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뜻 밖의 도움 >
극한의 컨셉충 118화
“뭐, 뭐야.”
“연합장님이 죽은 거야?”
“이런 미친. 연합장이 죽으면 전쟁은 어떡하라고?”
연합장이 있는 곳으로 몰려온 플레이어들은 그가 죽은 것을 확인했다. 거기다 그 옆에 누워 있는 천마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놈도 죽은 건가?”
“아직 안 죽은 거 같은데. 연합장 몸은 회색인데, 이놈은 멀쩡하잖아.”
“그럼, 지금 죽여야겠네.”
그들은 천마가 그로기 상태에 빠져 움직이지 못 한다는 것을 알고 확실하게 끝을 내려 했다.
“미안한데, 잠깐만.”
그때 그들 뒤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또 누구··· 으아아!”
콰직-!
플레이어 하나가 저 멀리 날아가 벽에 박혀 버렸다.
고작 주먹 한 방에 말이다.
그들은 주먹을 날린 상대를 금방 알아보았다.
“네, 네가 왜 여기 있어!”
“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랄까?”
투신의 신관 아쿰리아스.
그는 플레이어의 얼굴 만한 팔 근육을 보여 주며 주먹을 뻗었다.
뻐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렇게 또 다른 플레이어 하나가 날아가 버렸다.
“신관이 왜 우리 전쟁에 참견을 하고 지랄이야!”
“흐흐. 귀가 어둡나 보네. 난 신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다!”
아쿰리아스는 인정사정 봐 주지 않고 사정없이 주먹을 휘둘러댔다.
공식적으로 판테온 밖에는 아쿰리아스를 이겨본 적이 없을 만큼 아쿰리아스는 힘의 상징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최선을 다 해 싸워봤지만, 그들은 결국 찍소리도 내지 못 하고 죽어야만했다.
“으하하하-! 내가 바로 최강, 아쿰리아스님이시다!”
주먹을 휘둘러 상대를 쓰러뜨릴수록 크게 흥분하는 아쿰리아스. 그의 포효가 저 먼 곳까지 울려퍼졌다.
“아참. 내가 이러려고 온 게 아니지.”
아쿰리아스는 연합장 옆에 쓰러져 있는 천마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친 천마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네가 왜 여기 있느냐?”
그 말에 아쿰리아스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성주님께서 친히 전투에 나서셨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순 없죠. 더군다나 성주님은 우리 투신께서 선택하신 분이지 않습니까? 꼭 지켜드리고 오라는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괜한 짓을 하러 왔군. 그냥 싸우려 온 것은 아니고?”
“허허.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저는 오로지 성주님을 지켜야 한다는 신탁 하나만 보고 달려왔습죠.”
보나마나 눈에 보이는 건 다 때려 부수느라 뒤늦게 도착한 것이리라.
“그렇지 않아도 이번 전쟁은 우리 투신의 신관들이 참여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성주님의 부하들을 도와주고 있을 겁니다.”
투신의 신관들이 한국편을 들어 준다?
이건 굉장히 좋은 소식이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보복이 있을 텐데. 신관들은 거의 중립을 지키지 않나?”
“뭐, 대부분은 그렇죠. 하지만 투신께서 명령을 내리셨는데, 어떻게 중립을 지키겠습니까?”
참 단순한 결론이었다.
“자. 성주님은 푹 쉬고 계십시오. 제가 다 뚫어 드리겠습니다.”
“아니다. 본좌는 이제 그만 내려다오.”
“허허.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꽉 붙잡으십시오.”
천마의 뒷말은 듣지도 않고 번쩍 날아오르는 아쿰리아스였다.
* * *
‘아직인가.’
천강은 슬슬 한계가 찾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방패로 드레이크의 공격을 막아내고는 있지만, 천강도 지칠 대로 지쳤고, 이 이상 막아내게 되면 천강은 죽고 만다.
그렇기에 더욱 절실했다.
천마가 승리했다는 승전보가 말이다.
슈우우우-!!
확실하게 끝을 내겠다는 듯, 드레이크는 한 데 모여 천강이 있는 쪽을 향해 폭격을 집중했다.
떨어지는 수만 개의 불덩이에 천강은 이제 끝났음을 알았다. 이제 더 이상 방패로 막을 수가 없다.
