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전쟁 준비
극한의 컨셉충 79화.
“탑 안에서는 철저하게 방송 송출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대신, 녹화는 할 수가 있게 해 놓았는데요? 아무래도 다른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고 실시간 위치를 파악해 악의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막아 놓은 것 같습니다.”
“정말 역대급 이벤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천마라는 BJ가 세상에 나타난 이후, 정말 바실레이아는 초유의 사태를 계속해서 겪고 있습니다.”
“무협의 세계! 그동안 판타지적인 세상에 질렸다면, 이젠 혼돈의 탑으로 무협의 세계를 즐겨 보세요! 무한한 재미와 넘치는 스릴감까지! 모든 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혼돈의 탑이 공개되고 나서 탑 안으로 들어간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그야 말로 폭발적이었다.
상상도 못 한 탑의 정체.
그것은 바로 판타지 세상이 아닌, 무협의 세상이었다.
지정자가 천마라고 했을 때부터 여러 가지 추측을 내놓았던 플레이어들은 그야 말로 뒤통수를 맞은 격!
“일각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벤트라고 욕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바실레이아가 보여 준 세계관과는 너무 다른 세상이니까요. 더군다나 무협에 대해 전혀 알지 못 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무협과 친근한 국가들은 이 이벤트를 반길지 몰라도, 무협이란 걸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에서는 혼돈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혼돈의 탑이지 않겠습니까? 전 무협 세계가 혼돈의 탑에 나타났을 때 가슴이 벌렁 거리더라고요. 그와 동시에 혼란스럽고요. 혼돈의 탑에 딱 어울리는 이벤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TV 방송에 나온 패널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실제 통계를 봐도 80%가 넘는 유저들이 현재 이벤트가 마음에 든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무협에 대해 전혀 알진 못 해도 그 세상이 가져다주는 신비함에 빠져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메인 퀘스트는 당연히 이것이겠죠? 천마신교가 세력을 넓히는 걸 막아야 합니다. 그에 따라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각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어떤 플레이어는 마을 주민이 되었다고도 하고, 또 어떤 플레이어는 이번 전투와 전혀 상관없는 장소에서 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 뜻은 이번 퀘스트가 끝나면 다음 퀘스트로 이어진다는 것이겠죠?”
수천만 명이 참가한 혼돈의 탑 퀘스트다. 그에 따라 나눠진 역할도 참 다양한데, 전혀 퀘스트와 상관이 없는 마을 주민이 되거나 아예 서주와는 동 떨어진 곳에서 시작하는 플레이어도 있었다.
그러나 참여하는 플레이어들 숫자가 많은 만큼, 어마어마한 전투가 될 것이라는 건 틀림 없는 사실이었다.
“오랜만에 수백만 명이 한 곳에 뭉쳐 싸우는 걸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정말 기대가 됩니다.
”수백만 명이 한 장소에서 싸움을 하는 그 진풍경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뿐. 이번 퀘스트의 핵심인 천마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맞습니다. 벌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천마를 찾아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위치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각 방송국에서도 천마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고, 플레이어들도 천마를 찾고자 열심히 움직였다.
누군가는 천마를 죽여야만 퀘스트를 성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천마신교가 서주성 전투에서 승리하는 걸 막는다면 정파 쪽 무사가 된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퀘스트를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패배한 사람들은 탑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 탑의 시스템이다.천마가 이번 서주성 전투에서 패배하면 자동으로 탑에서 탈락이 된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예상하고 있죠. 천마신교의 지존, 천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건 BJ 천마일 거라고. 다음 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그를 잡아야 하고, 또 누군가는 그를 지켜야 하는, 정말 피 터지는 싸움이 될 겁니다.”
* * *
“흠······. 여기도 오랜만에 보니 감회가 새롭군.”
천마는 자신을 따르는 무사들과 함께 임시 거처로 오게 되었다.
이곳에 오니 옛 향수가 떠오른다.
여기서 부하들과 함께 술잔을 나누며 천하를 그들의 발 아래 놓을 것을 맹세했었다.
그때 맹세를 나눈 사람들 중 대부분이 전투 중에 죽었으나, 그들의 뜨거운 열정만은 천마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지존. 오셨습니까.”
임시 거처에 들어오자 그를 맞이하는 것은 바로 진천이었다.
‘이 친구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군.’
단순히 천마의 힘이 강하다고 해서 삽시간에 세력을 넓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른 체계적인 전략이 필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두뇌 역할을 진천이 했었다.
‘하지만 이 친구도 기습을 맞아 죽고 말지.’대업을 눈앞에 두고 진천은 목숨을 잃었다. 그때 그가 피묻은 손으로 천마를 꼭 붙잡으며 반드시 대업을 이루라는 말을 남겼던 것을 천마는 아직도 기억한다.
“지존?”
천마는 말 없이 진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헬라라는 요망한 시스템이 만든 허깨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천마는 그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고맙다.”
“······?”
영문을 몰라 하던 진천은 헛기침을 한번 뱉고 나서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현재 서주에 집결하고 있는 무사들의 숫자가 심상치 않습니다. 무림맹에서 파견을 한 것인지, 수십만 명이 넘는 병력이 천우회로 모이는 중입니다.”
구파일방의 일원인 청성파에 속해 있는 천우회.
그들은 서주성에서 뿌리를 내린 세력으로 구파일방의 이름을 등에 업고 지낸다.
