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한의 컨셉충-64화 (64/140)

64화. 역관광

극한의 컨셉충 64화.

“뭐, 뭐야. 갑자기 뜬금없이.”

악신의 메시지를 받은 천강은 어안이 벙벙했다.

난생 처음으로 신이라는 존재에게 받은 메시지라서 그런지 기분이 이상했다.

'아차. 이거 악신한테서 온 거지?'

문제는 이게 악신에게서 온 메시지라는 것이다.

아직 사람들은 천마와 악신의 관계를 모르지 않던가.

-사람 일이란 모르지 ㅇㅈㄹㅋㅋㅋ

-맞아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지

-근데 저거 누구임?

-누가 메시지 보낸 거냐?

천강의 시점으로 방송을 보고 있던 시청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메시지에 동감하면서도 뜬금 없이 누가 메시지를 보낸 건지 의문을 표했다.

“왜 그러느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누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요.”

천강은 악신의 말을 무시한 채 방송을 이어 갔다. 시청자들이 메시지의 정체가 뭔지 물어도 별 거 아니라면서 넘어가 버렸다.

'악신과 천마형의 관계를 절대 들켜서는 안 돼.'

대충 얼버 무리기에는 곤란해서 화제를 얼른 전환시켰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죠? 카라스가 분신이었다는 걸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음. 그래야 하는 건가?”

“예. 빛의 심판관 카라스가 정말로 누군가의 손에 붙잡힌 거라면 마법 군단에 알려서 구해야죠.”

“정말 귀찮게 하는군. 이놈의 퀘스트라는 놈은.”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 카라스의 정체?

오리아나 항구 도시에 있던 카라스는 가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사실을 신전에 가서 알리십시오.

시스템도 여기서 놀지 말고 얼른 신전으로 가라고 엉덩이를 걷어찼다.

“쯧.”

천마는 짧게 혀를 차며 천강과 함께 동굴 밖을 나섰다. 그리고 오리아나 도시 안에 있는 신전으로 찾아가 그곳에 있는 마법사들에게 카라스에 대한 내용을 전달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본좌가 왜 거짓을 말한단 말이냐? 너희들의 수장이라는 카라스라는 자의 분신이 본좌를 죽이려 들었다. 그리고 놈이 이것을 남겼지.”

수석 마법사는 천마가 건네 준 수정체를 보고 기겁했다.

“이건 분신을 만들 때 쓰는 마법 재료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카라스님이 일부러 영웅을 죽이기 위해 분신을 움직였다는 겁니까?”

“그건 모르지. 카라스가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으음. 일단 알겠습니다. 이 사실을 얼른 본부에 전달해 속히 대처를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수석 마법사는 천마와 천강을 놔두고 다른 마법사들과 같이 어디론가 급히 떠났다. 그러는 동안 천마는 가부좌 자세를 틀고 눈을 감았다.

“마침 잘 됐구나. 운기조식으로 아직 회복을 못 한 상태였는데.”

천마가 운기조식에 들어가자 천강은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휴식 시간입니다! 모두 숨을 고르시고 화장실도 다녀 오시고 담배도 쭉 피고 오세요!”

-ㅋㅋㅋ명상 모드 on

-수면 방송은 뭐다? 정지다

-하지만 천마 형이라면 봐주겠지 -일단 신고부터 박고 오실?

“수, 수면 방송이라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법사들이 돌아올 때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천강은 시청자들과 씨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천마는 고요한 명상에 빠져 있었다.

‘검강을 쓰려면 모든 내력을 소모해야 한다. 천마심공으로 계속해서 내력을 복구한다고 해도 검강을 쓰고 나면 일정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터.’

천마는 천마쇄혼검이 갖는 부작용이 뭔지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스킬을 지치지 않고 쓸 수 있었던 건 천마심공이라는 특유의 운기조식 덕분이었다.

그러나 천마쇄혼검.

즉, 검강을 쓰려면 모든 내력을 한꺼번에 소모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력이 어느 정도 돌아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적은 점점 강해지고 있고, 본좌의 몸은 아직도 약하구나. 더욱 수련에 증진하지 않으면 결국 적에게 당하고 말 것이다.’

무림에 있을 때는 숨 쉬는 것만큼 검강을 쓰는 게 아주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사활을 걸고 써야 한다는 것이 그저 뼈아플 뿐이다.

‘계속 성장을 하고 있으니, 검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날도 곧 오겠지. 그때까지 내력 증진을 게을리 하지 말고······.’

명상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던 천마가 눈을 살며시 떴다. 그에게 뻗어 오는 무언가를 느낀 탓이었다.

