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마지막 층으로 2
극한의 컨셉충 86화.
[3층의 시험까지 올라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여러 신들은 이 탑에 계신 여러분에게 특별한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천마신교의 수장, 천마를 죽이게 될 경우 해당 플모험가는 자동으로 탑의 마지막 층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정해진 시간, 혹은 천마가 먼저 퀘스트를 성공할 경우 그를 제외한 모든 모험가들이 탑에서 방출됩니다.]
이제 막 탑에서 눈을 뜨게 된 플레이어들은 그들 앞에 나타난 시스템 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엥?”
“천마를 죽이라고?”
“탑의 마지막 층?!”
혼돈의 탑을 마지막까지 올라갈 수 있는 특권.
이제까지 그 누구도 올라가 보지 못 한 끝자락이다.
“이건 말도 안 돼. 뭐 이딴 게 다 있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스템 창을 보게 된 천강은 막장으로 치닫는 퀘스트에 혀를 내둘렀다.
“천마만 잡으면 끝이라는 거잖아?”
“야. 미친 거 아니야? 탑의 마지막 층?”
“마지막 층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엄청 이슈가 될 걸?”
“와씨. 나 갈래.”
저번과 마찬가지로 천강은 천마신교의 무사가 되었다. 그런데 신곤이라는 역할이 아닌, 이번에는 다른 역할을 맡게 되었다.
문제는 천마신교 무사들 중 플레이어들이 다수 섞여 있어 그들도 천마를 죽이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큰일이다. 이젠 같은 편도 믿을 수가 없는 거잖아.’
만약 누군가가 천마신교의 무사 모습으로 천마에게 접근해 공격이라도 한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지존께서 곧 돌아오실 거다. 잘하면 오늘 우리가 황궁을 넘을 수도 있다. 모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도록. 그리고 무송, 너는 지존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말거라. 그것이 네 임무니까. 오늘처럼 또 그분 곁에서 멀어지는 날이 있다면 그땐 네놈 목을 베어 버릴 게다.”
진천이란 사람은 이제 없고, 하륜이라는 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또한 천강은 신곤의 이름이 아닌, 무송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아, 예.”
진천이고 하륜이고 천강이 맡은 역할을 모두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나저나 형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천강은 천마의 행방을 찾고자 밖으로 나가 보려 했다.
콰아앙-!!
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천강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도 전부 전각 밖으로 나왔다.
“무슨 소란이더냐?!”
하륜도 지휘하던 것을 멈추고 밖을 나와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거기에는 천마와 엉켜 싸우고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존?”
“형!”
천마와 싸우고 있는 이들 중에는 천마신교의 무사 복장을 하고 있기도 했다.
“이놈들!! 지존께 감히 무슨 짓이더냐! 당장 놈들을 죽여라!”
몇몇 무사들이 배신을 했다고 판단한 하륜은 저들을 모두 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천마신교 안에 있는 무사들도 플레이어가 다수 섞여 있다는 것이다.
“잠깐. 여기서 천마를 잡으면?”
“개꿀인 거잖아?”
“다 같이 다굴 치면 죽지 않을까?”
플레이어들이 나누는 얘기를 듣게 된 천강은 아차 싶었다.
“가즈아!!”
“천마 사냥이다!!”
“내가 마지막 층으로 간다!!”
하륜도 이들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는 명령을 거두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러기에는 늦었다.
“반란이다! 놈들이 지존을 배신했다! 모두 없애라!”
플레이어, 그리고 플레이어가 아닌 자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천마는 어느 정도 힘이 돌아온 수준이라서 덤벼오는 자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콰앙-! 콰아아앙-!!
그의 검이 한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검강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가 적들을 갈라 버렸다.
“뭐, 뭐가 저렇게 세!?”
“잘못 건든 거 아니야?”
“밸런스 패치 또 좆망했네.”
협공을 하면 어떻게든 잡아낼 줄 알았는데, 도저히 쓰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직까지 천마에게 제대로 된 데미지를 준 사람이 없었다.
“이게 뭔 보스 레이드도 아니고······.”
“왜 단체로 천마를 죽이라고 퀘스트를 줬는지 알겠네. 저걸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천마만 상대하는 것도 벅찬데, 천마를 돕는 NPC들이 대거 나서면서 상황은 더욱 플레이어들에게 안 좋게 흘러갔다.
“일단 빼자.”
