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땅굴 >
극한의 컨셉충 104화.
콰아앙-!
“형!!”
“뭐, 뭐야!”
아펠이 갑작스럽게 천마를 붙잡아 자폭을 하면서 검은 연기가 사방을 가렸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고, 천강은 연기 안으로 들어가 천마를 찾아 헤맸다.
“본좌는 괜찮다.”
다행히 천마는 별다른 데미지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머리 위에 있던 뮤뮤가 수호자를 발동시키면서 모든 데미지를 흡수한 덕분이었다.
“꼭 이럴 때만 쓸모가 있는 녀석이군.”
뮤뮤의 머리를 한 번 쓸어내린 뒤, 천마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펠 앞에 쭈그려 앉았다.
“갑자기 이게 다 뭔 일이야. 왜 신관이 형을 공격한 거지?”
“자세한 건 알 수 없으나, 아무래도 이것 때문인 것 같군.”
천마는 아펠의 품 안에 있던 피리를 꺼냈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천마의 손에 닿자마자 피리 안에 있던 사악한 기운이 빠져 나가려 했다.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
하지만 천마는 빠져 나가려 하는 기운을 틀어막아 다시 피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놈은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고 발악을 해 보았으나, 한 번 천마에게 붙잡히자 더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떡하지?”
“아무래도 실력이 좋은 마법사를 찾아가야 할 것 같구나.”
“실력이 좋은 마법사?”
“그래. 별로 보고 싶진 않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천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 뒤에서 포탈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의 여성이 걸어나왔다.
“대륙의 영웅이시어. 혹시 저를 찾으신 겁니까?”
마타하니 도시에서 신관을 맡고 있는 에르바였다.
다른 신관들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에 있기에,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 무게가 달랐다. 그래서 여러 성주들이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천마에게는 그저 귀찮은 존재였다.
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다른 마법사들보다 뛰어나니, 이번 일에는 분명 쓸모가 있으리라.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 정말 왔군.”
“그렇지 않아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오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절 만나주지도 않으시던 분이, 오늘은 웬일로 저를 찾고 계셨군요.”
천마는 콧대를 높이 세우고 있는 에르바를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다 피리를 건넸다.
“이것 때문에 아펠 마법사가 이성을 잃었던 것 같은데, 한번 보겠나?”
“예. 그전에 아펠의 상태부터 확인을 해 보고요.”
에르바는 부하들을 보내 아펠의 상태를 확인시켰다.
“다행히 숨은 붙어 있네요. 대륙의 영웅께서는 어디 다치신 곳이 없으십니까?”
“음. 보다시피.”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어 대단히 유감입니다. 아펠에 대한 처벌은 저희가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됐다. 저자도 제정신으로 한 짓이 아니니까.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대체 그 안에 든 게 뭐냐가 중요하지.”
에르바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저와 같이 신전으로 가실까요? 마침 새로 들어온 좋은 차가 있답니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이번 퀘스트에서 완전 손을 떼고 있었는데, 도시가 공격을 받은 걸 보니 아예 모른 척 할 순 없는 것 같았다.
천마는 에르바를 따라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의 인도에 따라 신전 안에 마련된 집무실로 향했다.
에르바는 그녀가 말한 차를 내놓으며 운을 뗐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마법은 처음 보는 종류입니다. 흑마법이긴 하나, 상대의 정신을 순식간에 흔들어 놓는 강력한 마법은 본 적이 없어요.”
“저번에 잡은 놈이 그러더군. 누군가가 준 약을 잘못 먹었다고. 하지만 아펠이 그런 약을 먹었다고 보긴 힘든데.”
“그건 추후 조사를 해 봐야겠죠.”
에르바는 차를 한 잔 음미한 뒤,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영웅께서 그 피리 안에 사악한 마법을 도망가지 못 하게 붙잡아 두신 덕분에 추적이 용이해졌습니다.”
“추적이 가능하다?”
“예. 지금 바로 해 보시겠습니까?”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 사악한 힘을 따라.
