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격돌 >
극한의 컨셉충 127화
바실레이아 대륙에서 가장 튼튼하다는 레브르 원석으로 만들어진 은색 투구를 벗으며 판테온이 천마에게 다가갔다.
그가 들고 있는 창 또한 대륙 최고의 무기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갑옷은 어떠한가.
갑옷 역시 레브르 원석으로 만들어져 웬만한 공격에는 절대 뚫리지가 않는다.
“뭐하는 짓이지?”
다짜고짜 창부터 날려댔으니, 당연히 천마는 상대를 기분 좋게 대할 수가 없었다.
“너무 급하게 가는 것 같아서. 붙잡은 거다.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정식으로 약속을 잡고 만나면 될 일을, 이런 거친 방법으로 나올 줄은 몰랐군.”
천마의 날카로운 눈빛에 판테온을 호위하는 부하들이 다가오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판테온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너희들은 뒤로 빠져 있어라.”
“예, 폐하.”
폐하라.
신분 차이가 확 드러나는 호칭이었다.
“황제라는 사람이 품위가 없군.”
“그런 걸 챙겨야 하나?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다. 그게 싫다면 이 자리에서 날 꺾으면 된······.”
콰아앙-!!
판테온이 말을 다 맺기도 전에 천마의 검이 그에게 쇄도하며 부딪혔다.
빠르게 창을 들어 막아낸 판테온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게 지금 뭐하는······.”
“아까 네가 한 짓을 본좌가 똑같이 해 준 것이다. 왜? 기분이 더럽나?”
판테온은 재밌다는 듯 천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방금 전 행동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 주지.”
“그건 본좌가 할 소리구나.”
두 사람은 잠깐 서로를 노려보다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달려들었다.
콰쾅-! 콰콰쾅-!!
그 둘의 격돌에 화들짝 놀란 판테온의 부하들은 뒤로 거리를 벌렸다.
“미친놈. 황제 폐하의 레벨이 몇인지 몰라서 저러는 건가?”
“레벨뿐이야? 아이템도 대륙에서 첫 번째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인데?”
“거기다가 히든 직업도 있잖아. 저놈이 간덩이가 부었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두 플레이어의 격돌!
판테온은 생각 이상으로 강한 천마의 일격에 내심 놀라워 하고 있었다.
‘전혀 밀리지 않을 줄이야.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이번 일격으로 확실하게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 주려 했는데, 오히려 천마의 힘을 알게 된 판테온이었다. 그러나 싸움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쿠오오오-!!
판테온의 뒤로 수백 명의 병사들이 만들어지더니, 모두 방패를 들고 돌진해 천마를 강하게 밀쳐냈다.
이들과 충돌한 천마는 자연스레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게 됐는데, 그때를 노려 판테온이 창을 던졌다.
콰아아앙-!
창에 담긴 힘이 워낙 강해 천마는 그것을 막아냈는데도 그 힘에 밀려 수십 미터까지 날아가야만 했다.
어느 바위에 부딪히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던 천마.
판테온은 덤덤하게 손을 들어 창이 돌아오게 만들었다.
“아직 넌 내 상대가 되지 못 한다.”
판테온의 말에 천마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상대해 왔던 놈들 중 판테온이 으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힘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기는 하나, 싸움의 승패는 결국 변수의 차이에서 갈리는 법이니까.
“아까부터 말이 많구나. 네놈은 주둥이로 싸우느냐?”
천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면 판테온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악의 승천까지 발동해 놓았다.
판테온도 설렁설렁 해서는 천마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전심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슈아아악-!!
아수라의 광기가 서려진 검강이 판테온의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하지만 판테온의 절대 무적은 약 3초간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가 있다.
그것들을 막아낸 뒤, 판테온은 그대로 돌진해 창으로 천마를 찔렀다.
콰직-!
천마의 검을 꿰뚫을 것만 같은 위력이었다.
