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대련 >
극한의 컨셉충 92화.
천마의 지옥 같은 훈련은 웹상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다.
[운영자가 ㅈㄴ굴리니까 이젠 하다하다 천마형이 직접 플레이어들을 굴리네.]
-영자한테 굴림 당한 게 빡쳐서 갚아 주는 건가?
[님들 천마형 훈련 진짜 좋아요!]
-사냥도 더 잘 되고 근력도 좋아지고 아무튼 다 좋음. 제발 하셈. 꼭!
-미친 새끼 ㅋㅋㅋ나만 당할 순 없으니 너도 당해 봐라 이거냐?
-야 꺼져. 나 5시간 동안 잡혀 있다가 간신히 탈출했다
-ㅋㅋㅋㅋㅋㅋ낚시글 지렸누.
못 모르고 그곳에 들어갔다가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온 플레이어들은 그에 대한 후기글을 남겼다.
당연히 욕설이 난무하는 곳도 있었고, 나만 당할 순 없다는 착한 마인드로 다른 이에게 권하는 글도 여럿 올라왔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도 컨텐츠를 찾아 헤매는 BJ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형님들. 오늘 유격 훈련은 햇병아리 수준에 불과하다는 천마신교의 훈련장에 한 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미쳤누
-야 잘못 들어갔다가 집 못 돌아온닼ㅋㅋ
-난 생각보다 괜찮던데.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크리티컬도 조금 더 잘 터지는 것 같고 예전보다는 훨씬 사냥할 때 검 쓰는 게 부드러워짐.
-네 다음 강태공
BJ들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천마신교의 훈련장에 들어가 지옥 같은 훈련을 자처했다.
“천마신교의 일원이 아니면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
“오늘부터 저도 천마신교의 일원입니다. 여기 명패도 있어요.”
“음. 좋다. 그분께 배울 수 있다는 걸 감사히 여기도록.”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무사들은 길드원임을 확인시켜 주는 명패를 보고 BJ들을 입장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험상궂게 생긴 무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행동이 느리다!!”
“어서 무복으로 갈아입고 목검을 들지 못 하겠느냐!”
엄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플레이어들은 그 말에 따라 무복으로 갈아입고 목검을 들었다. 그리고 천마가 아닌, 다른 무사가 플레이어들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저기 천마님은 혹시 어디 계신가요?”
“지존께서는 기초 수련이 필요하지 않은 이들을 교육하시기 위해 대련 중이시다. 그러니 다른 곳에 정신 팔지 말고 어서 목검을 들고 휘둘러라!”
BJ들은 대충 훈련하는 척을 하다가 몰래 천마가 있는 곳으로 도망치려 했다. 그런데 매의 눈을 가진 무사들에게 한번 잡힌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전 기초 수련이 필요하지 않아요!”
“천마님만 잠깐 보고 돌아온다니까요?”
훈련장을 벗어나 천마가 있는 곳을 가려는 BJ들은 훈련을 지도하던 조교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자 무사들이 그들에게 달려와 칼을 뽑았다.
“한 번 시작한 훈련은 끝날 때까지 나갈 수 없다. 이에 불복할 경우, 힘으로 제압할 것이다!”
“뭔 이런 정신 나간 NPC들이 다 있어?”
“한 번 해 보자는 거야 지금?”
그렇게 신경전이 싸움으로 번지려 하자 더 많은 무사들이 훈련장으로 와 그들을 포위했다.
“경고는 마지막이다. 얼른 제자리로 돌아가 훈련에 임하도록. 그렇지 않을 경우, 신분을 막론하고 참형에 처하라는 지존의 엄중한 명이 계셨다.”
“······.”
언제 이렇게 무사들이 많아졌는지, 결국 BJ들은 꼬리를 내리고 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할 수 있었고, 더불어 천마신교 훈련장의 무서움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모든 BJ가 이렇듯 기초 훈련장에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천마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제 레벨이 이제 280인데. 천마님은 이제 막 100레벨을 넘으셨잖아요.”
레벨이 높으면 등급이 올라가 기초 훈련을 그리 오래 받지 않아도 된다. 대신, 중급 훈련부터는 천마와의 대련을 통해 어떤 수련을 받아야 하는지 결정된다.
그중 트릭스타라는 닉네임에, 포커 마스터라는 히든 직업을 갖고 있는 레벨 280의 BJ가 중급 훈련장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됐다.
