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나도 너 찍었다.〉
극한의 컨셉충 56화.
“이겼다!!”
“근데 어떻게 이긴 거야?”
“몰라. 이겼으면 된 거지.”
“와. 보상 뭐 주려나?”
전쟁에서 승리한 플레이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사실,그들은 이번 퀘스트가 실패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가고일 군단의 위력이 대단해서 플레이어들이 맥을 못 추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흑마법이 사라지고 몬스터들도 제정신을 차렸다.
“ 천마님!”
“ 영웅이시어!”
에르바를 비롯해 기사들 모두 전쟁이 끝나자마자 천마 앞으로 달려왔다.
“해내셨군요!”
“영웅께서 반드시 해내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천마는 덤덤하게 그들의 말을 들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 뒤에 서 있던 천강은 복잡한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 상황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흑마법 공격을 당했는데,오히려 그 힘을 흡수했다고 하면 누군가가 천마를 흑마법사로 몰아갈 수도 있다. 실제로 카시스도 천마에게 혹시 흑마법사가 아니냐는 말까지 했으니까.
“영웅께서 위대한 활약으로 우리 마타하니를 지켜내셨다! 모두 영웅께 감사를 표하도록!!”
기사단장의 외침에 기사들이 모두 천마에게 예의를 갖췄다. 플레이어들도 그제야 천마가 보스몹을 잡으면서 퀘스트가 성공했다는 걸 알게 됐다.
“보스 몬스터가 뭐였어요?”
“그거 영상으로 나오죠?”
“아직 저번 영상도 안 나왔던데.”
쏟아지는 플레이어들의 질문에 천 강은 섣불리 답할 수가 없었다.
‘공개를 해야 할까?’
논란이 많아질 수도 있는 장면이다. 거기다가 아직 천강은 천마의 히스토리를 체크해 보지도 않았다. 거기에 뭐가 있을지 몰라서 선뜻 확인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여전히 천강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천마가 낯설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성안으로 들어가 성주 앞에 서게 되었다.
“오오. 우리 도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영웅께서 내려와 마타하니 도시를 지켜주셨으니,신들의 축복이 분명합니다. 하여 저는 우리를 지켜 주신 영웅에게 소소한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주가 눈짓을 보내자 부하들이 상자 3개를 가져와 천마에게 보여 주었다.
상자에는 각각 다른 종류의 무기가 들어 있었는데,하나는 마법사의 스태프. 다른 하나는 보우. 그리고 마지막 무기는 롱소드였다.
이번 글로벌 퀘스트 첫 번째 단계의 보상은 바로 무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썩 기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뭔가가 마음에 안든다는 듯이 말했다.
“굳이 하나를 가져가야 하는 건가?”
“예. 영웅을 위해 준비한 무기들이니까요. 마음에 드는 걸 꼭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사양하겠다면?”
“반드시 꼭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거듭된 물음에도 성주는 웃으며 얼른 가져가라는 말을 반복했다.
거절은 불가하고 필수 선택을 해야 하는 보상이었다.
내키지 않지만,천마는 검을 쥐었다. 그러자 성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양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대륙의 신들이 우리 영웅께 축복을 내려 주시길!”
[마타하니 도시는 큰 승리를 이뤄낼 수 있게 도와준 모험가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2달 동안 모든 세금을 50% 이하로 낮춥니다. ]
[전쟁에 참여한 모험가는 마타하니 도시에서 2달 동안 모든 물품을 20% 인하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전쟁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이 화끈한데?”
“그래. 이게 진짜 보상이지.”
“세금 50% 낮춘 것도 진짜 대박이다.”
“20% 낮춘 가격으로 물품 살 수 있는 것도 쩔고.”
플레이어들도 대체적으로 보상에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천마를 주시하고 있던 길드원들은 이번 퀘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영웅이시여. 하지만 아직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방금 전 마타하니 도시에 소식이 들어 왔었습니다. 이곳 말고도 다른 곳도 어둠의 군단에게 공격을 당했고,그 성들은 결국 군단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마타하니 도시만 공격을 받은 게 아니었다.
글로벌 퀘스트가 시작되면서 총 7개의 도시가 공격을 받았으며 마타하니를 제외한 6개 도시는 어둠의 군단에 의해 파괴되고 말았다.