루리프의 신관 에르바는 이 사악한 힘이 어디로 이끄는지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만약 퀘스트를 수락하게 되면 이 힘을 쫓아가게 됩니다.
“흠······.”
퀘스트라.
천마는 잠깐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본좌의 신교 사람들이 엮인 일이니, 최대한 빨리 처리를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지.”
그냥 퀘스트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제 또 이 사악한 힘이 도시를 공격할지 모르기에 천마는 빨리 해결을 보려 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출발하실까요?”
쇠뿔도 단김에 빼듯, 에르바는 오래 끌지 않았다.
그녀는 몇몇 마법사들을 대동한 채 천마와 같이 신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피리에 담긴 힘에 주문을 불어 넣어 그 힘을 풀어 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의도치 않은 불청객이 나타났다.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대륙의 영웅이 아니십니까!”
뱃고동 울리는 듯한 목소리의 정체는 바로 투신의 신관, 아쿰리아스였다.
“으하하하-! 제가 영웅을 처음 뵈었을 때부터 알아봤지요! 이렇게 크게 되실 것을 말입니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길을 지나던 사람들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어? 저거 천마님 아닌가?”
“맞네! 천마님이다!”
“오오-!”
최대한 조용히 빠져 나가려고 한 건데, 아쿰리아스 덕분에 그런 기회는 싹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어디 재미난 곳이라도 가시는 모양입니다.”
“음. 잘 알고 있으면 이제 그만 꺼져줬음 좋겠는데?”
에르바의 쌀쌀 맞은 반응에 아쿰리아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영웅께서는 왜 이런 성질 나쁜 여자와 함께 다니시는 겁니까? 품위가 떨어집니다.”
“호호. 나 같이 아름다운 꽃과 함께 있는 것이야 말로 영웅의 품격을 더 높여 드리는 거지. 너 같은 멧돼지가 옆에 있으면 이상하잖아.”
“뭐, 뭐야? 멧돼지!?”
일촉즉발의 상황.
천마는 어디선가 이 장면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냥 놔두고 갈까.”
“그럴까······.”
천강도 천마의 마음을 헤아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르바가 추적을 해 줘야 퀘스트를 진행할 수가 있어 두고 갈 수도 없었다.
“난 싸움 구경이나 하려고 온 게 아니다. 정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나중에 날을 잡거라. 지금은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따라 돕겠습니다.”
“필요 없다.”
“허허. 제 도움이 꼭 필요하실 겁니다, 영웅이시어.”
아쿰리아스는 막무가내였다.
천마는 따라오든가 말든가 상관하지 않고 에르바에게 말했다.
“얼른 인도하거라. 감히 누가 본좌의 영역을 더럽혔는지 알아내야겠다.”
에르바는 뒤에 있는 아쿰리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여기서 더 지체하면 천마가 화를 낼 것 같아 그의 말에 따랐다.
그녀는 피리에 담긴 힘을 풀어 자유롭게 날아가도록 놔두었다. 그리고 마법진을 손등에 그려 저 사악한 힘이 어디로 향하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이쪽입니다, 영웅이시어.”
천마는 에르바의 인도에 따랐다.
그녀는 마법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겼고, 초반에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아쿰리아스도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여깁니다.”
도착한 장소를 보고 천강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깐. 여긴 초보자 사냥터인데.”
말 그대로 정말 초보자 사냥터.
레벨 1부터 10까지 기초적인 공격 방법을 익히고 사냥을 하는 곳이었다.
“저도 믿기 어렵지만, 그 힘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설마 다른 사람 안에 들어간 건 아니겠죠?”
“그럴 수도 있고요.”
혹시 있을지 모를 전투에 대비해 천강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에르바는 마지막으로 연결이 끊긴 곳에 멈춰 섰다.
“여기에서 끊겼다고?”
“예. 여기서 힘이 사라졌습니다.”
에르바는 주변을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다행히 누군가 안에 들어간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여기서 끊긴 걸 보면 그냥 사라진 건지······.”
“아니. 사라진 게 아니다.”
