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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컨셉충-105화 (105/140)

< 105화. 리벨리오 >

극한의 컨셉충 106화.

“응? 형?!”

“여, 영웅이시어!”

“뭐야. 다들 비켜봐.”

천마가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문이 닫히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막히고 말았다.

아쿰리아스는 앞장서서 큼지막한 주먹을 꺼내 들었다.

“이깟 문 따위 주먹 한 방이면 열리게 되어 있지.”

콰아앙-!!

시원하게 스윙을 날려 보았으나, 소리만 요란할 뿐 문이 부셔지는 일은 없었다.

“뭐, 뭐야. 이거 왜 안 깨져?”

몇 번 더 시도를 해도 여전히 문은 꼼짝하지 않았다. 에르바는 그럴 줄 알았다며 비웃음을 띠었다.

“돼지 새끼. 힘 좀 써 보라고 했더니, 저거 하나 못 부시냐? 그러니까 너희처럼 무식하게 주먹만 쓰는 것들이 안 되는 거야. 저리 꺼져.”

“끙······.”

꼬리를 내리고 길을 비킨 아쿰리아스.

에르바는 머리를 덮고 있던 후드를 벗고 마나를 끌어 올렸다. 이윽고 그녀의 마나가 문 안에 스며 들었다.

“이렇게 마나를 활용해서 쓸 줄 알아야지. 무식하게 힘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야.”

콧대가 높아진 에르바. 하지만 입가에 번지던 미소가 서서히 일그러졌다.

“잠깐. 이게 왜 안 열리지?”

그녀가 직접 마나를 썼는데도 문은 멀쩡했다. 그러자 기가 팍 죽어 있었던 아쿰리아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봐라. 잘난 척 하더니, 결국 너도 똑같잖아.”

“닥쳐봐. 이게 왜 안 열리는 거야?”

결국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에르바는 모두를 뒤로 물린 다음 마나를 쏟아 부었다.

아쿰리아스에게는 힘으로 뭐든지 해결하려 한다고 핀잔을 주더니, 지금 그녀도 힘을 써서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나를 거의 다 소진해 버린 에르바.

그와 마찬가지로 힘을 거의 다 써 버린 아쿰리아스.

두 사람은 손을 저으며 포기했다.

“절대 안 열려, 저거.”

“도대체 뭐로 만들어졌기에 안 열리는 거야?”

둘은 불평을 토로하며 탈진한 채로 주저 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강은 안에 들어가 있는 천마 때문에 문을 열기 위해 방패를 계속해서 휘둘렀다.

“소용없어요, 부교주님. 저희 둘이 나섰는데도 열리지 않을 정도라면 절대 안 열린다고 보셔야 해요.”

“그래도 제 형이 안에 들어가 있는데요?”

“괜찮습니다. 영웅께서는 절대 죽지 않으시니까요. 그분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

천강도 결국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 안에 뭐가 있는 것일까.

* * *

“기다리고 있었다.”

음침한 목소리에 천마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은으로 만들어진 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 관 안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오는 듯보였다.

“날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래. 이 모든 건 널 이곳까지 데려오기 위한 나의 설계였으니까.”

천마는 관으로 천천히 다가가 보았다.

굳게 닫혀 있는 관.

문양도 없고 그냥 은색으로 코팅이 되어 있는 것이 전부다.

“본좌를 끌어 들이려고 이런 짓을 벌이다니. 네놈은 누구기에?”

“벌써 나를 잊어 버렸나? 생각보다 나는 너와 매우 가까이 있었어.”

“본좌와 가까이 있었다고?”

“그래. 너에게 악의 승천이란 힘을 준 게 누구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문득 스쳐 지나가는 그 이름.

“악신··· 이었나?”

“맞아. 내가 바로 악신 리벨리오다.”

천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앞에 놓여 있는 관을 내려다보았다.

“신이 관짝에 있다니. 이상한 일이군.”

“흐흐. 이게 나름 사정이 있어서 그래. 하지만 시간은 많으니, 내가 왜 여기에 있었는지 알려 주지.”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아니. 넌 알고 싶을 거야.”

천마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악신은 그에게 환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친절히 목까지 가다듬으며 나레이션도 깔았다.

