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이상한 하루
극한의 컨셉충 61화.
“키에에에엑!!”
크라켄의 마지막 포효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것을 본 천강은 머리를 두 손으로 잡으며 소리쳤다.
“잡았어? 저걸 진짜 잡았다고? 혼자서?!”
-실화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난 걍 웃을래
-와 ㅅㅂ내가 뭘 본 거임??
-아니. 이건 아니지. 저걸 혼자 잡는다고? 이건 진짜 아니지.
-이거 천마 형이 잡을 거라고 생각해서 운영자가 방플한 거네. 뉴튭각 잡아 주려고
-쌉인정
천강은 자신이 지금 뭘 본 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바다의 공포라고 불리는 크라켄이 저렇게 쉽게 잡히다니.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다면 절대 믿지 못했으리라.
도대체 천마는 어떻게 크라켄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일까? 갑자기 몸이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온 것마냥 붉게 달아오르더니, 그 열기로 크라켄의 머리를 뚫고 지나가 버렸다.
-자자 고수님들 어서 입을 털어 보시죠
-저걸 우케 잡았누?
-설명충 등판해 보자면, 저건 천마형이 상성 파악을 진짜 잘한 거임. 크라켄 약점이 불로 공격하는 건 신의 한수였음-단순히 불 공격 한다고 크라켄이 쓰러졌으면 내가 벌써 잡았지
시청자들도 이런 저런 말이 많았다.
크라켄의 약점이 불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그러나 불이 약점이라고 해도 크라켄은 바다를 밑에 두고 싸우기 때문에 불 마법이 날아오면 그냥 파도를 일으켜 꺼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데 천마 형 공격을 막지 못 한 건, 저렇게 온몸을 불로 휘감아서 그런 거지. 파도를 일으켜도 천마 형이 그냥 다 씹어 버리고 낙하했잖아
-ㅇㅇ낙하 데미지 무시 못 함. 그 추진력으로 머리를 뚫고 심장까지 파괴했으니까
-근데 크라켄 약점이 원래 저쪽 머리였음? 아무리 머리를 박았다고 해도 저렇게 빨리 죽는다고?
-원래는 뒷통수에 약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천마 형은 다른 곳이 약점이라고 판단한 거 같음
몇몇 예리한 눈을 가진 시청자들도 합세해 토론을 이어 갔다.
천강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천천히 가라 앉고 있는 크라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몸에 묻은 점액을 털어내며 성큼성큼 걸어 나오고 있는 천마.
-그저 빛
-그저 천마
-그저 지존다시 한번 채팅창이 천마의 찬양으로 뒤덮어졌다.
이제는 익숙한 장면이긴 했으나, 천마를 싫어하는 안티들도 이 광경을 봤다면 어쩔 수 없이 그를 인정했을 것이다.
“끄응. 지금까지 싸운 놈들 중에 제일 불쾌한 놈이군.”
천마는 몸을 뜨겁게 달구어도 사라지지 않는 점액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천마님!!”
“우오오-!!”
그가 갑판에 올라오는 것을 본 플레이어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을 화끈하게 이겨 버린다면 그때 밀려오는 청량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 않겠는가.
갑작스러운 그들의 환호성에 천마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별 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저 정도 가지고 이 난리를 치다니. 본좌의 힘이 1할만 돌아왔으면 기절초풍을 하겠군.”
천강은 제발 그 1할의 힘이 뭔지 좀 보여 달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형. 아니. 천마님. 도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무엇을?”
“뭐긴요. 바다의 공포! 바다의 파괴자! 크라켄을 사냥하셨잖아요. 그것도 솔플로! 혼자서 크라켄을 잡았다는 플레이어는 이제까지 한 명도 없었어요!”
그 말에 천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정말 그렇다면 이곳 바실레이아에는 고수라고 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겠구나. 그리 어려운 놈도 아니었는데, 저걸 혼자서 못 잡는다고?”
“······.”
-예. 못 잡습니다, 형님.
-이러니까 저 형 안티가 늘어나짘ㅋㅋ
-저것이 천재만 볼 줄 아는 킬각인가?
-???: 그냥 슈욱 해서 대가리를 뚫어 버리면 돼요. 참 쉽죠?
-이젠 이런 그림이 참 익숙하다
천강은 할 말을 잃었지만, 시청자들은 이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근데 천마님. 몸이 불을 휘감은 것처럼 붉게 달아오르시던데, 그건 어떻게 하신 겁니까?”
“음. 염화천공이라는 무공이다.”
“염화······ 뭐요?”
“염화천공. 염화철쇄경이라는 무공이 있는데, 그것과 조금 비슷하지. 기운을 서로 충돌시켜 그것을 불로 만들어 퍼뜨리는 것이지. 그러나 이 몸으로는 아직 염화천공을 발현할 수 없어 그냥 본좌의 검과 몸만 뜨겁게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그게 제대로 발현된 된 게 아니었다고요?”
