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한의 컨셉충-45화 (45/140)

45화. 뭐지?

극한의 컨셉충 45화.

“빼앗자고?”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꼭 배 뒤집어 까 죽은 바퀴벌레 쳐다보듯이 보네.”

“원래 항상 그렇게 보고 있긴 했다.”

판테온은 레이피드의 제안이 꽤 의아한 모양이었다.

“천마, 그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좋아하지.”

“그런데 빼앗자고?”

“좋아하니깐.”

“······?”

레이피드는 음흉하게 입가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난 그 사람이 고통 받고 절규하는 걸 보고 싶거든. 그러면 엄청 짜릿하지 않을까?”

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길드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애써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원래 쭉 하던 거였잖아. 무엇이든지 독식하는 거. 우리 길드의 목표는 뭐다? 바실레이아 대륙에 있는 모든 걸 독식하는 거야. 전부 우리 것으로 만드는 거지.”

원래부터 레이피드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터라 판테온은 금방 납득을 했다. 아마 세상 제일 광기스러운 남자는 지금 눈앞에 있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일 것이다.

하필이면 제일 친한 친구가 이 모양이라는 건 조금 슬프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어때? 확 빼앗아 버리는 거.”

“별로 내키지 않는군.”

“응? 정말로?”

“그냥······ 이번에는 그 천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퀘스트를 풀어 나가는지 한번 보고 싶달까.”

이번에는 레이피드가 의외였다.

판테온은 항상 레이피드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별 시답잖은 조언이라도 진지하게 고려해서 대부분 그 의견에 따랐다.

당연히 이것도 그럴 줄 알았는데, 판테온은 천마가 어떻게 퀘스트를 진행하는지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어차피 다른 놈들이 빼앗아 들려 하겠지. 만약 그때······.”

“천마가 정말 다른 놈들에게 퀘스트를 뺏기면 그때 움직이자는 거지?”

“그래. 그땐 우리가 움직이면 된다. 지금은 방해하고 싶지 않아.”

“짝사랑이야 뭐야. 그럴 거면 그냥 가서 영원히 지켜주고 싶다고 고백을 해라.”

핀잔을 주긴 했지만, 레이피드도 판테온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지금처럼 격 없이 지내고 있긴 하나, 판테온은 명실상부 이 길드의 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피드는 철저하게 선을 지킬 건 지켰다.

그렇지 않으면 잘 키워 놓은 길드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까닭이다.

“일단 지켜볼게. 근데 분명 다른 놈들한테 빼앗길 걸?”

* * *

“후.”

“긴장되는 것이냐.”

“당연하지. 일부러 방송도 안 켰잖아. 안전해졌다고 판단될 때까지는 조용히 있어야지.”

천마와 함께 다시 게임으로 들어온 천강은 주변 분위기가 무겁다는 것을 느꼈다.

곳곳에 길드 깃발을 들고 돌아다니는 무리가 있었고, 암살자처럼 보이는 이들이 어슬렁거리면서 사방을 살폈다.

이들 모두 천마를 찾고 있다는 걸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커뮤니티에서 안 그래도 난리던데. 마타하니 도시에 군사들이 쫙 깔렸다고. 우리 영상 댓글에도 조심하라는 경고가 정말 많았어.”

“여기나 무림이나 별반 다를 게 없구나. 냄새를 맡은 사냥개들이 도처에 깔리는 것은 말이다.”

“무려 글로벌 퀘스트잖아. 대박 한번 제대로 터트리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 나는 거겠지.”

“흠······. 그런데 아우야.”

“응?”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것이냐?”

사실 천강은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천마를 수풀 속으로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30분 동안 그곳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주변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그, 그게 나도 언제 나가야 하는지 타이밍을 못 잡겠네. 저 양반들이 저렇게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아주 작정을 했는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천마를 찾아 빼곡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만약 잘못 눈에 띄었다가는 사방에서 적들이 몰려들게 될 것이다.

“쯧. 본좌는 이런 거에 성미가 맞지 않는다.”

천마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벌떡 일어났다.

“응? 혀, 형?”

“나가자꾸나. 염탐은 이 정도 했으면 충분히 했다. 놈들이 어떤 길로 다니고 있는지 파악했으니까. 마주칠 일은 아마 없을······.”

쉬이이익-!

퍼억-!

천마가 성큼성큼 수풀 밖으로 나가자마자 돌연 화살 하나가 천마의 옆을 세차게 지나가 나무에 박혔다.

“히익-!”

천강은 놀라 어디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한 무리가 천마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진짜였네. 진짜 여기 있었어.”

“내가 말했잖아. 여기 있을 거 같다고.”

길드에서 파견한 추적자들. 그들은 지금처럼 숨어 있는 상대를 찾는 데에 특화된 이들이었다. 천마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음. 추적자들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해서 나름 기를 숨기고 있었거늘.”

“오우. 그러셨어요? 확실히 그쪽은 냄새 맡기가 힘들었는데, 그 옆에 있는 분이 수상한 냄새를 풀풀 풍기셔서 말이지.”

천마는 스스로의 기운을 갈무리 하여 외부에 발각되지 않게 했었다. 하지만 천강은 그런 방법을 전혀 모르지 않던가. 그래서 들키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런 곳에 숨어 있으니까 찾기 힘들긴 했어. 이런 숲속은 하도 냄새가 나는 것들이 많아서······.”

천마는 상대가 뭐라 하든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어디가 약점인지를 파악해 두었다.

“시끄럽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 본좌를 잡으러 왔다는 건데. 할 일이나 하거라.”

“와. 방송도 아닌데 끝까지 컨셉 지키는 거 봐라.”

