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부활
극한의 컨셉충 72화.
“드, 드레곤?”
바실레이아 대륙에서 드레곤을 사냥한 플레이어는 없었다.
정말 가끔 이벤트로 드레곤이 도시에 출몰한 적은 있었으나, 그냥 모습만 잠깐 비추고 떠났을 뿐 실질적인 공격을 가한 적도 없었다.
-드레곤이 습격하는 건 최초 아님?
-바실레이아 온라인 운영된지가 꽤 됐는데도 드레곤 한 마리 못 잡았다는 게 충격이다
-사냥 시도는 많이 해 봤지만, 결국 입구에서 다 컷 당했다
드레곤을 사냥하기 위해 군대를 모으로 쳐들어갔던 적도 있으나, 그럴 때마다 드레곤의 가벼운 브레스 한 방에 모두가 녹아 내렸다.
그만큼 드레곤은 현재 사냥하기 불가능한 존재에 가까웠다. 그런 드레곤이 어둠의 군단과 함께 나타난다?
“이거······ 드레곤이면 도시들이 거의 다 파괴된다고 봐야겠죠?”
천강의 말대로 드레곤은 바실레이아 최상위 포식자이기 때문에 그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드레곤이 나타날 수 있던 건 그만큼 어둠의 마법사의 힘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놈이 더욱 활개를 치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이번에 막지 못 하면 놈의 봉인된 힘이 완전히 풀려나 온 대륙을 집어 삼킬 겁니다!”
카라스는 목소리를 높이며 대륙의 위기가 닥쳤음을 알렸다. 이때만큼은 힘이 넘쳐 보이는 카라스였다.
“아무튼, 그 어둠의 마법사인가 하는 놈의 부활만 막으면 된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영웅이시어.”
“그럼, 지금 당장 나가면 되겠군.”
천마는 카라스를 데리고 감옥 밖을 나섰다. 세 사람이 감옥을 나오는 동안 시청자들이 채팅창으로 현재 상황을 알렸다.
-님들 저 ㅈ됐어요. 지금 라칸 도시인데, 어둠의 군단 쳐들어옴
-나도 거기임. 덤으로 드레곤까지 나옴 ㅅㄱ
-헐 진짜임? 진짜 드레곤 나옴?
-ㅇㅇ지금 다 불태우고 난리남
제일 먼저 공격을 받은 곳은 라칸 도시였다.
그곳에 있던 시청자들은 드레곤까지 나타났다는 소식을 알렸고, 얼마 못 가 수백 명의 시청자들이 순식간에 빠져 나갔다.
모두 죽었거나, 아니면 대피를 하기 위해 방송을 끈 것이리라.
-아아 RIP
-형 얼른 퀘스트 좀 깨줘. 내가 있는 곳도 지금 난리났어
-저도요 ㅠㅠ 어둠의 군단 몰려와서 불 떨어지고 개판남
절반이 넘는 시청자들이 바실레이아 온라인을 플레이 하면서 천마의 방송을 보고 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려 줄 수가 있었다.
“어디로 가면 막을 수가 있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전에 저도 장비를 갖춰야 하니, 놈들이 제게서 빼앗은 복장과 무기부터 찾아야 할 것 같군요.”
카라스는 지하 감옥에 있는 창고에 들어가 빼앗긴 장비를 되찾고 복장을 갖추었다.
여전히 초췌한 건 맞지만, 복장을 갖추니까 예전의 모습이 조금 나왔다.
그는 회복 마법을 자신에게 걸어 어느 정도 힘을 되찾은 다음, 의식이 시작되는 곳으로 천마를 안내했다.
“저는 어둠의 마법사가 부활하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추적해 여기까지 왔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정체가 들통나 한바탕 전투를 벌인 뒤 붙잡히게 되었죠.”
“멍청한 짓을 했군.”
“예. 마법사들을 대동해서 같이 갔어야 했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대륙의 마법사로 칭송을 받고 있을 정도면 보통 마법 실력을 가진 것이 아닐 터. 그런데도 카라스는 힘 없이 붙잡혀 있었다.
수적으로 불리한 것도 있었지만, 이곳을 지키는 흑마법사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는 뜻이리라.
“저기 보이시는 곳에서 의식이 벌어질 겁니다.”
카라스가 가리킨 곳에는 흑마법사들이 대거 모여 있었다. 그곳은 마치 땅에 움푹 파인 큰 용광로 같았는데, 산 사람들이 무언가에 홀린 듯 하나 둘 그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저들 모두 흑마법에 걸려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른 채 불길에 뛰어들고 있는 겁니다. 듣기로는 벌써 수천 명의 사람들을 저 뜨거운 불 안에 넣었다고 하더군요.”
