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한의 컨셉충-85화 (85/140)

85화. 마지막 층으로 1

극한의 컨셉충 85화.

수백 명의 병사들이 애워싼 채 황궁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서 있던 대장이 큰 목소리로 전각 안에 있는 황제에게 소리쳤다.

“황제 폐하! 천마신교의 수장, 천마가 폐하를 알현하고자 합······!”

하지만 그런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천마가 아니었다.

“비켜라. 뭘 여기서 시간을 끌고 있어.”

“자, 잠깐! 이게 뭐하는 짓이냐!”

병사들은 전부 칼을 뽑아 황제의 허락도 없이 전각 안으로 들어가려는 천마를 막아 세웠다.

천마는 저 너머로 이 모든 걸 가만히 듣고 있을 황제에게 말했다.

“우리의 어색한 첫 만남부터 피를 봐야겠소? 아니면 어쭙잖은 겉치레는 전부 빼 버리고 원하는 걸 말하시겠소?”

이윽고 그 너머로 음침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자를 안으로 들이거라.”

그러자 병사들은 모두 칼을 집어넣고 천마에게서 물러났다.

끼이익-.

거대한 문이 열리고 전각 안이 천마의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 보이는 건 황좌에 앉아 있는 젊은 황제 와 그 옆을 지키는 호위대장 하나뿐이었다.

물론, 일반인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겠지만 천마는 그 외의 것도 볼 수 있었다.

‘참 많이도 모아놨군.’

천장부터 기둥, 사방에 있는 벽에도 무사들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애써 은신술을 써서 천마에게 들키지 않으려 했지만, 천마는 그들의 위치를 전부 파악해 두었다.

“그대가 천마로군.”

젊은 황제는 천마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의 옆에 있던 호위대장이 호통을 쳐댔다.

“뭣하고 있느냐! 어서 폐하께 예를 갖추거라!”

천마는 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 이놈이 끝까지!”

분개하여 칼을 뽑으려는 호위대장에게 황제가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됐다. 그만 하거라.”

“하지만 폐하! 저놈이 감히 폐하 앞에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지 않습니까!”

“강호의 무사들이란 그런 법이지. 검에 살고 검에 죽는 어리석은 놈들이니까. 그리고 우리 황실과 무림은 철저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공존하며 살아왔지.”

명나라와 강호의 관계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을 어기는 이가 있을시에는 먼저 어긴 쪽에서 해결을 해야 한다.

이것이 그 오랜 세월 동안 두 세력이 지켜온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그런 멍청하고 황당한 일이 가능했던 건 우리 선조들께서 너희들에게 큰 자비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분들이 무림을 박살내려 했으면 너희들이 살아 있을성 싶더냐?”

젊은 황제는 명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 당연히 황실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무림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터.

천마는 이미 오래 전에 이 얘기를 한 차례 황제와 나눈 적이 있었다. 왜 그걸 여기까지 와서 반복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짐이 듣기로 네가 무림인들을 통일했다고 들었다. 맞느냐?”

“뭐, 어느 정도는.”

“하여 짐이 널 여기로 부른 것이다. 지금까지는 선조들이 아량을 베풀어 너희 강호가 존속했을지 모르나, 이제는 아니다. 만일 짐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할 경우, 짐이 위대한 명나라 군대를 이끌고 너희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다.”

천마는 벌써부터 한숨이 나왔다.

이 철 없는 황제는 왜 그동안 강호와 명나라 황실이 공존할 수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다.

그는 그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을 뿐이다. 그러자 황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가 웃기느냐?”

“아니. 그때와 너무 똑같은 거 같아서.”

“뭐야?”

“잘 듣거라. 어린 황제여. 그동안 너의 선조들이 강호를 건드리지 않은 건 단순한 이유였다. 만약 그들과 부딪힌다면 이 나라가 망할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지.”

“······!?”

“이 중원은 수많은 외적의 침입을 받으며 나라가 멸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다. 제 아무리 명나라라고 해도 다를 것 같으냐? 그러나 너의 선조들은 외적의 침입이 있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황실에 당도하기도 전에 강호인들에게 말살을 당하기 일쑤였거든.”

