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흑마법사?
극한의 컨셉충 62화
쿠우웅-!!
흑마법에 동화되어 울부짖던 크라켄이 위에서 떨어지는 눈부신 광선에 직격 당했다.
그 광선은 그대로 크라켄의 몸을 불태워 사라지게 만들었는데, 그 위에 마치 천사처럼 누군가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강렬한 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어 누구인지는 알아보기 힘들었으나, 한 명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대륙의 영웅이시어. 오리아나 항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함선에 다가온 빛 안에는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앞에 있는 사내가 천마에게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카라스?
-빛의 심판관 카라스 맞지?
-오 맞네
-형이 왜 여기서 나와?
당연히 천마는 상대가 누군지 몰랐고, 천강과 시청자들은 금방 상대를 알아보았다.
빛의 심판관 카라스.
마법의 신 루리프를 모시는 신관들 중 하나이며, 10대 대륙의 마법사들 중에서도 한 명으로 뽑힌다.
“연락을 받고 기다렸습니다.”
“연락?”
“예. 오리아나 항구에 오신다는 언질을 받고 저희가 미리 마중을 나와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사악한 마법의 기운이 느껴져 마법사들을 동원하느라 시간이 조금 늦었습니다.”
역시, 크라켄이 갑자기 살아나게 된 건 흑마법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도대체 누가 크라켄을 되살린 겁니까? 아니. 애초에 어떻게 여기에 크라켄이 나올 수 있는 거죠?”
천강의 물음에 카라스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 보았다.
“미안하지만, 그대는 누구지?”
“본좌의 아우다.”
“아. 그렇습니까? 미안합니다. 동생분이 동행인 줄은 몰랐군요. 영웅께서 부리시는 시종인 줄 알았습니다.”
“······.”
졸지에 시종 취급을 받은 천강은 표정을 굳혔다.
-ㅋㅋㅋㅋㅋ시종 맞지
-시종 커밍아웃 해라 그냥
-으데 pd가 천마 형이랑 동급으로 취급 받으려고!
“······예. 형님들. 맞습니다. 전 천마님의 시종입니다. 어흐흑.”
천강이 시청자들과 얘기를 나눌 동안 카라스가 말했다.
“저희도 왜 갑자기 크라켄이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 한번도 이곳에서 크라켄이 나타난 적이 없거든요. 스피어 피쉬들도 그렇고요.”
“흑마법사들이 여기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습니까?”
“그래. 성주가 부탁을 해서 말이다. 이곳에 있는 흑마법사들 찾아내 달라는군. 그대는 그에 대한 말을 듣지 못했는가?”
그 말에 카라스는 미묘한 미소를 보이며 대꾸했다.
“예. 그렇지 않아도 영웅을 도와 흑마법사들의 본거지를 찾으려 했었습니다. 저희 수하들이 알아낸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카라스는 자연스럽게 천마를 오리아나 항구 도시 안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그곳에 모여든 인파들이 천마를 알아보고 수군댔다.
“오. 천마님이다.”
“크라켄을 없앴다는 게 진짜야?”
“생방 안 봤냐? 진짜라니깐.”
“저거 카라스 맞지?”
“아니. 카라스가 왜 오리아나에 있는 거지?”
플레이어들은 천마에게 묻고 싶었지만, 그의 주변을 지키는 마법사들이 많아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와······. 진짜 누가 보면 엄청 높은 분인 줄 알겠다.”
“경계가 뭐 저리 빡빡해.”
인파를 지나가는 동안 천마는 옆에 있던 천강에게 물었다.
“저 남자 이름이 카라스라고 했나?”
“예. 빛의 심판관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고요.”
“마법사인 거 같은데, 칼을 차고 있군.”
“아. 그건 카라스가 일반 마법사가 아닌, 마검사라고 그래요.”
천강의 설명에 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검사?”
“예. 마법사들은 스태프 같은 장비들로 마법을 쓰는데, 마검사는 마법도 쓰면서 동시에 칼도 쓸 줄 아는 거죠. 그러니까 검술에 마법을 접목한 거라고 해야 하나?”
“음. 그렇군.”
천강은 천마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왜요? 뭐가 걸리시는 게 있으세요?”
“음······. 별 건 아닌데. 뭐랄까. 저 카라스라는 자를 어디선가 본 거 같아서.”
“예? 그럴 리가요.”
“저자의 기를 어디선가 느껴보았던 거 같구나. 뭐, 본좌가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
천마의 말에 천강은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언제 카라스를 마주친 적이 있던가?