천마가 서주성에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 천우회를 고른 것도 있지만, 천우회의 위에 있는 구파일방에게 도전장을 내기 위함도 있었다.
“수십만이라고?”
“예, 지존.”
근데 뭔가 숫자가 뻥튀기 되도 한참 뻥튀기 된 것 같았다.
‘내 기억으로는 3000명이었는데.’
천마신교에 있는 30명의 무사들과 함께 3000명의 적을 쓰러뜨린 것이 첫 업적이었다. 하지만 3000명에 불과하던 숫자가 수십만으로 늘어났다.
‘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건가.’
이건 천마의 기억임과 동시에 하나의 역할극이다.
누가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는 모른다. 지금 천마의 눈앞에 있는 진천도 어떤 플레이어의 역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무사들의 숫자는?”
“총 3만입니다.”
3만이라.
이 정도면 천마신교가 탄탄하게 완성된 수준이지 않던가. 물론, 문파들간의 싸움은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느 쪽이 더 훈련이 잘 되어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법.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한들 오합지졸들이 모이면 아무짝 쓸모가 없다.
“적들의 숫자는 대략 30만쯤이 되겠군.”
“아마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3만과 30만의 싸움이라.
그럼, 다른 플레이어들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도 이 전투에 참여를 하게 되는 것일까?
“저기······ 죄송한데, 이게 다 무슨 소리죠? 그러니까 우리가 3만의 병력으로 30만의 군사와 싸운다는 얘기입니까?”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천강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러자 진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지존의 허락도 없이 입을 열다니. 네놈이 미쳤구나. 너는 그저 지존의 곁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
“······.”
매섭게 진천이 다그치자 천강은 기가 팍 죽었다.
그런 천강의 모습에 천마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뭘 그렇게 사납게 대하는가. 신곤도 우리의 중요한 일원이거늘.”
“하오나, 저놈이 감히 지존의 면전에서 허락도 없이 발언을 하였습니다. 어찌 두고만 보겠습니까?”
진천이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걸 천마는 잠시 잊고 있었다. 원리원칙이 딱 정해져 있는, 참으로 보수적인 사람이다.
딱딱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이런 사람이 있어야 신교가 균형을 이뤄 가는 법이다. 질서라는 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거니까.
“아무튼, 적들은 우리가 온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니, 저들이 더욱 힘을 합쳐 견고해지기 전에 공격할 것이다.”
“존명!”
천마는 부하들과 함께 막사 밖으로 나갔다.
천마와 함께 싸우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3만의 병력을 마주하고자 함이었다.
“오. 저기 봐!”
“천마님이다!”
천마가 예상했던 대로 거사에 참여할 무사들 대부분이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들은 천마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웅성댔다.
그러자 진천이 발로 바닥을 때리며 무섭게 소리쳤다.
“모두 정숙하거라!!”
그의 목소리에 담긴 힘이 저 멀리까지 뻗어 나가면서 3만 명의 무사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진천이 말을 이었다.
“천마신교의 지존이시다! 모두 예를 갖추거라!”
그 말에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저절로 무릎이 굽혀지고 고개를 숙였다.천
마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엣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렇듯 많은 무사들을 앞에 두고 출전식을 했던 게 언제였던가.
“지존.”
시끄러웠던 주변을 일순 고요하게 만든 진천이 뒤로 물러나면서 이제 천마가 발언을 할 시간이었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수백 번도 더 해 본 일이지 않던가.
“모두 일어나라.”
그의 명령에 플레이어들은 이번에도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나졌다.
“본좌가 천마신교를 세운 것은, 이 천하의 어지러움을 잠재우기 위함이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이 될 것이며, 곧 온 천하를 뒤엎게 될 것이다.”
천강은 3만 명의 무사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그런데 천마는 당연하다는 듯 그들 앞에 서서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우리의 불꽃을 못 마땅하게 여긴 정파의 무사들이 지금 서주성에 밀집해 있다. 그들의 숫자는 수십만! 우리의 열 배가 넘는 병력이다.”
“······!”
천마의 말에 무사들이 당황해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뭐라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이 열어지지 않았다.
천마의 연설이 끝날 때까진 그들은 단 한 발자국도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저들의 숫자가 많다고 걱정하지 말거라. 전쟁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무림 최강의 무사들이다. 본좌가 항상 너희들보다 앞에 있을 것이니, 그저 본좌의 등만 보고 따라오너라. 그럼, 승리할 것이다!”
“우오오오-!!”
천마의 연설이 끝나자 무사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천마는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굳이 이걸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냥 여기서 패배한다면 천마는 자동으로 탑에서 나가게 된다. 하지만 천마는 왠지 이 세계에서 발을 떼고 싶지가 않았다.
악몽 같은 경험도 있었지만, 이렇듯 피가 끓는 경험도 하게 되는 것이 무림이다.얼마나 이 세계를 그리워했던가.
비록 이것이 헬라가 만들어낸 거짓 세상이라고 해도 지금 천마에게는 여기가 곧 현실이었다.
“지존. 준비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또한 자신을 믿고 따르며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왔던 부하들의 모습을 보고 그냥 놔두고 갈 수도 없었다.
저번에는 이들의 목숨을 지키지 못했지만, 여기서라도 저들을 지켜 지난날의 잘못과 미안함을 풀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후······. 그래. 본좌가 이번에는 네놈 장단에 조금 놀아나 주마.”
천마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헬라에게 말했다.“하지만 장난이 심하면 본좌도 가만 있지만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