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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컨셉충-121화 (121/140)

< 121화. 기억 삭제 >

극한의 컨셉충 121화.

[신으로 향한 여정]

-구도자여. 당신은 대륙의 선택을 받아 신으로써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부디 당신이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난해하군.”

“원래 여기가 좀 그래.”

요즘 잠잠해서 영영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

“아예 사라진 줄 알았는데.”

“내가 없어지면 너 혼자 심심해서 어쩌라고?”

악신 리벨리오는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신이 되는 과정이 그리 쉽진 않지. 꼭 그렇게 난해하게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요.”

“조언이라도 해 주려고 나타난 건가?”

“아니. 비웃으려고.”

“쯧-.”

천마는 악신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어차피 처음부터 도움도 되지 않는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쓸모 있는 얘기도 할 줄 알았다.

“대체 왜 신 같은 걸 하려는 거지? 그 쓸모 없는 작자들 중 하나가 돼서 뭘 얻으려고?”

“너도 신이면서 말이 많군.”

“나도 원래는 그 멍청한 놈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어.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신이라는 지위에만 집착했지. 그러다 어느 순간 진실을 마주하게 된 거야.”

리벨리오는 갑자기 진지하게 자신의 속사정을 털어 놓았다.

“신들 사이에서도 이런 말들이 있지. 헬라는 모든 것을 안다. 우리는 대륙의 족속들에게 신이라 불리지만, 우리 신들은 헬라가 진정한 신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래서 난 그것에 저항했지. 신들 중 처음으로.”

처음에는 귀담아 듣지 않고 있던 천마도 조금 들은 척을 해 주었다.

“난 어느 순간부터 이 대륙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너와 같은 모험가들. 너희들은 원래 이쪽 세계의 사람들이 아니었지. 무언가를 통해 이곳으로 오게 된 거야. 내가 그걸 파헤치려고 하면 항상 무언가가 날 막아 세웠지.”

“그게 무슨 소리지?”

“네가 말을 해 봐. 넌 어떻게 여길 온 거지?”

“그거야 당연히 캡슐을 통해 온 거지. 여긴 가상현실 게임 속이니까.”

“······.”

천마의 말에 악신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 있다 입을 열었다.

“방금 네가 나한테 어떤 설명을 했겠지. 네가 이곳 세계에 어떻게 왔는지.”

“그래.”

“하지만 난 아무것도 듣지 못했어. 절대 이 세계에서 알면 안 되는 것을 듣는 순간, 갑자기 귀가 멀어 버리고 기억이 사라져 버리지. 재밌지? 내가 신인데 말이야.”

천마는 흥미롭게 악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난 처음부터 악신이 아니었어. 원래 나는 지혜롭고 현명한 신이었지. 왕들에게 조언을 해 주는, 뭐 그런 현자 같은 존재였지. 수천 년 전에는 말이야.”

“네가 지혜롭고 현명한 신이었다고?”

“믿기지 않겠지만, 맞아.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항상 호기심을 가지며 탐구하게 돼. 그런데 난 그런 본질을 따랐을 뿐인데, 어느 순간 악신이 되어 버렸지.”

“앞뒤가 맞지 않는군. 현명하고 지혜로운 신이 악신으로 변모하다니.”

악신도 이해한다는 듯 대답했다.

“맞아. 말이 안 되지. 하지만 끝없는 호기심에 탐구를 하던 나는 어느 순간 이 대륙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해졌고, 이 모든 것이 다 가짜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가짜. 난 그 가짜를 만든 자가 누구인지, 왜 이런 가짜를 만들었는지 파헤쳤지.”

“그렇게 하다 보니 악신이 되었다?”

“나도 솔직히 어쩌다 악신이 됐는지는 몰라.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너희들 모험가가 나타난 거야. 그때 깨달았지. 이 모든 건 너희들을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듣고 보니 조금 신기했다.

