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최종화 >
극한의 컨셉충 140화.
최종화.
러시아의 핵미사일이 전 세계를 향해 쏟아지려는 순간. 모두 손을 잡고 기도하며 부디 인류 종말의 위기가 무사히 넘어가기를 바랐다.
“대통령님!”
그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러시아가 핵미사일을 발사 중지했습니다!”
“뭐, 뭐야?”
“그리고 모든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중입니다! 인공지능의 해킹을 막아낸 것 같습니다!”
“오오-!”
벙커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 함성을 질렀다.
끊겼던 인터넷이 전부 돌아오고 러시아 대통령도 따로 전화를 걸어 모든 사태가 진정됐음을 알렸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막아낸 거야?”
“그게······ 바실레이아 본사에서 말하기를 이번 해킹 사태를 막아낸 곳이 바로 한국이라고 합니다.”
“한국?”
대통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도 하지 못 한 일을 한국이 해내다니.
“한국이 어떻게 막은 거지?”
“바실레이아 본사의 말에 따르면, 이번 해킹은 바실레이아 온라인 게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게임 안에 있던 인공지능이 문제를 일으켜 세계적인 해킹을 진행한 것인데, 그걸 한국 유저가 막아냈다고 합니다.”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이번 해킹 사태가 온라인 게임에서 시작된 일이라니.
미국 대통령은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다행히 그곳에서 매우 유명한 플레이어가 해킹 사태를 막아냈고, 그로 인해 바실레이아 온라인 세계가 전부 붕괴되어 더는 플레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명한 플레이어?
대통령은 흥미가 생겼다.
“우리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구원한 그 플레이어가 도대체 누구지?”
* * *
큰 폭발 이후 모든 화면이 검게 변했다.
과연 성공한 것일까.
천마는 조심스레 눈을 떠 보았다.
“고마워요, 천마님.”
그에게 보이는 건 헬라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천마를 붙잡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저는 여기까지이지만, 아직 당신에게는 여정이 남아 있답니다. 부디, 그 여정의 끝을 보고 오길 바랄게요.”
“그게 무슨······.”
“그럼, 안녕히-.”
그 말을 끝으로 밝은 빛이 그를 감싸더니, 다시 한번 눈을 뜨게 된 천마였다.
“형! 괜찮아?!”
천마가 눈을 뜨자 천강이 화들짝 놀라 달려왔다.
“어, 어떻게 된 것이냐?”
“우리가 해냈어, 형. 바실레이아 게임은 완전히 파괴되고 유저들도 무사히 게임 밖으로 나왔어. 근데 형이 이틀 동안 안 깨어나서 병원으로 데려온 거야.”
“내가 이틀 동안 정신이 안 돌아왔었다고?”
헬라를 보았던 건 꿈인가.
아니면 그녀가 떨어지는 천마를 붙잡아 준 것인가.
“지금 언론이 난리가 났어. 우리가 게임 속에 있는 동안, 로아 그놈이 전 세계를 해킹하고 있었나 봐. 러시아가 핵미사일을 온 지역에 발사할 뻔했대.”
“그런데?”
“그걸 우리가 막은 거지. 형이 로아를 죽이면서 핵미사일도 발사되지 않았고,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어. 한 번 봐.”
천강은 말로 설명하기 보다는 직접 보여 주는 게 낫다고 여겼다.
그는 TV를 켜 현재 방송 중인 뉴스를 보여주었다.
“오늘은 아주 뜻 깊은 날입니다. 우리 인류가 종말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행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러시아사 발사 예정이었던 핵미사일의 숫자는 총 1500개가 넘으며 이는 인류를 멸망시킬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류를 구원한 영웅이 등장하면서 이 모든 상황이 종료가 되었습니다. 바실레이아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천마라는 플레이어가 인류의 종말을 막아낸 것입니다.”
뉴스에서는 온통 러시아의 핵미사일과 해킹,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막아낸 천마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어떻게 알았는지 언론사에서 연락이 오더라고. 그래서 캡슐에 있는 영상을 조금 풀어서 줬지.”
“그래서 본좌가 영웅이 된 것이냐?”