“여기서 뒤지면 답도 없다.”
“난 빠진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지금 천마를 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플레이어들이 대거 이탈하게 됐다.그런 사인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 한 다른 플레이어들만 협공을 받아 쓰러졌다.
“괜찮으십니까, 지존?”
대충 정리가 끝나자 천마는 자신에게 달려온 하륜을 바라보았다.
“······진천은?”
“진천이요? 그자는 낙양 전투에서 사망하지 않았습니까?”
“······.”
하륜의 대답에 천마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과거의 실수를 바로 잡겠다고 한 건 그냥 허튼 짓에 불과했다.
낙양 전투에서 천마는 진천이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데 탑은 그에 대한 미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당연한 결과다.
이 탑은 천마의 기억에 따라 이미지가 결정된다.
진천이 지금의 시기까지 살아 있는 기억은 천마에게 없으므로 탑 또한 그것을 투영하지 못 하는 것이었다.
“괜한 짓을 했군.”
천마는 칼을 거두며 천마신교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지존. 투항한 놈들은 어찌 할까요?”
하륜의 물음에 붙잡힌 플레이어들이 애타게 소리쳤다.
“살려 줘요!”
“형님이 탑 마지막 층으로 가실 수 있게 돕겠습니다!”
천마는 무심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죽여라.”
* * *
“황궁을 점령해야 한다고?”
“그래. 그것이 본좌에게 내려진 퀘스트였다.”
천강은 천마가 어떤 퀘스트를 받았는지 알게 됐다.
[마지막 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퀘스트를 완수해야 합니다.
-살아 남으십시오. 사망한다면 탑에서 자동 방출됩니다.
-황제를 죽이거나, 혹은 굴복시킨다면 퀘스트를 완수하게 됩니다.
-마지막 층은 오직 단 한 명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단 한 명에게만 허락되는 혼돈의 탑 마지막 층.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살아남아야 하고, 황제도 없애야 한다.
“어쩔 거야?”
“흠······. 그냥 게임을 꺼 버릴까 싶기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고 형이 죽지 않는 이상, 혼돈의 탑에서 나갈 수 없어. 여기 있는 사람들도 전부.”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밌겠군.”
만약 천마가 게임을 꺼 버리고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면?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스스로 죽지 않는 한, 절대 탑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된다.
“형이 원한다면 그냥 게임을 끄고 한 달 동안 잠수 타도 돼. 그럼, 사람들이 질려서 자살하고 탑을 나가겠지.”
기가 막힌 천강의 아이디어였지만, 천마의 성격상 그런 걸 할 리 없었다.
“본좌의 이름이 걸려 있는 일이다. 그 명예에 똥칠을 할 순 없지.”
“그럼?”
“방법이 없지 않느냐. 싸우는 수밖에.”
천강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형 말대로 싸우는 수밖에 없는 거지. 난 형이 꼭 탑의 마지막 층으로 갔으면 좋겠어.”
“본좌는 딱히 가고 싶진 않다만. 가능하다면 널 보내고 싶구나.”
“됐어. 내가 가봤자 무슨 도움이 된다고. 형이 가는 게 낫지.”
그렇게 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지존.”
하륜이 안으로 들어와 상황을 알렸다.
“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성에서 나와 출진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놈들의 숫자는?”
“총 300만입니다, 지존.”
3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에 천강이 먼저 입을 쩍 벌렸다.
이번 층까지 올라오는 데에 성공한 대다수 플레이어가 황실의 군대로 편입된 게 분명하다.
“우리는?”
“3만입니다.”
무려 300배가 차이나는 숫자였다.
“뭐가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거지?”
아무리 방금 전 플레이어들이 일으킨 소동 때문에 숫자가 줄었다고는 해도, 그리 많은 숫자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플레이어가 아닌, 본좌의 무사들이라면 충분하다. 그에 반해 황실의 군대는 온갖 오합지졸들이 모여 있는 거겠지. 놈들의 숫자가 많다고는 하나, 통솔에 따르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려는 놈들이 많을 게다.”
“지존의 말씀대로 놈들은 벌써부터 군 체계가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우리 천마신교의 정예 무사들이라면 그들을 능히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천마와 하륜의 자신감에 천강은 혼자만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3만으로 100배나 많은 300만 명을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게 아닌, 전면전을 통해서 말이다.
