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남궁현
극한의 컨셉충 82화.
“드디어 혼돈의 탑 2층의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천마신교의 패배를 점쳤던 전투! 그러나 보란 듯이 천마는 10배나 많은 숫자를 극복하고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과연 혼돈의 탑 2층에서의 전투는 어떨지!”
혼돈의 탑 1층에서의 시험이 끝나고 낙오된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2층으로 올라가게 되었다.그들은 무사히 다음 층으로 올라왔다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혼돈의 탑이 보여 주는 홀로그램을 통해 천마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혼돈의 탑에서 보여 준 영상에서 왜 천마가 이 싸움에 휘말리게 되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존재인지도요.”
“그의 무자비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이었으나, 그럼에도 그는 무림 전체를 통일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서는 무림맹의 힘은 얼마나 막강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요즘 채널에서는 온통 혼돈의 탑 얘기 밖에 없었다.
나라에 무슨 큰일이 생겨도 바실레이아 온라인이 이벤트를 한번 하게 되면 전부 다 잊어 버리고 게임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점점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바실레이아에 매일 들어간다는 게 문제였다.
더 이상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금.
바실레이아 온라인은 인간에게 모든 것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전투 장면 보셨습니까? 그것을 광풍 진격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무지막지한 전법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천마를 필두로 하는 진격이라. 정말 화면으로만 봐도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먹힐 줄은 몰랐어요.”
“그만큼 천마신교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이죠. 아마 이번 무림맹과의 전투에서도 크게 승리를 이뤄낼 겁니다.”
“글쎄요. 이번에도 똑같은 게 먹힐까요? 현재 무림맹이 모으고 있는 병력의 숫자가 말도 안 되게 높습니다. 바실레이아 사상 최초로 수백만 명이 운집한 군대가 완성될 가능성이 큽니다.
”수백만 명이 모인 군대!
바실레이아 전쟁 역사 중에서 가장 많았던 숫자가 180만 명이었다. 플레이어들과 NPC들이 합친 숫자인데, 이번 전쟁은 그보다 더 높은 기록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누구의 승리가 될지는 함부로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적어도 150만 명 이상의 군대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무림맹에서만 말이죠. 하지만 천마신교도 분명 적잖은 숫자의 군대를 갖게 될 겁니다.”
패널들은 아직 혼돈의 탑에서 이렇다 할 소식이 넘어오지 않아 여러 가지 추측만을 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전투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열심히 토론했다.
“이번에 무림맹의 군대 지휘관이 된 남궁현이란 인물은 무림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사라고 합니다. 그 말은 천마의 힘에 필적할 수도, 어쩌면 그에 능가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아직 남궁현이란 인물이 플레이어인지, 아니면 NPC인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확실한 건 플레이어가 특정 역할을 맡게 되면 그 역할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과 능력치로 싸워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현재 천마신교의 수장인 천마는 플레이어가 아닌 NPC라고 합니다.”
새로운 의견에 패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 확실한 정보입니까?”
“천마신교의 천마가 NPC라고요?”
“저는 당연히 플레이어인 줄 알았는데.”
“저도 믿겨지지 않지만, 그의 손에 죽은 플레이어들 말로는 그가 NPC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그 말에 패널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움직임과 과감한 전략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겁니다.”
“예. 저도 솔직히 긴가민가 했어요. 그런 전략적 움직임을 보여 준다는 게 쉽지가 않으니까요. 그래서 플레이어가 아닌, NPC가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 그랬군요.”
그들의 말에 TV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도 그 말에 공감했다. 10배가 넘는 병력 차이를 단숨에 뒤엎어 버리는 건 역시 플레이어거가 아니었단 말인가.
어떤 이는 그럼 그렇지 하며 넘겼고, 또 어떤 이는 남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그들은 당연히 BJ 천마가 천마신교의 천마 역할을 하고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이로 인해 커뮤니티는 한창 논란이 들끓었다.
어떤 이는 천마에게 실망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회원은 그럼 도대체 천마는 어디에 있냐는 거냐며 그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런 논란도 금방 종결이 되었다.
