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
극한의 컨셉충 100화.
“개 같은 새끼들. 우리가 피땀 흘려 이뤄 놓은 터전을 뺏어 가다니.”
“딱히 피땀을 흘린 것 같진 않던데. 짜오 길드가 거기서 착취만 했지, 지금처럼 막 새롭게 단장시키진 않았잖아.”
“그럼, 너는 한국 놈들이 우리 중국 영토를 뺏어 가도 괜찮다는 거야?”
“그것보다는 이걸 국가 문제로 보기보다 길드 차이라고 봐야 하는 거 아니냐?”
오리아나 항구 도시에서 쫓겨난 중국 플레이어들.
그러나 천마는 그들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막지 않았다. 자유롭게 들어와서 완전히 바뀐 오리아나 도시를 관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
처음에는 천마와 천마신교에 반감이 컸던 중국 플레이어들은 차츰 마음을 열었다.
그가 보여 주는 리더쉽과 성을 관리하는 자세에 당연히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주로 다니는 중국 길드의 성들은 치안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정말 세금만 뜯어 가는 곳이기 때문. 그에 반해 천마신교가 다스리는 곳은 전부 아름답고 고풍스러우며, 그에 맞는 특색이 정해져 있다.
초보자들이 브롬 도시나, 오리아나 도시에 잘못 들어가게 되면 사냥으로 레벨업 할 생각은 안 하고 도시에 눌러 산다는 말이 나오겠는가.
초보자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파격적인 조치도 해 주어 정말 살 맛 나는 곳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돼. 내가 어제 브롬 도시랑 오리아나 도시를 쭉 구경하고 왔다가 여기 오니까 토악질이 나오더라.”
“뭐······ 그건 맞지. 여긴 성 외관부터가 더럽게 생겼잖아.”
“게임인데 돈 좀 써서 관리 하지. 진짜 이 새끼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배우는 게 없는 건가?”
그런 여론이 형성되자 저절로 비난의 화살은 천마신교가 아닌, 중국 길드들에게 쏟아져 나갔다.
성을 꾸민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터라, 치안도 치안이지만 위생적으로도 더러워 자주 전염병이 성 안에 발생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규칙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가 않아 마구잡이식 행정을 보여 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필연적으로 천마의 운영법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것.
“이렇게 된 거 나도 천마신교로 들어갈까?”
“외국인도 들어갈 수 있나?”
“한국인만 된다고 하던데.”
“에잇. 그럼, 중국인들을 위한 천마신교를 좀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안 돼?”
그들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던전을 향해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음? 잠깐만.”
“왜?”
“어디서 피리 소리 들리지 않냐?”
“응?”
20명으로 구성된 파티원들이 제자리에 멈춰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그들은 무언가 음울한 음율을 내고 있는 피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뭐야.”
“어디 바드라도 있나 보지.”
“그런가.”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길을 떠나려고 했다.
“크아아아-!!”
“크오오-!!”
하지만 사냥터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몬스터들이 그들 앞을 막아 세웠다.
“뭐, 뭐야?!”
“몬스터가 왜 여기 있어?”
안전 지역이라고 해서, 던전에 들어가기 전 지역에는 몬스터들이 출몰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 흉측하게 일그러진 몬스터들이 땅밑에서부터 일어나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으, 으아아아!”
“마, 막아!”
“뭐야! 이것들은!”
일반 몬스터와는 다르게 몸 구석구석이 찢어져 있거나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또한 검은 기운을 퍼뜨리는 것이 어둠의 마법사가 부렸다던 죽음의 군단을 보는 것 같았다.
“야! 머리를 노려! 이놈들 언데드야!”
“언데드? 언데드가 왜 여기서 나와?!”
“당황하지 말고 거리 벌려서 싸워!”
언데드들은 머리가 약점이고 움직임이 느리다. 고레벨 유저들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일부러 거리를 벌려 머리만을 노렸다.
그런데 기이한 피리 소리가 한 번 더 울려 퍼지더니, 움직임이 느려야 할 언데드들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헉!”
“뭐, 뭐가 저렇게 빨라!”
콰직-! 콰콰콱-!
“조심해!”
“뒤로 물러나!”
“자, 잠깐만! 뒤에도 언데드들이 있어!”