천마는 그 사악한 기운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기감 안에 그 힘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흠. 네가 힘 쓰는 곳에는 자신 있겠지.”
“예? 아, 예. 저야 투신을 모시는 신관이지 않습니까, 영웅이시어.”
천마는 우락부락한 아쿰리아스를 위아래로 쳐다보다 땅 밑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길 힘껏 파거라.”
“예?”
“네 있는 힘껏 땅을 파라는 것이다.”
아쿰리아스는 눈을 몇 번 껌뻑이다 천마를 등에 업고 에르바가 다그쳤다.
“뭐하고 있어. 천마님이 얼른 땅을 파라고 하시잖아, 멧돼지.”
“저, 저년이 또!”
성질을 내려다가 천마가 눈을 번뜩이는 것을 보고 아쿰리아스는 일단 화를 삼켰다. 그리고 영웅의 말에 따라 땅에 큼지막한 주먹을 여러 번 두들겼다.
쿠쿵-! 쿠쿠쿵-!
순식간에 땅이 파이고 있었다.
천마는 덩치 값을 한다며 팔짱을 낀 채 지켜보았다.
이윽고 금방 땅을 저 밑바닥까지 파 놓았던 아쿰리아스는 갑자기 땅 파는 것을 멈추고 그 밑을 가볍게 두드려 보았다.
“여긴 뭔가 좀 가벼운 느낌이 나는 거 같은······ 으힉!”
그러다 갑자기 땅이 푹 꺼지면서 아쿰리아스는 저 아래로 사라져 버렸다.
“호오.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쓰레기 하나가 사라졌군요.”
에르바는 감탄하며 어두컴컴한 땅 밑을 바라보았다.
천마도 그 밑을 바라보다 말했다.
“이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예?”
“저 밑에 우리가 원하는 답이 있을 거야.”
에르바의 표정을 보면 절대 저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마가 냅다 아래로 뛰었다.
“여, 영웅이시어!”
에르바는 저 불결하고 더러운 곳에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았으나, 천마가 내려간 이상 그녀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을 순 없었다.
“으으-.”
결국 그녀도 천마의 뒤를 따라 구멍 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천강과 다른 마법사들도 함께 뛰어 들었다.
“으어어어-!”
“뭐, 뭐가 이렇게 깊어?”
그렇게 한참을 떨어지다 마침내 바닥에 도착하게 된 그들은 마법을 펼쳐 충격을 최소화했다.
“휴. 죽을 뻔했네.”
에르바와 그 일행들은 미리 도착해 있는 천마와 아쿰리아스를 찾았다.
아쿰리아스는 아예 바닥에 푹 박혀 있었고, 천마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다.
에르바는 몸이 반쯤 바닥에 꽂혀 있는 아쿰리아스를 툭툭 치며 말했다.
“혹시 이거 죽었나요?”
“살아 있는 거 같군.”
“아쉽네요.”
땅에 묻힌 채로 신음을 터트리던 아쿰리아스는 금방 바닥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누가 죽었다고 하는 거야! 이 몸이 이까짓 걸로 죽을 거 같아?!”
“응. 그럴 거 같아.”
둘은 또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으르렁 거렸다.
그런 그들을 놔두고 천마는 사악한 기운의 흔적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여긴 대체 무슨 의도로 만들어진 걸까요?”
사방에 횃불을 놓을 수 있는 곳도 있고, 통로도 잘 만들어져 있었다. 대체 왜 이런 곳이 땅밑 깊숙한 곳에 묻혀 있는 것일까?
에르바는 불을 밝혀 천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곳곳에 남겨진 벽화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악마의 그림이 사방에 그려져 있는 것이 결코 보기 좋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통로의 끝에 있는 문앞에 서게 되었다.
천마는 그곳을 열어 먼저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뒤의 사람들이 따라 들어오려고 했다.
하지만 천마가 안으로 먼저 들어오기 무섭게 문이 쾅 닫히고 말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기다리고 있었다.”
< 104화. 땅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