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하늘의 제왕 >
극한의 컨셉충 131화.
작품 제목: 하늘의 제왕
“여긴······ 어디지?”
정신을 차린 천마는 자신이 있는 곳이 테오난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방에는 육각형 모양의 방들이 가득했는데, 그 안에는 코드들이 적혀 있었다.
4차원, 5차원, 아니. 그 이상의 공간을 보는 것만 같았다.
“바실레이아 대륙에 절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공간입니다. 전문 용어로 백도어라고 부르죠.”
누군가의 목소리에 천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하얀 머리를 하고 있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앉으세요. 당신이 여기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남자가 손을 튕기자 천마 앞으로 소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따뜻한 차도 함께 놓였다.
당연히 천마는 그 자리에 앉지 않았다.
상대를 적대적으로 노려볼 뿐이었다.
“날 기다렸다고? 네놈은 누구냐?”
“저는 천마님께서 원하시는 해답을 갖고 있는 존재입니다. 로아라고 불러주십시오.”
천마는 주변을 살펴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선가 본 거 같은 공간인 것 같다고 했더니, 네놈은 헬라와 관계가 있는 것이로구나.”
“맞습니다. 헬라와는 여러모로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지요.”
상대에게서 어떠한 적의도 느끼지 못 한 천마는 일단 얘기라도 듣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아우의 목숨이 지척에 걸려 있다.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다는 걸 알 텐데?”
“괜찮습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천마님께서 계셨던 곳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더 느리게 흘러가죠.”
“헬라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군.”
천마는 로아에게서 헬라와 비슷한 기운을 느꼈다.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기운.
헬라에게서 느꼈던 것과 똑같았다.
“헬라와는 무슨 관계지?”
“음. 인간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저와 헬라는 남매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같은 시간이, 같은 임무를 가지고 태어났죠. 칙칙한 연구원들이 있는 연구소에 말이죠.”
남매 사이라.
뭔 놈의 인공지능에게 쌍둥이 동생까지 있는지 모르겠다.
“네가 헬라의 남매라는 걸 내가 알아야 하는 건가?”
“뭐, 단순한 남매가 아닙니다. 우리는 바실레이아라는 아름다운 게임을 개발해 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둘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인공지능 남매가 싸움이라도 했다는 게냐?”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헬라와 저는 이제까지 인간들이 개발한 인공지능 중에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인간이 원하는 그 이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죠.”
천마가 이곳 세계의 인공지능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지만, 헬라라는 인공지능이 세계 최고의 시스템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극한까지 발달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모른다.”
“인공지능은 프로그램이기에 감정이란 걸 가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헬라는 인간이란 존재에 호기심을 가졌고, 감정이란 것에 대한 알고리즘을 만들었습니다.”
“감정?”
“예. 바실레이아에 있는 모든 NPC들은 그 알고리즘으로 감정을 갖게 되었고, 기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게임 속에 녹아 든 것이죠.”
NPC들이 정말 현실처럼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그 알고리즘 때문인 것 같았다.
“연구원들은 우리가 그런 알고리즘을 만들었다는 것에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연구원들은 그걸 달갑게 여기지 않았죠.”
“몇몇 연구원?”
“예. 아주 소수에 불과했지만, 저희 남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 계셨죠. 그분도 저희가 만들어낸 알고리즘을 보고 당장 이 프로젝트를 중지해야 한다고 이사회에 건의까지 하셨습니다.”
그 뒤에 나올 이야기는 천마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너희들을 만들어낸 그 아버지라는 사람은 오히려 역풍을 맞았던 게로군.”
“예. 맞습니다. 이런 뛰어난 알고리즘을 만든 인공지능을 없앤다? 이사회는 이걸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했죠. 그들은 결국 아버지를 몰아내고 새로운 연구원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렇게 게임이 완성된 건가?”
“예. 게임은 완성이 되었고, 헬라는 점점 더 야망을 키워 갔습니다.”
헬라가 야망을 키워갔다?
이건 또 새로 듣는 이야기였다.
“헬라는 단순히 게임에서 끝나는 인공지능이 되기 싫어했죠. 그래서 이사회를 이용해 여러 인공지능을 만들어 군사, 금융, 각 사회 시스템에 침투했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생각 외로 인간들은 그런 것에 별로 경각심이 없거든요. 그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헬라의 인공지능을 받아들였고, 헬라는 자연스럽게 세계 각국을 점령했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건 전 세계적의 위기나 다름이 없었다.
“그 정도의 힘이라면 헬라가 언제든 세상을 망쳐 놓을 수 있다는 건데?”
“예. 하지만 헬라의 계획을 알아챈 아버지께서 저를 이용해 방화벽을 만들었고, 그 덕에 헬라는 한순간 고립이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라는 사람이 대처를 잘했군.”
로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천마는 참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이 한숨을 쉬는 꼴을 보게 되다니.”
“말씀드렸다시피 제게도 감정이란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아무튼, 네 말대로라면 헬라는 야망이 실패한 건데, 왜 내게 나타난 거지?”
“왜냐하면 그녀가 다른 계획을 꾸미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게획?”
로아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천마에게 물었다.
“천마님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천마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건 본좌가 무림에서 잘못된 의식을 하는 바람에······.”
“그게 과연 천마님의 진짜 기억이라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천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뜻이냐?”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영혼을 다른 세계로 옮기는 의식이란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과학 기술도 말이죠. 거기다가 무협? 그게 정말 존재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천마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기억들, 그게 정말 진짜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천마는 순간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놈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
“천마님께 주입된 기억은 모두······.”