두 팔이 벌벌 떨려올 정도로 강한 일격!
태초의 전사라는 직업이 이렇다.
스킬은 화려하지 않아도 모든 공격 하나하나가 강한 힘이 실려 있어 굳이 스킬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거기다 판테온의 아이템과 높은 레벨이 더더욱 힘을 불어 넣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천마가 공격을 막아내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판테온은 여기서 큰 스킬을 날려 결판을 내려고 했다.
슈우우우-!!
하늘 높이 날아올라 빠르게 수직 낙하하는 판테온!
천마가 자리를 피하려고 하자 판테온의 분신들이 땅 밑으로 솟구쳐 나와 방패로 천마를 밀쳐냈다.
“음?!”
콰아아앙-!!
그로 인해 차마 판테온의 스킬을 피하지 못 한 천마는 직격으로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크으읍-!”
그러나 그것으로 천마를 절단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 데미지를 전부 흡수해 버린 천마는 파천황 스킬을 통해 받은 스킬을 그대로 돌려 주었다.
“제법이군.”
판테온은 속으로 인정했다.
지금까지 싸워온 적들 중 천마만한 플레이어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욱 쓰러뜨리고 싶었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
“바라는 바다.”
판테온과 천마가 서로를 노려보며 힘을 모으고 있을 때였다.
“크롸라라라라-!!”
땅을 울리는 거대한 포효에 판테온과 천마 둘 다 모두 힘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설마 이건 드래곤?”
판테온의 부하들도 고막을 흔드는 포효와 더불어 몸을 마비시키는 위압에 마른침을 삼켰다.
이윽고 드래곤이 드넓은 날개를 펼치며 판테온과 천마 위에 강림했다.
“누가 내 둥지에서 시끄럽게구나 했더니, 너희 둘이었군.”
어둠의 드래곤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천마와 판테온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딜 가나 일을 시끄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천마여.”
“본좌는 그저 네 둥지를 구경하기 위해 왔을 뿐이다. 갑자기 불청객이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
“하하. 내 둥지를? 사전에 내 허락이라도 받아 놓지도 않고?”
“네가 인간들처럼 연락이 닿는 존재도 아니지 않던가? 찾아가서 허락을 구하면 되지.”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드래곤이 웃어 넘겼다. 그러다 그 존재는 판테온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이구나, 판테온. 네가 내가 남긴 상처는 잘 간직하고 있다.”
드래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 판테온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번 날 놈에게 패배하여 꼴 사납게 도망을 갔던 적이 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여기 천마는 나의 친구다. 하지만 그것이 친구라고 해도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용서하지 못 한다.”
“나와 이놈은 결판을 내야 할 것이 있다. 너도 곧 상대해 줄 테니,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라.”
판테온의 말에 드래곤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그 웃음 소리에 부하들은 두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판테온도 온몸을 찌릿하게 만드는 드래곤의 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레벨업을 하고 수많은 수련을 거쳤는데도 여전히 드래곤 앞에서는 한낱 인간에 불과한 것인가?’
드래곤은 역시 드래곤이었다.
절대 인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흐흐흐. 나약한 인간 놈들이 서로 우위를 다지려고 싸우는 것을 보니 그저 헛웃음이 나오는구나. 자신 있다면 어디 너희들 전부 덤벼 보거라.”
판테온은 인상을 찡그리며 드래곤을 노려보았다.
투기를 풀풀 풍기는 것이, 정말 한 번 싸워 보겠다는 심산 같았다.
“황제 폐하를 보호하라!!”
그런데 그때 판테온의 뒤로 텔로포트 기둥이 내려오더니, 군단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며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거기에 질세라 이번에는 천마의 뒤로 텔레포트 기둥이 떨어졌다.
“천마님을 지켜라!!”
“네브레 제국군을 몰아내자!!”
갑자기 양측 군대가 전부 모습을 드러낸 상태.
천마와 화면이 연동되어 있는 천강이 사고가 벌어진 것을 보고 군대를 데려온 것이었다.