“원래 이곳은 나의 신전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섬기고 내 이름을 떠받들었지. 왜냐하면 내게는 죽은 자를 일으키는 권능이 있었거든. 그 힘으로 도시를 정복하고 나의 이름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렸다.”

환상 속에서 악신은 악한 기운을 휘감은 채 하늘을 비행하며 죽은 자들을 일으켰다.

죽음에서 살아난 자들은 흉측한 몬스터가 되어 도시를 전복시켰고, 수많은 자들을 지옥으로 끌고가 그들마저도 죽음의 군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나의 힘은 전능했다. 그 누구도 내 힘을 의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약한 인간들은 감히 내게 대항할 생각을 품었고, 놈들은 하나로 뭉쳐 내 신전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악신의 패악이 점점 더 심해지자 여러 종족들이 한 곳에 모여 악신을 토벌하기 위한 연합을 맺었다.

“내가 그때 방심하지만 않았더라면 놈들은 순식간에 죽음으로 이끌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놈들의 힘을 과소평가했고, 결국 놈들의 손에 당하고 말았지.”

인간은 승리했고, 그들은 악신의 신전을 부숴 땅에 묻어 버렸다.

“그렇다고 해도 내 추종자들을 전부 다 죽일 순 없었어. 그들은 이렇게 지하에 묻힌 신전을 조금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도 머지않아 죽임을 당했지.”

천마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악신은 끝까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수천 년이 흘러 사람들은 나의 이름을 완전히 잊고 말았어. 그러나 그들이 몰아냈다고 하던 어둠의 마법사도 결국 나의 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즉, 어둠의 힘이라는 근원은 내가 시작이라는 것이지!”

“그래. 잘 들었다.”

괜한 발걸음을 했다고 생각한 천마는 칼을 뽑았다.

“이 관을 부수면 네놈이 다시는 그런 개수작을 부리지 못 하겠지.”

그러자 화들짝 놀란 악신이 소리쳤다.

“지, 지금 뭐하려는 거야!”

“뭐하긴. 네놈을 없애야 일이 해결될 거 아니냐.”

“날 없앤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는 거 같아!? 이미 내 추종자들이 사방에 깔려 있다!”

“그럼 그놈들도 같이 없애면 되겠군.”

천마는 시끄럽게 소리치는 악신을 뒤로 하고 관을 칼로 세게 찔렀다.

콰직-!!

그런데 천마의 예상과는 다른 일이 펼쳐졌다.

“으흐흐-.”

관을 찌르자 사악한 힘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기분 나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고맙다. 사실 네가 그 관을 부셔주길 바랐거든.”

“유치한 방법을 썼군.”

“너라면 그 관을 부술 거라고 생각했지.”

관 속에서 빠져 나온 악신 리벨리오는 작은 구름처럼 허공을 날아다녔다. 아직 그럴싸한 형체는 없었다.

“완전히 부활을 한 건가?”

“아니. 완전한 부활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지. 그랬다면 네가 나한테 말을 걸기도 전에 몸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을 거다.”

“자신감이 좋군.”

“이래 보여도 내가 신이니까.”

리벨리오는 오랜만에 나온 관짝 바깥의 공기를 음미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여긴 동굴에 불과하지 않던가. 그는 더 먼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쯧. 일이 복잡하게 꼬였군.”

천마는 다시 검을 들었다.

관짝 밖으로 빠져 나온 리벨리오를 잡아야 하니까. 그러나 리벨리오는 쉽게 잡혀 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널 이곳까지 끌어 들인 줄 알아?”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콰아앙-!!

살벌하게 천마가 검강을 날리자 리벨리오는 재빨리 그것을 피해냈다.

“그렇게 마구접이로 공격하면 여기가 다 무너질 텐데? 그럼, 너도 꼼짝없이 여기 갇히는 거야.”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본좌의 일은 본좌가 알아서 하겠다.”

천마가 아예 귀를 막고 공격을 하려 하자 리벨리오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흥분하지 말고 들어 봐.”

“본좌는 흥분하지 않았다.”

“지금 눈이 돌아가서 날 죽이려 하잖아.”

“네놈은 감히 본좌가 다스리는 곳을 건드렸다. 죽어 마땅한 놈이니, 당연히 죽여야지.”

