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짜르기 >
극한의 컨셉충 94화.
“소속된 길드가 어디지?”
“예? 그건 왜요?”
“소속된 길드를 밝혀라. 만약 없다면 사무라이 길드에 반드시 들어와야 한다.”
“저, 저는 천마신교인데······.”
“천마신교? 그럼, 죽어야겠군.”
“으아악!”
다섯 개의 길드가 힘을 합치면서 그들은 각자 맡고 있는 도시의 치안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병력을 풀어 거리를 지나다니는 플레이어들을 하나씩 붙잡아 소속 길드를 묻는 것인데, 만약 천마신교라고 하면 신분을 막론하고 무조건 죽이고 보는 것이다. 또한 길드가 없다고 하면 길드에 가입하도록 협박했다.
그런 식으로 병력 충당을 노리고 있다는 것.
거기다가 천마신교의 회원들을 모두 찾아내 죽이면서 도시 안에 천마신교 길드원이 없어지도록 만들었다.
[마타하니 도시와 오리아나 항구 도시 등등, 천마신교의 길드원들은 모두 출입을 금합니다.]
-천마신교 길드원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 자리에서 죽입니다. 지금 개막장 운영하고 있으니, 다들 조심하세요.
-와. 그냥 죽인다고?
-나도 방금 죽었는데, 어디 사람이냐고 물어봐서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죽임
-미친 새끼들 진짜 해 보자는 거네
-동맹은 맺었어도 당장 전쟁 일어날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연합 길드의 극단적인 조치에 단단히 화가 난 한국 유저들은 다시금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며 천마신교로 모여 들었다.
-지금 일본, 중국 놈들이 쌍으로 한국인들만 골라서 살해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우리도 움직여야 합니다.
-짱깨들 털러 파티 하실 분?
-모두 천마신교 훈련장으로 가서 단단히 훈련하고 나옵시다. 이대로 싸우면 우리가 질 수도 있어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연합 길드의 행패에 결국 한국 유저들은 브롬 도시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천마가 머물고 있는 아성 앞에 모여 그의 이름을 높이 불렀다.
“천마님!! 천마님만 믿습니다!”
“우리와 같이 싸워 주세요!”
“아예 박살을 내 버립시다!”
이구동성 모여 천마의 이름을 부르던 플레이어들.
그들은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천마는 지금 브롬 도시에 있지 않았다.
“어디 소속이냐고 묻잖아.”
“어느 길드인지 밝히면 곱게 보내 주겠다.”
마타하니 도시에 들어온 천마.
평소와는 다르게 후드를 쓰고 있어 누구도 그가 천마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마타하니 도시에 있는 순찰 병력들이 천마에게 소속을 물었다.
“소문이 사실이더냐. 본좌가 듣기로 천마신교의 사람이면 무조건 참형에 처한다고 하던데.”
“천마신교의 길드원인가? 그렇다면 넌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없다.”
병사들은 칼을 뽑아 천마를 위협했다.
“무의 기본도 배워먹지 못 한 것들이 감히 본좌의 사람들을 건들다니. 그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겠다.”
“뭐야?”
콰직-!
병사 하나가 달려들기도 전에 천마의 검이 호쾌한 궤적을 그리며 발검되었다. 그리고 다시 검이 검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병사 3명이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사, 살인이다!”
“저놈이 순찰 병력을 죽였다!!”
“놈을 잡아라!”
병사 3명이 죽자마자 감시탑에서 곧바로 수배령을 내렸다. 성 안을 돌아다니던 병사들은 천마를 잡기 위해 투입되었고, 현상금 사냥꾼들도 같이 움직였다.
“저기 있다!”
“잡아!”
콰아앙-!!
“으아아악!”
순식간에 몰려든 추격꾼들.
천마는 검강을 날려 일부를 날려 보냈지만, 그를 쫓는 모든 사람들을 떨쳐낼 순 없었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천마는 뒤로 도망치기 보다는, 적들이 오는 방향으로 달려가 정면 돌파를 택했다.
“오, 온다!”
“히익!”
콰콱-! 콰직-!
마치 한 폭의 춤을 추는 듯한 움직임으로 빠르게 추격꾼들을 지나치며 칼을 휘둘렀다.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이펙트가 번쩍이면서 누가 어느 방향으로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부 다 급소에 일격을 맞아 빈사가 되기 일쑤였고, 심하면 그 자리에서 사망하기까지 했다.
“뭐, 뭐야 저거?”
“뭐가 저렇게 세?”
“괴물이잖아!”
