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랭커 2
극한의 컨셉충 68화.
[악의 승천 게이지가 상승합니다.]
[현재 게이지: 130/150]
살기로 얼룩진 천마의 얼굴을 보고 천강은 서둘러 그의 히스토리를 확인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악의 승천 게이지가 130까지 치솟은 것이 보였다.
‘저게 감정과 관련이 있었던 거였나.’
천마와 수호자의 검은 악의 승천이 감정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만 하고 있었다. 그것을 전해 듣지 못했던 천강도 지금 천마의 상태를 보고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악의 승천.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천마가 상대에게 악의, 혹은 살의를 품어야 한다.
‘하긴. 화날만도 하지. 갑자기 랭커랍시고 나타나서 왕 행세를 하기나 하고, 거기다가 공격을 퍼부어서 형을 날려 버리기까지 했으니까.’
처음에는 일방적으로 브리엘에게 당한 천마였다.
그것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천마는 화가 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힘으로 풀으려고 한다.
[주인이시어. 저는 주인께서 어떤 모습으로 변한다고 하실지라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이 저를 아낌없이 써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오오. 나도 네가 어떤 모습인지 상관하지 않아. 난 네가 악마로 변해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랄 뿐이야.]
수호자의 검에 이어 악신도 눈치 없이 조잘조잘 말을 걸었다. 천마는 인상을 쓰며 짧게 혀를 찼다.
“쯧. 둘 다 입 다물라고 했을 텐데.”
천마는 몸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어내며 브리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는 상대를 깔보는 눈동자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생각보다 멧집이 좀 세네. 방어력 아이템이라도 올렸냐?”
“네놈의 형편없는 공격은 간지럽기만 하더구나.”
“말투가 좀 이상하다고 하던데, 진짜였네. 그 정도면 정신병 있는 거 아니야?”
“닥치고 덤비기나 하거라. 랭커라고 주변에서 말하기에 어느 정도인지 일부러 맞아줬을 뿐이다.”
브리엘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름 인기 있는 BJ라고 허세 부리기는. 그러다 뒤져, 인마.”
“왜. 설마, 힘을 다 쓰기라도 한 건가? 점점 본좌가 무서운 모양이지? 걱정하지 말고 네놈이 가진 최고의 절기로 덤비거라.”
“······.”
이 정도 힘의 차이를 보여줬으면 천마가 포기하고 숙일 줄 알았다.
어차피 상대는 컨셉으로 방송을 하는 BJ. 지금 생방송을 하는 것도 아니니,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를 지으라는 것이 길드의 입장이기도 했고.
그런데 브리엘은 한 가지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었다. 아니. 여기 있는 모두가 천마는 컨셉충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컨셉충 새끼가 적당히 나대야지. 진짜 뒤지고 싶냐?”
그러나 천마의 진짜 정체를 알 리가 없던 브리엘은 상대가 여전히 눈치 없이 컨셉을 유지 중이라고 생각했다.
“너희들도 봤지? 난 할 만큼 했다.”
브리엘의 말에 뒤에 있던 길드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선을 넘은 건 천마 쪽이니까, 그가 죽는다고 해도 원망을 해 서는 안 될 것이다.
“죽어라. 네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한 방에 녹여 줄게.”
브리엘이 힘을 끌어 모으자 천마는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그가 땅을 내려치는 순간, 천마도 온 힘을 모아 땅에 발을 내리찍었다.
쿠우웅-!!
주먹 모양의 불기둥이 땅을 가르며 천마를 향해 치달았다. 브리엘은 궁극기나 다름없는 최고의 스킬로 천마를 죽이려 한 것이었다.
천마는 그 자리에서 피하지 않았다.
그는 정면으로 브리엘의 스킬을 받아냈다.
콰아아앙-!!
강렬한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지진난 듯 사방이 흔들렸다. 방금 전 스킬로 브리엘과 그의 동료들은 확신했다.
천마는 죽었을 거라고.
그러나 뿌연 연기가 사라지고 나타난 건 검은 기운을 위협적으로 풍기고 있는 천마였다.
“음?”
“뭐, 뭐야? 저게 안 죽었어?”
“누가 봐도 원콤 각이었는데?”
브리엘은 천마의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알아챘다.
‘뭐지? 또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스킬이라도 있는 건가? 거기다가 방금 전 그건 어떻게 살아난 거지?’
