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바다의 공포
극한의 컨셉충 59화.
콰아아아-!!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무언가가 항해 중이던 배를 들이받았다.
쿠웅-!
그 충격으로 배가 기우뚱 거리며 흔들렸다.
“모두 꽉 잡아!!”
“물에 빠지면 안 된다!!”선장의 명령에 선원들은 잡을 수 있는 건 뭐든 잡았고, 배에 타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비명을 지르며 벽을 붙잡았다.
“천마님! 천마님도 뭐라도 잡으세요!”
균형 감각을 잃은 천강도 벌러덩 넘어지며 기둥을 간신히 잡았다. 하지만 천마는 이렇게 배가 흔들려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냥 평지에 서 있는 것처럼 갑판에 서서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이건 눈속임이군.”
“예?”
“우리의 진형을 박살내기 위해서 수작을 부린 거다. 진짜는 지금부터 올 거야.”
“아니. 천마님은 아무것도 안 잡아도 괜찮으십니까? 그리고 뭐가 또 온다니요?”
촤아아악-!
천강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천마가 말한 진짜 공격이 시작됐다.
1m 가량 되어 보이는 몸통에 날카로운 창 같은 코를 쭉 뻗고 있는 바다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놈들이 헤엄쳐 다가오는 것을 보고 천강이 기겁하며 소리쳤다.
“스피어 피쉬?!”
바다를 지날 때면 떼거지로 나타나 함선을 습격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살점을 뜯어 먹는다는 스피어 피쉬!
매우 이상한 등장이었다.
“왜 저것들이 여기서 나오는 거야?”
스피어 피쉬는 주로 깊은 바다로 갔을 때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중이지 않은가?
거리도 그리 멀지 않고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위협적인 몬스터도 없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스피어 피쉬들이 하필이면 천마가 타고 있는 배를 공격했다.
“여러분. 이래도 운영자의 개입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 또 영자 새끼 방플하네
-휴먼. 지금 방플이라 했습니까?
-근데 스피어 피쉬가 왜 뜬금없이 나오냐? 진짜 영자가 개입한 거임?
-스피어 피쉬 존맛인데······ 츄릅-.
-네가 뜯어 먹혀도 존맛일까?별 쓰잘데기 없는 얘기도 있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시청자들도 왜 천마에게만 저런 사건 사고가 생기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비하면 약한 수준이긴 하다.
아니. 이런 거에 적응이 되어 가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정작 당사자는 저렇게 덤덤하다는 게 더 문제지만.’
당사자가 방방 뛰면서 난리를 치면 시청자들의 힘을 빌어 바실레이아 온라인에 정식으로 항의라도 할 텐데, 천마는 오히려 이런 걸 즐기는 듯 보였다.
“후후. 본좌에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네가 본좌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엿보았다면 이건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천마로써는 이건 그저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천마신교를 일으키기 전에도, 일으킨 후에도 온 천하가 천마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 한 곳에서 공격이 들어오고, 배신과 권모술수가 난무하게 된다.
그때의 잔혹함과 인간의 역겨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 이런 건 그것들과 비교할 가치도 없다.
그것이 지존이라 불리는 최강자의 숙명이었다.
“그것이 바로 지존의 고독함이지. 강자의 외로움이라고 할까. 세상 모든 것들이 본좌의 힘을 경외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며, 또 질투하니까.”
천마는 수호자의 검을 꺼내 들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스피어 피쉬들에게 시선을 고정했다.눈썰미가 좋은 시청자들은 천마가 들고 있는 무기가 똥검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천마형이 들고 있는 거 뭐임?
-어? 저거 그거네. 마타하니 도시 성주가 천마형한테 퀘스트 보상 준 그 무기 아님?
-오오 드디어 천마형에게도 짱짱한 무기가!!
-성주한테 받은 건 레벨이 안 돼서 못 드는 거 아니었냐?
아직 검에 대해 설명을 해 주지 않았던 천강은 여전히 배가 흔들리는 터라 기둥을 붙잡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님들에게 말씀을 안 드렸네요. 저거 무려 전설 등급의 무기입니다.”
-에????!!!!
-전설 이라고?!!-진짜????
-?????????????
글로벌 퀘스트라서 꽤 좋은 보상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저 정도로 좋은 보상을 첫 퀘스트 때부터 줄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전설 무기의 값어치는 굉장하니까. 하지만 성주가 처음에 준 건 전설 무기가 아닌, 유니크 등급의 무기였다.