뿌우우우-!!
그런데 세차게 날아오는 불덩이의 소리마저도 전부 파묻어 버릴 만큼의 뿔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큰 진동과 함께 거구의 남성들이 천강의 앞에 나타나 방패를 들었다.
콰콰콰쾅-!!
“투신을 위하여!!”
“투신을 위하여!!”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거구의 남성들은 쏟아지는 불덩이를 모두 막아낸 뒤, 크게 포효해 스스로의 강함을 알렸다.
“누, 누구세요?”
천강은 어안이 벙벙한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투신께서 보낸 신관들입니다. 자랑스러운 천마신교의 병사들이여. 투신께서 당신들을 축복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십시오.”
투신? 투신의 신관들?
갑자기 어디서 이런 구원군들이 나타났단 말인가.“
“1만 명의 신관들이 오늘부터 천마님의 뜻에 함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것이 저희들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투신께서 내리신 명령이니까요.”
천강에게 설명을 마친 신관은 동료 신관들에게 소리쳤다.
“투신을 위해 모든 적을 섬멸하라!!”
“오오오오-!!”
헐크 같은 몸집과 그에 따른 전투력.
투신의 신관들은 오로지 힘만을 추구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힘을 모으며 쭈그려 앉더니, 이윽고 스프링처럼 튕겨져 나가 저 위에 있는 드레이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 저게 닿는다고?”
“말도 안 돼. 무슨 로켓이야?”
그야 말로 로켓 그 자체.
쭉 뻗어 나가던 신관들은 드레이크에게 다다를 수 있었고, 그들은 온몸으로 그 몬스터와 충돌했다.
콰아앙-!!
“크오오오-!!”
충돌의 힘이 상당한지, 드레이크도 깜짝 놀라 괴성을 질렀다. 그에 멈추지 않고 신관들은 드레이크 위에 올라가 기사의 목을 비틀고 바닥에 떨어뜨렸다.
또한 드레이크를 주먹으로 때려 놈들이 아군에게 불덩이를 쏘도록 하기까지 하는 등, 신관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잘한다!!”
“다 죽여 버려!!”
예상을 뛰어넘는 신관들의 활약에 플레이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을 응원했다. 그리고 지상에 남아 있던 신관들도 그들의 실력을 아낌 없이 보여주기 시작했다.
“돌진!!”
“투신을 위하여!!”
“우오오오-!!”
쿵쾅 거리며 매섭게 돌진하던 신관들은 중국측 지상 병력과 맞부딪히며 압도적인 힘을 선보였다.
마치 영화 속 나오는 헐크처럼 큼지막한 주먹으로 내려찍고 적을 붙잡아 던지는 등, 그들의 힘은 가히 대단했다.
거기다 더 놀라운 소식도 있었다.
“주인공 등장!!”
콰아앙-!!
저 멀리서부터 뭔가가 쭉 날아오더니, 적들 한 가운데에 떨어져 큰 파동을 일으켰다.
아쿰리아스.
투신 그 자체라고도 불릴 만큼, 그의 힘에 대적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내려주실까?”
“아, 예. 성주님.”
아쿰리아스의 품에 반 강제로 안겨 있던 천마는 드디어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형!”
“천마님!”
천강이 그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한창 드레이크와 싸우고 있던 신관들이 먼저 아래로 내려왔다.
쿠쿵-! 쿠웅-!
그들이 단체로 내려오면서 온 도시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성주님. 투신의 명령을 받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성주님을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저 거대한 전투 병기들이 천마 앞에 엎드려 인사를 올리는 광경이란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천마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너희들의 힘이 이번 전투를 꼭 승리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따르는 연합의 대장이 죽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오오. 그렇다면 어서 이 사실을 널리 알려야겠군요.”
“그래. 본좌가 연합장을 죽였다는 걸 널리 알려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스스로 와해되게 만들어라.”
총지휘관이 죽었다는 것만큼 치명적인 게 또 없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것이 대장이 갖는 영향력이었다.
“알겠습니다. 성주님.”
