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한의 컨셉충-88화 (88/140)

88화. 악몽의 끝

극한의 컨셉충 88화.

[당신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마지막 층까지 올라온 승리자입니다.]

[부디 이번 마지막 시험에서도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신의 가호 같은 소리 하고 있군.”

천마는 조용히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에게 나타난 건 어떤 영상이었다.

[무림과 황실을 동시에 무릎 꿇린 천마신교의 수장, 천마. 그의 멈출 줄 모르는 정복욕은 수많은 곳에 피를 뿌려야만 했다.

나레이션과 함께 나오는 영상에는 천마가 직접 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장면이 있었다.

“한 놈도 살려 두지 말거라. 그것이 누구라도 이 성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모조리 싹을 말려라.”

“존명!”

무사들은 천마의 명령에 따라 성을 불태우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찔러 죽였다. 항복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한 곳에 모아 학살을 벌였다.

어린 아이도 그 피바람을 피하지 못 하고 죽었으며, 정말 천마의 말대로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것이 패도를 걷는 이가 취해야 할 길이다. 본좌와 본좌의 신교에게 충성하지 않거나, 항복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무조건 죽여라.”

천마는 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 눈동자를 보라.

살겁으로 가득하지 않던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천마는 힘에 취하고 피에 취하여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천하를 하나로 묶어 평화를 이루겠다는 그의 본래 목적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끔찍한 살육만 남게 된 것이었다.

“왜 본좌에게 이런 걸 보여주는 것이냐?”

부끄러운 과거는 더 이상 보기가 싫었다. 그러자 영상이 갑자기 돌변하면서 새로운 나레이션이 깔렸다.

[하지만 피에 젖은 그의 정복욕도 어느 한 기점으로 멈추게 된다.]

“뭐?”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의가 깊었던 의형제를 그의 손으로 죽이면서 천마는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잠깐. 이게 지금 뭐하자는······!”

영상이 사라지고 어두웠던 풍경이 밝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장소가 나타났다.

“설마······.”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 화답하듯, 천마의 뒤로 그리운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오시게. 내 형제여.”

천마는 경직된 자세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한 중년의 남성이 앉아 있었는데, 천마가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네, 네가 어떻게······.”

“세상이 바뀌었잖은가. 그 덕분에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고.”

“······.”

검황, 담철영.

장백파의 수장이면서 동시에 검황이란 이름으로 강호를 굽어 살피던 존재였다.

또한 그는 천마의 오랜 친우이면서 고아였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둘은 같은 무사단에 들어가 지옥 같은 훈련을 받고 마침내 강호로 나아가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천마는 신교를 세워 새로운 지배자를 꿈꿨고, 담철영은 장백산에 들어가 마을을 꾸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지켜 주었다.

그에게는 강호를 정벌하겠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황이란 이름을 얻은 이상, 강호에서 짊어 지우는 그의 짐은 매우 컸다.

그렇기에 검황도 미쳐 날뛰며 온 천하에 피를 뿌리고 다니는 천마를 가만히 지켜 볼 수가 없었다.

그런 운명의 장난에,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맞붙어야만 했고 천마는 검황과 결단을 내기 위해 직접 장백산까지 올라갔었다.

“난 자네가 정말로 장백산까지 올라올 줄 몰랐어. 하지만 직접 올라오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자네는 내가 예전에 알던 그 친구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

“······어떻게 넌 기억이 있는 거지?”

“자네의 기억을 통해 날 이곳에 투영시키신 분께서 내게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네와 있었던 일을 기억하게 해 주셨지.”

헬라가 일부러 검황에게는 기억을 남겼다는 것인가. 하지만 천마는 넘어가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눈앞에 있는 지금 이 상대도 혼돈의 탑이 만들어낸 가짜에 불과하다.

“그만 사라지거라. 본좌는 너 같은 가짜와 얘기하고 싶지 않다.”

“허허. 가짜라······. 그래. 자네가 보기에는 내가 가짜로 보이겠지. 하지만 기억하시게. 난 자네의 기억을 통해 존재하고 있다네. 비록 생명은 꺼졌지만, 자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면, 그게 어찌 가짜라고 하겠는가?”

“······.”

천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검황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난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네. 비록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까웠던 자네와 칼을 맞대고 싸워야 한다는 게 마음이 아팠을 뿐이지. 그리고 결국 내가 패배하여 죽었지만.”