“가자. 오래 끌 필요 없다. 저 해가 저물기 전에 결단을 보겠다.”
“따르겠습니다, 지존.”
천마는 이걸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힘의 싸움이다.
300만 군대를 빠뜨릴 함정을 만들려면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 터. 그 전에 저들이 이곳까지 달려와 순식간에 사방을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다.
차라리 그러기 전에 먼저 가서 기선 제압을 하고 기회를 노려 황제의 목을 딴다면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지존께서 선봉에 서신다! 모두 따르라!”
하륜의 외침과 함께 대기 중이던 무사들이 함성 소리를 내며 천마의 뒤를 따랐다. 이윽고 그들이 도착한 평야에는 정말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새까만 대군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돼.”
그 숫자가 너무나도 많아서 이 드넓은 평야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저들이 돌진을 한다고 해도 저 맨 뒤에 있는 사람들은 누가 적인지도 모르고 달려가기만 할 것 같았다.
“형. 괜찮겠어?”
“보다시피 우리에게 유리한 전투다. 저놈들은 숫자만 많지, 제대로 된 지휘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아. 아마 놈들은 우리와 싸우기 위해 달려오다 서로 자멸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저들이 플레이어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NPC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지휘 체계라는 건 그만큼 중요한 거니까. 하지만 지금 저들은 천마의 눈에 그저 오합지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우. 똑똑히 보거라. 본좌가 자랑하는 천마신교의 무사들이 얼마나 맹렬한지.”
천마는 선봉에 서서 칼을 높이 들었다. 그에 따라 무사들도 전부 무기를 꺼내 그의 명령만을 기다렸다.
“광풍진격으로 간다! 모두 적을 섬멸하라!!”
“우오오오-!!”
천마의 신호와 함께 무사들은 광풍진격을 펼쳐 무려 300만 명이 깔려 있는 대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적들이 온다!!”
“죽여라!!”
“우와아아-!!”
그에 따라 황실의 군대도 천마신교의 무사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건 미친짓이야!”
어쩔 수 없이 천마의 뒤를 따라나선 천강은 비명 소리를 내며 칼을 휘둘렀다.
콰콱-! 콰콰쾅-!
가장 앞줄에 있던 사람들끼리 부딪히면서 큰 굉음이 평야를 울렸다. 당연히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허공 위로 높이 날아올라 검강을 쏟아내는 천마였다.
“천마다!!”
“저놈만 죽이면 돼!!”
플레이어들은 도끼눈을 뜨고 천마에게 노골적으로 달려들었고, 인원이 한쪽으로 쏠리자 서로 발이 엉켜 넘어져 밟히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 기회를 천마신교 무사들이 놓치지 않고 잡아내어 돌진했다.
“크아악!”
“마, 막아!”
“야. 좀 잡아봐!”
플레이어가 아닌, 천마의 기억을 본 따 만들어진 천마신교 무사들의 강함은 대단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전열을 무너뜨리며 적들 안을 마음껏 헤저었다.
예상치 못 한 그들의 전투력에 놀란 플레이어들은 발버둥을 치며 도망쳐 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천강은 상상을 뛰어넘는 천마신교의 힘에 감탄했다.
‘정말 이대로 간다면 이기는 거 아니야?’
300만이란 적을 뚫어내고 퀘스트를 성공시킨다?이것만큼 역대급 레전드가 또 있을까.
“지존의 뒤를 따르라!”
“기마병이 온다!!”
“막아라!”
하지만 황실군도 가만히 당해 주고 있지 만은 않았다.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철갑으로 중무장한 기갑병들이 매서운 돌격으로 반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칼에도 잘 베이지 않는 그들의 단단함에 광풍진격을 이어 가던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그러자 뒤로 물러나 있던 플레이어들이 다시금 앞으로 나오면서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지존!”
그런 와중에 혼자서 전장 안을 날뛰며 활약하고 있던 천마.
하륜은 자신을 공격하는 적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고 그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본좌는 괜찮다. 다른 곳에 가서 무사들을 독려 하거라. 이대로 본좌는 놈들을 지나 황제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예, 지존.”
명령을 내리고 다시 적들에게 달려가려던 천마를 하륜이 불러 세웠다.
“지존. 잠시만!”
“음?”
푸욱-!천마가 몸을 뒤로 돌리는 순간, 하륜의 칼이 그의 배에서 뒤까지 관통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