몰아붙이는 수연과 단단히 막아서는 성현.
성현은 수연의 공세에 반격을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타격을 허용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 수연의 공세가 성현에게 번번이 막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처음 중단세를 취했을 때 무심코 생각했던 내용처럼 말이다.
‘성현이 실력이··· 이 정도였나?’
수연은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마치 철벽을 두드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공격을 하든 그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막아 세우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지경.
본래 그녀는 성현과 대련을 할 때 이할 정도 힘을 빼고 하곤 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만큼 수준 차이가 있었기에.
검도를 시작한 지 겨우 일 년이 지난 성현과 어렸을 적부터 해온 그녀였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한데 지금은 전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성현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후우우···.”
‘전력을 다해서 찌르자.’
깊게 숨을 토해낸 수연이 눈을 날카롭게 떴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건다.
건곤일척(乾坤一擲)!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녀는 거리를 좁혀들어갔다.
그것을 그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성현.
마침내 수연의 몸이 앞으로 훅 나아가려는 찰나.
“스으-”
중단세를 취하고 있던 성현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날카롭게 뜬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보였다.
수연의 몸. 그 안에서 일어나는 근육의 수축과 관절의 움직임, 들이마시는 숨결, 들끓어 오르는 흐름까지, 그 모든 것들이 똑똑히.
일찍이 서른을 넘어서야 깨달았던 재능 중 하나, ‘보는 눈(觀眼)’이 이십 년은 빨리 깨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가 움직였다.
─방어를 허물고
선(先)을 잡으려던 수연의 흐름을 자르고.
막 찌르기 위해 들어 올려지던 죽도를 손목을 오른쪽으로 꺾어 내리누른다.
예상도 못 했던 순간에 이루어진 반격은 수연의 정신을, 그리고 그녀의 흐름을 뒤흔들었다.
그로 인해 반응이 반의 반 박자 늦었다.
지금의 성현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아차···!’
“하아아앗!”
수연의 죽도를 내리누르는 것과 동시에, 성현은 왼발이 고정된 상태로, 오른발을 스치듯 뻗었다.
빗겨내진 수연의 죽도와는 달리, 그의 죽도는 정확히 중심을 유지한 상태!
순간적으로 들어 올려졌던 죽도가 찰나에 수연의 호면 윗부분을 두들겼다.
─머리를 친다
상대의 호흡을 끊으며 이루어진 완벽한 검격.
더불어 기검체 일치(氣劍體 一致) 또한 철저하니.
마치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죽도 눌러 머리 치기’였다!
“···후아!”
게다가 마지막 존심까지 완벽, 그 자체.
언제 공세에 나섰냐는 듯 물러나 중단세를 취한 성현의 모습에 수연은 눈을 크게 떴다.
“···!”
본인이 당했음에도 혀를 내두르게 되는 한판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죽도를 누르는 타이밍부터, 이후 나아감에 흔들리지 않는 무게 중심, 이상적이기까지 한 몸의 움직임과 유려한 죽도의 궤적까지.
성현의 죽도 눌러 머리치기는 놀라울 정도의 완성도가 엿보였다.
무엇보다도.
“어떻게 알았어?”
“무엇을?”
“내가 공격하려는 타이밍. 어떻게 읽은 거야?”
방금 반격은 수연을 완전히 읽어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녀가 전력으로 나가려던 걸 끊어버리며 한 공격이었기에 놀라 반응이 늦어졌고, 그로 인해 이토록 허무하게 한판을 내준 것이었으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빠르거나, 혹은 늦게 반격을 했다?
그랬다면 오히려 그녀의 흐름에 잡아먹혀 다시 몰아 붙여졌으리라.
“그냥, 보였어.”
성현의 대답은 그가 했던 방어만큼이나 간결했다.
아리송한 그의 답에 수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였다고?”
“응. 그것 말고는 해줄 말이 없네.”
어깨를 으쓱거리는 성현.
거기서, 목소리 하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눈이 트였구나.”
성현과 수연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서유나 감독이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성현을.
“눈이요?”
“그래.”
서유나 감독이 담담히 설명했다.
“검도에는 일안이족삼담사력(一眼二足三膽四力)이라는 말이 있다. 검도의 수행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례대로 나열한 거지.”
일안(一眼), 첫째는 상대를 보는 눈.
이족(二足), 둘째는 발을 다루는 방식.