그렇게 인파를 지나 카라스와 함께 작은 신전에 도착한 천마. 카라스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에 천마와 천강을 초대해 자리에 앉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최근 흑마법사들의 활동이 활발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본거지를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놈들이 잡히면 바로 자결을 하는 바람에요. 아무래도 놈들에게 흑마법이 걸려 있어 붙잡히면 죽는 모양입니다.”카라스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천마에게 퀘스트를 제시했다.
“마침 이틀 전에 흑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그곳으로 가서 그들을 소탕해 주시겠습니까?”
“붙잡는 게 아니라 소탕?”
“예. 놈들은 흉악한 흑마법사들이니까요. 어차피 잡히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차라리 놈들을 죽여 놈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단서를 잡는 게 나을 듯보입니다.”
[퀘스트를 받으셨습니다.]
* 카라스의 부탁카라스는 최근에 흑마법사들을 발견했으며, 그들을 소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퀘스트 성공시 카라스에게서 보상이 주어집니다.
천마는 인상부터 썼다.
“또 퀘스트로군. 이놈들이 본좌의 수련을 방해하고 있다.”
“퀘스트 덕분에 요즘 들어 더욱 성장을 하시게 된 거잖아요. 이런 퀘스트는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더 좋아요. 사냥도 하고, 덤으로 퀘스트 보상으로 주는 경험치도 받으니까요.”
“그렇군.”
천강의 조언에 천마는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어차피 흑마법사들을 찾으러 온 것이고, 덤으로 퀘스트를 받은 것일 뿐.그리고 바실레이아 온라인은 무작정 사냥만 하는 것이 아닌, 퀘스트를 통해 성장을 해야 하는 게임이다. 일반적인 사냥보다는 퀘스트 보상에서 얻는 경험치가 훨씬 더 크니까.
“마법사들을 지원해 드릴까요? 마음 같아서는 제가 직접 영웅을 따라 가고 싶지만, 저도 다른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천강이었으면 바로 받았겠지만, 천마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다. 본좌 혼자면 충분하니까.”
“오오.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음이 갑니다. 그럼, 영웅만을 믿겠습니다. 부디 흑마법사들을 소탕하시어 이 대륙의 평화를 가져와 주시길.”
잘 포장된 말로 이제 그만 나가라는 뜻을 전한 카라스였다. 천강과 천마는 그곳을 나와 시스템 창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갔다.
“이건 언제 봐도 편한 것 같구나. 이리저리 찾을 필요도 없이 방향을 가르켜 준 곳으로 가면 되니까.”
퀘스트를 받으면 대부분 네비게이션 기능이 켜진다. 그것을 이용해 보다 쉽게 지정된 장소로 이동할 수가 있게 된다.
천마는 시스템이 알려 주는 방향을 따라 이동했다. 이윽고 그 둘은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긴가 봅니다, 여러분.”
-동굴이네?
-딱 숨어 있기 좋아 보이긴 하네.
-저기에 저런 동굴이 있었구나. 담에 가봐야 할 듯
-그나저나 카라스 왜케 존잘이냐 ㅠㅠ 한번 더 보러가면 안 되냐요 ㅠㅠ
-글게 ㅠㅠ 같이 따라와줬으면 좋았을 텐데
빛의 심판관이라는 타이틀 이름만 들으면 굉장히 늙고 엄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 카라스의 얼굴은 굉장히 잘 생긴 편에 속해 있어서 여성 팬들이 많다.
“여러분. 지금 카라스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기 안에 들어가면 흑마법사들이 나온다니까요?”
-카라스는 잘생겼는데, PD는 얼굴이 왜 그러누
-기분 좋게 성형 쿠폰 질러서 PD도 얼굴 역전 가즈아!!
-ㅋㅋㅋ성형 쿠폰 ㅇㅈ성형
쿠폰을 사려면 돈이 꽤 들어서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천강은 시청자들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천마와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곳곳에 횃불이 있고 수군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아, 흑마법사들이 안에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음?”
그렇게 두 사람이 동굴 안으로 쭉 들어가고 있을 때, 천마는 자신의 발밑에 그려진 마법진을 발견하고는 제자리에서 멈춰 섰다.
“침입자?!”
“웬 놈이냐!”
침입자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마법진이었던 건지, 천마의 존재를 알아챈 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슈아아악-!
콰앙-!
이윽고 여러 마법들이 쏟아지며 천강과 천마를 공격했다.
“여러분! 저는 뒤로 빠져 있겠습니다! 천마님, 파이팅!”