뒤로 물러나려 했는데, 이미 후방에도 언데드들이 잔뜩 깔려 있었다.
“으, 으아아!”
그렇게 언데드들에게 둘러싸인 플레이어들의 비명과 피리 소리가 겹쳐 울려 퍼졌다.
* * *
“오늘의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중국 길드들이 통치하고 있는 리오 도시 인근에서 언데드들이 대량 출몰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언데드들의 출현. 그로 인해 마을들이 공격받고 리오 도시마저 큰 타격을 입고 말았습니다.”
“언데드 공격에 사망한 플레이어들 숫자만 15만 명이 넘는다고 하며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갑작스러운 언데드들의 습격.
천마가 다스리고 있는 세 곳 브롬 도시, 마타하니, 그리고 오리아나 항구 도시는 아직 영향을 받지 못했다. 이곳에서 꽤 떨어진 도시에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속도라면 얼마 안 있어 언데드들이 당도하게 될 것이다.
“언데드들이 과연 어디로 진격을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리오 도시와 가까운 곳부터 공격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리오 도시는 한 차례 큰 공격을 받아 지원군을 요청한 상태입니다.”
아직 공격 받은 도시는 한 곳에 불과해서 그런지, 큰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자 리오 도시에 이어 다른 도시까지 공격을 받게 됐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언데드들도 있지만, 더 어려운 건 언데드들에게 공격받아 죽은 플레이어들도 언데드가 되어 살아난다는 것이다.
“언데드를 죽여도, 언데드에게 이미 죽어 버린 플레이어들은 언데드가 되어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까 더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거죠.”
“이상한 피리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피리 소리에 따라 언데드들이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이런 언데드 군단을 없애려면 네크로맨서를 찾아야 하는데, 그걸 찾지 못해서 패배를 하게 된 겁니다.”
이미 도시 두 곳이 쑥대밭이 되어 버리고 주변 마을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더욱이 플레이어 사망자 숫자가 35만으로 늘어나면서 상황이 심각해졌다.
“속보입니다! 언데드 군단이 또 출몰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큰 공격을 받아 많은 플레이어들이 사망했는데요.”
“감시병을 사방에 뿌렸는데도 언데드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합니다.”
언데드 군단을 쫓기 위해 각 길드에서 군대를 보냈지만, 그림자조차 찾지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나타나 도시 하나를 또 초토화 시키고 말았다.
“주문을 외우면 그때 바로 죽은 자들이 돌아와 도시를 공격하는 모양이군.”
“스킬을 쓰면 언데드들이 나타난다고? 끌고 다니는 게 아니라?”
“그래. 그러니까 추적을 못 하는 것이다.”
천마는 천강과 함께 언데드 습격 사건이 있었다는 리오 도시에 나왔다.
“본좌도 이런 걸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잘 알고 있어.”
“경험을 해 봤다고?”
“무림에 혈교라는 것이 있었는데, 놈들은 사술로 죽은 자들을 일으켜 그것을 군대로 썼었지. 그 방법이 매우 잔혹하고 무자비하기에 본좌가 친히 무사들을 이끌고 토벌한 적이 있었다.”
“오호. 그래서?”
“그놈들도 딱 이런 식이었어. 놈들은 군대를 끌고 다니는 게 아니라 때때마다 그 땅밑에 묻혀 있는 시체들을 전부 불러 일으켰지.”
천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았느냐. 당연히 땅에 묻힌 자들이 예전부터 많았겠지. 그 혼령들을 전부 끌어 모아 일으켰다는 뜻이다. 아마 이번 놈도 비슷한 방법을 쓰는 것 같고.”
천마와 천강이 그렇게 리오 도시 쪽을 따라 걷고 있을 때였다.
“멈춰라!”
수십 명의 기사들을 대동한 어느 플레이어가 둘의 앞길을 막아 세웠다.
“천마신교의 길드장, 천마가 이곳에 있다는 신고를 받고 왔다. 그리고 신고가 딱 맞았던 것 같군.”
중국 길드원으로 보이는 플레이어는 횡재했다는 눈빛으로 칼을 꺼내 들었다.
“순순히 잡힌다면 공격하지 않겠다.”