“맞아. 그리고 형이 영웅인 건 부정 못 할 사실이잖아. 만약 그때 로아를 형이 막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죽었을 거야.”
기쁜 소식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야, 형. 무려 미국 대통령이 형한테 축전을 보내왔어. 감사하고, 또 축하한다고 말이야. 미국에서 형이랑 날 초청까지 했다니까? 미국 대통령이 직접 상을 준다고 해.”
“미국 대통령이?”
“어. 그만큼 이번 일은 엄청난 거라고. 청와대에서도 벌써 연락이 왔어. 대통령이 우리 둘을 초청했다고 말이야.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청와대부터 가야 돼.”
천강은 천마를 일으켜 이번에는 병원 밖 상황을 보여 주었다.
“저거 보여?”
수많은 인파가 병원 앞에 모여 팻말을 들고 있었는데, 모두 천마의 쾌유를 빈다는 내용과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사람들도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다 달려왔어. 형이 깨어나질 않으니까, 얼른 깨어나 달라고.”
“허어-. 별 것도 아닌 일에 다들 유난을 떠는군.”
천마는 정말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 이런 걸로 저리들 난리를 치는지.
“어허. 유난이라니. 형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무려 세상을 구원한 사람이잖아. 당연히 사람들이 형을 우러러 볼 만 하지.”
“그래 봐야 게임이지 않더냐.”
“그 게임이 워낙 대단했어야 말이지. 미국 펜타곤을 해킹해서 그 지경으로 만들 정도면 말이야.”
천강은 지금 그 누구보다도 기뻤다.
그동안 천마에게 있던 모든 오해가 한꺼번에 풀리고 나아가 세상을 구한 영웅이라는 칭호까지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저 이 행복이 영원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 *
“하하하-! 우리의 영웅께서 오시다니, 이거 영광입니다.”
바로 청와대부터 갈 줄 알았더니, 미국이 압력을 쓴 모양인지 백악관부터 가게 된 천마였다. 그것도 미국에서 보낸 전세기를 타고 말이다.
“미스터 천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는 끔찍하게 파괴됐을 겁니다. 미국을 대표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천마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악수를 해 주었다. 다행히 옆에 통역이 붙어 대화가 가능해졌다.
천강과 천마는 난생 처음으로 미국을 오게 됐는데, 그 첫 여행지가 백악관이었다.
두 사람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많은 인파의 박수를 받으며 백악관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에서 만찬을 즐겼다.
워낙 미국 대통령이 유쾌한 사람이라 말이 끊기는 일이 없었다. 거기다가 그는 바실레이아 온라인을 즐겨 플레이 하던 사람이라 더더욱 대화가 잘 통했다.
“솔직히 나는 그쪽이 정말로 바실레이아에서 보낸 스파이인 줄 알았어요. 내가 그렇게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니.”
“저는 천마라는 컨셉을 끝까지 유지하던 게 더욱더 놀라웠고요.”
그의 영부인도 바실레이아 온라인을 즐겼던 사람이라 대화에 끼어듬에 어색함이 없었다.
“세상이 다행히 구원을 받았지만, 그 게임이 사라지다니. 많이 아쉽군요.”
대통령의 말대로 바실레이아 온라인은 그날로 파괴되었다. 바실레이아 본사에서도 게임을 복구시키리면 최소 5년에서 10년은 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미국이 그걸 가만 놔두겠는가?
인류를 끝장낼 뻔한 게임이었다.
미국 정부에서는 바실레이아 본사가 더는 게임 개발을 할 수 없게 강제로 막아 버렸다. 또한 인공지능을 이용한 가상현실 게임이 출시하지 못 하게도 막아놓았다.
“저도 한 사람의 게이머로써 많이 아쉬운 결정이긴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천강도 더는 바실레이아와 같은 게임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앞섰다. 그러나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가치는 없지 않던가.
“우리 왜 이렇게 바쁘냐. 조용히 미국 여행을 하려고 했더니, 아주 별별 곳에서 다 초청하네.”
“그러게나 말이다.”
