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전염병 >
극한의 컨셉충 135화.
작품 제목: 전염병
“혹시나 싶어서 해 본 건데······.”
캡슐을 신나게 분해하던 천강은 천마가 말하던 그 큐브를 발견해냈다.
“그러니까 이걸로 사람들 정신을 뒤집어 놓을 수 있다는 거지?”
“로아의 말로는 그렇다.”
“이 큐브가 위험한 물건이었네. 근데 이걸 빼고 캡슐을 실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천강은 이 문제의 큐브를 제거하고 캡슐을 켜 봤는데, 다행히 동작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이 큐브는 다 빼 놓자.”
“그렇게 하자꾸나. 헌데 다른 사람들한테도 경고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 만약 로아의 말대로 헬라가 이 큐브를 이용해 사람들의 정신을 흩뜨려 놓는다면······.”
“그렇긴 한데, 아직은 지켜보는 게 맞을 것 같아. 이게 정말 확실한 정보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거기다가 이걸 밝히려면 많은 걸 설명해야 해서, 여러 모로 복잡해.”
천강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 사실을 알리려면 천마에게 있었던 일까지 전부 다 알려 줘야 한다는 건데, 정확한 정보도 아니라서 그런 무리수를 둘 순 없었다.
“확실해질 때까지 지켜보자.”
“그래. 알겠다.”
천마는 며칠 동안은 게임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여러모로 생각할 것도 많고, 게임 안에 들어가면 뭔가 뒤숭숭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요즘 천마에 대한 불만 여론이 쇄도하고 있지 않던가.
“사람들 참 웃겨. 언제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플레이어라고 하더니.”
“원래 민초들의 마음이 갈대 같은 법이지. 한쪽으로 기우는가 싶으면 작은 바람에도 반응하여 반대쪽으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천마는 무림에서도 그런 상황을 여러 번 봤었다.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인데, 그런 유언비어에 속아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을.
또한 지휘관들끼리 유언비어에 속아 싸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리고 잠깐 이렇게 내려가는 경우가 있으면, 금방 또 올라갈 때도 있는 법. 너무 조급해 하지 말거라.”
“그렇다고는 해도 화나잖아. 우리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원래 세상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고생을 통해 우리도 얻은 게 많지 않더냐?”
“그, 그렇긴 하지. 성도 여러 개 얻고 돈도 어마어마하게 벌었으니까.”
천마는 돈이 있든 없든 별로 상관하지 않았지만, 천강은 가끔씩 모바일을 통해 통장 잔고를 보면 행복감에 입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평생 이 정도의 거금을 만져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차피 게임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근데······ 형은 하고 싶을 거 아니야. 유일하게 거기에서만 무공을 쓸 수 있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괜찮다. 본좌에게는 너도 있고 어머니도 있으니까. 이제 무공을 쓰지 않아도 가족끼리 있는다면 아쉬울 게 없다.”
그 말에 천강은 가슴 한쪽이 찡하게 올라왔다.
세상 제일 중요한 것이 무공이라고 하던 천마의 모습은 사라지고 정말 가족을 위하는 가장의 모습이 눈앞에 있었다.
“어······ 형. 근데 우리 게임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은데?”
“왜 그러느냐?”
“지금 카르만 대도시에 일 하나 터진 거 같아.”
* * *
인기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안티팬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천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인물이라 당연히 그에 따른 안티팬들도 따라왔다. 단지, 그들이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지지하는 천마를 두고 욕하면 오히려 더 욕을 먹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 그들의 울분이 뒤늦게 터졌다.
이번 사태로 여론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을 노려 천마를 대놓고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린 그 사기꾼한테 다 속고 있는 겁니다! 바실레이아 본사에 우리 대한민국이 속은 거라고요!”
“천강과 천마는 물러나라!! 천마신교는 없어져야 한다!”
이들은 카르만 대도시에 모여 데모까지 벌였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좀 동조를 하는 것 같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슬슬 반응이 없었다.
“에라이. 병신들! 속고 있는 거라고 말을 해도 들어 쳐 먹질 않네!”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던 유저의 아이디는 천마타도.
아이디 그대로 천마를 타도하기 위해 온 사람이었다.
“길드장. 이거 안 통하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사람들도 이제 반응을 안 하네.”
“오히려 우리가 욕을 더 먹고 있어.”
그를 따르는 길드원들도 점점 침울해져 갔다.
당연한 일이다.
주위를 바라보라.
처음에는 카르만 대도시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천마의 정체를 의심스럽게 생각했다.
그가 정말로 바실레이아 본사에서 파견한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이용만 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한국 플레이어들에게 큰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천마 덕분에 한국 플레이어들이 얼마나 편하게 게임을 하고 있던가?
여러 도시들부터 시작해 카르만이라는 대도시까지 한국 영토가 되었다.
천마 덕택에 천마신교의 신교원들이라면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가 있고, 관광부터 사냥까지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어 바실레이아의 천국이라 불린다.
그런데 이런 곳을 바실레이아 본사가 구태여 만들어 준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해. 바실레이아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천국을 만들어 줘?”
“맞아. 돈도 엄청나게 깨졌을 텐데.”
“여기 세금 걷는 거 전부 다 내정 관리로 들어간다고 하잖아.”
“아니. 정말로 바실레이아에서 파견한 사람이라고 해도 한국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땡큐 아니야?”
길드원들의 수군거림에 길드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이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이럴수록 더욱 힘을 내야지!”