그렇게 20명이 넘는 병사가 순식간에 당하는 것을 보고 천마를 쫓던 현상금 사냥꾼들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생각 이상으로 상대가 강하다는 것을 알기에 먼저 들어가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힘을 빼 놓는 걸 기다렸다 기회를 노리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명령에 복종하는 병사들은 쉴 새 없이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얼쩡 거리지 말고 모두 비켜!”
또 다시 20명의 병사들이 천마에게 당했을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가 큰 목소리로 소리치며 불을 휘감은 구체를 던졌다.
콰아앙-!!
화염 구체가 천마에게 날아가다 그의 검에 부딪히면서 궤적이 바뀌어 옆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을 한꺼번에 폭파시켰다.
그 위력도 위력이지만, 화염 구체를 날린 마법사는 자신의 구체가 어떻게 튕겨 나간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꽤 강한 주술을 쓰는구나.”
“뭐라는 거야. 또 받아 봐라, 그럼.”
사무라이 길드에서 유일하게 마법사 직업을 가지고있는 텐쇼.
그는 불의 파괴자라는 히든 직업을 갖고 있어 사무라이 길드에서 스카우트한 정예 멤버였다.
그 직업에 걸맞게 텐쇼는 온몸에 불을 휘감고 있었고, 그가 날리는 구체는 폭탄처럼 터져 건물 한 채를 통째로 날려 버릴 만큼 파괴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그 파괴력이 상대에게 맞지 않는다면 아무짝 쓸모도 없을 것이다.
콰앙-! 콰쾅-!!
“제발 좀 맞아라!”
구체를 날릴 때마다 천마는 그것을 튕겨 내어 다른 궤적으로 터지게 만든다. 어떤 구체는 텐쇼 앞으로 튕겨 나와 폭발하기까지 했다.
구체를 피하는 상대는 봤어도, 그것을 튕겨내는 상대는 처음 본 텐쇼는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올랐다.
“죽여 버린다!”
그는 천마에게 직선으로 구체를 던지지 않고 바로 앞에서 터질 수 있게 던졌다.
콰아앙-!!
효과가 있었는지, 천마는 구체를 더 이상 튕겨내지 않고 빠르게 뒤로 물러나 폭발을 피했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는지 보자.”
텐쇼는 천마가 서 있는 자리에 마법진을 생성하여 그곳이 폭발하도록 만들었고, 여러 개의 구체를 한꺼번에 던져 상대가 정신을 차리지 못 하도록 했다.
“죽어라!!”
그렇게 천마를 구석으로 몰아넣은 텐쇼는 승리를 확신한 듯 소리치며 자신이 가진 최고의 스킬을 쏟아 부었다.
콰아아아-!!
그런데 구석에 몰린 천마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자 텐쇼가 날린 수십 개의 구체들이 일제히 갈라졌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모든 불길이 양옆으로 갈라져 퍼지더니, 그 중심에는 검은 기운을 감싸 안은 검강이 솟구쳐 올라왔다.
“헉!”
콰직-!
짧은 기함과 함께 세찬 바람처럼 검강이 텐쇼를 뚫고 지나가 버렸다.
워낙 빠른 속도로 지나간 거라 대부분 사람들은 뭐가 지나갔는지도 보지 못했다.
“시발. 마, 말도 안 돼.”
순식간에 HP가 0%로 줄어든 텐쇼는 회색빛으로 변하며 쓰러졌다.
“텐쇼가 죽은 거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텐쇼면 마법사들 중에서도 알아주는 랭커잖아.”
“저거 한 대 맞았다고 죽었어?”
플레이어들은 텐쇼가 죽을 줄 몰랐는지 당황해 하며 함부로 천마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도대체 저 새끼 정체가 뭐야?”
“저놈도 랭커인 건가?”
수군대는 그들의 목소리에 천마는 입고 있던 후드를 벗어 던졌다. 이윽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곳곳에 생겨났다.
“천마다!!”
“천마신교의 천마다!!”
“뭐야. 진짜잖아!”
“천마가 왜 여기 있어!”
천마가 나타났다는 소문은 금방 도시 전체에 퍼져 나갔다. 그리고 텐쇼까지 당했다는 소식에 사무라이 길드는 곧장 대응에 나섰다.
“천마한테 최고의 현상금을 걸어!! 잡는 사람한테는 사무라이 길드에서 한 자리 주겠다고도 말해!”
“있는 병력은 전부 다 투입해!!”
“반드시 천마를 우리 손으로 잡는다!”