삼담(三膽), 셋째는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
사력(四力), 넷째는 힘 있고 과감하게 기술을 내는 것.
“이중 일안은 관(觀)의 눈이다. 상대를 살펴 읽어내는 눈. 방금 성현이가 직접 보여준 거지.”
“아···.”
그제야 수연은 성현이 ‘보였다’라고 밖에 말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다른 요령이나 수단이 있던 게 아니라, 정말 보였기 때문에 방금과 같은 반격이 가능했던 거다.
그는, 그녀를 완벽하게 간파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이토록 완벽하게 흐름을 끊어낼 수 있었던 것이고.
“언제부터 눈이 트였지?”
“오늘입니다.”
“오늘? 아, 하긴. 어제는 그랬으니까.”
서유나 감독이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성현은 속으로 못내 쓴웃음 지었다.
어제의 그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는 서유나 감독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오늘 눈을 떴다는 이야기에 저리도 쉽게 수긍할 정도라니.
“오늘 눈을 트였는데 수연이를 완벽히 간파해냈다는 거군······.”
서유나 감독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성현을 보며 말했다.
“성현이 너, 제대로 단련만 하면 선수도 될 수 있겠구나.”
“선수요?!”
깜짝 놀라 반응한 건 성현이 아니라 수연이었다.
검도 선수라 함은, 구청에 있는 실업팀 소속 선수를 뜻했다.
이는 실력이 검도로 먹고살 수준이 된다는 의미였으니, 서유나 감독이 한 말이 얼마나 극찬인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수연이 깜짝 놀랄 만했다.
“어디까지나 제대로 했을 때의 이야기지.”
무뚝뚝하게 답하는 서유나 감독.
그녀의 말에 담긴 뜻은 명확했다.
오늘 아침처럼 늦잠이나 자며 훈련을 빼먹는다면, 선수가 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날카로운 뼈가 담긴 말에도 성현은 되려 미소지었다.
“제대로 할 겁니다.”
필요하다면, 인생을 걸어서라도.
“정말 제대로.”
더 높은 경지.
더 완벽한 검.
오직 그것만을 위해 과거로 돌아오기까지 한 남자가 답했다.
일말의 과장도 없는 진심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서유나 감독이 빙긋 웃었다.
성현의 진심이 제대로 느껴졌다.
저 짧은 말 속에 담긴 각오가 가슴을 떨리도록 만들 지경이었으니.
‘재밌는 녀석이군.’
그녀는 삐죽 솟아오르려는 입가를 내리눌렀다.
감독으로서 선수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애써 냉정한 척하는 외견과는 달리, 그녀의 속내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흥분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였다.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기는 했지만, 은근히 극찬한 점을 보면 알 수 있듯, 그녀는 성현의 재능에 감탄하고 있었으니까.
검도를 볼 줄 아는 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을 뜬 게 오늘인데도 그런 죽도 눌러 머리치기를 할 수 있다는 거지.’
심지어 상대가 평범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수연은 전국에서도 강호로 손꼽히는 광천고 여자 검도부 차기 에이스로 취급받는 유망주였다.
현재 에이스인 임하윤이 너무 강해 아직 에이스 취급받고 있지 않을 뿐, 만약 그녀가 없었더라면 당장 올해부터 대장 자리는 수연이 꿰찼으리라 장담할만한 실력이 있었다.
그런 그녀를 완벽하게 읽어냈다?
당장 오늘 트인 눈으로?
‘재능.’
문득 서유나 감독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건 그러한 단어였다.
‘압도적인 재능.’
서유나 감독은 홀린 듯이 성현을 바라보았다.
평소 그녀의 지론은 ‘천재는 없다’였다.
모든 건 피땀 흘려 쌓아 올린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천재라는 존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거 참, 추계 대회 남자 개인전이 꽤 재밌어지겠군.’
“······!”
성현과 감독이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던 수연이 그의 팔에 덥석 매달렸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한 행동이었다.
돌연, 성현은 어렸을 적, 그러니까 추억조차 까마득하던 어린 시절에 자주 수연이 이런 식으로 그에게 매달리곤 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아마 너무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그때의 행동이 저도 모르게 꺼내진 것이리라······.
“성현이 너 대단한 재능이 있었구나!”
“허허-”
“선수라니···. 나 감독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는 거 처음 봐!”
“다 수연이 너 덕분이지.”
성현의 대답에 흥분해서 말을 쏟아내던 수연이 덜컥 멈춰 섰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