천마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뭐, 뭐가 웃겨?”
“네놈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 모양이구나.”
“뭐야?”
“본좌를 잡으려면 적어도 만 단위는 데리고 와야 할 텐데. 고작 수십 명이라니. 네놈이 천하오존이라도 되느냐?”
상대는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주춤거렸다.
“원한다면 상대해 주마. 대신, 본좌에게 죽는다면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잘 알겠지?”
영원한 죽음.
그것은 곧 계정 삭제를 의미한다.
바실레이아 본사조차 인정한 시스템이라 환불을 받을 수도 없다.
천마가 소원석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런 힘을 가졌다는 걸 천강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상대는 덜컥 겁을 먹고 말았다.
“자, 잠깐. 나, 나는 싸우려는 게 아니라······.”
“아니면 뭐?”
“그만!”
한창 분위기가 천마 쪽으로 기울고 있을 때였다.
이번에는 다른 플레이어가 나서서 두 사람을 중재했다.
“미안합니다. 저는 리오 도시의 성주, 샤오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천마님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망 길드의 수장인 샤오페이.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며 천마의 화를 진정시켰다.
“중국 길드들이 본좌를 싫어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본좌는 해를 끼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가급적이면 충돌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
“예. 이해합니다. 길드장이신만큼 당연히 주목을 많이 받으시겠지요. 하지만 왜 이곳에 오셨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음······.”
천마는 잠시 생각을 하다 이내 대답했다.
“퀘스트 때문이다.”
“퀘스트요?”
“그래. 이번에 발생한 언데드들을 추적하기 위해 왔다.”
“아. 그러면 혹시 언데드 소탕 퀘스트인가요?”
천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샤오페이가 눈을 반짝였다.
“이런 우연이. 아니지. 우연은 아니군요. 성주 한정 퀘스트였으니까요. 저도 사실 언데드 퀘스트를 받긴 했습니다.”
천마에게만 퀘스트가 내려진 게 아닌 모양이다.
하긴. 제국의 황제가 내걸은 퀘스트이니, 제국 내에 있는 영토에 전부 명령이 떨어졌겠지.
“그래서 리오 도시로 언데드들이 온다고 했을 때 일부러 앞으로 나가서 싸웠던 거고요.”
“그 결과가 이것이군.”
“······예. 제 생각 이상으로 언데드들이 너무 강했습니다. 거기다가 놈들을 피리로 조종하는 것 같은데, 대체 그 피리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도 찾을 수가 없고요.”
샤오페이의 말에 천마는 침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상대가 꽤 까다로운 모양이다.
“퀘스트는 계속 할 예정인가?”
“아니요. 전 깨끗하게 포기할 겁니다. 그리고 천마님께서 도시를 운영하시는 것을 보고 많은 영감을 받아 저도 이제 그렇게 해 보려고요.”
“날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별로 그렇지 않습니다. 적으로 만나면 싫어하겠지만, 당신은 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실 거면 조심하세요. 그들은 저처럼 호의적이지 않을 겁니다.”
샤오페이의 충고에 천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천강과 길을 떠났다.
그가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샤오페이는 한 숨을 크게 내쉬며 얼른 각 중국 길드 쪽에 연락을 넣었다.
[방금 천마가 리오 도시에서 벗어남. 천마도 언데드 퀘스트를 받았음.]
[알려줘서 고마워.]
[우리가 매복해서 잡아 볼게.]
[조심들해. 잘못 싸웠다가는 계정 삭제야.]
겉으로는 천마에게 친절히 대했지만, 사실 샤오페이는 천마가 두려워서 나서지 못했던 것뿐이다. 대신, 그는 천마의 위치를 사방에 뿌려 그를 잡고자 하는 길드들을 부추겼다.
“애써 얼굴을 숨기느라 고생들을 하는군.”
“응? 무슨 소리야?”
“방금 만난 저 샤오페이라는 놈. 본좌가 두려워서 그런 말들을 한 거지, 결코 친절을 베풀기 위함이 아니었다. 지금쯤이면 본좌가 이곳을 지나쳤다는 소식을 사방에 뿌렸겠지.”
“헉.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그건 겪어 보면 알겠지.”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날고 있는 게 천마였다.
< 100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