“그땐 너 아니면 나, 둘 중 한 명이 죽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파장이 일었을 거다.”

그 당시 천마는 검황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일부러 장백산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누구보다도 가까웠던 친우를 공격하기 싫어서였다.

문제는 천마신교에 밀려난 무림맹이 장백산에 들러 붙어 검황의 뒤에 꼭 숨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힘을 키워 천마신교를 압박하면서 천마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천마는 절대 검황과 싸우기 싫었지만, 이대로 장백산을 가만히 놔둔다면 무림맹의 든든한 본거지가 되어 애써 이뤄 놓은 대업을 무너뜨릴 위험이 높았다.

결국 천마는 황제를 굴복시킨 뒤, 천마신교의 후방을 공격하다 장백산으로 도망친 무림맹을 쫓아갔다. 그리고 검황에게 무림맹 사람들을 전부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때 네가 내 말만 들었으면 우린 싸우지 않았을 거야.”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똑같은 결정을 내리겠지. 그 당시 자네는 냉정함을 잃고 있었어. 어린 아이도 살려 두지 않을 만큼 잔인해졌었지. 만약 내가 그때 그들을 내놓았다면 수십만의 목숨이 사라졌을 거야.”

“이런 멍청한!”

천마는 검황의 앞에 검을 박으며 소리쳤다.“그것이 대업을 위한 일이야! 패도라는 건 어떤 희생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검황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아는 패도라는 건, 결코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닐세. 때론 힘으로, 때론 자비를 베풀어 포옹하는 것이지.”

“우리를 키운 그 빌어먹을 정파 놈들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주었다고 하여 자네마저 그렇게 삐뚤어진 삶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자네와 내가 그곳을 나온 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세. 헌데, 어찌 자네는 그들의 가르침대로 살아왔는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정말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로 갚아 주는 검황이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검황의 말이 이제까지 틀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난 자네를 이해하네. 자네의 힘은 본질적으로 힘에 취하게 하고, 피에 취하게 하지. 그 악한 기운이 자네를 지배하게 되었으니, 어찌 자네만을 탓하겠는가.”

천마가 익히고 있는 천마신공은 본래 무공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압도적인 힘으로 그동안 강호를 정벌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검황은 그것이 가진 치명적인 단점을 알고 있었다.

“그 힘을 제어하지 못 하는 순간, 본인도 모르게 어느새 그 힘에 먹혀 버리고 말지. 자네의 끝 없는 살육의 욕심과 정복욕은 모두 그 힘으로부터 비롯되었어.”

천마도 그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악한 힘과 취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모두 검황 덕분이었다.

천마가 검황을 죽임으로써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마침내 검을 내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자네의 악한 힘을 죽이기 위해 일부러 목숨을 던진 걸세. 그로 인해 자네는 자유를 얻게 되었지.”

그 말대로다.

검황은 목숨을 걸고 천마를 상대하며 그가 가진 악한 힘을 깨뜨리고 본래의 천마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 검황은 천마의 검에 죽게 되었다. 그것을 천마는 평생 후회하며 모든 걸 내려놓게 되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래서, 여기에 온 건 이제까지 하지 못 한 잔소리를 몰아서 하려고 그런 건가?”

“뭐, 그랬으면 좋으려만 아쉽게도 지금 이 세상은 다른 걸 요구하는군.”

검황이 손을 들자 어디에선가 검 하나가 날아들어왔다.

“잠깐. 지금 뭐하자는 거지?”

“왜 그러는가. 칼을 든 두 무사가 한 방에 있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런 미친. 도대체 이게 뭐하자는 거야?!”

“나도 이러고 싶지 않다네. 정말일세. 그러나 내 의지는 통하지 않는 세계이니, 난 그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네.”

촤아앙-!!

검황의 칼이 매섭에 파고 들어 천마의 검과 부딪혔다. 검황은 잔뜩 힘을 불어 넣고 있지만, 천마는 아직 그렇지 못했다.그러자 검황이 푸근한 미소를 보이며 핀잔을 주었다.

“그렇게 넋 놓고 있다가는 내 검에 당하게 될 걸? 여기까지 올라와서 죽고 싶은 겐가? 만약 자네가 여기서 죽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줄까?”

파악-!