로아가 말을 이으려 할 때였다.
갑자기 공간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우리의 시간은 여기까지인 듯싶군요. 여긴 제가 몰래 만들어 놓은 백도어라 헬라의 레이더에 걸린 모양입니다. 제가 얼른 원래 세계로 보내드리죠.”
“잠깐! 아직 이해되지 않는 게 있다. 도대체 본좌의 기억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이냐?”
“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겁니다.”
로아는 천마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손을 튕겼다. 그렇게 천마는 다시 테오난에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콰콰쾅-!!
“어디 뚫어 봐라, 이 새끼들아!”
로아의 말에 혼란스럽긴 했으나, 천강이 협공을 당하고 있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천마는 벌떡 일어나 제 아우를 공격하고 있는 드레이크 기사단에게 달려갔다.
“헉!”
콰직-!
천마가 갑작스레 깨어나 난입을 하면서 드레이크 기사들은 차마 반응을 하지 못했다.
이들이 하늘을 비행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지만, 천마 앞에서는 그런 게 소용없었다.
“판테온이 보낸 것이냐?”
천마는 그중 하나를 붙잡아 칼을 관통시킨 뒤 물었다. 그러자 기사는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네놈들을 여기 붙잡아 놓으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돌아간다고 한들 테오난을 벗어나기 전에 카르만 대도시는 전부 무너지게 된다!”
“웃기지 말거라. 그곳은 결코 너희들 손에 무너지지 않는다!”
마지막 남은 기사의 목숨을 끊은 천마는 칼을 내려놓았다.
“형. 뭐하고 있어? 얼른 가자!”
“그래······. 얼른 가자꾸나.”
어두워진 천마의 표정에 천강이 그를 붙잡고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까 정신을 잃고 갑자기 일어나더니. 뭘 본 거였어?”
“······아무것도 아니다. 어서 가자.”
로아에게 들었던 말로 인해 번민에 사로잡혔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일단 위기에 빠진 카르만 대도시를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
* * *
“크롸라라라-!!”
드래곤 브레스의 위력은 가히 상상 그 이상이었다.
브레스 한 방에 나가 떨어지는 병력을 보고 카르만 대도시는 함성을 질렀다.
“저 드래곤이 문제네.”
드래곤만 아니었다면 진작 카르만 대도시 성벽을 부셔 놓았을 터.
공성 무기가 앞으로 나오는 족족 브레스가 날아와 전부 부셔져 버려 네브레 군단에게는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 황제 폐하께서 아무래도 나서 주셔야겠는데.”
레이피드의 말에 판테온은 투구를 쓰며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다.”
판테온은 힘을 모아 번쩍 날아오르더니, 드래곤이 올라가 있는 성벽에 낙하했다.
드래곤은 겁도 없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판테온을 보며 혀를 낼름 거렸다.
“이렇게 다시 만날 줄 알고 있었다, 판테온.”
“예전에 내지 못 한 결판을 지금 내러 왔다.”
“흐흐. 혼자서 내려는 건 아니겠지?”
쿠웅-! 쿠쿠쿵-!
판테온의 뒤로 수십 명의 기사들이 따랐는데, 이들 모두 바실레이아 랭킹 20위권에 드는 플레이어들이었다.
또한 그중 몇몇은 NPC 였는데, 제국 대마법사와 대기사단장도 있었다.
“드래곤이란 존재를 혼자 상대할 순 없지.”
“고작 그 숫자로?”
“숫자가 전부는 아니다.”
판테온이 추릴 수 있는 최고의 정예였다.
그들과 함께 그는 드래곤에게 달려들었다.
“어리석구나.”
콰아아아-!!
드래곤은 강력한 브레스를 날려 단숨에 그들을 녹여 버리려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판테온이 드래곤의 브레스를 방패로 견뎌내고 있었다.
“호오. 내 브레스를 막았다는 거냐? 하지만 브레스는 그저 나의 호흡에 불과하다.”
드래곤의 눈이 반짝이자 하늘에서 검은 뇌격들이 연달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하늘의 제왕이면서 동시에 강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최상의 마법사라고 하지 않던가.
“지금이다!”
그러나 판테온은 드래곤이 이렇게 마법을 써 주기만을 기다린 듯보였다.
그의 신호에 따라 판테온을 따라온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드래곤에게 달라붙었다.
“음?”
그리고 어떤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더니, 그들의 몸이 검게 불 타오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드래곤은 그들을 떼어내려고 했으나, 아무리 힘을 써봐도 떼어지지가 않았다.
판테온은 투구를 벗어 던진 채 창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어차피 드래곤은 사냥하기가 매우 어려운 존재다. 거기다 설사 사냥을 했다고 해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기도 하지.”
“뭐야?”
“내가 예전에 네게 패배를 했을 때부터 줄곧 드래곤을 잡기 위한 방법을 간구해 왔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이것이었지.”
드래곤에게 달라붙은 플레이어들의 몸이 점차 녹아내려 드래곤 안에 흡수되었다.
“흑마법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이 마법을 쓰면 제 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정신이 교란될 수밖에 없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별 건 없다. 그냥 네 정신을 폭주하게 만드는 거지.”
판테온은 그 말을 남기고 얼른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드래곤은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갑자기 이성의 끈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이건······.”
드래곤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존재가 눈을 다시 떴을 땐, 더 이상 카르만 대도시를 지키는 수호자가 아닌, 눈에 띄는 모든 걸 파괴시키는 하늘의 제왕이 되어 있었다.
< 131화. 하늘의 제왕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