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전투 시작
극한의 컨셉충 80화.
“천마와 그의 광신도들은 간악한 존재들이다! 약탈을 일삼고 학살을 일삼으며 이제 우리가 사는 이 땅을 찬탈하고자 하니, 어찌 그를 두고만 볼 수 있겠는가!”
천마신교가 한창 전쟁 준비에 돌입하고 있을 때, 30만 병력을 갖게 된 천우회는 병사들의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중이었다.
“모두 버러지에 불과한 놈들이다. 배운 거라고는 약탈 밖에 없는 놈들이, 정도를 걷고 있는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들 중 단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다 죽여라!”
탑에 들어오자마자 무림맹에서 파견한 무사들이 되어 버린 플레이어들은 이번 전투가 굉장히 격렬해질 것임을 깨달았다.
“와. 이게 다 몇 명이야.”
“수십만 명은 되겠는데?”
“대전투인가? 나 한 번도 대전투 같은 거 해 본 적 없어!”
“개쩔겠다. 순삭 당하면 어떡하지?”
일대일 전투는 몰라도, 이렇게 수십만 명이 모여 싸우는 전쟁은 플레이어들에게 낯설기 마련. 그들은 긴장감과 흥분감으로 가득 찬 채 전투가 벌어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전투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아 시발 난 뭔데 왜 말똥 치우는 역할이냐?]
-다른 사람들처럼 화끈하게 싸울 줄 알았더니, 말똥 치우는 하인이 됐음 ㅋ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
-난 짐가방 옮기는 표사인데, 전혀 서주랑 관련 없는 지역에서 노는 중. 개빡침
-난 뜬금없이 상인 걸렸길래 서주로 이동하는데 산적 만나서 뒤짐
서주성과는 동 떨어진 곳에서 역할 놀이를 하게 된 플레이어들 숫자가 굉장히 많았다.
혼돈의 탑에 들어온 플레이어들 숫자는 수천만을 넘어섰다. 당연히 그들 전체가 전투에 참여할 순 없을 터.
대신, 혼돈의 탑은 층수가 지날 때마다 탈락자들을 선별해 탑 밖으로 쫓아낸다.
즉, 주어진 퀘스트에 실패하면 방출이 된다는 건데, 아예 퀘스트를 받지 못 한 플레이어는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가 있다.그
걸 알기에 플레이어들은 불평을 해도 불필요하게 서주로 가려 하지 않았다. 또한 서주의 백성으로 역할 놀이를 하게 된 플레이어들도 구태여 전투에 참여하려 들지 않았다.
“30만 명과 3만의 전투입니다. 당연히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길 거라는 예상이 압도적이나, 천마라면 뭔가 변수를 만들어낼 거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각 방송 채널에서도 이번 퀘스트를 크게 다루며 시청률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생중계가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시청자들은 혼돈의 탑에 대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그 채널에 빠져 들었다.그렇게 전쟁의 날이 다가왔다.
* * *
“정렬하라!!”
“정렬!!”
30만 대군이 광활한 평야에 모인 가운데, 그들이 발을 디디는 것만으로도 땅이 울렸다.
천우회 가주와 장로들은 병력을 정렬시켰고, 반대편에 있는 천마신교 무사들을 향해 함성을 질러댔다.
“놈들은 이제 끝이다!!”
“무림맹의 무서움을 이 자리에서 보여 줄 것이다!!”
한창 무섭게 고함을 치고 있는 천우회 무사들을 바라보던 천마와 그의 무사들.천마신교 무사들은 압도적인 숫자에 겁을 먹은 게 눈에 보였다.
“원래는 이런 싸움이 아니었어.”
“응?”
“서른 명의 무사들로만 질풍 같은 속도로 적을 쓸어버렸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대부분이 겁에 질려 있어. 거기다가 상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지.”
“그럼, 이길 수가 없는 거야?”
“다른 무사들이었다면 패배했겠지. 그러나 본좌가 이끄는 천마신교의 무사들이라면 제 아무리 오합지졸이라도 능히 승리를 취할 수 있다.”
천마의 말에 천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 전쟁을 이긴다는 뜻일까.
“진천.”
“예, 지존.”
“지금 출정 한다.”
“존명!”
천마가 진천과 함께 무사들이 있는 쪽으로 내려가려 하자 천강이 말했다.
“형. 지금 바로 가는 거야?”