천마를 뒤로 밀쳐낸 검황은 검에 기를 모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는 여기서 죽으면 그걸로 끝이네.”

“무슨 소리지?”

“정말 끝이라는 거지. 말 그대로 끝. 여기서 죽게 되면 자네의 영혼도, 몸도 정말로 죽게 된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여긴 허상에 불과하다.”

“물론 허상이지. 그러나 자네의 몸이 어디에 들어있던가? 그 캡슐이란 기계가 정말 자네를 죽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나?”

듣고 보니 그럴싸한 말이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헬라는 뭘 원하는 거지? 이렇게까지 하면서 뭘 얻고자 하는 거냐고.”

“나도 그분의 뜻을 이해할 수 없네. 그저 그분은 배우길 원하시지. 또한 자네에게 있는 잠재력이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 하시고.”

“미친. 장난질은 거기까지 해!”

콰아앙-!!

천마도 이번에 매섭게 달려들어 검황과 부딪혔다.

“예전보다 많이 무뎌졌군. 내 죽음이 자네라는 칼을 녹슬게 만든 겐가?”

“닥쳐라. 네 죽음은 본좌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으니.”

“그런가? 자네의 기억을 보면 칼을 내려놓고 술에 의지하며 폐인 같은 삶을 산 거 같은데. 그러니 수하들이 자네를 배신한 거겠지.”

콰직-!!

천마의 발에 밀려난 검황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진지하게 할 생각이 생긴 겐가? 그렇다면 나도 제대로 가겠네.”

검황의 검이 번쩍이면서 수백 개의 칼들이 하늘에서 쏟아졌다.

장백검법의 정수가 담긴 뇌혼천무!

벼락처럼 쏟아지는 칼날에 천마도 검강을 쏟아부었다.

콰아아앙-!!

두 고수가 펼치는 무지막지한 무공 대결에 벌써 그들이 서 있던 땅은 꺼져 버리고 주변 지형들도 전부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검황은 마치 여러 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공격을 날렸는데, 천마도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내 그 공격들을 받아쳤다.

“역시, 힘들어 보이는군.”

“그건 너도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쉬지 않고 공격을 날리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가 탑의 밸런스 영향으로 둘 다 온전한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왜 그분께서 우리 둘에게 무림에 있었을 때의 힘을 똑같이 주지 않으셨는지는 몰라. 하지만 이대로도 괜찮지 않은가?”

“본래 힘만 있었다면 넌 진작 쓰러졌을 거다.”

“여전히 자신감은 충만하군. 그렇다면 어서 와서 이 사람을 쓰러뜨려 보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부디 친우의 목숨을 내가 끊게 하지 말아 주시게.”

검황의 얼굴을 보며 천마는 입을 악 물었다. 그리고 그는 끝을 내기 위해 검황에게 치달았다.

검황도 이것이 마지막 합이 된다는 것을 알고 모든 힘을 실은 검과 함께 뛰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충돌하는 순간.

푸욱-!!

한 사람의 몸이 검에 관통되어 피를 쏟아냈다.

“음······?”

검황은 분명 자신의 몸에 닿은 것이 칼날이 아닌, 칼 손잡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천마를 꿰뚫은 건 검황의 칼끝.

마지막 순간 천마가 의도적으로 검을 거두고 손잡이로 검황을 쳤던 것이다. 그에 반해 검황의 칼은 깨끗하게 천마의 몸을 관통시켰다.

“이게 무슨······.”

“큽-.”

천마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는 후회감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던 일이야.”

“······.”

“그때 네가 아니라 내가 죽었어야 했어.”

검황은 그런 천마를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천마는 자신을 관통한 칼을 붙잡아 뽑으며 말을 이었다.

“이런 기회가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말은 죽어서 널 만나면 하려고 했지.”

얼굴을 올려 검황과 눈을 마주하게 된 천마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미안했다. 아니. 미안하다. 네가 가짜라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라도 용서를 빌고 싶었다. 형제여.”

“······.”

검황은 그런 천마를 안아주며 대답했다.

“나도 미안하네.”그것을 끝으로 갑자기 검황의 몸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뭐?”

천마를 관통했던 검도 사라지면서 그의 몸이 깨끗하게 나았다. 그리고 그의 앞에 나타난 시스템 창.

[축하합니다. 당신은 탑의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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