“그러니까 이게 말이죠. 하-. 상황이 이래서 설명드리기가 굉장히 애매하네. 일단 자세한 건 이따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설 등급의 무기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 줄 겨를이 없었다.
“으아악!”
“이, 이놈들 좀 떼어내 줘!”
함선 위로 번쩍 날아올라 선원들을 하나씩 찌르고 바다 안으로 끌고 내려가는 스피어 피쉬들 때문이었다.
-진짜 징그럽다
-아까 저게 존맛이라고 한 새끼 나와 -별미이긴 하지. 앞에서 보면 극혐이겠지만
“으아아악!”
“왜 이것들이 여기서 나오는 거야!!”
“마, 막아!”
플레이어들도 이렇게 당할 순 없다고 생각해 어찌어찌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그런데 배가 또 다시 흔들리면 넘어지기를 반복해 스피어 피쉬들의 공격에 대응을 하지 못 하고 있었다.
“안 돼!! 여기서 죽으면 아이템 다 잃는단 말이야!! 나 좀 살려줘!”
플레이어 하나가 스피어 피쉬들에게 찔려 바다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냥 택시처럼 이용하는 그런 이동수단에 불과한데, 갑자기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습격이 일어난단 말인가.
그것도 이런 안전구역에서 말이다!
그렇게 서서히 HP가 0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쯤.
“잡거라.
애처롭게 뻗은 그 손을 천마가 잡아 주었다.
“헉?”
“음. 본좌가 올려 주마.”
천마는 그 플레이어를 끌어당겨 갑판 위로 던져 버렸다.
“위험하니까 잘 숨어 있거라.”
간신히 목숨을 건진 플레이어는 거세게 출렁이고 있는 바다 위를 걷는 천마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저, 저건 스킬인가?”
바다 위에서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는 스킬이라니?
천강도 흔들리는 배에서 이리 굴렀다 저리 굴렀다를 반복하다 간신히 천마를 찾아냈다.
“님들. 제 눈이 이상한 건가요? 천마님이 어떻게 바다 위를 걷고 있는 거죠?”
-그 말이 내 말
-저것도 스킬임?
-뭐야 저건 또. 어떻게 한 거야?
-난 그냥 이해하기를 포기한다.
파도가 잔잔한 것도 아니고 스피어 피쉬들 때문에 거친 상태였다. 그런데 천마는 아주 평안하게 바다 위를 걷고 있었다.
“쯧쯧. 당최 알 수가 없는 노릇이구나. 물 안에서 살아가는 물고기들까지 인간을 먹잇감으로 생각하다니. 정말이지 이 세상은 뭔가 잘못됐어.”
촤아아악-!
천마가 배 위에서 내려온 것을 본 스피어 피쉬들은 마치 처음부터 목적이 천마였다는 것처럼 그에게 노골적으로 달려들었다.
그 덕분에 배 위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공격을 받지 않았다.
스거걱-!
빠른 속도로 해수면 위를 번쩍 날아오르는 스피어 피쉬! 놈들은 그 추진력으로 천마에게 공격을 가해 보았으나, 오히려 반 토막이 나 버리는 건 스피어 피쉬들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름 괜찮구나.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되긴 했어도, 수련을 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은가! 자. 본좌에게 전부 오너라!!”
천마는 물 만난 고기마냥 바다 위를 뛰어다니며 스피어 피쉬들을 사정없이 베어 나갔다.
그런 천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천강.
“음······. 스피어 피쉬가 원래 저렇게 잡기 쉬웠나요?”
천마가 한번씩 뛸 때마다 수십 마리의 스피어 피쉬들이 뭉턱 잘린 대가리를 내놓고 가야만 했다.
바다의 약탈자라 불리며 플레이어들을 공포에 몰아 넣는 스피어 피쉬들이 저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일 줄이야.
-저게 정상인가? 아! 여긴 천마 방송이었지? 그럼 매우 당연한 거랍니다.
-천마가 천마했을 뿐인데, 무슨 문제라도?
-배 위였으면 꼼짝 없이 당했을 거임. 근데 천마형이 뭔 스킬을 쓴 건지, 저렇게 바다 위를 걷고 있으니까 스피어 피쉬들이 힘을 못 쓰는 거지.