“그래. 본좌가 앞장서면 저들은 자연스레 본좌의 뒤를 따라오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아우도 본좌의 뒤를 바짝 쫓아오너라.”
“어······ 근데 나 방패가 없는데.”
혼돈의 탑에 들어오면 그 역할에 맡는 아이템을 갖게 되고 능력치가 조정된다.
천마도 이곳에 와서 저번보다 힘이 훨씬 강해졌다는 걸 느꼈다. 물론, 무림에서의 진짜 천마보다는 많이 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본좌의 힘이 완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들 사이로 날뛸 정도의 시간은 된다. 그리고 아우. 본좌의 곁을 지키던 신곤은 아주 강인한 사내였다. 단단한 몸으로 검마저도 튕겨낼 정도였지.”
“정말? 근데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아우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이 탑은 본좌의 기억을 본 따 만들어낸 것이다. 본좌가 무림에서 겪었던 일을 이 탑이 보여 주고 있는 거지.”
“뭐······?”
천강은 넋이 나간 얼굴로 무사들과 함께 뛰어 내려가는 천마를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천마의 기억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이렇게 얼을 빼 놓을 시간이 없었다. 벌써 천마는 무사들 앞에 서서 적들을 향해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야. 이거 어떡하냐.”
“꼼짝 없이 뒤지겠는데.”
“아 시발 2층 한 번 가 보나 했는데, 1층에서 아웃 당하게 생겼네.”
천마는 무사들의 말이 귀에 들렸다. 그리고 그들을 스윽 둘러보며 말했다.
“다음 층으로 가고 싶은가?”
“그, 그건 당연하죠.”
“그런데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
솔직한 무사들의 대답에 천마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면 본좌의 뒤만 보고 따라오너라. 그럼, 승리할 것이다.”
천마는 그 말을 남기고 칼을 뽑은 뒤, 적들을 향해 돌진했다.“따르라!!”
“오오오-!!”
천마는 쏜살 같이 적들에게 달려갔다.
그가 먼저 공격할지는 몰랐는지, 천우회 무사들도 모두 무기를 뽑아 다가오는 천마를 상대하려 했다.
콰콰콰콱-!!
그러나 천마의 검이 가장 앞줄에 있던 무사들을 일(一)자로 그어 버리며 방어벽을 뚫어 버렸다.
“주, 죽여!”
“막아!”
스거걱-!!섬광 같은 그의 일격이 천우회 무사들 안을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그 일격에서 퍼져 나가는 검강은 수십 명의 몸을 단숨에 잘라 버리기까지 했다.
“한꺼번에 쳐라!!”
수많은 무사들이 다시 한번 천마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지존의 뒤를 따르라!”
“멈추면 안 된다! 지존의 뒤만 보고 따라가면 된다!”
천마신교가 자랑하는 광풍 진격!
이것을 쓰기 위해서는 가장 선봉에 서고 있는 사람이 멈추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려야 한다.
하지만 전투를 하다 보면 앞이 막힐 때가 있는 법. 그래서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고 해도 이 전법을 함부로 따라하지 못했다.
오직 어떤 벽이라도 뚫고 넘어설 수 있는 천마만이 가능하다는 것.
그의 뒤를 따르는 천마신교의 무사들은 흡사 폭풍우처럼 지나가는 곳마다 휩쓸어 버렸다.
“뭣들 하고 있는 거야!! 왜 이걸 못 막아!?”
몇몇 플레이어들은 천우회에서 나름 직책이 있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전쟁을 치르기 위해 별다른 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무려 30만과 3만의 싸움이다. 누가 봐도 이 전투의 승자는 30만의 병력을 가지고 있는 천우회였다.
하지만 지금 거대한 폭풍이 그들의 진영을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봉에 서 있던 천마는 단 한 숨도 돌리지 않고 끝없이 질주만 해댔다.
이 병력들 끝에 있을 본진에 검이 닿을 때까지 말이다.
“으어어억-!”
“으, 으아악!”
쉬지 않고 두 발을 움직이며 검무를 쏟아내고 있던 천마. 그는 오랜만에 느끼는 이 날아갈 듯한 가벼움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그의 뒤로 따라오는 3만의 무사들은 이를 악 물고 발을 놀리는 중이었다.
“이, 이거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 거야?”
“이러다가 스태미나 딸려서 죽는 거 아니야?!”
“말할 시간 있으면 달리면서 칼이나 휘둘러!!”
이 정도로 빠른 템포의 전투는 처음 경험해 보는 거라 플레이어들으 당황했다.