천마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조차 받지 않고 온 터라 브리엘은 그가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그는 바실레이아 대륙에 1,000명 밖에 없는 랭커 중 하나인데.
아직 레벨 100도 넘지 않는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데에 경계심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그런 오만한 행동에 그는 조금 후회를 했다.
“뭔 스킬이냐, 그건?”
브리엘의 물음에 천마는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브리엘이 짜증을 내며 재차 물었다.
“야. 어떻게 살았냐고. 왜 안 뒤진 거야?”
잠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던 천마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번보다는 힘이 덜하군. 역시, 그놈이 내게 주입한 흑마법 기운 때문인가.”
천마가 일절 대꾸도 하지 않고 무시하자 브리엘은 슬슬 화가 뻗쳤다.
“됐다. 그런 거 물어봐서 뭐하냐. 그냥 지금 죽여 버리면 되지.”
그리곱 브리엘이 방패로 바닥을 내려찍으려는 찰나. 천마가 먼저 땅을 발로 가볍게 내려쳤다.
“돌려 주마.”
“뭐?”
콰아아아-!!
천마가 발을 내디기 무섭게 검은 주먹이 솟아 올라와 브리엘을 향해 진격했다.
“뭐, 뭐야. 저건 설마!”
콰아아앙-!!
방패를 들어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긴 했으나, 데미지를 전부 상충할 수는 없었다.
브리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천마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내 스킬을······. 그것도 내가 익히고 있는 가장 강력한 스킬을 따라할 수 있다니!”
그 말에 천마는 아까부터 브리엘이 짓고 있었던 눈동자와 미소를 띠우며 대꾸했다.
“그까짓 걸 최강의 스킬이라고 자랑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도 막아 보거라.
”피이이잉-!!
“이곳에서 이것을 보여 주는 건 네가 처음이다. 영광으로 알도록.”
수호자의 검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검은 기운이 점점 더 위로 뻗어 올라가 두꺼운 초승달을 만들어냈다.
“뭐야······. 뭔데 저런 스킬이 있어? 너 레벨 100도 안 된 새끼잖아. 그런데 어떻게······.”
브리엘은 거대하게 커져만 가는 검강 안에서 악마가 울부짖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얼마나 피를 머금고, 무슨 길을 걸어왔기에 저런 끔찍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대로 당하고만 있을 줄 알고!!”브리엘도 거기에 주눅 들지 않고 힘을 끌어 모았다. 자신은 전 세계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랭커다.
한 줌의 모래알 같은 숫자로 살아남은 바실레이아 대륙 최고의 플레이어라는 것!
그런데 레벨 100도 지나지 않고 컨셉으로 먹고 사는 이딴 BJ에게 진다고?
있을 수 없는 일!
“부숴 주마!!”
어차피 저것도 허울만 클 뿐이지, 결코 위력이 강하다고 볼 수 없다.
기껏 해 봐야 초보자 따위가 만들어낸 스킬이지 않은가. 그런 것에 자신의 든든한 방패가 뚫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콰직-!
분명 방금 전까지는 말이다.
“어······.”
검강이 방패를 타고 지나가며 브리엘의 몸에 다다랐다.
“어, 어떻게?”
콰아아-! 콰콰콰쾅-!!
검강과 함께 저 먼발치까지 날아가 버린 브리엘은 몇 개의 벽을 부수면서까지 밀려났다.
“시발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뭔 스킬이야, 저건!”
레비톤 길드원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일이 일어나자 머리를 쥐어뜯으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리고 그들은 뚜벅뚜벅 다가오는 천마를 피해 뒤로 물러났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건데?”
“브리엘은? 죽은 거야?”
길드원들은 브리엘의 신변부터 확인했다.
“크읍-.”
다행히 아직 그가 죽진 않았다. 그렇다고 멀쩡한 상태라고 볼 수도 없었다.
브리엘은 여전히 있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한 건지? 내 방패를 무슨 수로 뚫은 거지?”
브리엘은 검강이 날아오는 찰나에 확실하게 보았다. 검강이 방패에 막히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는 것을 말이다.
방패가 검강에 의해 부숴진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검강이 방패를 통과했다.
유령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 짧은 순간에 브리엘이 방어 스킬을 쓰지 않았다면 더 끔찍한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랭커의 반사 신경이라고 해야 할까.