강호와 관군이 서로 공존하며 암묵적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무림인들이 이 땅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명나라 황실이 그들을 통제하지 못 한다고 해도 그들은 외적이 침입할시에는 가문의 사활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막아냈다.

자신들의 터를 외적들에게 짓밟힐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유용함을 알기에 그동안 황실은 일부러 강호를 가만히 놔두었던 것이다.

“강호인들을 황실 발아래 두겠다고? 그랬다가는 너의 군대와 우리의 군대가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외적들이 그 틈을 노려 공격하겠지. 그렇게 명이 멸망하는 것이다. 황제라는 자가 숲을 보지 못 하고 나무만 쳐다보고 있다니. 어리석구나.”

천마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황제에게서 몸을 돌렸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황제는 이를 빠득 갈며 말했다.

“죽여.”

“폐하.”

“당장 죽여! 놈의 사지를 찢어 내 앞에 가져다 놓거라!”

“황명-!!”

황제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장에 대기하고 있던 무사들이 내려왔다.

천마는 이럴 줄 알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고약한 게임 같으니라고.”

위에서도 그리고 양옆에서도 달려오는 무사들.

천마는 가볍게 발로 땅을 때렸다.

콰아아앙-!!

“크아악!”

“커헉-!”

발을 한 번 디뎠을 뿐인데, 달려오던 수십 명의 무사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확실히 2층에서보다 더 힘이 강해진 느낌이다.

이 당시의 천마는 낙양 전투 때보다 더욱 수련에 증진해 발전했으니까.

황제는 깜짝 놀라 황좌에서 움찔거렸다.

천마는 그런 황제에게 경고했다.

“왜 선조들이 강호인들을 건드리지 못했는지 알겠느냐? 명나라의 군사력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한들, 천하오검이 작정하고 황제를 죽이고자 쳐들어왔으면 과연 너희들이 막을 수 있었을까?”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 황실의 군대를 우습게 보지 마라!”

“말이 되니까 네 잘난 선조들이 그토록 조심했던 것이다. 아무리 네가 황제라고 한들 신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면 큰 착각이다.”

황제는 더욱 발악하며 소리쳐댔다.

“뭐하고 있어!! 당장 죽여라!! 저놈을 당장 죽여!”

이번에는 바깥에 있던 병사들까지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활 시위를 당겨 화살을 쏘려 했지만, 천마가 손을 뻗자 무사들이 떨어뜨린 칼들이 궁수들에게 쏟아졌다.

“크아악!”

그 경지를 알아본 일부 병사들이 놀라 소리쳤다.

“허공섭물!?”

“아냐. 이건 이기어검이다!”

물체를 본인의 의지로 들어올리는 기술.

그것을 허공섭물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 기술로 검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면?

그것이 이기어검이라 불리는 경지에 속한다.

천마는 궁수들을 찌른 검들을 다시 불러들여 이번에는 그의 뒤로 달려드는 무사들을 찌르게 만들었다.

“커헉-!”

하지만 이렇게 하다가는 밑도 끝도 없이 놈들이 달려들게 뻔했다.

“차라리 이곳을 통째로 날려 주마.”

오랜만에 생긴 힘을 써볼 요량을 천마는 기를 한 가운데로 모여 들게 했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그의 두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 무엇이냐? 저놈이 지금 뭘 하는 게야!”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자 황제를 호위하고 있던 호위대장이 소리쳤다.

“폐하! 위험합니다! 여기서 피하십시오!”

“뭐야?! 짐은 이 나라의 황제다! 이곳이 짐의 거처이거늘, 짐이 어디로 간다는 것이냐!”

“폐하! 저자는 정말로 여길 통째로 날려 버릴 심산입니다. 자칫하면 폐하께서 휩쓸리실지도 모릅니다!”

호위대장은 점점 커지는 검은 소용돌이를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황제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무례를 무릅쓰고 억지로 황제를 황제에서 끌어내렸다.

“얼른 따라오십시오! 얼른!!”

“이, 이거 놔라! 황명이다!”

“지금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폐하!”

호위대장은 황제를 이끌고 전각 뒤편으로 도망쳤다. 그동안 병사들은 천마가 만들어내고 있는 소용돌이를 향해 화살을 쏘아댔다.