생방송으로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천마와 트릭스타가 대련을 한다는 것에 잔뜩 흥분했다.
거기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시청자들 덕분에 트리스타는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또한 여기서 천마를 잡게 된다면?
그땐 더욱 자신의 주가가 올라가게 될 것이다.
레벨 차이도 심하고 히든 직업이라는 이점도 있어서 트릭스타는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임은 레벨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싸움은 더더욱. 본좌가 왜 기본기를 중요시 하는지 아느냐? 그 기본기가 잡혀 있느냐, 있지 않느냐가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지.”
“좋습니다. 그럼, 서로 합의를 했으니 승패에 관계 없이 좋은 대련이 되기를 바랍니다.”
트릭스타는 속으로 천마를 비웃었다.
그가 보여 준 여러 싸움들을 영상을 통해 봐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자신도 할 수 있다며 얼마나 자신했던가.
트릭스타가 가진 포커 마스터라는 직업은 그만한 힘이 충분했다. 그 덕분에 어떤 파티 플레이도 없이 지금의 레벨까지 올라온 것이다.
아직 BJ로써는 대기업이라고 할 수 없지만, 특출난 히든 직업 덕에 점점 시청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거기다 여기서 천마까지 잡게 되면 그야 말로 대박일 터.
“자. 오너라.”
천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트릭스타는 카드 수십 장을 천마에게 던져 버렸다.
카드 하나하나가 상당한 딜을 가지고 있어, 왠만한 몬스터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 한다. 즉, 천마도 저걸 한 번 잘못 맞게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슈아아악-!
“응?”
너무 대련이 쉽게 끝나는 거 아닌가 싶어 시청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차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 저 앞에 있었던 천마가 어느새 트릭스타의 바로 코밑에 다다랐다.
“헉-!”
콰직-!
아래에서 위로 뻗은 천마의 검에 트릭스타는 제대로 타격을 입어 황금색 이펙트가 크게 터졌다.
데스 크리티컬.
방금 전 그 일격으로 순식간에 HP가 50% 이하로 내려간 것을 본 트릭스타는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뭐, 뭐야? 내가 뭐에 당한 거야? 저것도 스킬인가?’
당황함에 숨을 헐떡이며 멘트 치는 것도 잊어 버린 트릭스타였다.
-와 방금 뭐냐?
-고작 한 방에 반피?
-트타형 지금 멘붕
-딜 실화냐?
-스킬 쓴 건가?
그것을 지켜본 시청자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이들 모두 예상을 뛰어넘는 천마의 딜량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제, 제가 잠시 방심했었나 봅니다. 여러분. 이제 정말 진지하게 가겠습니다.”
트릭스타는 일단 침착하기 위해 애써 노력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뒤 속으로 생각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우습게보면 안 되겠어. 이러다 내가 죽는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스킬을 쏟아 부어야 함을 깨달았다.
촤르륵-!
카드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그것들의 색깔이 붉게 변해 갔다. 이윽고 기관총처럼 카드들이 천마를 향해 쏘아졌다.
파파팍-!
무자비하게 쏘아지는 카드 더미들이 천마를 압박했지만, 그는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빠르게 카드를 피해 나갔다.
마치 어디로 공격이 날아오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안전한 지점에 착지하며 공격을 흘려 보낸 천마.
그는 다시 한번 무서운 돌진으로 순식간에 트릭스타 코앞까지 달려왔다.
“젠장!”
깜짝 놀란 트릭스타는 거대한 카드 방패를 펼치면서 뒤로 몸을 뺐고, 천마의 칼이 카드 방패를 두 조각 내 버렸다.
만약 조금만 반응이 늦었다면, 두 동강 나는 건 저 카드가 아닌, 트릭스타였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저걸 다 피하는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움직이었다.
기관총처럼 연사하는 카드들을 어떻게 저리도 잘 피한단 말인가.
-뭐야 핵이냐?
-아. 천마형 또 핵쓰네
-천마가 천마했을 뿐. 잘못된 거라도?
-그저 천마
시청자들은 놀라운 천마의 몸놀림에 감탄만 터트렸다. 여기가 트릭스타의 채널인지, 아니면 천마의 채널인지 모를 만큼 채팅창에는 온통 천마 얘기 뿐이었다.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안 된다.’
트릭스타의 계획은 천마를 깔끔하게 쓰러뜨려 시청자 떡상을 노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다가는 다른 사람들처럼 천마의 거름이 될 지경이었다.