“근데 길드장님이 생각해도 좀 이상하긴 하잖아요. 너무 음모론을 막 쓴 것 같은데······.”
사실 길드장도 천마가 정말 바실레이아에서 파견된 사람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냥 천마라는 존재가 싫었고, 게임 좀 잘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는 게 배알이 꼴렸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꼬리를 잡아 넘어뜨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다른 이들이 보면 분명히 정신병인데, 길드장은 그런 자각이 없었다.
“당신들의 정의로운 행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검은 후드를 쓰고 있던 남성은 경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십니까?”
“저는 당신들 같은 혁명가를 응원하는 사람입니다.”
“혁명··· 가?”
“예. 모두가 이 불의를 모른 척 할 때 유일하게 이 불의에 맞서는 사람이 바로 혁명가지요. 언제나 새로운 역사는 그런 혁명가들이 만들기 마련입니다. 바로 당신처럼요.”
혁명가라는 말에 길드장은 어깨를 으쓱 거렸다.
“흠흠. 뭘 좀 아시는 분이네.”
“하지만 최근 여론을 보면 여기 사람들은 도무지 당신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아요.”
“뭐, 그거야 시간이 가면 내 말을 믿어 줄 거요.”
“과연 그럴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면 아무도 당신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방금 전에는 혁명가라고 띄워 주더니, 지금은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아니. 지금 나랑 싸우자고 그런 말을 하는 거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하는 도움.”
“도움?”
“예. 이거 하나면 됩니다.”
검은 후드의 남성이 건넨 건 작은 구체였다.
“이게 뭐요?”
“혁명을 완성시켜 줄 도구죠.”
또 그 말에 혹 넘어가 길드장은 남성이 건네는 구체를 받아들였다.
“음.”
외형으로 보면 작은 구체인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시커먼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이 구체를 열면 연기가 나올 텐데, 그 연기를 온몸에 묻히십시오. 그런 뒤, 인파가 많은 곳으로 왔다갔다 하면 됩니다.”
“그게 끝?”
“예. 당장 내일부터 큰 효과를 보게 될 겁니다.”
“그런 거라면 직접 하지 왜 이걸 나한테 주지?”
“전 당신이 혁명을 성공시키는 걸 보고 싶으니까요.”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어차피 게임을 하려고 만든 캐릭터도 아니기 때문에 그다지 상관도 없었다.
“뭐, 그렇게 말을 한다면야.”
길드장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바로 실행에 옮겼다.
구체를 깨뜨려 그 안에 있는 연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별 느낌이 없는데?”
“오늘 하루가 중요합니다. 최대한 인파가 많은 곳으로 가세요. 그럼, 전 이만.”
후드의 남성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길드장님. 방금 그 남자는 뭐에요?”
“몰라. 그냥 미친놈인가봐. 근데 여기 인파 제일 많은 곳이 어디지?”
“그냥 여기는 어딜 가도 많아요.”
사실이 그러했다.
카르만 대도시에 한적한 곳이란 거의 없으니까.
“오늘 시위는 때려치고 여기 관광이나 해 보자.”
길드장은 휘파람을 불며 인파가 많은 곳을 찾아 떠났다.
* * *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전염병이라니요?”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한 번 걸리면 매시간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주문력이 약해집니다. 또한 시간이 계속 지나면 체력도 점점 내려가 종국에는 죽게 됩니다.”
천강과 천마가 급히 게임으로 돌아오게 된 건 갑작스럽게 퍼진 전염병 때문이었다.
게임 시스템상 전염병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건 이벤트성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플레이어들이 걸리진 않는다. 그런데 이번 전염병은 플레이어들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지금 다들 난리입니다. 특히 카르만 대도시에 전염병이 집중적으로 퍼지고 있어요.”
“포션을 먹어도 해결이 안 되고요?”
“예. 현재 마법사들이 약을 개발 중이긴 한데, 지금으로써는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마법으로 버프 효과를 줘서 잠시 병을 늦추는 방법 밖에는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천강은 많이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전염병이 퍼지는 사례가 있었나요?”
“제가 알기로는 없었습니다.”
천강과 간부들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천마는 골똘이 생각에 잠겼다.
이거 뭔가 냄새가 나지 않은가.
“전염력이 엄청납니다. 마법으로 보호막을 두르지 않으면 금방 노출이 되어 걸릴 정도죠.”
“지금 사람들이 전부 마법 보호를 걸어 주는 아이템을 사느라 경매장도 난리가 났습니다.”
마법 보호 장비가 있으면 된다는 건데, 문제는 이 장비가 일회성이라는 것이다.
아예 영구적 효과를 마법 보호 장비를 사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을 요구한다.
그 정도의 돈이 없으면 일회성 장비라도 둘러야만 안전했다.
“지금 사람들이 모두 카르만 대도시에서 떠나는 중입니다. 문제는 떠나는 사람들 중에서도 감염자가 있어 다른 곳에 병을 다 퍼뜨리고 다니는 중이라는 거죠.”
생각보다 사안이 심각했다.
이 정도 전염력이면 천마신교가 다스리는 모든 도시에 전염병이 퍼지게 될 것이다.
“일단 최대한 인력을 동원해 서둘러 약을 만들도록 해라. 또한 갑자기 왜 이런 병이 퍼졌는지도 조사하도록.”
“예, 교주님.”
간부들이 밖을 나가고 천강과 천마가 단 둘이 남았을 때였다.
“전 이번 일을 누가 꾸몄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때 갑자기 로아가 이 둘 앞에 나타났다.
< 135화. 전염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