신관들은 모두 일어나 다시 전투에 나섰다. 그들은 연합장이 죽었다는 사실을 퍼트렸고, 플레이어들도 나서서 그 일을 모두에게 알렸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전투는 끝난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시킨 천마도 다시 전투에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아쿰리아스는 이중에서 제일 쌩쌩했다. 그들은 이 전투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적들이 있는 곳을 향해 뛰어갔다.
* * *
[카르만 대도시의 몰락]
[그 누구도 믿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다.]
[대한민국 남성들의 리더, 천마. 그는 누구인가?]
[전투에 참여한 대한민국 플레이어 숫자만 300만이 넘어.]
중국 연합의 상징이자, 남쪽 대륙의 힘이었던 카르만 대도시.
중국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잘 들어갈 수도 없는 카르만 대도시가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그것도 대한민국 플레이어들 손에 말이다.
남쪽의 패권은 중국이 완전히 휘어 잡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 모두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런 예상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이 그곳을 점령했다.
그로 인해 외신들도 이에 관한 내용을 크게 다루며 이것을 카르만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이겼다!!”
“우와아아아-!!”
“만세!!”
카르만 대도시에 마침내 깃발을 꽂은 플레이어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고, 그 장면은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갔다.
-진짜 말도 안 돼.
-한국분들 응원합니다. 중국 새끼들 너무 짜증났었는데, 카르만 대도시를 새롭게 바꿔 주세요!
-카르만 대도시를 점령한 게 바로 그 천마잖아. 난 천마가 예술적 감각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해. 분명 카르만 대도시도 인상적으로 바뀌게 될 거야.
그동안 남쪽 대륙에서 당한 게 많았던 해외 유저들도 한국을 응원했다. 또한 그들은 천마가 보여 준 예술적 센스를 칭찬하며 카르만 대도시도 분명 그렇게 바뀔 거라고 확신했다.
[이례적인 신관들의 전쟁 참가.]
[투신의 신관, 아쿰리아스. 신의 명령에 따라 전쟁에 나섰다고 밝혀.]
거기서 또 논란이었던 건 바로 아쿰리아스에 관한 내용.
판테온 말고는 꺾은 자가 없다는 아쿰리아스가 신관들을 대동해 전투에 참여하면서 역전을 시켰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다.
아쿰리아스는 신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으니,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남긴 상태였다.
그로 인해 중국 측 길드들은 각 도시에 있는 투신의 신전을 전부 폐쇄시켜 보복을 하는 등,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 최대한 화풀이를 해댔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한 번 잃어버린 카르만 대도시를 다시 되찾을 순 없다.
공격을 해서 성을 되찾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자원도 다 여기에 있고, 그 많은 병력을 모으려면 또 시간도 걸릴 테고. 거기다가 이번 전투에서 사망한 중국 플레이어들은 패널티가 엄청 났을 걸? 아이템 잃어버린 것도 많을 거야.”
“그래서 다시 못 쳐들어온다는 게냐?”
“뭐, 언젠간 다시 오겠지. 근데 당장은 못 해. 일단 연합 자체가 어그러졌으니까. 여기에 있는 자원을 우리한테 전부 빼앗겼잖아. 이거 복구시키려면 시간 꽤 걸릴 걸?”
천강의 말대로 중국 연합은 카르만 대도시가 넘어가면서부터 해체되었다. 이들의 모든 자원이 이곳 카르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점을 빼앗겼으니, 더는 이들도 뭉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연합장의 리더쉽에 의문을 품던 길드장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연합을 탈퇴해 버렸다.
“거기다가 우리가 보수를 잘해 놓으면 싸울 생각도 들지 않을 거야.”
카르만 대도시는 성벽이 매우 견고하고 탄탄하다.
이곳에 더 돈을 쏟아 부어 보수를 한다면 정말 철옹성이 될 것이다
“그래야겠지.”
그리고 이미 천마는 보수 작업을 시작해 놓았다.
이번에도 역시 승전을 위한 파티에는 참석하지 않은 채 내정 관리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제 좀 쉬라고 천강은 말리고 싶었지만, 저렇게 열정적으로 성을 꾸미는 천마에게 차마 그만 하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끝까지 천마 옆에 있어 주었다. 그러면서 차츰 실감이 됐다.
정말 우리가 카르만 대도시를 손에 넣었다는 것을 말이다.
< 118화. 뜻 밖의 도움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