앞뒤가 꽉 막혀 보이는 천마 덕에 리벨리오는 땀이 날 구멍이 없는데도 식은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널 여기까지 끌어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그건 널 내 후계자로 삼고 싶기 때문이다.”

“······미친놈. 그냥 사라져라.”

더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천마는 계속해서 검강을 쏟아냈다. 리벨리오는 그것들을 요리조리 피해내다 결국 천마의 검강이 입구까지 부숴 버렸다.

“열렸다!”

“영웅이시어!”

“형!”

문 밖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좋은 소식이었다. 문제는 리벨리오가 가장 앞에 있던 에르바를 덮쳐 그녀의 몸 안에 들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에, 에르바님!”

저 먼발치까지 밀려난 에르바.

부하들이 달려와 그녀를 붙잡아 일으켰다.

“에르바님. 괜찮으십니까?”

에르바는 비틀 거리며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검은 핏줄들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에르바님?”

“흐흐. 이 몸도 나쁘지 않네.”

에르바의 몸을 장한 리벨리오는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부하들도 에르바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거리를 벌리려 했다.

콰앙-!!

하지만 리벨리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는 양옆에 있던 부하들을 가볍게 벽으로 쳐냈다.

“뭐야? 너 누구야?”

뚜벅뚜벅 걸어오는 아쿰리아스를 보고 리벨리오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윽고 그 냄새를 맡고는 입을 열었다.

“투신. 그래. 이 냄새는 투신이 확실하군. 그 머저리를 섬기는 게 바로 네놈인가?”

“머, 머저리? 감히 네가 투신을 모욕하다니!”

“그런 모자란 놈을 신으로 모시다니. 수준이 알만 하구나.”

리벨리오는 괴성을 지르며 다가오는 아쿰리아스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강한 마나가 퍼지면서 저 큰 몸뚱이를 멀리 날려 버렸다.

“음? 넌 천마의 동생이었지?”

천강은 반사적으로 방패를 들어 날아오는 공격을 막아냈다.

“크흡.”

방패를 들어 막았음에도 그 충격을 전부 완화하지 못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굳이 이렇게 일을 또 복잡하게 만들어야 하나? 수천 년 동안 있었으면 슬슬 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밖으로 나온 천마는 에르바의 몸을 장악한 리벨리오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악신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이 좋은 몸을 놔두고 왜? 물론, 너만한 몸이 또 없겠지.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원한다면 어디 가져가 보든가.”

“아니. 지금은 아니야. 지금 괜히 싸워서 네 몸을 상하게 하느니, 차라리 기다리는 게 낫겠어. 그러니까 기다리고 있으라고.”

리벨리오는 천마와 싸우지 않고 위로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동굴 밖을 빠져 나갔다.

이미 에르바의 부하들은 전부 죽은 상태였고, 아쿰리아스는 그래도 몸이 단단해서 멀쩡했다.

천강도 방패 덕분에 다행히 큰 타격을 입진 않았다.

“형. 저거 도대체 뭐야?”

“악신.”

“악신? 잠깐. 악신이라면 저번에 그······.”

“그래. 놈이 맞다.”

“아니. 갑자기 저놈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거야?”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갑작스레 나타난 거라고 보긴 힘들다. 저번에 깜짝 등장을 했을 때부터 악신은 천천히 준비를 해 온 것이 분명하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추종자들을 모으고 천마를 끌어 들이기 위해 밑그림을 그렸을 터.

“그리고 앞으로 놈이 무슨 짓을 벌일지 대충 예상이 간다.”

“무슨 짓을 하는 건데?”

“놈이 보여 준 환상을 봤다. 죽은 자들을 일으켜 대륙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더군. 뭐, 예전 버릇을 못 버리고 또 그와 같은 짓을 벌이겠지.”

천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큰일이었다. 거기다가 현재 리벨리오가 장악한 몸은 에르바이지 않던가.

“형. 이거 잘하면 우리가 애써 키워 놓은 도시들이 전부 파괴될 수도 있어.”

도시가 파괴되면 그것을 복구시키는 데에 또 엄청난 금액이 들어간다. 그걸 감당하지 못 하고 성을 버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

그런 일이 천마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더군다나 리벨리오는 천마에게 뭔가 의도가 있는 것 같아 보였으니까.

천마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냥 길게 볼 것도 없이 다 쓸어버려야 하나.”

< 105화. 리벨리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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