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일격 >
극한의 컨셉충 116화.
“크오오오-!!”
“크르르르-!!”
흉포한 두 몬스터가 으르렁거리며 기싸움을 벌였다. 한 치도 물러섬이 없어 보이는 두 몬스터는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래. 이런 싸움을 원해서 널 기다렸던 거야. 솔직히 이건 생각 밖의 전개이기는 한데, 아무렴 어때. 우리가 오늘 피터지게 싸운다는 건 변함이 없잖아.”
프렐드는 더 길게 끌 것도 없이 바로 싸움을 시작했다.
“가자, 크로크!”
“크오오오-!!”
프렐드의 드레이크가 맹렬한 화염을 천마에게 퍼부었다. 그와 동시에 프렐드는 번쩍 날아올라 그대로 천마에게 낙하했다.
콰아앙-!!
프렐드의 도끼와 천마의 검이 맞부딪히면서, 드레이크가 쏜 화염과 뮤뮤가 쏜 다크 플레임이 충격파에 밀려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만큼 강렬한 둘의 격돌이었다.
“남자라면 이렇게 무기와 무기를 맞대며 싸워야지!”
콰쾅-! 콰콰쾅-!
널뛰기를 하며 연타를 날리던 프렐드.
뒤에 있던 드레이크도 화염 공격으로 호응하며 천마를 궁지로 몰아넣고자 했다.
콰직-!
드레이크의 화염 공격과 더불어 이어지는 드레이크의 스킬에 천마는 첫 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출혈의 도끼에 맞으셨습니다. 지속된 출혈이 일어납니다.]
[5초간 둔화율 70%가 적용됩니다.]
한 바퀴를 돌며 휘두르는 도끼 공격이 스킬인 모양인데, 완전히 사정 거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칼로 막아도 자동으로 적용되는 효과인 것 같았다.
“귀찮은 잔재주를 지녔구나.”
“흐흐.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벌써 놀라면 안 돼.”
둔화율 때문에 몸을 쉽게 움직일 수가 없는 천마.
그로 인해 프렐드가 날리는 후속타도 가만히 맞아줘야만 했다.
콰직-!
[분노의 도끼가 적용됩니다.]
[분노의 도끼 스택 5부터는 출혈량이 3배로 늘어나며 다섯 번의 5스택이 쌓일 때마다 출혈량은 3배씩 지속적으로 늘어납니다.]
[둔화율 70%가 5초간 적용됩니다.]
아무래도 이 콤보에는 출혈이란 스택이 적용되는 것 같았다. 거기다가 둔화율도 지속적으로 적용이 되어 상대가 반항을 하지 못 하게 했다.
“으하하! 죽어라!”
한 번 스킬을 맞으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맞을 수밖에 없는 스킬셋.
이것이 프렐드가 200위권 랭크로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천마에게 데미지를 입혔다.
“마지막 마무리도 깔끔하게 해 주마!”
분노의 도끼 5스택을 쌓기 직전에 프렐드는 번쩍 날아올라 천마의 머리를 호박마냥 쪼개려했다.
콰앙-!
그러나 그의 도끼는 허공에서 막히고 말았다.
“뭐, 뭐야?”
둔화율 때문에 움직이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프렐드의 도끼가 막혔다. 그것도 공중에 둥실둥실 떠 있는 검에 말이다.
쉬아아악-!
“억!”
거기다 검은 마치 사람이 휘두르는 것처럼 예리한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져 프렐드를 가격했다.
“이건 또 뭔 스킬이야. 검을 조종하는 건가?”
출혈로 인해 HP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천마. 그러나 그는 검에 정신을 집중하며 프렐드에게 반격했다.
카앙-! 카캉!
“이놈이!”
프렐드는 자신의 힘에 검이 밀려나도 다시 빠르게 돌아와 반격하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 붙잡고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서 어떻게 공격을 할 수도 없다.
“이리로 직접 와서 싸워라, 이 비겁한 새끼야!”
화가 난 프렐드는 아예 도끼를 천마에게 던졌다.
그러나 도끼는 애꿎은 벽만 파고 들었을 뿐.
천마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어디 갔어?”
“본좌를 찾았느냐?”
“응?!”
콰콱-! 콰직-!
“커헉!”
뒤에서 나타난 천마를 뒤늦게 발견한 프렐드는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 하고 급소를 맞아 골드 크리티컬이 터졌다.
