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영웅의 마음
극한의 컨셉충 75화.
“탈도 많고 참 이런저런 논란도 많았던 글로벌 퀘스트가 드디어 마무리 되었습니다. 생각 외로 퀘스트가 빠르게 클리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현재 바실레이아 대륙은 퀘스트의 후유증이 남아 있어 많은 곳이 황폐화 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륙의 영웅이 어둠의 마법사를 물리쳐 준 것으로 만족한다며 오히려 기뻐하고 있습니다.”
“대륙의 영웅, 천마! 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떤 즐거움으로 플레이어들을 즐겁게 해 줄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글로벌 퀘스트가 끝난 직후, 모든 채널에서 천마의 이야기로 떠들기 바빴다.
글로벌 퀘스트를 극적으로 클리어 한 것은 천마 본인이지 않던가. 또한 그의 마지막 퀘스트 장면이 방송을 타면서 모두 재방송을 돌려 보느라 바빴다.
[오늘 재방송만 3번 봤다.]
-그만 보고 싶다. 누가 나 좀 말려줘
-나도임 ㅋㅋㅋ
-나도 천마형 영상만 계속 돌려 보고 있는 중. 미치겠다. 낼 출근인데, 새벽에도 이 지랄이네
[천마형 흑화하는 거 있잖아. 그것도 스킬임?]
-천마형이 갑자기 분위기 바뀌고 모습도 조금 바뀌는 거 같은 스킬이 있는 거 같던데. 그거 써서 마지막에 정화의 정수도 퐁당 떨어뜨린 거 아녀?
-ㅇㅇ나도 그게 이상해서 몇 번 질문을 했는데, 대답을 안함. 일부러 공개 안 하는 거 같음
-그럴 수도 있겠다. 이것저것 다 공개해 버리면 다른 길드에서 그걸로 약점을 찾아낼 거 아니야
-하긴. 너무 많은 걸 보여 주긴 했어. 이제 슬슬 기밀 유지 할 때가 되긴 함
커뮤니티 회원들은 아직 천마에게 악의 승천 스킬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부러 비공개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유명세를 얻으면 얻을수록 숨겨야 할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플레이어들과 전투를 벌였을 때, 히든 카드를 공개할 수 있으니까
.“이걸로 한동안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 없겠네.”
천강은 폭발적인 조회수와 더불어 벌써 350만 명까지 치솟은 구독자 숫자를 보며 입가를 씰룩였다.
이 정도로 빠르게 구독자 숫자가 상승하는 경우는 천마 채널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
기대 월 수익이 벌써 억 단위에 다다라 솔직히 이제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매 방송마다 후원금은 수천만 원씩 들어오고 광고비와 방송사에서 받는 돈까지 합한다면 어마어마할 것이다.
평생 만져 보지 못할 돈을 얻게 된 천강은 애써 침착해 지려고 했다.
인기라는 건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이 업적은 모두 제 형이 세운 것이지, 절대 천강이 세운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이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조차 없었다.
‘나중에 정산이 되면 이것들을 어떻게 써야 되는지 회의를 해야겠어.’
지금 중요한 건 돈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글로벌 퀘스트가 끝난 직후로 게임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천마가 마음에 걸렸다.
글로벌 퀘스트를 완수한지 이제 3일이 지났다. 그럼에도 천마는 여전히 캡슐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퀘스트가 끝난 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에 대해 물어봐도 천마는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는 캐묻진 않긴 했다만······.
“형. 오늘도 캡슐에 안 들어갈 거야?”
앉아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천마가 대꾸했다.
“아니. 오늘은 들어가야겠지. 그놈이 또 어떤 귀찮은 걸 준비했을지······.”
천강은 천마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천마는 사실 헬라가 했던 말이 계속 신경쓰였다.
헬라는 천마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떤 존재였는지를 이해하는 중이었다.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그 다음 말이 문제였다.
천마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겠다는 그 말.
왠지 그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왠지 게임에 들어가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드는 건 괜한 걱정이려나.