스피어 피쉬들은 항상 단체로 움직여 목표로 삼은 함선을 흔들리게 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리고 배가 충분히 흔들리면 그때 공격을 개시하는데,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흔들리는 배 때문에 제대로 스킬을 쓰지 못 한다.
그것을 노려 일방적인 스피어 피쉬들의 사냥이 시작되는 것이다.
괜히 바다의 약탈자로 불리는 게 아니라는 것.
그러나 천마가 거친 파도 속에서도 저렇게 멀쩡히 걸어 다닐 수만 있다면, 있는 거라고는 길쭉하고 날카로운 코 밖에 없는 스피어 피쉬들은 싹둑싹둑 잘려 나갈 수밖에 없으리라.
[천마만세님이 10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근데 아까 함선을 처음 공격한 건 스피어 피쉬들이 아니었음.]
“천마만세님 10만원 후원 감사드려요! 아······ 그런 가요? 저도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자세히 못 봤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함. 스피어 피쉬들은 여러 번 움직여서 배를 흔들리게 하는데, 처음 거는 그냥 큰 무언가가 들이 받은 느낌이었음
후원금을 쏜 회원과 더불어 다른 시청자들도 스피어 피쉬가 처음 공격을 한 게 아닌 것 같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그럼, 다른 뭔가가 있다는 건데. 스피어 피쉬랑 같이 움직이는 몬스터가 또 있던가요?”
-그런 게 있나? 원래 자기들끼리 다니지 않나?
-그렇긴 한데, 혹시 모르지.
-가령 크라켄이라든가.
-크라켄 이 지랄ㅋㅋㅋ시청자들의 채팅에 크라켄이 언급되었다.
바다의 공포라 불리는 크라켄.
하지만 크라켄이라니.
그건 저주 받은 삼각지대로 나가지 않는 이상, 만날 수 없는 거대 몬스터다.
-아니얔ㅋㅋ천마형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우리 영자들 힘내자! 홧팅!
-크라켄 가즈아!!
시청자들이 장난을 치는 것을 천강도 웃어넘기고 있을 때였다.
쿠구구구-!!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러자 푸른색을 띠던 바다 색깔이 갑자기 검은 빛으로 변하면서 점점 함선이 있는 곳까지 물들이고 있었다.
“어······ 어어? 잠깐만. 이거 그거 아니죠? 님들. 그렇죠? 제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죠?”
-PD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 거 같은디?
-뭐야. 저거 그거잖아.
-그거가 뭔데?
-갑자기 저런 소리가 들리고 바다 색깔이 검게 변하는 거. 크라켄이 나오기 전에 보이는 징조임.
-에이 설마
-여기서 크라켄 나오면 진짜 선 넘은 거지
천강도 그냥 자기가 민감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천마에게 열심히 달려들던 스피어 피쉬들이 다급하게 도망치고 있는 걸 그냥 넘길 순 없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거칠게 몰아치던 파도가 멈추고 정말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그저 바닷물만 검게 변했을 뿐.
“음?”
천마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검게 변한 바닷물을 살펴보았다.
“호오. 신기한지고.”
그리고 바로 그때.
콰아아아-!!
일직선으로 무언가가 함선 쪽으로 치닫더니, 곧 부딪혀 배를 크게 흔들리게 만들었다.
“으헉!!”
천강은 그제야 이것이 뭔지 알아차렸다.처음에 배가 흔들렸을 때, 어떤 생명체가 들이받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확실하다! 이건 크라켄의 숨결이야!’
크라켄이 가볍게 숨결을 보내 배를 흔들리게 만드는 것!
그것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를 일부러 알려준다. 더 공포와 두려움에 떨어 도망치라고. 그리고 그것을 쫓아 함선을 박살내는 건 크라켄의 악취미였다.
-??????????
-진짜 크라켄이라고??
-ㅅㅂ돌았냐 운영자 개새끼들아?!
-어어 천마형 위험하다
천강은 신나게 바다 위를 뛰어다니다 함선과 꽤 떨어진 곳까지 가 버린 천마의 뒤쪽을 보게 되었다.
“처, 천마님!!”
그곳에는 길쭉한 크라켄의 촉수가 솟아 나와 있었다. 천강이 다급하게 불러보았으나, 이미 촉수는 그대로 천마가 있는 곳을 내리 찍었다.
콰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