결국 그는 몸이 옆으로 고꾸라져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천마는 검을 들어 얼른 그의 목을 치려 했다.
“크오오오-!!”
하지만 한창 뮤뮤와 싸우고 있던 드레이크가 그걸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드레이크는 거칠게 달려들어 천마를 덮쳤고, 그에 눈이 돌아간 뮤뮤가 다시 드레이크를 덮치면서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다.
뮤뮤의 양발톱에 공격을 당한 드레이크가 괴성을 질러댔고, 놈도 날개와 발톱을 이용해 뮤뮤를 사정 없이 할퀴었다.
“크으으-. 제법 하는데.”
그 사이 프렐드는 조금 회복이 됐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두 몬스터가 싸우는 걸 바라보았다.
“우리 크로크가 몬스터한테 밀리는 법이 없는데, 펫을 꽤 잘 키웠네.”
천마는 꿋꿋하게 일어나는 프렐드를 보고 생각했다.
지겨운 놈.
그리고 너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얼른 끝을 내지 않으면 한국 플레이어들이 드레이크 기사단에게 모조리 전멸을 당하고 말 것이다.
“오너라. 일격에 승부를 봐 주마.”
“고작 일격? 그걸로는 섭섭하지.”
“본좌는 결코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걸 보여 주마.”
“기대가 되네.”
천마는 진심이었다.
이번 일격에 확실히 끝을 내고자 혼신의 힘을 검에 담았다.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탓인지, 프렐드도 진지하게 온힘을 담아 천마를 향해 돌진했다.
“죽어라-!!”
프렐드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눈을 감은 채 검과 스스로에 정신을 집중하던 천마. 그리고 마침내 프렐드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그제서야 눈을 뜨며 검을 직선으로 휘둘렀다.
콰직-!
섬뜩한 절삭음.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던 프렐드는 갑작스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제의 큰 도끼가 반으로 쪼개지는 걸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그리고 어두운 검격이 도끼를 지나 프렐드의 몸을 통과하며 그 뒤에 있는 마법사들의 탑까지 베어 버렸다.
“뭣······.”
그리고 정지된 시간이 풀렸다.
콰콰콰쾅-!!
프렐드의 몸이 도끼와 같이 두 조각으로 나뉘어짐과 동시에 뒤에 있던 탑도 큰 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졌다.
프렐드는 몸이 회색빛으로 변해 로그아웃이 되어 버린 상태였고, 주인의 죽음을 알게 된 드레이크는 괴성을 질렀다.
“크읍-.”
스스로의 말대로 드레이크를 일격에 없애 버린 천마. 그러나 자신의 내공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사용했기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쯧. 아직도 이거 하나 제대로 쓰지 못 하다니.”
아수라파천격.
단 일격에 상대를 침묵시키는 천마신공의 절기.
아직 지금의 몸으로는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무리하게 기를 끌어 올리는 바람에 혈맥이 뒤틀려 내상이 온 듯싶었다.
“크오오오-!!”
주인의 죽음에 분노한 드레이크가 천마의 뒤를 덮치려 들었다.
“크아아앙-!!”
콰콱-!
하지만 그런 드레이크의 목덜미를 낚아챈 뮤뮤!
그 흉포한 이빨이 드레이크의 목을 강하게 물어 한순간 숨통을 끊어 버렸다.
“크, 크오오······.”
뮤뮤는 축 늘어진 드레이크를 바닥에 퉤 뱉어 놓고 자신이 최강자임을 온 천하에 알리듯 크게 포효했다.
“크아아아-!!”
그때의 포효만큼은 드래곤 못지않았다.
“뮤··· 뮤뮤···.”
그러나 뮤뮤는 곧 다시 성체에서 작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천마의 힘이 급격하게 빠져 나가면서 영향을 미쳤던 뮤뮤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방금 전 드레이크의 목을 물어뜯었을 때와는 달리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며 천마에게 달려갔다.
“그래. 너도 고생많았다.”
뮤뮤는 가장 편한 보금자리인 천마의 머리 위로 올라가 몸을 틀었다.
“좀 쉬고 있거라. 본좌는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 같으니.”
천마는 마법사의 탑이 무너지면서 드레이크 기사단의 방어막이 모두 사라졌음을 보았다. 그에 이어 한국측 군사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방어막이 사라졌다!!”
“모두 아낌없이 쏟아 부어!!”
“천마님이 만들어 주신 기회다!! 놓치면 안 돼!”
