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신검일체 >
극한의 컨셉충 57화.
[악신 리벨리오가 당신에게 새로운 길을 권유합니다. ]
* 악의 절대자: 악으로 세상을 정화하고 악으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 그것이야 말로 주군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악신 리벨리오는 당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악의 힘에 큰 호기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오직 악의 힘만이 대륙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새로운 특성이 부여됩니다.
#악의 승천: 당신의 내면에는 악의 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힘이 조금씩 밖으로 흘러나올 때마다 게이지가 상승합니다.
#최대 150까지 게이지가 상승하게 되면 악의 승천이 발동되어 잠재된 악마를 표출할 수 있게 됩니다.
“뭐,뭐야 이건.”
악신 리벨리오라는 이름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천강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천마에게 나타나 악의 승천이라는 특성을 부여하고 있다.
“별 쓸데없는 짓을 다 하는군. 본좌는 필요 없다. 다시 가져가거라.”
[신으로부터 부여된 특성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투신도 막무가내로 천마에게 특성을 강제 부여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악신이 특성을 부여하다니.
[악신의 존재는 대륙에서도 배척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모험가님께서 악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제국의 수배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허..."
천마에게 나타난 시스템 창을 확인한 천강은 짧게 혀를 찼다. 이건 어딜 봐도 좋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특성이지 않은가.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던 악신이 다시 한 번 대륙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모든 제국이 그 이름을 경계하게 될 것입니다.]
당장 어둠의 마법사가 부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글로벌 퀘스트까지 주어졌는데,그에 한술 더 떠서 악신까지 나타났다.
물론,아직 사람들은 천마에게 악신의 가호가 깃들었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이걸 방송으로 내보내면 끝장이겠지.’
호시탐탐 천마를 노리고 있는 세력들이 많다.
그들은 악신을 빌미로 천마를 죽이려 들 수도 있고,제국에서도 천마를 더 이상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신이란 작자들은 하나같이 귀찮게 하는 재주가 있군.”
천마는 이 상황을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실레이아 대륙이 얼마나 더럽고 추잡한지를 알고 있던 천강은 이걸 그냥 넘길 순 없었다.
“형. 최대한 조심하자. 형도 봤겠지만,그 악신이란게 형한테 붙었다는 걸 알면 우릴 지켜주던 마법 군단도 돌아서게 될 거야. 역으로 형을 사냥하려 들겠지.”
“뭐,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미는 있겠구나. 하지만 네 조언도 잘 헤아려 듣겠다.”
[내 선물이 마음에 듦?]
그때 악신이 천마에게 물음을 던졌다. 천마는 인상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건방진 놈. 본좌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그런 걸 선물이라고 주다니. 본좌가 나중에 네 죄를 죽음으로 묻게 할 것이다.”
[그러든가. 대신,내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꽤 걸릴 거임.]
악신치고는 뭔가 눈꼽만큼도 위엄이 없었다.
[너도 신이 되면 됨. 그럼,신의 권능으로 날 볼 수가 있음. 그때 죽이든 말든 알아서 해.]
끝까지 부여한 특성은 가져가지 않는다고 한다.
[난 널 계속 지켜볼 거임. 아마 내가 준 선물이 나중에는 너무 좋다고 방방 뛰게 될걸? 나는 얼른 네가 악마가 돼서 대륙을 파괴하는 걸 보고 싶음. ]
“본좌는 이곳을 파괴하려 온 것이 아니다. 그저 수련을 하기 위해 온 것일 뿐.’’
[그런 것치고는 지금 벌여 놓은 일이 많아 보이는데?]
[원래 다 그런 거임. 너 같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을 세상이 가만 놔둘 리가 없음. 너는 수련만 하겠다고 숨을지 몰라도,사건은 항상 널 찾게 될 거임.]
그 말을 끝으로 악신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마는 악신이 남긴 말이 와 닿았다.
세상은 결코 천마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무림에서도 그랬고,이제 여기 바실레이아 대륙에서도 그렇다.
“참 지루할 날이 없는 인생이로군.”