악신은 다른 신들과 NPC와는 다르게 악신은 이 세계가 가짜라는 걸 알아챘고 그것에 대해 파헤치려 했다. 또한 이곳이 가상현실게임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면 자동으로 기억이 삭제된다는 것도.

이것 모두 헬라의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NPC인 줄로만 알았던 게임 속 캐릭터들이 이런 자아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여전히 난 너희들의 정체를 모르고, 또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는 잘 몰라. 언젠가는 반드시 알아낼 거야. 그리고 너도 주의하는 게 좋아.”

“본좌는 너와는 다르게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데. 그걸 말해 줘도 넌 기억 못 하겠지만.”

“음. 그걸 말하는 게 아니야. 네가 모르는 게 하나 있어.”

악신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네 기억을 조금 봤잖아. 그 이상한 세계에서 칼을 휘두르며 날뛰는 널 말이야.”

“그런데?”

“과연 그 기억들이 진······.”

파앗-!

무언가가 찌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악신의 목소리가 끊겼다. 천마는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악신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대체 악신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 * *

[천강이 오피셜로 내놓은 거 본 사람?]

-미친 이젠 하다하다 신이냐?

-나도 봤다. 바실레이아 대륙 최초로 신이 탄생하는 거임?

-나 완전 놀랐잖아

-와 대박이다. 신이라니. 이게 말이 됨?

천마의 허락을 받고 천강은 그가 신으로 향한 여정이란 퀘스트를 받았다는 걸 온 세상에 알렸다.

당연히 이에 대한 내용은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졌고, 해외에서도 이를 크게 다뤘다.

바실레이아 온라인 사상 최초로 탄생하는 플레이어 신. 누구라도 열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이라니. 너무 우습네. 신이 되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저놈을 죽일 순 있긴 한 거야?”

레이피드의 물음에 어느 간부 하나가 대답했다.

“고대 역사학자의 서적에 따르면 전설적인 용사들 중 신을 죽인 용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고대서.

바실레이아 온라인에는 고대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가끔씩 발견하는 고대 서적은 매우 비싼 값에 팔리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 옛 역사가 쓰여 있고 동시에 히든 직업에 대한 힌트가 숨겨 있기 때문이다.

“신을 죽이는 용사가 있었어?”

“예. 아무래도 히든 직업에 대한 단서인 것 같습니다. 또한 그 용사가 사용했다는 무기에 대한 내용도 있고요.”

그래서 네브레 길드도 고대학에 돈을 들여 연구를 해 오도록 했다.

“그래서 어쩌자고. 우리 판테온이의 직업을 버리게 하고 이 히든 직업을 찾아 떠날까?”

“만약 정말로 천마가 신이 된다면 그땐 진지하게 고려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지. 멍청아. 천마가 지금 신이 됐냐? 안 됐잖아. 끝까지 안 되게 만들면 될 거 아니야.”

“예?”

레이피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간부들을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아니. 도대체 우리 네브레 길드는 머리 돌아가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거야? 천마가 정말로 신이 되어 버리면 그땐 우리가 영영 못 건들 수도 있다는 건데, 그걸 지켜만 보자고? 크기 전에 싹을 잘라 버려야지.”

“설마 지금 천마신교와 전쟁을 하신다는······.”

“지금 당장은 힘듭니다, 부길드장님. 아직 다른 왕국들과의 전투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간부들의 반대가 심했다.

현재 네브레 길드는 활발하게 정복 전쟁을 하며 영토를 넓히는 중이다. 그러나 모든 전쟁이 순탄한 건 아니다. 저항군이 많아져 그들을 굴복시키느라 많은 자원과 병력이 소비되었다.

그런데 지금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천마신교와 전쟁을 한다?

아무리 네브레 길드가 대륙 최강이라고 해도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다 나가 봐. 최종 결정을 하면 다시 알려 줄 테니까.”

“부길드장님. 다시 한번 생각을 해 주십시오. 지금 천마신교와 전쟁을 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닙니다.”