“우리가 처치한 어둠의 군단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더 많은 군단이 생성되기 전에 영웅께서 그들을 막아 주십시오.”
[글로벌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Chapter. 2 영웅의 자격 ]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나타난 글로벌 퀘스트 Chapter 2.
그들에게는 그 정도의 퀘스트 알림 창만 나타났으나,천마에게는 조금 더 많은 설명 창이 나타났다.
[당신은 대륙의 영웅으로 선택받은 모험가입니다. 이 퀘스트는 오직 영웅으로 지정된 모험가만 클리어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저희 정보원들이 보낸 첩보에 의하면,항구 도시 오리아나에 서 흑마법사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흑마법사들을 추적하라.
흑마법을 쓰는 놈들은 모두 사형에 처한다는 것이 제국의 법입니다. 흑마법은 위험하며,그것을 숭배하는 행위만으로도 가문이 멸족을 당하게 됩니다.
오리아나에서 발견한 흑마법사들을 추적하십시오. 그들은 어쩌면 어둠의 마법사를 부활시키기 위한 세력의 일원일지도 모릅니다.
오직 천마에게만 부여된 퀘스트였다.
오리아나 항구 도시로 이동해 흑마법사들을 추적하는 것.
“거절은 안 되겠지?”
[영웅으로 선정된 이상,부여된 퀘스트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흠......"
천마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께서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제가 열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성주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난 뒤 물러났다.
천마는 성주에게서 선물 받은 검을 대충 둘러보다 인상을 찌푸리며 인벤토리 함에 넣어 두었다.
“아우야.”
“으…. 응?"
어색해진 분위기 때문에 가까이 있을 뿐,말도 걸지 못하고 있던 천강은 갑작스러운 천마의 부름에 화들짝 놀랐다.
“조용한 곳으로 가자. 여긴 보는 눈이 너무 많구나.”
한층 부드러워진 천마의 목소리에 천강은 조금 안심하며 천마와 함께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워낙 인파가 많아 탈출이 쉽진 않았지만,기사들의 도움으로 천강과 천마는 단둘이 남게 되었다.
막상 단둘이 남게 되자 천강은 뭐부터 말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처럼 말을 걸어 볼까 싶어도 흑마법에 동화된 천마의 차가운 모습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본좌는 말이다. 아니. 본좌의 힘은 말이다.”
그런 동생의 마음을 읽었는지,결국 먼저 운을 떼게 된 것은 천마였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힘이 아닌,무언가를 파괴하고 짓밟는 본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 힘 자체가 악하고 악했지. 그래서 그 힘에 취한 본좌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천하를 다스렸다.”
천강은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천마의 말을 경청했다.
“본좌는 스스로의 힘이 악하다는 것을 부정했지.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보다 악한 힘이 존재할 수 없었다. 끊임없이 피를 갈구하고,무언가를 파괴해야 한다는 욕망이 본좌의 몸을 지배했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는 순간,본좌는 그러한 욕망에서 해방이 됐었지.”
천마신공은 그 이름에 걸맞게 하늘과 땅에서 가장 악한 힘을 가진 무공이었다.
누군가를 살리는 무공이 있다면,이 무공은 궁극적으로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공이었다.
파괴의 신이라 불리던 아수라의 이름이 들어간 초식이 천마신공에 많은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본좌는 왜 패도를 걷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정한 목적이 사라지고 말았지. 그저 욕망에 따라 파괴를 일삼았을 뿐.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러한 욕망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다. 아까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야.”
“아까 전이라면……"
“그 마법사에게서 본좌와 비슷한 종류의 힘을 느꼈다.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나,그 본질은 똑같았지 . 악함과 파괴를 혼합한 그 힘. 그것이 본좌를 잠시 취하게 만들었다.”
카시스가 활용하던 흑마법은 천마가 다루던 무공의 본질과 매우 비슷했다. 그래서 흑마법이 천마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흡수되어 그의 힘이 되어 준 것이었다.
“오랜만에 그 힘에 취하니,세상 모든 걸 가진 기분이 더구나. 뭐,그리 많은 양의 힘이 들어온 게 아니라서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순 없었지만 잠깐의 여흥을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둠의 맛을 느껴본 천마는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곳에 오면서 본좌는 상당히 가벼워졌다. 아무래도 천마신공을 더 이상 쓰지 못 하는 이유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때 그 힘을 흡수하는 순간,본좌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온 천하를 피바다로 만들고 즐거워하던 그때의 괴물로 말이다.”