“호오?”
드래곤은 양측 군대를 둘러보며 흥미롭다는 듯 기함을 터트렸다.
“너희들은 내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구나.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내 구역에서 싸우는 건 허락할 수 없다고 말이다!”
드래곤은 크게 포효하며 흥분한 병사들을 넘어뜨리더니, 강렬한 불을 내뿜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으, 으아아악!”
“드, 드래곤 브레스다!!”
어둠의 브레스가 판테온과 그의 제국군을 향해 솟구쳤다. 판테온은 절대 무적을 시전해 방어를 했지만, 그 뒤에 있던 부하들은 순식간에 녹아 내려버렸다.
“드래곤이 공격한다!!”
“막아라!!”
하늘의 재앙이나 다름이 없다는 드래곤 브레스!
병사 수천 명이 브레스 한 방에 모두 녹아 내릴 정도로 그 위력이 엄청났다.
“너희들한테도 한 발 쏴 줄까?”
드래곤은 멍하니 그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천마신교 병사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절레 흔들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너희들을 봐 준 건 저번 날 내게 극진히 대접을 했기 때문이다. 또 너희들을 지켜주겠다는 약속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이다. 만약 이런 상황이 다시 발생하게 된다면 너희들도 모조리 녹여 없애 주마.”
드래곤의 경고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위협적이었다. 의기양양하게 함성을 질러대던 네브레 제국군이 어느새 조용해진 것을 보면 말이다.
“계속 할 건가?”
드래곤은 공격과 퇴각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판테온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시무시한 투기를 발산하다 이내 창을 거둬 들였다.
“모두 돌아간다.”
세계 최강의 군대라는 자부심이 있지만, 상대가 드래곤이라면 냉정해질 수밖에 없다.
“운이 좋았군.”
판테온의 말에 천마가 받아쳤다.
“본좌가 할 소리구나. 오늘 랭킹 1위 자리가 바뀌는 듯싶었는데.”
“다음에는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판테온은 드래곤을 노려보다 병사들과 함께 텔레포트를 타고 사라졌다. 그러자 카르만 대도시에서 온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우와아아-!!”
“네브레 제국군이 물러갔다!!”
“드래곤 만세!!”
만약 드래곤의 중재가 없었다면 천마의 군대와 판테온 군대가 충돌할 뻔했다.
급하게 오느라 그리 많은 숫자의 병력을 데려오지 못했는데, 드래곤 덕분에 위기를 넘긴 것이었다.
“고맙다는 말은 됐다, 인간.”
“그 말은 오히려 저놈들이 했어야지. 네가 나서지 않았다면 저들은 본좌의 손에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마는 절대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도 아직 보여 주지 않은 무기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내 둥지를 찾아온 거라고?”
“그래. 본좌의 도시를 보여주었으니, 마땅히 너도 네 둥지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흐흐. 내 둥지에 와서 멀쩡하게 돌아간 놈이 이제까지 없었는데.”
“그놈들이야 약탈 목적으로 왔겠지만, 본좌는 순전히 손님으로 가는 것이다.”
드래곤은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날개를 쭉 펼치며 말했다.
“좋다. 한번 와 보거라. 뭐, 딱히 볼 것도 없지만.”
드래곤이 먼저 앞장 서서 날아가자 천마도 어검비행술로 날아올라 그 뒤를 따랐다.
“혀, 형?!”
“아우는 돌아가 있거라!”
천마가 위험한 것 같아 후다닥 왔더니, 드래곤과 함께 휭 사라져 버렸다.
천강도 드래곤의 둥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네브레 길드가 공격을 해 오다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네브레 길드가 동쪽 대륙 정복을 멈췄다는 소식을 최근에서야 듣게 되었다.
만약 다음 타깃을 카르만 대도시로 정하게 된다면······.
“얼른 대비를 해야겠어.”
< 127화. 격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