“알겠으니까, 나가.”

레이피드는 간부들을 전부 내보낸 다음, 판테온이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오늘도 역시나 혼자서 훈련을 하고 난 뒤에 맛있게 빵을 씹고 있는 판테온이었다.

“맛있어? 지금 빵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 가?”

이번에는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는 건지······.

판테온은 빵을 다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목이 막히는 것 같았다.

“왜 그러지?”

“왜 그러긴. 너도 눈이 있으면 뉴스를 볼 거 아니야. 지금 온 동네가 다 천마 때문에 시끄러운데.”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이젠 좀 무덤덤하군.”

“신이 된다는 것도 무덤덤해?”

티를 내진 않았지만, 판테온도 이미 천마의 뉴스를 다 본 뒤였다.

“그래봤자 플레이어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거기다 넌 그냥 태초의 전사 같은 히든 직업이지만, 이 사람은 무려 신이야. 신이 되면 네 창이 먹히긴 할까?”

“뭘 말하고 싶은 거지?”

“호랑이한테 날개까지 달아 주면 안 되잖아. 그 날개를 꺾어 버리고 호랑이 모가지도 비틀어야지. 아니면 이빨이랑 발톱을 다 뽑아 버리든가.”

판테온은 지금 레이피드가 무엇을 권하는 건지 금방 알아챘다.

“전쟁을 하자고? 천마신교와?”

“네가 원하던 거 아니었어? 천마 그놈이랑 그렇게 싸우고 싶어 했잖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 오만한 거야. 이미 보름달처럼 때가 꽉 찼어. 천마가 너한테 상대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어.”

레이피드는 판테온의 자존심을 계속해서 건들였다.

“조만간 더 강해지겠지. 이미 천마신교도 엄청 강하고. 그 대한민국이라는 국민들 성향이 그래. 평소에는 뒤지게 싸우다가, 이상하게 한번 뭉칠 때는 화끈하게 뭉치더라고.”

“그렇다고 해서 우리 네브레를 넘어설 순 없지.”

“맞아.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없지.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권유를 하고 있는 거야. 밟을 수 있을 때 실컷 밟아 놓자고.”

레이피드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천마신교는 매일 성장하는 중이었고, 그들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은 계속해서 폭발할 것이다.

거기다가 만약 정말로 천마가 신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면 어떤 힘이 내려질지는 누구도 모른다.

“선택해. 싸울 건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우리 네브레가 망하는 걸 지켜볼 건지.”

“과민반응이다.”

“아니야. 내가 언제 이런 걸로 틀린 적이 있었나? 난 절대 과민반응 하지 않아. 내가 진짜 계산적인 사람이거든.”

판테온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았다. 이윽고 그는 감았던 눈을 뜨고 레이피드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가 전쟁 중이라는 건 너도 알겠지?”

“알아. 피 터지게 싸우고 있잖아.”

“우리가 이 정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도 잘 알 테고.”

“잘 알지. 내가 기획했으니까.”

“그런데도 이걸 다 엎고 천마신교를 향해 달려가자는 건가?”

“응.”

확고한 레이피드의 대답에 판테온도 더는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레이피드는 네브레 길드의 핵심 두뇌였다. 단순히 판테온의 힘이 막강해서 네브레 길드가 커진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움직임. 길드 관리. 병력과 자원 관리 등등. 그 모든 복잡한 것들을 레이피드가 혼자 해내고 전쟁에서도 전략을 내놓아 적을 격파해왔다.

사실 네브레 길드가 이 정도로 클 수 있었던 건 판테온 때문이 아니라 레이피드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두뇌가 없었다면 판테온도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없었다.

“좋다. 한 번 알아 봐. 우리가 지금 천마신교와 전쟁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길드장님.”

판테온의 허락에 레이피드는 음흉하게 입가를 그었다. 드디어 수확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121화. 기억 삭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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