[방금 오피셜 떴다. 천마형이 그 천마 맞다는데?]
-뉴튜브 보고 오는 길인데, PD가 공지 올렸더라. 천마형이 천마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맞다고.
-홀리쒯! 진짜임?
-나도 보고옴
-ㅗㅜㅑ······. 그 말은 전투에서 보여줬던 게 전부 천마형의 전략이었다는 거네.
-도랐따
논란이 한창 뜨겁게 가열되자 천강은 채널 공지를 통해 천마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려 주었다.
어차피 지금 알려 준다고 해서 위험하거나, 불이익을 받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다시 한번 방송국 채널들은 천마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걸 속보로 알렸고, 커뮤니티 회원들 중 천마를 욕하던 이들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오히려 부족한 건 자신의 믿음이었다는 걸 고백하는 회원들의 숫자만 늘어날 뿐이다.
그렇게 천마의 인기는 여전히 식을 줄을 몰랐다.
* * *
“저들인가?”
“그렇습니다, 지존. 도합 250만 명에 달하는 대군입니다.
”진천과 함께 상대를 정탐하러 온 천마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본진의 크기에 고개를 저었다.
“어이가 없군. 아무리 게임이라도 그렇지, 이런 터무니 없는 숫자를 들이밀다니.”
그는 혼잣말로 그리 중얼거리며 진천에게 물었다.
“우리 천마신교에서 부릴 수 있는 병력은 몇인가?”
“50만입니다.”
“생각보다 많군.”
“하지만 적은 우리의 5배가 넘는 병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 우리가 언제 숫자 따지고 전투를 했던가?”
천마의 말에 진천이 미소를 지었다.“지존의 말씀대로 우리가 적보다 머릿수가 많았던 적이 거의 없긴 했습니다.”
“그래. 그럼에도 우린 여기까지 왔어. 이런 식으로 또 이 전쟁을 겪게 될 줄은 솔직히 몰랐지만.”
낙양 전투.
이 전투에서 천마는 많은 걸 얻으면서 동시에 많은 걸 잃게 된다.
여기 있는 진천부터 시작해 수많은 부하들이 전투 중 사망하게 되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것을 되풀이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만큼은 자네의 목숨을 본좌가 꼭 살려 주지.”
“···예?”
“그전에 본좌가 직접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신곤과 진천은 이곳에 남아 있거라. 본좌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으니까.”
천마는 그 말만 남기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지, 지존!”
“혀엉!”
진천은 천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천강에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지존을 뭐라고 불렀느냐?”
“예? 지존이라고 불러 드렸는데요?”
“으음. 그랬던가. 아무튼, 넌 여기서 뭐하고 있느냐. 어서 지존을 따라가지 않고!”
“아니. 저렇게 폴짝폴짝 뛰어서 가는데 제가 어떻게 따라잡아요.”
“넌 저분의 그림자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저분의 뒤를 지켜야 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천강은 천마의 뒤를 따라갈 생각이었다.
“젠장. 그놈의 퀘스트만 아니었으면 콱-!”
눈을 마주칠 때마다 잔소리를 아끼지 않는 진천이 얄미웠으나, 천강은 불경을 외우며 속으로 화를 삼켰다. 그리고 천마를 따라가려는데······
“뭐야. 어디 갔어?”
천마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 * *
낙양으로 모여든 무림맹의 군대.
250만 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숫자가 모였음에도 무림맹의 무사들은 이것을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도 결국 혼돈의 탑이 만들어낸 시스템 NPC에 불과하니까.
무려 250만 명의 군대가 모여 있어서 그런지, 왠만한 도시보다도 더 큰 막사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이 많은 이들을 총 지휘하는 지휘관이 있었다.
천하오검 중 하나인 청뢰살검 남궁현.
그는 자신의 검을 앞에 둔 채로 조용히 명상에 빠져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밤중이 되어 그는 조용히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이 귀한 밤중에 손님이라.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몰랐다는 건 내가 잘 아는 그놈이 손님으로 왔나 보군.”
놀랍게도 남궁현 앞에 서 있는 건 천마였다.