“놈을 막아라!!”

“가서 놈을 찔러 죽여!”

일부 병력은 긴 창을 들고 천마에게 달려들었으나, 일정 거리에 다다르자 그들은 소용돌이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화살도, 창도, 검도 먹히지 않는 총체적 난국!

어느덧 소용돌이는 높은 전각의 천장을 뚫고 궁궐 전체를 삼키려 들었다.

“이게 무슨 소란이더냐!!”

그때 때마침 등장한 것이 명나라 대장군 기맹이었다.

“대장군! 천마라는 놈이 지금 저 흉흉한 것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뭐, 뭐야? 천마?!”

대장군 기맹은 무림인 출신이어서 강호에 대해 속속히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천마라는 이름에 눈이 뒤집힐 뻔했다.

“처, 천마가 어찌 이곳에 있단 말이냐!”

“폐하께서 그를 이곳까지 부르셨습니다. 그러다 무슨 일인지 갑자기 놈이 저런 것을······!”

“이런! 모두 대피시켜라! 어서 여기서 나가야 한다!”

“대장군!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막아? 무슨 수로? 저자는 하늘의 악마라고 불리는 천마다! 이 땅에 있는 자들 중 누구도 저자를 이길 수가 없어! 도대체 황상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저런 악마를 여기까지 끌고 오셨단 말인가!”

대장군 기맹은 황궁이 날아가든 말든 병력을 뒤로 물려 그에 휩쓸리는 이가 없도록 했다. 하지만 그들이 대피하는 속도보다 소용돌이가 커지는 게 더 빨랐다.

콰아아아-!!

이윽고 거대한 소용돌이가 궁궐 이곳저곳을 빨아 들이며 닿는 모든 것들을 파괴해 버렸다.

그 소용돌이 안에 있던 천마는 깊게 심호흡을 한 뒤 그것들을 한꺼번에 터트렸다.

쿠와아앙-!!

번쩍이며 큰 폭발과 함께 사라진 소용돌이.

그 뒤에 남은 건 부서진 건물의 잔해들뿐이었다.

“이 정도 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원래대로라면 천마는 이렇게까지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 그냥 적당히 힘을 보여 주고 황궁 밖을 나오게 되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어차피 이것은 헬라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지 않은가.

헬라 그것이 뭔 생각으로 이런 세상을 만들어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천마는 이런 식으로라도 그녀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때려 주고 싶었다.

물론, 이게 좋은 한 방이 되었으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짓입니까, 강호의 왕이시어.”

소용돌이가 사라지고 나서 대장군 기맹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런 그를 보고 천마가 대답했다.

“황제에게 경고를 준 것이다. 본좌에게 감히 입을 놀리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

“황상께서 무림에게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기라도 하셨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 오랜 세월 동안 누구도 깨지 않은 우리의 암묵적인 약속을 말이다.”

기맹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의 소란으로 끝이 난 게 다행이군요.”

“네 말대로 이 정도에서 끝난 걸 다행으로 여기라고 꼭 황제에게 전하거라.”

기맹의 말대로 이 정도 선에서 끝난 게 어쩌면 다행이었다.

오랫동안 지켜온 약속을 깬다는 건 전쟁을 하자는 의미와 같으니까.

“본좌는 황실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아. 잘 알아듣는 선에서 끝났으면 좋겠군.”

“소장이 황제께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무림에서 몸을 담가 보았던 기맹이기에 천마에게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어떤 결과가 빗어지는지 무너진 황궁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천마는 황궁 내에서도 무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믿고 가지.”

천마는 이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원래대로라면 천마는 황제와 충돌하지 않고 성 밖을 나와 무사들을 대거 이끌고 와서 황궁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어야 한다.

그러나 천마는 그러지 않기 위해 이런 식으로 끝을 맺은 것이었다.

큰 전투를 원했을 헬라였겠지만, 천마는 이제 그녀의 뜻대로 움직여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천마가 황궁 밖을 이제 막 나설 때였다.

[혼돈의 탑 3층의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층의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마지막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오직 마지막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모험가는 단 한 명.]

[퀘스트 목표: 천마신교의 수장, 천마를 죽이십시오.]

“뭐······?”

헬라는 더 큰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