“이번에 결판을 내겠습니다, 형님들.”
최고의 스킬만을 뽑아 천마에게 쏟아 붓기 위해 트릭스타는 이번에 먼저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그 뒤로 뿌려진 카드들이 허공 위로 회전하더니, 이윽고 그것들은 집채만 한 카드로 변해 천마의 주변을 둥글게 포위했다.
“음?”
처음 보는 광경에 천마도 신기하게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 카드들은 각각 다른 색깔을 하고 있었는데, 공회전을 하며 천마 주변을 빙글빙글 돌더니, 그 속도거 점점 더 빨라졌다.
또한 그 스킬을 시전한 트릭스타 역시 모습을 감춘 상태. 이름 그대로 속임수를 이용해 천마를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속임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트리스타의 궁극기나 다름없는 카드 디멘션 스킬은 시전자의 모습을 완전히 감춰 버려 상대가 공격을 할 수 없게 하며, 더불어 카드 더미의 회전이 멈추면 집중 포화를 하기 때문에 꼼짝없이 당해야만 한다.
“제법이군.”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여기서 대부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마는 그렇지 않았다. 나름 쓸모 있는 스킬을 가졌다며 상대를 칭찬할 뿐.
‘언제까지 그렇게 허세를 부리나 보겠다.’
트릭스타는 천마가 여유를 피우는 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며 공회전하고 있는 카드들을 수백 개로 쪼개 천마에게 집중시켰다.
콰콰콱-!!
디멘션에 갇혀 있어 날아오는 수백 개의 파편들을 피할 수도 없는 상황. 이것이 카드 디멘션의 무서운 점이었다.
콰아앙-!!
‘이겼다!’
모든 파편들이 천마에게 집중되어 폭발하면서 트릭스타는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연기가 걷히고,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는 천마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저게 안 죽는다고? 아예 딜이 안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데? 방어막 같은 걸 쓴 건가?’
천마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둥그런 푸른색 방어막이 사라지더니, 천마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썩 괜찮은 기술을 가지고 있구나.”
그리고 천마는 트릭스타에게서 흡수한 힘을 검에 집중시켰다.
“그런 고로 본좌가 그대로 돌려 주겠다.”
딜을 상쇄시키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흡수해 똑같이 데미지를 돌려 준다라.
저것만큼 사기적인 스킬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괜찮아. 어차피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못 본다. 저건 그냥 흘러가 놔두고 한 번 더 스킬을 쓰면 그땐 진짜 끝이다.’
카드 디멘션이 펼쳐지면 상대방은 시전자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시전자가 카드 속에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마는 트릭스타가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상대방의 기를 통해 위치를 감지하니까.
“서, 설마?”
트릭스타는 천마가 정확히 자신이 있는 쪽으로 검을 돌리는 것을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모습은 감췄지만, 디멘션이 끝날 때까지 한번 지정한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마가 만약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꼼짝 없이 저 공격을 맞아야 한다는 소리다.
“미, 미친! 말도 안 돼!”
콰아아아-!!
천마의 검이 땅을 찍으면서 반월 모양의 검강이 카드들을 깨부수며 트릭스타의 옆을 스쳤다.
“히익-!”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트릭스타는 제자리에 주저앉았고, 그런 그에게 천마가 다가왔다.
트릭스타는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공격은 천마가 일부러 빗나가게 했다는 것을 말이다.
천마는 그의 앞에 쭈그려 앉아 말했다.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네 실력이라면 충분히 우리 천마신교에 큰 힘이 될 터.”
“······.”
“앞으로 빠지지 말고 수련에 참여 하거라. 본좌가 틈틈이 대련을 해 주며 훈련시켜 주마. 그 힘을 더 발전시킨다면 무서울 게 없을 게다.”
잠시 몸을 떨고 있던 트릭스타는 이내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천마님.”
“음?”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
그 말에 천마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트릭스타의 머리를 살짝 내려쳤다.
“형님이 아니라 지존이다. 천마신교의 무사가 어찌 지존과 형 동생을 할 수 있을까.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다.”
천마는 그 말을 남기고 훈련장을 떠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트릭스타가 읊조렸다.
“존나 멋있어······.”
그리고 시청자들에게도 선언했다.
“형님들. 저 오늘부터 천마님을 진짜 지존으로 모시겠습니다.”
새로운 천마의 팬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92화. 대련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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