“그러게 하루가 멀다하고 판타스틱한 일들만 일어나는 거 같다. 진짜 게임을 하는 건지,롤러코스터를타는 건지……"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아 참. 그런데 이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잖아. 우리 그 칼 얘기하고 있었는데?”
그 좋은 무기를 받아 놓고 짐짝 취급하는 천마가 이해되지 않는 천강이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려고 하는데,악신이 갑자기 끼어든 것이었다.
“이거 말이냐.”
인벤토리함에서 수호자의 검을 꺼내든 천마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 좋은 걸 왜 싫다고 하는 거야?”
“본좌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뭘?”
“이 검을 만든 대장장이는 분명 장인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인물일 터.”
“그렇지. 대장장이 레골라스는 대륙에서 유명해.”
“그래. 바로 그것 때문이다. 달인이라 불리는 대장장이들이 만든 검에는 항상 그 혼이 깃들어져 있지. 이 검을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만큼의 정성과 대장장이의 혼이 들어 갔는지를.”
여기까지 들으면 검을 칭찬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다. 왜 본좌가 좋은 검을 쓰지 않고 굳이 이런 부러지기 쉬운 검을 썼겠느냐?”
“그게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였어?”
“신검일체. 혼신일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말로 불리 는 것이 있지. 바로 검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 저번에도 설명을 했었지? 검과 하나가 되면 아무리 부러지기 쉬운 검이라고 해도 버텨낼 수 있다고.”
“그런데?”
“어떤 것이든 장인의 손에 만들어진 것은 혼이 깃들기 마련. 이 검도 마찬가지다. 보통사람들은 이 검에 어떤 혼이 깃들어져 있는지 모르겠지만,본좌처럼 검과 하나가 된 사람은 이 검의 혼을 알 수 있지.”
천강은 천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형. 설명이 너무 어렵다. 쉽게 해 줘.”
“으음.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본좌가 이 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검의 목소리를…… 엥?”
“명검이란 그런 것이지. 혼이 깃들어져 있으니,당연히 생각을 하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본좌는 이 검과 하나가 되는 대가로 그 목소리를 다 들어줘야 하는 것이고.”
“진짜? 검이 말을 한다고? 그게 가능해?”
“검신일체란 그런 것이다. 진정으로 검과 하나가 된다면 그 검에 깃든 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검과 진정으로 하나가 된 것이 아니다.”
검과 하나가 된다. 그것이 곧 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뜻이 될 줄이야.
천강은 천마가 들고 있는 수호자의 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지금 대화가 가능해?”
“음. 보고 싶으냐?”
“당연하지. 검과 대화를 한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야!”
“쯧. 정 원한다면야.”
천마는 잠시 눈을 감고 뭔가를 집중하는 듯 보였다. 이윽고 그의 몸이 푸른빛을 발산하더니,들고 있던 검도 푸른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된 거 같구나.”
천마의 말에 천강은 검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여봤다. 하지만 아무런 목소리도 천강에게 들리지 않았다.
“당연히 너한테는 안 들리겠지.”
“그,그런가. 형은 들려?”
“음.... 불행하게도 그렇구나.”
[주인이시여. 제 목소리가 들리시는 겁니까?]
“그래. 본좌는 네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누구도 제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는 분이시라니. 영광입니다. 부디 제가 당신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천마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겠다.”
[감사합니다, 주인이시여.]
천마의 대답에 다시 한 번 검이 번쩍였다.
이윽고 새로운 시스템 창이 천마에게 나타났다.
[새로운 스킬을 발견하셨습니다.]
[수호자의 검이 각성하여 새로운 특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헐. 진짜였구나.”
천강은 검과 천마가 나누는 대화를 들을 수가 없었다. 거기 다가 검이 무슨 말을 하는지 히스토리에 남아 있지도 않아 진위 여부를 따지는 건 사실상 불가능.
그러나 새로운 스킬이 생겨나고 검이 각성을 한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천강은 검의 상태부터 확인해 보았다.
[수호자의 검 (진)]
#각성을 이뤄낸 검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대장장이 레골라스가 만든 수호의 검입니다.