“···예? 천마님. 벌써 운기조식을 끝내셨어요?”

천강의 말에 답하지 않고 천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천강이 봤을 때는 인적이 없는 공터였지만, 천마의 눈에는 명확히 보였다.

그는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 바닥을 발로 밟으며 말했다.

“거기서 왜 나자빠져 있느냐?”

“······!”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여러 명의 플레이어들이 바닥 밑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저놈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우리가 은신 스킬을 쓴 걸 간파한 건가? 하지만 어떻게?’

‘절대 시야가 있지 않는 한, 아니. 절대 시야가 있다고 해도 우릴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길드에서 파견한 암살자들.그들은 천마가 자신들을 이렇게 빨리 찾아낼 거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는 그들의 차림새와 풀풀 풍기고 있는 기운을 보고 알아차렸다.

“호오. 본좌의 등 뒤에 비수를 꽂으려고 왔느냐? 하지만 그런 잡기술로 본좌를 잡으려 하다니.”

“입 닥쳐! 뭣들 하고 있어! 놈을 죽여서 정화의 정수를 빼앗아라!”

“쯧. 아직도 그것에 미련을 두고 있는 놈들이 있었다니.”

암살자들은 위로 튀어 올라 각자 가지고 있는 스킬들을 써서 천마를 공격했다.

촤아아악-!몇 초 동안 분신을 만들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스킬.

폭탄 같은 것을 던져 상대의 공격하고 동시에 뿌연 연기를 만들어내 시야를 가리는 스킬.

적의 뒤로 빠르게 이동해 치명타를 넣는 스킬 등등. 참 다양하고 화려한 암살 스킬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뭐, 뭐야 저 새끼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천강은 섣불리 다가가지 못 하고 천마와 암살자들의 싸움을 실시간으로 방송했다.

-내가 이래서 화장실을 안 갔지.

-와 담배 피러 나가려고 했는데 나갔으면 이 레전드 장면을 놓칠 뻔했네

-아직도 천마 형을 노리는 암살자들이 있었음?

-당연하지. 정화의 정수 저게 얼마짜리인데. 그리고 이번에 천마 형이 아이템 몇 개 좋은 거 얻어놨잖아. 그거 뺏으려고 온 놈들임

천마가 공식으로 대륙의 영웅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를 노리는 세력은 많았다. 물론,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아도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뒤를 칠 준비를 하고 있는 자들이 많다는 것.

지금 저들처럼 말이다.

콰직-! 콰콰콱-!!

“크헉!”

“큽!”

10명의 암살자들이 달려들어 천마를 압박했다. 그러나 벌써 5명이 치명상을 입고 뒤로 물러난 상태.

“이게 뭐야 시발!”

“뭐가 저렇게 쎄?!”

“버그 아니야? 레벨 100도 안 된 플레이어가 저렇게 세다고?”

암살자들은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바실레이아 대륙에 있는 대부분의 스킬들은 논타겟 스킬이기 때문에 무빙으로 피하는 게 가능하다. 물론, 말이 쉽지 전광석화처럼 날아오는 스킬을 모두 피해 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

하지만 천마에게는 불가능이 없는 것일까.

그는 암살자 10명이 날린 스킬들을 모두 막거나, 피해내며 반격까지 가했다.

당연히 처음 천마를 마주하게 된 암살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으리라.

영상에서 봤던 무빙과 직접 눈앞에서 보는 신들린 무빙은 차원이 다르니까.

쉬아아악-!

퍼퍼펑-!

“크아악!”

천마가 날린 검기들이 암살자 하나를 피떡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는 검을 털어내며 말했다.

“고작 너희 같은 놈들이 감히 본좌를 죽이려 왔느냐. 미안하지만, 이 정도의 숫자로는 본좌를 잡을 수 없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레벨이랑 관계 없이 저건 괴물이잖아! 미친!”

“저런 걸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투지가 꺾인 암살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원래 암살자라는 직업이 은신을 하고 있다가 뒤에서 비수를 꽂아 넣어 치명상을 입혀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은신이 전부 들키고 싸움을 시작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건 1대1 대결일 때를 말하는 것이고, 지금과 같이 10명이 모여서 한 명을 공격하는 건 조금 다른 문제였다.

“일단 물러나자.”

“시발. 드럽게 세네.”

“저게 어떻게 레벨 100도 안 된 플레이어야?”

동료 하나가 죽은 것을 보고 나머지 9명은 꼬리를 금방 내려 버렸다. 어차피 싸움이 길어질수록 암살자라는 직업 특성상 더 불리해진다.