“이런 건 역시 본좌의 성미에 맞지 않는구나. 지금 들어가자.”
“응? 지, 지금?”
“그래.”
천마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천강도 후다닥 뒤를 따라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에게 처음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제국의 기사단이었다.
“대륙의 영웅이시어. 당신이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파란 사자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과 황금 갑옷은 이들이 어디 소속인지를 알려 준다.
바로 브리쉘 제국의 황제만이 움직일 수 있다는 황실 기사단이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대륙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에게 크게 감사하고 계십니다. 그에 따라 황제께서는 큰 보상을 내리시고자 합니다.”
“음······. 보상이라면 본좌는 괜찮은데.”그렇지 않아도 헬라가 남긴 말 때문에 선물, 혹은 보상이란 것에 민감한 천마였다.
“무려 제국의 황제께서 하사하시는 포상입니다. 부디 거절하지 마시길.”
거절한다면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풀풀 풍겼다.
이제 막 방송을 킨 천강은 천마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 그래요. 천마님. 무려 황제께서 내리시는 포상이잖아요.”
“맞습니다. 이것만큼 무한한 영광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방송 알림이 뜨자마자 달려온 시청자들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천하!!
-오오 황제의 포상이라니
-황제한테 직접 보상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진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몇 명 밖에 안 받아봄
황제가 직접 주는 보상은 이제까지 10명도 안 되는 플레이어들만 받았다. 당당히 그 명예의 전당에 천마의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서도 천마가 황제로부터 보상을 받게 될 거라는 기사가 미리 나와 있었던 상태.
하지만 정작 천마 본인은 껄끄러웠다.
“쯧. 본좌가 원래 황제라는 놈들과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어.”
헬라 때문도 있고, 무림에서도 천마는 황제라는 놈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천마에게 고개를 숙이며 빌빌 기었어야 했으니까.
“또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다니. 본좌는 평생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만약 황제에게 포상을 받게 되면 황실의 예절을 미리 익혀 놓아야 하고 예의란 예의는 전부 차려야 한다.
“본좌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러니 황제에게 전해라. 포상은 사양하겠다고.”
천마의 말에 황실 기사단장은 진심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 영웅이시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본좌의 말을 듣지 않았느냐. 본좌가 거기까지 가서 포상을 받을 이유는 없다. 처음부터 뭔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니까.”
“하, 하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대륙의 영웅이시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 대륙이 어둠의 마법사 손에 들어가는 걸 막은 분입니다! 당연히 그에 따라 제국에서는 보상을 드려야 합니다!”
“됐다. 본좌는 관심 없으니까, 다른 사람이나 주거라. 아참. 이번에 죽은 빛의 심판관 카라스에게 줘도 괜찮을 거 같은데.”
“······.”
기사단장과 천강 모두 얼이 빠진 얼굴로 천마를 쳐다보았다.
황제가 직접 하사하는 포상을 거부하는 건 아마 천마 밖에 없을 것이다.
“처, 천마님. 진심이십니까? 정말 포상을 포기하시려고요?”
“그래. 받을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 그래도······.”
그동안 천마가 글로벌 퀘스트를 깨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수많은 길드에게 쫓기고 몬스터들과도 치열하게 싸우며 마침내 어둠의 마법사를 막아냈다. 당연히 엄청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터.
그런데 천마는 그걸 과감히 포기해 버렸다.
“저희는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는 충실한 기사들입니다.”
기사단장의 굳은 목소리에 천강은 슬몃 걱정이 되었다. 만약 기사들이 천마를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면 여기서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륙의 영웅께서는 끝까지 겸손하시군요. 그 대단한 업적을 세우시고도 자신의 명예를 과시하지 않으시다니. 오늘 참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
그런데 이어지는 기사단장의 말이 조금 이상했다.