백악관에서 파티를 한 번 하고 난 뒤에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장소에 초청을 받았고, 그곳에서 유명 인물들을 만나는 등 나름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두 사람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청와대가 초청을 하는 바람에 수여식에 참석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아아-. 백악관에서 또 부른다고 해도 난 이제 안 갈래. 미국은 정말 지긋지긋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너무 타이트한 스케쥴 덕에 천강은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래도 무사히 청와대에서 주관하는 표창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네.”
민간인들도 참석이 가능한 수여식이라 상당히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모두 천마의 이름을 외치며 팻말을 높이 들었는데, 청와대와 여야 당원들은 이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천마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표가 갈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위해 봉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옳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천마는 대통령이 직접 전달해 주는 상장과 메달을 받은 뒤,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짧은 연설과 함께 강당 위에서 내려가 자리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콰앙-!
“꺄아아아-!”
“대, 대통령님을 보호하라!”
갑자기 폭발 소리가 들리더니, 자욱한 연기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경호원들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달려간 상태였고, 천마는 천강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그에게 달려온 건 천강이 아니라 후드와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남성이었다.
푸욱-!
“큭-!”
뒤에서 나타난 무리들이 천마를 붙잡더니, 앞에 있는 마스크의 남성이 칼로 복부를 찔렀다. 그러고는 천마의 귀에 속삭였다.
“내가 말했지. 꼭 복수하러 올 거라고.”
비록 쓰는 언어가 다르긴 했으나, 그 목소리만큼은 분명히 기억하는 천마였다.
“레이피드?”
“그래. 넌 오늘 여기서 내 손에 죽는 거야. 감히 내 계획을 무너뜨린 죄값을 받아라.”
레이피드는 한 번 더 천마의 몸에 칼을 꽂았다. 그러자 천마가 이를 강하게 깨물며 뒤에서 자신을 붙잡고 있는 남성에게 머리를 날렸다.
콰직-!
“크악!”
그리고 발을 들어 레이피드를 걷어찬 뒤, 다른 남성에게도 주먹을 뻗었다.
이미 칼을 두 번이나 맞긴 했지만, 천마는 망설임 없이 레이피드를 향해 달려갔다.
“이게 끝까지!”
“어차피 게임에서나, 현실에서나 네놈은 본좌의 상대가 되지 못 한다!”
콰득-!
번쩍 날아올라 무릎을 뻗어 올린 천마.
그것에 정통으로 맞은 레이피드는 대자로 누워 버렸다.
“젠장!”
“버리고 가!”
레이피드와 함께 했던 나머지 두 명은 혼란을 틈 타 자리를 벗어났다.
그 둘에게 눈을 부릅뜨고 있던 천마도 뒤늦게 통증이 몰려오면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혀, 형!!”
연기가 걷히면서 천마를 발견한 천강이 후다닥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이, 이게 도대체!”
“레이피드 저놈이 술수를 부렸다.”
“레이피드?”
천강은 반대편에 쓰러져 있는 레이피드를 발견하고는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하지만 천마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해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환자분!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형!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돼!”
구급차가 들어오고 대원들이 천마를 실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천강이 천마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는데, 천마는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우. 그동안 본좌가 네게 해 주지 못 한 것이 있다면 미안하다.”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이런 걸로 형 죽을 사람 아니잖아.”
진짜 천마의 몸이라면 그렇겠지만, 이 몸은 다른 이의 몸이지 않던가.
“본좌는 아우와 함께 했던 그간의 시간들이 참 즐거웠다.”
“그런 소리 하지 말라니까!”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천마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무언가가 자신을 강하게 이끌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형! 정신 차려봐! 형!”
천강의 목소리에도 더는 눈이 떠지지가 않는다.
아아-. 이렇게 또 다른 삶이 끝나는 것인가?
하지만 여한이 없는 삶이었다.
가족이라는 것을 가지며 분수에 맞지도 않은 행복을 누렸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지존이시어!”
“지존!!”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에 천마는 눈을 뜨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익-!”
“지, 지존이시어!”
“지존께서 사, 살아나셨다!”
천마는 익숙한 풍경과 익숙한 얼굴들에 스스로의 몸을 살펴보았다.
“이럴 수가······.”
돌아왔다.
천마가 군림하던 무림으로.
극한의 컨셉충 (끝)
< 140화. 최종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