후회하는 것일까.
천마의 얼굴에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욕망과 환희는 본좌를 서서히 지배해갔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더구나.”
천마는 미소를 지으며 천강을 바라보았다.
“아우의 얼굴과 어머니의 얼굴이 말이다.”
“..."
“너에게도,그리고 어머니에게도 본좌의 본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가 않았다. 오직 피를 갈구하기만 하는 괴물의 모습으로 너에게 다가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모든 힘을 끌어모아 한꺼번에 터트렸지. 최대한 빨리 그 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래서 그랬던 건가.
천마가 어둠의 구체를 만들어 한꺼번에 터트렸던 것을 천강은 직접 눈앞에서 보지 않았던가.
“아무튼,본좌의 그런 모습은 잊거라.”
천강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동안 애써 붙잡고 있던 믿음마저 흔들렸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어쩌면,정말로 천웅이 아니라 무림 세계에서 살아왔던 천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천강을 괴롭혔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는 천강이었다.
“그런데 형. 그 천마신공이라는 거. 형이 천천히 익혀 가고 있잖아. 그렇게 되면 결국 아까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난 형이 그 힘에 취한다고 해도 괜찮을 거 같아. 어차피 이곳은 게임인걸?”
“그냥 본좌가 보여주기 싫구나. 그리고 천마신공을 익히다 보면 자연스레 그 힘에 취할 때가 오겠지. 그러나 본좌가 정신을 유지하며 그 힘에 넘어가지 않으면 무작정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천마신공은 한번 폭주하기 시작하면 스스로도 통제가 되지 않을 만큼 끝없이 파괴를 일삼는다. 실제로 천마는 몇 번의 위기 때마다 봉인을 풀고 폭주하여 수많은 적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천강은 형이 그렇게 변한다고 해서 딱히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분명 오늘 봤던 천마의 모습은 매우 차갑고 무서웠지 만,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굉장했다.
거기다가 여긴 현실 세계가 아닌,게임 속 세계이지 않은가. 그래도 본인이 보여 주기 싫다는데 억지로 등을 떠밀고 싶진 않았다.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런데 형이 그렇게 변하는 걸 녹화를 하긴 했는데……. 영상으로 올리면 안 되겠지?”
“음……. 괜찮다. 그냥 올리거라.”
“괜찮아? 정말?”
“그래.”
아마 이 영상이 나가면 또 한창 커뮤니티가 시끄러워 질 게 뻔했다.
“아 참. 형.”
“ 음? ”
“아까 성주가 줬던 무기 . 그거 뭐 야?”
“아. 그거 말이냐.”
천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인벤토리 함에서 무기를 꺼냈다.
[수호자의 검]
-대장장이 레골라스가 만든 수호의 검입니다.
-특수 능력 방호: 전체 체력의 50%에 해당하는 방어막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500초마다 사용 가능) -공격력: 120, 체력: 500, 치명타 확률: 10%,레벨 제한 없음.
-모든 스텟이 2% 증가합니다.
-등급: 유니크
-거래 불가.
“ 와우.”
어떤 보상을 주나 했더니,유니크에 해당하는 검을 주다니. 거기다가 만든 이가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라 불리는 레골라스였다.
“ 전체 체력 50%에 해당하는 방어막? 치명타 확률 10%? 모든 스텟이 2%나 올라간다고? 이거 진짜 좋은데.”
“그러냐. 그럼, 너한테 줄까?”
“어휴. 내가 이런 좋은 걸 껴서 뭐해. 거기다가 거래 불가라서 나한테 양도도 안 돼.”
“쯧. 짐이 하나 늘었군.”
천강은 천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왜 이 좋은 걸 왜 짐짝 취급하는 건데?”
“그건……"
천마가 한숨을 쉬며 설명을 하려는 찰나.
“ 음?”
천마 앞에 새로운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악신이 당신의 힘에 흥미를 느낍니다.]
[악의 힘을 사랑하고,파괴와 피의 냄새를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끔찍하고도 재앙과도 같은 악함을 이 내가 직접 마주했으니,그대는 거절하지 말고 나의 길을 따르라.]
“……뭐라고?”
[대충 내가 널 찍었다는 얘기다.]
악신의 러브콜이었다.
< 56화. 나도 너 찍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