“아수라 파쇄격이라는 무공이다. 너처럼 도구에 의지해 스스로의 몸을 방어하는 놈들에게는 탁월한 무공이지.”
“아수라······ 뭐? 거기다가 넌 어떻게 내 스킬을 따라할 수 있는 건데?”
“네놈들의 허접한 기술은 장님도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니까.”
천마가 발로 땅을 때리자 그 위로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솟구쳐 올라와 브리엘을 찔렀다.
“크헉!”
“이런 건 못 피하는 모양이지?”
천마는 다시 한번 땅을 강하게 때려 브리엘의 몸을 붕 뜨게 만들었다. 그리고 등 뒤에 숨겨 두었던 검을 휘둘러 검은 검기가 그에게 쏟아지도록 만들었다.
콰콰콱-!!
“크아악!”
검기에 사정없이 난도질 당한 브리엘은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분노를 토해냈다.
“시발!! 이런 말도 안 되는!! 내가 저딴 놈한테 이렇게 당한다고?!”
천하의 랭커가 고작 초보자한테 깨졌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영원히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이대로 뒤지진 않는다. 내가 괜히 랭커인 줄 알아?! 너 같은 놈한테는 절대 안 져!”
“쯧. 쓸데없이 몸만 단단한 놈이로군.”
천마는 주변에 퍼져 있는 어둠의 기운을 끌어 모아 검강을 만들어냈다. 브리엘은 자존심을 앞세우며 그것을 피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려 했다.
“부숴 버리겠다!!”자신의 방패와 함께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브리엘이다.
남들처럼 히든 직업을 가진 것은 아니나, 이 방패로 뛰어난 전투력과 탱킹력을 발휘하여 랭커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로써는 이 싸움에 패배한다는 걸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저 공격을 막아내고 천마의 머리를 부숴 버릴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콰아아아-!!
“어리석은 놈.”
그러나 그의 그런 확신은 오만에 불과했다.
‘젠장.’브리엘은 이번에도 검강이 방패를 통과하는 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검강은 방패뿐만이 아니라 브리엘의 몸까지 통과했다.
‘방어 스킬을 분명히 썼는데!’
브리엘은 이럴 때를 대비해 방어 스킬까지 써 둔 상태였다. 그런데 방패에 이어 방어 스킬도 꿰뚫어 버리는 검강이라니!
“크어헉-!”
검강이 그대로 뚫고 지나가면서 그 뒤에 있던 레비톤 길드원들을 덮쳤다.
“으아아아!”
“뭐, 뭐야!”
“피해!”어떤 이들은 검강에 휩쓸려 죽었고, 어떤 이들은 간신히 몸을 던져 피할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털썩 무릎을 꿇게 된 브리엘은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질 않자 이를 갈면서 소리쳤다.
“이건 말도 안 돼!! 내가, 이 내가 어떻게 저런 놈한테 질 수가 있어!! 이건 버그야! 시스템이 잘못된 거라고!!”
그가 소리지르는 걸 지켜볼 수가 없었는지, 천마는 그를 뒤로 넘어뜨린 뒤 발로 꾹 가슴을 눌렀다.
“크읍-! 이, 이거 안 놔!”
천마의 발조차 이젠 털어낼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약해진 브리엘이었다.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말도 안 된다고!!”
그러면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를 내려다보며 천마가 말했다.
“본좌가 무림에 있을 때도 그랬지. 본좌를 처음 상대했던 강호십대고수들도 그런 말을 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거 아느냐?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거.”
“뭐, 뭐야?”
“그동안 본좌가 쭉 참아왔으나, 너희들의 행태를 더는 지켜볼 수가 없겠구나.”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푸욱-!
천마는 칼로 브리엘의 목을 찔러 그를 침묵시켰다.
그러자 레벨업을 알리는 알림과 함께 그의 앞으로 새로운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랭킹 시스템을 재조정합니다.]
[대상자: 본좌는 천마다.]
[플레이 이력 및 전투 능력 평가 중]
잠시 로딩 중이던 시스템 창은 축하의 효과음을 터트리며 천마에게 알렸다.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바실레이아 대륙 온라인 랭커 업적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시스템 창이 바실레이아 대륙 온 전역에 나타났다.
[새로운 랭커가 선정되었습니다.]
-대상자: 본좌는 천마다
-현재 순위: 999위
사상 최초로 레벨 100이 되지 않은 플레이어가 랭커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