“물론이지! 본좌가 진실로 염화천공을 썼다면 이 함선도 무사하지 못했을 터. 사방을 지옥 같은 불로 모조리 녹여 없애 버리는 무공이니깐.”
천마의 말을 들으니, 천강은 그 무공이 진짜 발현되는 걸 한번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몸으로는 그게 아직 불가능하지 않느냐. 그래서 기지를 발휘했지. 저놈이 불에 약한 것 같아서 말이다. 놈의 약점을 향해 힘껏 떨어져 뚫어 버린 것이었다.”
“크라켄의 약점은 보통 뒤통수라고 알려져 있던데. 천마님은 정면을 노리셨네요?”
“정면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정확히 말하자면 놈의 머리 위를 노렸으니까.”
“머리 위요?”
“그래. 그곳이 놈의 가장 중요한 것이 있던 모양인지, 철저히 막고 있더구나. 그래서 그곳을 공격했던 거지.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심장을 칼로 찔러 숨통을 끊어 놓았던 것이고.”
천강은 왜 천마가 간단했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몸집이 작으면 약점을 찾았다고 해도 그곳을 공략하는 게 힘들다.
그러나 크라켄처럼 몸집이 크면 약점 부위도 당연히 크게 보일 터.
천마는 온몸을 불로 휘감아 크라켄의 방어를 뚫고 돌진해 약점을 찌른 것이었다.
문제는 천마 한정으로 쉽다는 것이지만.
-크라켄이 쉬우면······ 대체 뭐가 어려운 거죠
-형. 이제 진지하게 다시 아쿰리아스랑 싸워 보는 게 어때
-이제 아쿰쨩이 한 수 접어 주고 갈 거 같은데
-어깡이가 천마형 사랑하는 거 못 봤누? 프로포즈 할 수도 있다.
그냥 마주치지 말자 천마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으나, 천강을 비롯해 시청자들도 일반 플레이어는 절대 할 수 없는 플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 그러면 스킬이 생겼겠네요?!”
“음. 이 시스템 녀석이 본좌를 귀찮게 하긴 하더구나. 그래서 이름까지 빨리 지어 주었다.”
[새로운 스킬을 발견하셨습니다.]
* 염화천공모든 것을 불태운다면 적군도 아군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싸움도 없겠지.
-신체와 착용 중인 장비에 불 속성을 부여합니다.
-시전자의 마력에 따라 염화천공의 위력이 커집니다. 일정 숙련도에 이르면 최소 10m 넓이를 태워 버릴 수 있게 됩니다.
천마의 설명대로 염화천공은 들고 있는 장비와 몸에 불 속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숙련도가 늘어나면 사정거리를 늘릴 수도 있다.
‘정말 형 말대로 된다면 사냥터 하나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거네.’
그만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한 것들이 내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구나.”
천마는 인벤토리 함에서 여러 아이템들을 꺼냈다.
[크라켄의 심장]
-바다의 공포라 불리는 크라켄의 심장이다. 이것은 대륙 최고의 정력제라고도 불려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데······.
크라켄을 사냥하면서 얻은 아이템들.
보스 몬스터인만큼 아이템이 자동으로 습득된 듯보였다.
‘항상 내가 아이템을 수거했으니까.’
천마는 열심히 사냥을 하고 천강은 떨어진 아이템을 주워 천마를 대신해 짐꾼 노릇을 해왔다.
그런데 크라켄의 심장이라.
“저게 그렇게 좋은 건가요?”
-마법 재료로도 쓰인다던데
-플레이어들한테는 필요 없는데, NPC들이 환장해서 사간다고 들음
-구하기 힘들어서 값도 비쌈
-보통 크라켄 심장 하나면 1천만 골드로 거래됨
“와우. 무려 1천만 골드요? 현금으로 계산하면 1천만원이네요?”
바실레이아 대륙에서 통용되는 골드는 현실 세계에서도 거래가 가능하다. 가격이 결코 싸지 않기 때문에 100만 골드가 똑같은 금액인 현금 100만원으로 거래되고 있다.
[크라켄의 촉수]
-크라켄의 거대한 촉수다. 별미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인기다.
5~10m 가량 되는 촉수들이 천마의 인벤토리 함에서 하나씩 튀어 나왔다.
“촉수들도 가격이 꽤 하겠죠?”
-저것도 가격 좀 쳐 주는 걸로 알고 있음-물론 npc 한정이라는 게 함정그 외에도 골드와 크라켄의 점액이 담긴 통을 얻었다. 여러모로 보상이 꽤 괜찮은 편이었다.
“아참. 근데 천마님.”
“응?”
“바다 위는 어떻게 걸으신 거예요? 그것도 스킬인가요?”