“잔인한 놈들. 그렇게 해서 어둠의 마법사를 부활시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만큼 흑마법에서 좋은 재료가 또 없죠. 놈들은 마력이 높은 저까지 넣으면 더 완벽한 의식이 될 거라 생각했던 모양인지, 지금까지 저를 살려 두었습니다.”
천마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그럼, 가 볼까?”
“예?”어떤 작전 회의도 없이 천마가 칼을 뽑은 채로 아래로 내려가 버려 카라스와 천강은 잠시 넋을 놓고 있었다.
“워, 원래 영웅께서 저리 시원시원 하십니까?”
뭔가 최대한 포장을 하며 말하는 것만 같았다.
천강도 애써 침착을 되찾으며 대꾸했다.
“예. 워, 원래 저러십니다.”
“······우, 우리도 갈까요?”
“그래야겠죠?”
이들이 잠깐 말을 나누고 있는 사이, 벌써 천마는 저 아래까지 내려가 흑마법사들에게 당당히 소리치고 있었다.
“자. 오너라!! 본좌가 오늘 너희들의 썩어 빠진 정신을 모두 고쳐 줄 것인즉!”
* * *
“꺄아아아-!!”
“피, 피해!!”
비명과 울음 소리가 가득해진 도시.
평화로웠던 도시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글로벌 퀘스트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는 시스템 창이 나타나기 무섭게 어둠의 군단이 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크롸라라라-!!”
전장을 포효하는 드레곤이 브레스를 날리며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놈이 지나가는 곳마다 파괴와 죽음이 가득했고, 아무리 고레벨 플레이어들이라고 해도 드레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빠져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러분! 이곳은 지금 라칸 도시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어둠의 군단이 라칸 도시를 짓밟고 있으며, 드레곤이 브레스로 수많은 사람들을 날려 버리고 있습······ 꺄아악!”
현장을 중계하던 기자도 브레스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덕분에 한창 시청률이 좋게 올라가던 방송도 끊기게 되었다.
“제기랄! 거기서 뒤져 버리면 어떡해!”
“그래도 자료 화면으로 보낼 영상은 어느 정도 녹화해 둔 상태입니다.”
“일단 우리 쪽 애들이 그쪽으로 가는 동안 자료 화면이라도 띄워. 이러다가 다른 방송사에 다 뺏긴다.
”TVY 방송국 신영호 PD는 현장을 생방송하던 기자가 죽자마자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다급해졌다. 그런데 옆에 있던 부하 직원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지금 천마님이 방송하고 계시던데, 그걸 생방송으로 내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드레곤이 저 난리가 난 게, 사실 천마님이 퀘스트 진행 중이어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저도 방송을 확인해봤는데, 천마님이 어둠의 마법사 부활을 막으려고 전투 중이더라고요.”
“야 인마.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PD는 급한대로 연락망을 돌려 게임에 접속 중인 방송국 직원을 시켜 천강에게 얼른 연락을 넣게 했다.
“예? 방송국 송출이요? 생방송으로?”
어찌어찌해서 연결이 되면서 PD가 말했다.
“예. 지금 방송 중이시죠? 이걸 그대로 방송국에서 생방송으로 내 보내고 싶습니다. 이에 대한 광고 인센티브는 총 50%로 엄청나게 파격적인 제안을 드리고 싶······.”
“으아아악!”
“처, 천강님?”
“헉! 죄, 죄송합니다. 지금 제가 정신이 없어서요.”
그 말에 PD는 천강이 송출하고 있는 생방송을 확인해 보고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지, 지금 저 많은 흑마법사들이랑 천마님이 싸우고 계신 겁니까?”
“아, 예. 광고 50%라고 하셨죠? 히익-! 위, 위험!”
“예. 괘, 괜찮으시겠어요?”
“아뇨! 65%로 해 주시면 하겠습니다!”
“6, 65%는 좀······.”
“으아아아! 카라스님 조심해요!”
카라스라는 이름에 PD는 눈을 다시 크게 떴다.
“혹시 카라스라면 빛의 심판관 카라스입니까?”
“헉-! 뒤, 뒤질 뻔했다. 빨리 좀 결정해 주시겠어요? 더는 이렇게 통화를 오래 못 할 거 같은데.”