그들은 천마가 나타났다는 장소로 우르르 뛰쳐나갔다. 그러나 그들이 보게 된 건 이미 천마에게 당해 버린 병사들과 플레이어들의 시체였다.
벌써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 추적에 어려움을 겪었다.
“왜 추적을 못 하는 거야. 그게 너희들 일이잖아.”
“아니······. 무슨 흔적이라도 남겨야 하는데, 흔적이라고 할 게 없습니다. 추적이 되지 않는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 당황스럽네요.”
누군가를 추격하는 일에 전문인 직업이 있다.
그런데 그들도 천마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천마가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성을 샅샅이 뒤져! 놈은 아직 이곳을 빠져 나가지 못했다!”
사무라이 길드원들부터 시작해 성 안에 있는 모든 병력이 천마를 찾아 나섰다. 또한 사무라이 길드가 큰 현상금을 걸자 성 내부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동참했다.
하지만 그들의 등잔 밑이 어두웠다.
천마는 그들 말대로 아직 성 안에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생각지 못 한 장소에 있었는데, 그건 바로 마타하니 성주가 머무는 아성에 천마가 몰래 잠입 중이었다.
“이런 짓은 오랜만에 해 보는군.”
수적으로 불리하거나, 혹은 박빙의 전쟁을 앞에 두고 있으면 천마는 항상 몰래 상대편 진영에 잠입해 그곳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미리 제거해 놓는다.
그렇게 하면 상대편은 큰 혼란에 빠져 제대로 된 전투를 벌이지 못 하게 되니까.
오늘도 그 방법을 쓰기 위해 천마는 아성에 진입해 빠르게 벽을 탔다.
예상대로 놈들은 전 병력을 투입한 터라 아성을 지키는 인원이 별로 되지 않았다.
푸욱-!
“커헉-!”
가끔 복도를 지나는 병사가 보이면 숨어 있다 공격해 단숨에 숨통을 끊어 놓는 천마.
그는 더욱 깊숙이 들어가 성주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의 기감에 성주의 윤곽이 잡히면서 집무실 문까지 다다랐다.
안에서 성주와 몇몇 간부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텐쇼가 당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고레벨 유저라서 한 번 죽으면 3일 동안 게임도 못 하는 거 알잖아. 도대체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한 거지? 이 중요한 시국에?”
“천마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강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당했으니까요.”
“일단 놈을 찾기 위해 병력을 전부 뿌려 놓았습니다. 아직 성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테니 금방 찾게 될 겁니다.”
설마하니 천마가 먼저 성으로 쳐들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사무라이 길드.
그래도 그들은 늦게라도 천마를 잡게 되면 이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천마가 붙잡히게 된다면 그땐 곧바로 브롬 도시를 향해 진격하면 됩니다.”
“맞습니다. 천마가 죽었는데, 누가 천마신교를 이끌겠습니까? 놈이 고레벨 유저는 아니지만, 랭커라서 한 번 죽으면 놈도 3일 동안 접속을 하지 못 합니다.”
“흐흐. 그 3일 안에 우리는 브롬 도시를 손에 넣는 거고.”
그들의 음흉한 대화 소리에 천마는 콧방귀를 뀌며 문에서 살짝 떨어졌다. 그리고 칼을 꺼내 저 너머로 기파를 통해 보이는 사무라이 길드장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이윽고 천마의 검이 휘둘러지면서 검은 검강이 문을 부수며 치달아 정확하게 길드장을 덮쳤다.
콰아앙-!!
“뭐, 뭐야!?”
“크악!”
깜짝 놀란 간부들은 우왕좌왕 거리며 순간 반응을 못 하고 있을 때, 천마는 쏜살 같이 길드장에게 달려가 그의 몸을 난도질 시켰다.
스걱-! 콰콰콱-!!
3번의 일격이 있었고, 3번의 황금색 이펙트가 터져 나왔다. 천마는 털썩 무릎을 꿇고 자신을 황망하게 바라보는 길드장을 내려다보았다.
“감히 본좌의 사람들을 죽게 만든 네놈의 죄를 묻겠다.”
“아, 안 돼.”
콰직-!
천마가 찌른 검이 길드장의 심부를 꿰뚫어 그 바닥까지 닿았다.
그것으로 사무라이 길드장이 회색빛으로 변하며 로그아웃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3일 간은 절대 접속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
“기, 길드장님이 죽었어?”
“저, 저거 천마 아니야?”
“이런 미친!”
천마는 이제 그 옆에 우스꽝스러운 긴 칼을 차고 있는 간부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 94화. 짜르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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