-PD 줄행랑
-개쫄았눜ㅋㅋ
-저기 어디 동네 PD는 같이 피하면서 한다드만
“예. 저는 천마님처럼 신들린 무빙이 안 되는 똥컨이라서요.
”천강은 촬영을 위해 뒤로 빠졌고, 천마는 마법이 날아오는 쪽을 향해 돌진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혹시 제국에서 보낸 암살자인가?!”
“물어서 뭐해! 얼른 없애 버리고 여길 벗어나면 돼!”
“죽여 버려!”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들은 천마에게 거친 공격 스킬들을 날려보냈다.
얼음, 불, 번개 등등.
참 다양한 마법들이 쏟아졌으나, 천마는 간단하게 피해 버리며 그들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으헉!”
콰직-!천마가 검을 한번 휘두르자 황금색 이펙트가 크게 터지면서 마법사 하나가 쓰러졌다. 그리고 그 뒤에 있던 마법사도, 그 뒤 마법사도 똑같이 크리티컬이 터져 버렸다.
“비켜, 이 멍청한 놈들!”
그때 붉은색 마법사 후드를 입고 있는 남성이 손을 뻗자 천마의 밑으로 불기둥이 올라왔다.
쿠웅-!!
지금껏 반항하던 마법과는 위력이 조금 달랐다.
천마도 그걸 의식했는지, 마법사들을 뚫고 붉은색 후드에게 달려들었다.
“엇-!”
생각 이상으로 빠른 천마의 돌파력에 놀란 남성은 그의 공격을 피해 보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천마의 검이 벌써 목까지 치달았기 때문이다.
“응?”
그런데 천마가 상대의 목에서 검을 멈추었다.
천강은 그 이유를 몰라 쳐다보았고, 붉은 후드도 잠시 당황하다 반사적으로 마법을 날렸다.
콰아앙-!!
붉은 후드가 날린 화염 구체를 맞은 천마가 뒤로 밀려났다.
“뭐지? 왜 피하지 않은 거지? 거기다가 왜 검을 멈췄던 걸까요?”
-그러게.
-분명 원콤각이었는데
-생각보다 퀘스트가 쉽네. 그래서 천마형이 핸디캡 준 건가?
-퀘스트가 쉽다기 보다는, 걍 천마 형이 쉽게 하는 거임
시청자들도 절로 고개가 기울어지는 장면이었다.
“흠······.”
상대에게 공격을 허용한 천마는 몸에 남은 불의 흔적을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 다시 마법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오, 온다!”
“막아라!”
그들은 천마를 막기 위해 불로 휘감은 장막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천마의 검무에 장막이 여러 갈래로 찢겨 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에 최후까지 저항하던 마법사들은 전부 쓰러지고 말았다.
“크으-. 역시, 제국에서 만만치 않은 놈을 보냈구나.”
전투 불능이 되어 쓰러진 붉은 후드는 원통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천마가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물었다.
“본좌의 묻는 말에 답하거라. 너, 흑마법사랑 관련이 있느냐?”
“뭐?”
“흑마법사. 너희들이 흑마법사라고 하던데. 맞느냐?”
“무, 무슨 소리를! 우리가 왜 흑마법사라는 거야! 난 흑마법을 쓸 줄도 몰라!”
“······역시 그랬군.”
붉은 후드의 말에 천강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천마님. 저것들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요?”
“아니. 이놈들은 흑마법사들이 아니다.”
“어떻게 확신하세요?”
“놈들을 처음 봤을 때부터, 아니. 이 동굴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았다. 놈들에게는 흑마법의 냄새가 나지 않아. 본좌는 흑마법사들과 싸워 보지 않았더냐? 놈들처럼 위협적이고 탁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방의 기를 확인하여 흑마법사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건 아마 천마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정보를 준 건가? 원래 이런 퀘스트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은······.”
그때 천마가 천강의 머리를 꾹 누르며 소리쳤다.
“엎드려!”
“예? 엇!”
피이잉-!
콰아아앙-!!
검은 광선이 저 동굴 안에서 뻗어와 반대편 동굴벽을 뚫어 버렸다. 만약 천마가 천강을 누르지 않았다면 강제 로그아웃을 당할 뻔했다.
“뭐, 뭐야 이건.”
깜짝 놀란 천강이 숨을 가쁘게 몰아 쉬고 있을 때였다.
“오. 피했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풀풀 풍기는 가면의 남성이 그 둘에게 다가왔다.
천강은 상대를 보고 직감하며 중얼거렸다.
“설마 또······ 난이도 조절 실패인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