사방에 적들이 깔려 있음에도 천마는 은밀히 잠입하여 남궁현이 있는 막사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
“보다시피 주변에 오합지졸들만 깔려 있어서 말이다. 그리고 본좌의 기척을 느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아 마땅하다.”
“오만한 놈. 네놈은 항상 그렇게 오만함에 젖어 살았지. 난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네놈이 언젠간 무림맹의 등 뒤에 비수를 꽂는다는 걸.”
“그럼, 본좌가 네 무사단에 있을 때 목을 치지 그랬나.”
“그러려고 했지. 헌데, 네놈이 쥐새끼처럼 빠져 나가 기회를 놓쳤지만.”
무림에서의 남궁현과 천마는 오래 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다.
고아였던 천마는 무림맹이 키우는 살수단에 강제로 끌려가 그곳에서 극한의 훈련을 받아왔다.
그러다 남궁현이 이끄는 무사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의 인연이 지금은 악연으로 변질되었다.
“무림맹은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본좌가 칼을 든 건 썩어낸 걸 도려내기 위함이었어.”
“그래서, 설교라도 하려고 여기까지 행차를 하셨는가?”
“아니.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리고 방금 확인이 다 됐어.”
“어떤 걸?”
“네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할 필요가 있었거든.”
남궁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천마에게는 그만의 의도가 있었다.
그는 남궁현이 특정 플레이어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판별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던 것.
만약 남궁현을 조종하는 것이 플레이어라면 천마는 전략을 다르게 바꿔야 한다. 그러나 예전의 남궁현과 똑같다면?
이미 이 전투를 어떻게 해야만 승리하는지 알고 있으니, 구태여 어렵게 전략을 바꿀 필요도 없다.
“본좌는 내일 다시 올 것이다. 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역시,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리고······.”
남궁현은 앞에 있던 검을 뽑아 천마가 있는 쪽으로 휘둘렀다.
콰콰쾅-!!막사를 반으로 가르는 검강이 천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누가 그냥 보내 준다고 했지?”
남궁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이었다.
“무사단에서 널 죽이지 못 한 잘못이 크니, 그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겠다. 여기서 네놈을 죽여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는 게 낫겠지.”
“언제부터 그렇게 논리적인 사람이 됐나? 항상 명예로운 무사의 싸움을 주장하던 네가 말이다.”
“천하오검이나 되고 보니, 딱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
“부처님이 울고 갈 깨달음이로군.”
스가가각-!!또 다른 검강이 천마의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며 뒤에 있는 막사를 덮쳤다.
“한눈 팔 시간이 없을 텐데. 난 네놈을 여기서 죽일 것이다.”
당초 계획과는 조금 일이 틀어졌다.
“내일 본좌와 여흥을 즐기며 싸울 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성격이 급하군.”
“말하지 않았으냐.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겠다고. 이 전투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네놈이 만들어낸 혼란이 어줍잖게 이어지고 있던 무림맹의 균형을 무너뜨렸어. 네놈을 토벌하고 나면 이제 서로 싸우느라 바빠지겠지.”
“지금이라도 남궁세가의 병력을 아껴 무림일통을 이뤄내 보겠다는 것이냐?”
“그래. 불을 붙였으니, 끝을 봐야하지 않겠느냐. 더 이상 예전의 무림맹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남궁현의 말대로 현 무림은 천마라는 존재의 등장으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균형이 무너졌다. 즉, 힘이 있는 가문이라면 무림일통을 이뤄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궁현도 무림일통에 야망이 있었다. 그렇기에 제 발로 기어 들어온 천마를 붙잡아 전쟁을 끝내고 군사를 아껴 무림일통을 이뤄내려는 것이다.
“차라리 검을 버리고 투항하거라. 그럼,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죽이지는 않으마.”
이미 천마의 주변으로 복면을 한 무사들이 깔렸다.
남궁현이 직접 키우고 이끄는 청뢰검대가 주인의 명령을 받잡고자 나타난 것이었다.
천마는 길게 숨을 들이내쉬며 검을 잡았다.
“오랜만에 진한 피맛을 보겠구나.”
그리고 그는 망설임 없이 남궁현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