그리고 그들은 왜 자신들이 막히지 않고 질주를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그 이유는 간단했다
.
가장 앞에 있는 천마가 먼저 적을 흔들어 놓으면 그 뒤를 따르는 천마의 충실한 부하들이 그들을 어지럽혀 놓는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방어가 허술해지고 균형이 무너져 그 뒤를 따라오는 무사들에게 쓸려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주님! 놈의 진격이 너무나도 빠릅니다! 계속해서 진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천우회의 가주, 진사평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30만의 대군을 내려다보며 탄식을 터트렸다.
“어떻게 이럴 수가······. 그저 하룻강아지에 불과한 줄 알았던 놈이, 실은 은둔해 있던 범이었단 말인가!”
가주의 말에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서로에게 말했다.
“이 미친놈이 지금 뭐라는 거야.”
“설마, 우리가 지는 거야?”
“이걸 진다고?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야.”
무려 30만 대군이 대치하고 있었지만, 정확히 한 가운데를 송곳처럼 뚫고 들어오는 3만의 병력을 막아내지 못했다.
아무리 큰 나무라고 해도 작은 송곳으로 끝까지 찌른다면 그 뒤까지 뚫리는 법.
그리고 이 30만 명의 군대 뒤에는 가주가 있는 본진이 있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가주가 있는 곳까지 당도하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가주님. 이대로라면 이곳이······!”
“알고 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이제 이곳은 저 도적들에게 넘겨야 한다. 천우회의 명예와 무림맹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그럴 순 없다!”
“하, 하지만 가주님!”
“닥쳐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막아! 우리의 병력은 저들보다 10배는 더 많으니까!”
진사평의 명령에 사방에 퍼져 있던 무사들이 본진 쪽으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본진을 조금 뒤로 물려 어떻게든 거리를 벌려 보려 했다.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리던 천마이지만, 그에게는 이미 저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잔머리를 쓰는군. 그때와 마찬가지로.’
무림에서 천우회와 전투를 했을 때도 지금과 같은 양상이었다.서른 명의 무사들과 함께 광풍 진격을 이어가며 3,000명의 병력을 뚫어 놓았다. 그때도 천우회의 가주는 뒤로 물러나면서 어떻게든 천마를 막아 보려 했으나 무의미한 짓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같을 것이다.’
천마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이 전쟁을 길게 늘어놓을 필요가 없으니까.
“뭐, 뭐야.”
“속도가 더 올라갔어.”
“모, 못 따라가겠잖아! 으아악!”
천마가 속도를 높이면서 자연스레 낙오자가 생겼다. 어떤 이는 발을 접질러 넘어졌고, 숨이 차올라 더는 따라가지 못 해 제자리에 쓰러져 있다 칼에 맞아 죽는 무사들도 늘어났다.
“헉헉-! 혀, 형! 가, 같이 가!”
천강도 숨을 헐떡이며 열심히 천마의 뒤를 따랐다.
“진천.”
“예, 지존.”
그에 반해 아주 편안한 상태로 뒤를 따르고 있던 진천은 천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부터는 본좌가 혼자 하겠다. 뒤를 맡아라.”
“존명!”
천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천은 발걸음을 멈추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멈춰라!!”
“히익!”
“으아아!”
갑작스럽게 돌진이 멈추면서 무사들이 서로 엉켜버렸다.
그러나 진천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무너진 균형을 다시 복구시키며 몰려오는 적들을 막아냈다.
그러는 동안 천마는 번쩍 날아올라 방패벽을 만들어 놓은 방어진을 벗어나 가주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나, 날았어?”
“이, 이쪽으로 온다!”
콰앙-!!
천우회 가주가 있는 곳에 착지한 천마는 모아 두었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던 얼굴을 마주했다.
“천우회 가주, 진사평. 그 얼굴을 이렇게 또 볼 줄은 몰랐구나.”
믿었던 마지막 방어선까지 뚫린 것을 보고 진사평은 단념한 듯 칼을 뽑아들었다.
“난 네놈을 처음 보는데.”
“그렇겠지. 누구도 이런 식으로 우리가 재회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유언은 그게 끝이냐? 모두 쳐라!”
진사평은 명예로운 무사의 대결을 택하기 보다는, 부하들을 시켜 천마를 없애는 것을 선택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천마.
그는 다시 깊게 심호흡을 하며 진사평에게 말했다.
“단숨에 끝을 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