일부러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힘을 아껴 드레이크 기사단의 방어막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방어막이 사라지기 무섭게 아껴두었던 힘을 모두 방출시켰다.
“우오오오-!!”
“놈들을 쓰러뜨려라!”
그러나 방어막이 없다고 한들 드레이크 기사단은 여전히 강했다. 그들의 지휘관이 사망하긴 했지만, 그들은 맹공을 유지했다.
쿠콰콰쾅-!!
살벌하게 폭발하는 성벽을 바라보며 천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왕을 잡는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몸이 회복되지 않았어도 천마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놈이 저기 있다!!”
“공격!!”
당연히 순탄하지 않은 길.
사방에 적이 깔려 있었고, 저들을 뚫어야 하는 건 천마 혼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콰콰콱-!!
쿠콰쾅-!
검에서 방출되는 기가 매섭게 날아가며 마주오던 병사들의 몸을 찢어 놓았다. 천마는 이곳 카르만 대도시 어딘가에 있을 성주를 찾기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몸은 지쳤어도 자신이 하지 않으면 결국 이 전투는 패배로 돌아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 전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 * *
“누, 누가 죽어?”
“프렐드 드레이크 기사단장이 죽었습니다!”
“허-.”
연합장은 연이어 들어오는 보고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갑자기 드레이크 기사단 방어막이 사라진 것부터 시작해 이번에는 드레이크 기사단장이 죽어 버렸다.
“그놈이 랭크 200위권이어도 랭크 50위권 안에 들어도 손색이 없는 놈이었는데. 누가 대체 그놈을 죽인 거야?”
“천마입니다. 천마가 성 안으로 진입해 마법사의 탑을 부수고 기사단장마저도 죽였습니다.”
“미친. 그 새끼는 괴물이야, 뭐야?”
연합장은 프렐드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그 플레이어가 가진 스킬셋과 타고난 전투 센스는 200위권의 랭크보다 훨씬 더 상위로 쳐줘야 했다. 그런데 믿고 있었던 프렐드가 그리 허무하게 죽다니.
“그래서 상황이 어때?”
“방어막이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드레이크 기사단이 적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흐흐. 당연히 그래야지. 저거 만든다고 돈을 얼마나 많이 썼는데.”
역시, 현실이든 게임이든 돈을 많이 쓰면 최상의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시간 끌지 말고 얼른 다 쓸어 버리라고 해! 저 지긋지긋한 놈들 이제 그만 보고 싶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연합장은 크게 걱정이 없었다.
처음부터 이 전투는 중국의 승리였다. 이 카르만 대도시를 한국이 넘어서려 한다?
100년은 이른 일이다.
그만큼 카르만 대도시는 중국 플레이어들의 집합체이며, 그 힘의 중심이다. 이곳이 깨진다는 건 중국 전체가 패배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거기다 설령 드레이크 기사단을 넘어 섰다고 해도 아직 카르만 대도시를 넘기에는 부족하다.
성벽이 단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2차, 3차 방어진도 전부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근데 그 천마라는 놈의 위치는 파악됐어?”
“프렐드를 죽이고 나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찾고는 있고?”
“예. 몇몇 병사들이 충돌하긴 했으나, 전부 놓쳤습니다.”
“잠깐. 몇몇 병사들이 충돌을 했다고? 어디서?”
“그것이······.”
부하 기사가 성 안 지도를 펼쳐 설명했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첫 충돌이 일어났고 그 다음에는 여기. 또 그 다음에는 이곳에서 교전이 일어났었습니다.”
지도를 살피던 연합장은 부하 기사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야이 병신 새끼야! 이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예? 왜, 왜 그러십니까?”
“지금 이놈 동선이 안 보여? 지금 이거 우리한테 오고 있는 중인 거잖아! 날 죽이려고!”
“서, 설마요. 여기까지 접근할 순 없습니다.”
“미친놈. 프렐드를 무 썰듯이 죽인 놈인데, 여기 하나 침입하지 못할까.”
연합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명령을 내렸다.
“놈이 이곳으로 온다면 여기다 함정을 파 놓는다. 그동안 난 다른 곳으로 옮길 테니까, 너희들이 그놈을 막아!”
“예, 성주님!”
천마가 이곳에 온다는 게 밝혀졌으니,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연합장은 스스로 미끼가 되어 천마를 함정에 빠뜨릴 생각에 벌써부터 입꼬리가 씰룩였다.
< 116화. 일격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