-특수 능력 방호: 전체 체력의 100%에 해당하는 방어막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500초마다 사용 가능)
-공격력: 200 체력: 700, 치명타 확률: 20%, 레벨 제한 없음.
-모든 스텟이 10% 증가합니다.
-등급: 전설
-거래 불가.
“으에에엑?!”
모든 능력치가 거의 2배 상승하더니,등급도 전설로 뛰어올랐다,전설 무기는 그 능력치에 따라 최서 몇억. 최대 수십억까지 뛰는 굉장한 등급이다.
“이럴 수가. 전설이라니!”
전설 등급의 무기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천강도 처음이었다.
“그렇게 좋아할 일이더냐?”
“형이 몰라서 그래. 무려 전설이라고 전설!! 이 정도 스펙으로 경매장에 보내면 10억은 그냥 땅길 수 있을걸?”
“그렇군.”
여전히 덤덤한 천마를 보면 참 감탄만 나오는 천강이 었 다.
“스킬! 스킬도 봐보자!”
천강은 흥분된 마음으로 천마의 11번째 스킬을 확인해 보았다.
[새로운 스킬의 이름을 정해 주십시오]
“음…… 신검일체로 할까?”
[신검일체로 결정되었습니다.]
* 신검일체
-검과 몸이 하나가 될 줄 알아야 진정으로 검의 달인이 라 할 수 있다.
-당신은 그 어떤 검과도 하나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니크 등급의 검과 교감이 성공할 경우, 그 검의 고유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일정 확률로 검을 각성시킬 수 있습니다.
-이 스킬은 검이 아닌,다른 무기에도 적용이 됩니다.
아마 대륙에서 이런 스킬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천강은 확신했다.
“형. 그냥 미쳤어. 이건 미쳤다고. 전설 등급 무기에,검의 목소리까지 듣다니. 이건 정말 말이 안 나오는 일이야.”
“하지만 본좌 말고는 누구도 이 검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괜찮아. 이미 형은 검을 각성시켰고,스킬에도설명이 나와 있잖아. 안 믿을 수가 없지.”
이 정도로 좋은 건데 왜 천마가 그토록 검을 가지기 꺼 려했는지 솔직히 천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천강의 의문을 풀어주듯,천마가 말했다.
“이 검은 좀 특이한 거다. 원래 다른 명검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결코 주인에게 수그리려 하지 않아.”
“엥? 진짜로?”
“그래. 대장장이의 성격 때문인지, 아니면 피를 많이 먹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검은 수호자의 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본좌를 주인으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본좌가 예전에 썼던 것들은 그렇지 않았어.”
무림에 있을 때,천마는 2개의 검을 썼었다.
하나는 초신검. 다른 하나는 천성검.
둘 다 무림에서 보물 중의 보물이라 일컬을 정도로 굉장한 명검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이 두 검과의 첫 만남이 썩 좋지가 않았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천마였다.
[넌 또 뭐야,이 새끼야.]
무림 최고의 명검이라 불리는 초신검은 천마의 손이 닿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천성검도 그에 못지 않았다.
[어딜 감히 더러운 손으로 이 몸을 만지고 있어? 당장 안 떼?! 콱 그냥 모가지를 댕강 썰어 버릴라.]
천마는 그날 두 검을 파괴해 버리려 했지만,신교의 사람들이 극구 말리면서 일단 무산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검들도 차츰 천마에게 마음을 열면서 동행자가 되었으나,결코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여기 와서 또 그런 개고생을 하긴 싫구나.”
“응? 어떤 고생?”
“있다. 그런 것이.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데에는 아주 탁월한 놈들이지.”
적군을 괴롭히 는 것에 모자라 아군까지 괴롭히 는 그 두 검의 악랄함에 천마는 혀를 내둘렀던 적이 한두 번이 아 니었다.
‘그나저나 그놈들,내가 많이 그립겠군.’
어떤 사건 이후로 다시는 검을 들지 않았던 천마였다. 가끔씩 그 검들이 천마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지만,애써 무시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놈들의 찰진 욕설이 귀에 멤도는 천마였다.
‘잘 있으려나……'
문득 무림의 향취가 그리워졌다.
< 57화. 신검일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