“허허.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모르다니. 우리 아우는 한참 배워야겠구나. 그건 스킬이 아니다.”
-허허 저도 좀 알려주십시오. 스킬이 아니라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아니. 제발 천마신교 만들자 응? 나도 천마 형한테 스킬 좀 배우게
-도대체 그게 스킬이 아니면 뭐가 스킬인데 천마는 짧게 혀를 차며 설명을 해 주었다.
“간단하다. 본좌의 내력을 발 밑에 깔아 두면 된다. 그것을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 마치 내가 평평한 평지를 걷는 것처럼 만드는 것이지.”
“음······ 그러니까 스킬이 아니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간단한 것이다?”
“그렇지! 내력을 다스릴 줄 안다면 어린 아이도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를 활용해서 허공답보를 하는 것이고, 초상비를 쓸 수 있는 게지.”
허공답보는 말 그대로 허공 위를 걸어다니는 보법이며, 초상비는 잔디 위, 혹은 풀잎 위를 밟고 걸어 다니는 보법이다.
천마는 아주 간단하다고 설명을 했으나, 문제는 누구도 따라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ㄹㅇ씹 독보적이다
-저게 스킬이 아니라니······
-자괴감
천강은 천마가 이 쓸모없는 아이템들은 전부 가져다 버리자며 바다에 던지려는 것을 간신히 막은 다음에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수천만원을 생으로 버릴 뻔했어.’
그래도 이렇게 일이 잘 끝나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천마도 죽고 함선에 있는 플레이어들 모두 끔살을 당할 뻔했다.
“가까운 도시를 배타고 갔을 뿐인데, 크라켄이 나타난 건 천마 형이 처음일 겁니다.”
-인정하는 부분
-이건 누구한테 가서 따져야 하는 거냨ㅋㅋ
-아니. 운영자들이 천마형 뉴튭각 잡아 주려고 일부러 그런 거라니깐?
시청자들도 지금은 웃어 넘기고 있지만, 처음 크라켄이 나타났을 때만 하더라도 모든 채팅이 욕설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래도 잘 끝나서 다행입니다. 이제 오리아나 도시로 가기만 하면 되겠군요.”
쿠웅-!!
천강은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오리아나에 접어드려는 순간.
불길한 굉음이 들려왔다. 이윽고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검은 먹구름이 온 하늘을 가렸다.
또한 푸르게 돌아왔던 바다 색깔도 다시 시커멓게 변해 천강의 얼굴을 구기게 해 주었다.
“아······ 진짜 설마 또? 님들 아니겠죠?”
-이번엔 또 뭐옄ㅋㅋㅋㅋ
-운영자님들 뉴튭각 충분히 잡았습니다. 그만 해 주세요.
-영자들아. 천마 혐오를 멈춰 줘.
“저기 봐!”
“크라켄이 다시 일어난다!!”
스멀스멀 어두운 기운이 바다 위로 올라오더니, 천마가 죽여 없앴던 크라켄이 다시금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처음 천마가 죽였던 크라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놈의 얼굴부터 촉수들까지 전부 검게 변하고 그곳에서 검은 기운이 풀풀 흘러 내리고 있었으니까.
이건 흡사······.
“이거 설마······ 흑마법인가요?”
-뭐야? 여기서 또?
-2라운드 하는 거임? 개에바참치인데
-이제 그만 하라구욧!!
천마도 크라켄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본좌가 숨통을 끊었을 텐데. 어찌 저리 해괴한······.”
“천마님은 뭐가 보이세요?”
“그래. 본좌가 파괴했던 심장 말이다. 지금 놈에게는 그 심장을 대신해 어두운 무언가가 대신하고 있어. 아무래도 그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구나. 하지만 결코 자의가 아니야. 타의에 의해서지.”
“누군가에게 조종을 받고 있다는 말씀이시죠?”
천마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어둠의 군단과 마찬가지로 크라켄도 흑마법에 물들어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크오오오오-!!”
크라켄이 복수를 다짐하듯 크게 포효하며 바다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이번에는 아주 작정하고 달려들 기세로군.”
천마는 잠시 넣어 두었던 검을 꺼냈고, 다른 플레이어들도 얼른 무기를 꺼내 전투 준비에 임했다.
“응?”
그런데 그토록 어두웠던 하늘에 갑자기 눈부신 빛이 나타나 크라켄의 머리 위를 밝혔다.
“크오?”
크라켄도 그 빛에 이끌려 눈을 위로 돌리는 순간.
쿠우웅-!!
콰지직-!!
낙뢰가 콰릉 크라켄에게 내려치더니, 거짓말처럼 놈을 순식간에 소멸 시켜버렸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죠?”
-운영자: 아 잠만. 실수
-운영자가 실수해서 버그 픽스한 거네.
-실시간 오류 잡기 실화인가?
정말 천강과 천마에게는 이상한 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