“영웅의 뜻이 그러하다면 저희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당신의 그 위대한 마음가짐을 널리 퍼뜨리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황실 기사단에게도 그 마음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큰 보상이 있음에도 그것을 거부할 줄 아는 절제된 마음. 그리고 그 겸손함에 브리쉘 제국 황실 기사단장 하바르가 크게 감명했습니다.]
[하바르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앞으로 황실 기사단은 당신에게 큰 호의를 보이게 될 것입니다.]
뭔가 이상한 쪽으로 잘못 이해한 기사단장 하바르는 정중히 예의를 차린 다음 천마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언제든 힘이 필요하시다면 불러 주십시오. 한 번쯤은 영웅께서 하시는 일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바르에게 있는 호감도를 사용해 황실 기사단의 힘을 1번 빌릴 수 있게 됩니다.]
황실 기사단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권을 던져 주고 사라진 하바르였다. 하지만 황제가 천마에게 내렸을 포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으리라.
‘아깝다······.’아깝지 않다면 사람도 아닐 터.
그러나 이건 천마의 결정이지 않은가.
-황제의 러브콜을 차 버리는 건 천마형 밖에 없을 듯ㅋㅋㅋ
-미친ㅋㅋㅋ레알ㅋㅋㅋ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아까운데
-황제가 내릴 정도면 포상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걸 뻥 차 버리네. 역시, 천마형 클라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천강과 천마가 이제 그만 신전에서 벗어나려 할 때였다.
[크나큰 포상을 거부하고 공을 다른 이에게 돌리는 겸손한 영웅의 마음가짐! 브리쉘 제국의 황제는 영웅의 뜻을 받들어 그에게 하사하려 했던 모든 포상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브리쉘 제국은 도시 복구에 힘을 다 하기로 결심했으며, 영웅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에 쓸 예정입니다.]
“엥?”
브리쉘 제국 황제는 각 도시에 칙령을 내려 대륙의 영웅이 가진 뜻을 전하였고, 그에게 내리려 한 모든 포상을 백성들에게 나눠 주기로 했다. 또한 창고까지 열었다고 하니, 백성들이 천마를 칭송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브리쉘 제국에 속한 모든 도시의 주민들이 영웅의 마음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니다.]
[마타하니 도시에서는 백성들이 돈을 모아 영웅을 위해 동상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웅의 뜻 깊은 마음에 감명 받은 백성들이 앞으로 당신에게 호의를 아끼지 않을 겁니다.][이제 당신은 브리쉘 제국에 속한 도시에서 80% 가량 낮은 가격에 물품을 구매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각 도시의 성주들은 앞으로 당신을 왕족에 걸 맞는 대우를 해 주게 됩니다.]
황제의 포상을 거부하니, 다른 방식으로 포상이 돌아왔다.
바실레이아 대륙에서 가장 크다는 브리쉘 제국에 속한 모든 곳에서 물품을 싸게 사고 왕족에 걸 맞는 대우까지 받게 된다.
-이 정도면 거절할 만 했다.
-그래도 좀 아깝긴 하지만, 이 정도면 좋은 거지
-지금 도시 주민들이 전부 천마 형 얘기 밖에 안 함. 대륙의 영웅께서 백성들을 위해 포상도 마다했다고 ㅋㅋㅋㅋ
천강은 다시 한번 속으로 감탄했다.이런 식으로 포상이 돌아오다니.
물론, 천마는 이럴려고 포상을 거절한 게 아니었다.
헬라에게 들었던 말도 있고, 황제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을 뿐.
“뭐, 이런 것까진 거부할 순 없겠지.”
천마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신전 밖을 나가 다음 행선지를 결정하려 했다. 그런데 그가 신전을 나오기 무섭게 바실레이아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시스템 창 하나가 나타났다.
[영웅을 위한 보상이 내려집니다.]
[대상자: 본좌는 천마다]
[7일 후에 혼돈의 탑이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그 시스템 창을 본 천강과 시청자들이 모두 경악했다.
“호, 혼돈의 탑?”
그리고 천마는 직감했다.
헬라가 쓸데없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