흑마법사들과 난전을 펼치고 있던 천강은 일부러 죽는 소리를 더 해 가며 박진감을 고조시켰다. 물론, 방패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도 일부러 맞는 척하면서.그렇게 해야 더더욱 인센티브가 올라갈 테니까.
그리고 PD는 이 방송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인센티브 65%는 솔직히 말이 안 되는 계약이긴 한데, 나중에 시말서를 쓸 각오를 해서라도 이 방송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 하겠습니다!”
PD가 어렵게 결정을 내리자, 천강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계약서 전달해 주시고 방송 보내세요.”
“아, 예.”
그 말을 남기고 천강은 통화를 끊어 버렸다.뭔가 단단히 속은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시청률만 팍팍 올리면 그만이다.
“뭣들 하고 있어! 얼른 인터넷부터 우리 채널에도 전부 광고 뿌려! 지금 바로 생방송 들어간다.”
“예!”
시청률을 올려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지만, 천마가 어떻게 퀘스트를 클리어할지 PD도 직접 보고 싶었다.
* * *
슈우우웅-!
콰아앙-!!
검은 불덩이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천강은 그것들을 방패로 막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진짜 시발 그만 좀 쏴라!!”
숨 쉴 틈도 없이 흑마법사들이 마법을 쓰고 있는 터라 방패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상태.
일정 이상의 데미지는 흡수할 수가 없어 점점 천강의 hp도 내려가고 있었다.
“감히 그분을 위한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려 하다니.”
“죽어라. 역겨운 것들!”
흑마법으로 온몸을 무장한 마법사들은 카라스와 천강에게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을 피해 가며 돌진하는 천마에게는 아직 이렇다 할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콰직-!
“크헉!”
오히려 마법사들이 하나 둘 천마의 검에 의해 쓰러지고 있는 상황!
마법사들 특성상 근거리로 상대가 달려오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천마의 검에 목이 떨어져 나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중이었다.
“놈을 막아라!”
이들의 대장격으로 보이는 흑마법사 하나가 크게 소리를 외치자 땅 밑에서부터 각종 몬스터들이 튀어 나와 천마의 발목을 붙잡았다.
“크오오오-!!”
“쯧. 귀찮은 것들.”
천마는 자신의 몸을 붙잡는 놈들을 칼로 베어 쓰러뜨렸으나, 문제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아예 천마를 깔려 죽이겠다는 심산으로 달려드는 터라 이들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여간 쉽지만은 않았다.
‘이럴 때 아수라 파멸장이라도 있었다면 순식간에 끝났겠군.’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파괴한다는 아수라 파멸장! 그러나 아직 이 몸으로 그런 상승 무공을 쓰는 건 무리였다.
‘그냥 돌격해서 하나씩 죽이는 수밖에는 없는 건가.’
그러기에는 숫자도 많고, 저 흑마법사들이 뿌리는 마법들도 여간 위협적인 게 아니었다. 거기다가 놈들은 천마를 붙잡아 놓고 의식을 계속 이어 가는 중이었다.“그분께서 곧 부활하신다. 모두 의식이 방해되지 않게 하라!”
뻥 뚫린 천장으로 검은 번개가 내려친다.
그 악한 기운이 용광로에 스며들어 뜨겁고 붉은 불길을 점점 검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천마는 두 눈으로 볼 수 있지 않던가.
저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저 폭발적인 힘이 깨어난다면 이곳 신전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으리라.
‘이걸 던지면 되는 건가?’
천마는 저 의식을 막기 위해서는 정화의 정수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품 안에 있던 정화의 정수.
그것을 저 안에다 던지면 이 퀘스트도 끝이 나리라.
‘그렇다면 지체할 필요가 없지.’
생각이 깨끗하게 정리되자 천마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제쳐두고 제단 쪽으로 달려갔다.
“막아! 놈이 이쪽으로 오지 못 하게!”
천마의 뜻을 간파한 흑마법사들은 그가 가까이 오지 못 하게 장막을 깔았다.
“이따위 것으로 본좌를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하지만 어둠의 장막이 천마의 검에 찢어지고, 그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용광로 위에 번쩍 날아올랐다. 그리고 품 안에 있던 정화의 정수를 그 안으로 떨어뜨리려는 찰나.
콰아아아-!!
“음?!”
용의 형상을 닮은 무언가가 위로 솟구치더니, 천마를 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덕분에 천마는 정화의 정수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귀찮은 놈들.”
천마는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 용광로 쪽으로 달려가려했다. 그런 그의 앞에 시스템 창 하나가 나타났다.
[어둠의 마법사가 심연에서 눈을 떴습니다.]
어둠의 마법사가 부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