모든 걸 쏟아 부어 한 방에 적을 침묵시키는 딜을 넣어야 하는 직업군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감히 본좌에게 칼을 들이 밀고 도망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그러나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려 하는 그들의 뒷덜미를 천마가 붙잡았다.

“히익-!”

천마는 상대의 뒷목을 잡고 그대로 칼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콰직-!!

“컥-!”

황금빛 이펙트가 크게 터지면서 암살자 하나가 털썩 쓰러졌다.

“시, 시발. 뭐, 뭔 딜이야 저건.”

아무리 피통이 작은 암살자라고 해도 레벨 200이 넘는 플레이어다. 그런데 데스 크리티컬이 터지면서 단 한 방에 로그아웃을 당했다.

그로 인해 남은 암살자들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이젠 천마의 딜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계산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 한 대만 맞아도 즉사다!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쳐!”

“젠장. 쪽팔리게!”

“뭔 상관이야. 살기만 하면 됐지!”

그들은 뭉쳐 다니지 않고 아예 여러 갈래로 갈라져 도망을 쳤다.

“졸렬한 놈들! 할 줄 아는 건 도망치는 것밖에 없느냐! 본좌의 손아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으, 으아아!”

“시발 존나 무섭잖아!!”

천강은 암살자들을 따라 뛰어가며 검기를 휘갈기는 천마를 보고 말했다.

“여러분. 암살자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면 제가 이상한 거겠죠?”

-아니······ 나도 그 생각 중.

-운영자들이 왜 이렇게 벨런스를 파괴하면서 헬난이도를 하나 했는데······ 천마 형이 그냥 언벨런스였네.

-천마잖아. 이름값 해야지.

-이름값도 적당히 해야지. 컨셉은 컨셉일 뿐이잖아. 근데 저건 컨셉이 아니라 ㄹㅇ 천마니까 문제지

-나도 이제 저게 컨셉충인지, 그냥 진짜 천마가 온 건지 모르겠다.

암살자들의 공격을 막아낸 뒤, 오히려 역관광을 내고 있는 천마를 보며 시청자들도 할 말을 잃었다는 반응이다.

“이, 이럴 게 아니라 저도 쫓아가 보겠습니다!”

천강은 천마의 뒤를 열심히 쫓아 그가 암살자들을 어떻게 끝장내는지 지켜보았다.

“본좌에게 감히 등을 보이지 말거라!!”

콰직-!!

검기에 맞은 암살자 하나가 밑으로 떨어졌고, 하필 다른 암살자들은 순찰 중이던 수비병들과 마주쳤다.

“음?”

바실레이아 온라인은 플레이어들끼리 싸움이 시작되면 누가 먼저 공격을 했고, 또 누가 방어를 하려 했는지 표식이 나타난다.

붉은색 표식이 뜨면 그건 그가 악의적인 의도로 상대를 먼저 공격했다는 뜻인데, 천마 위에 있는 초록색 표시는 스스로의 몸을 방어하기 위해 플레이어와 전투를 벌였다는 뜻이다.

즉, 그것을 볼 수 있는 수비병들은 누구를 잡아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 내 치안을 어지럽히는 놈들이다. 체포하라!”

순찰병들이 피리를 불어 신호를 보내자, 다른 구역에 있는 병사들까지 죄다 몰려들기 시작했다.

“제기랄!!”

“뚫고 나가!!”

암살자들은 수비병들을 따돌려 도망치려 했으나, 한 번 걸린 이상 그들의 눈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어떤 암살자는 은신 스킬을 써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푸욱-!

“크악!”

“본좌의 눈을 속일 순 없지.”

그러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천마의 눈을 피할 순 없었다. 천마는 숨어 있는 암살자들을 처치하고 수비병들과 함께 도망치려 하는 암살자들까지 전부 처리했다.

“괜히 사람 하나 잘못 건드려서 조진다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이네요.”

영화 속 추격신을 보는 것만큼 박진감 넘치는 광경이었다. 천강의 짧은 리뷰에 시청자들도 동조했다.

-천마형을 기습하면 역관광 당한다······ 메모.

-소리 질러 갓천마!!

-천마가 천마했을 뿐. 이제 놀랍지도 않쥬?

“대륙의 영웅이시어.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웅이시어. 저희가 더욱 경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비병들은 천마를 알아보고 그에게 한 마디씩 인사말을 건넸다.

천마는 그들의 인사를 받아 준 뒤 천강과 함께 다시 신전으로 돌아가려 하는 그때였다.

“끼아아악-!!”

고막이 찢어질 듯한 기괴한 비명 소리가 저 멀리서부터 들려와 오리아나 도시 전체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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