“미친. 방송 때만 저러는 줄 알았더니, 그냥 참 트루 컨셉충이었네. 그래도 조금 미안하긴 하네. 방송 잘 보고 있었는데 말이야.”

상대 숫자는 총 여섯.

천마는 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한꺼번에 들이쳐. 그래 봐야 쪼렙이야."

천마를 완전히 무시하는 어투였다.

추적자들 중에는 암살자도 섞여 있어 레벨이 기본 150 이상은 되었다. 그들은 영상을 통해 천마의 실력을 대충 알고 있었지만, 그래 봐야 아직 100레벨도 되지 못 한 초보자라고 생각했었다.

분명 그랬어야 했다.

콰득-! 콰직-!

“커헉!”

“뭐, 뭐야?!”

놈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이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천마는 몸을 움직였다.

영상에서 봤을 때는 눈으로 따라가기 쉬웠겠지만, 막상 눈앞에서 상대하게 되면 따라잡기가 힘들다는 걸 지금에서야 깨달았으리라.

천마는 그들의 안으로 파고 들어 검무를 펼쳤다.

허공을 가르며 나아가는 검끝이 그들의 몸을 사정 없이 베고, 또 찔렀다.

“이런 시발!”

“그냥 운 좋게 뜬 컨셉충 새끼가!”

이들은 천마의 위치만 알면 아주 손쉽게 그를 잡을거라 생각했다. 절대 자기들이 천마에게 질 리가 없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래서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들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에.

그러나 이성을 잃고 덤벼드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버러지 같은 것들.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말거라.”

“아, 안 돼!”

스거걱-!

마지막 적이 절규 어린 외침과 함께 쓰러지면서 천마는 검을 거두었다.

싸움의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이들의 움직임을 보고 천마는 짧게 혀를 찼다.

차라리 오크들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순식간에 6명의 플레이어들이 죽은 것을 보고 천강은 어안이 벙벙했다.

천강이 저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는 건 그만큼 고레벨이란 뜻인데, 그런 그들을 천마가 단숨에 정리할 줄이야.

“이거······ 너무 벨붕인데.”

추적자들과 암살자들이 표적을 치는 걸 한 두 번 해 본 것도 아닐 테고.

아직 레벨 100도 넘기지 못 한 상대에게 저리도 허무하게 당할 줄은 누구도 몰랐으리라. 분명 어디선가 어슬렁거리며 천마를 찾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같은 마음이겠지.

영상은 영상일 뿐.

어차피 고레벨 플레이어들이 협공을 가하면 천마는 뼈도 못 추린다는 고정관념이 모두에게 박혀 있는 것이다.

아무리 날고 긴다는 플레이어도 다른 이들의 협공을 받으면 순식간에 삭제가 되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건 천마에게 논외인 모양이다.

‘노, 녹화하길 잘했다.’

다급한 순간에도 PD의 본분을 잃지 않은 스스로의 순발력에 천강은 감탄했다.

“형. 얼른 여기서 나가자. 또 다른 놈들이 올 거야.”

일단 노출이 되었으니, 더 많은 적들이 몰려 오기 전에 천강은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런데 천마가 그런 천강을 붙잡았다.

“이미 늦었다.”

“응?”

“사방에 적들이 벌써 깔려 있어.”

어디에? 라고 중얼거리며 천강은 고개를 위로 올려다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높이 솟아 오른 나무에서 플레이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놈들이 우릴 발견했다는 걸 알고 달려온 것이겠지. 그리고 우리가 싸우고 있는 걸 가만히 지켜만 봤고.”

은신술을 써서 숨은 다음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머리수가 많지 않다면 아까처럼 싸우겠지만, 문제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며, 몇 명이야. 도대체.”

나무 위에도 있고 수풀 사이로도 플레이어들이 슬그머니 나오고 있었다.

수십. 아니. 수백.

도대체 여기에 천마가 있다는 건 다들 어떻게 안 것인지, 각 길드에서 파견한 플레이어들이 죄다 모이는 중이었다.

“······.”

어색한 침묵이 이들 사이에 감돌았다.

웃긴 건 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재밌는 구도군.’

천마는 지금 이 팽팽한 긴장감이 왜 생기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들은 서로 아군이 아니다. 그렇기에 누구 하나 먼저 움직이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조급함에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다른 세력들의 협공을 받아 쓰러지게 될 터.

이들은 음습하게 눈빛만 교환하며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이러고 있을 기세로군.'

천마는 씨익 웃으며 뽑은 칼을 땅에 꽂았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도저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마!”

“······?”

천강은 이 형이 또 뭘 하려는 건가 싶어 눈을 껌뻑였다. 언제 공격이 날아올지 몰라 똥줄이 타는 천강인데, 천마는 적에게 둘러 싸여 있는 이 순간이 매우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너희들의 목표는 본좌이지 않은가? 그러니 서로 싸우지 말고 전부 본좌에게 덤비거라!”

“······에?”

잠깐만요. 형님?

“본좌는 만인지상(萬人之上), 그 자체! 너희들이 비록 본좌를 포위했다고는 하나, 본좌는 결코 두렵지 않도다! 그러니 모두 덤벼라! 본좌의 검으로 너희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주마!”

천마의 당당하고도 무모한 외침.

충격, 공포, 당황이 한꺼번에 몰려온 천강은 잠시 넋이 나갔다.

그러다 광채가 나는 듯한 제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가 찌릿하게 올라왔다.

“큭······.”

병신 같지만 멋있다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것일까. 누가 봐도 무모한 싸움이었으나, 천마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 미친 듯이 달려 들겠구만.’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도망갈 틈은 없어 보였다.

천강도 싸울 준비에 들어갔다.

여기서 형제의 뜨거운 맛을 단단히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공격을 하지 않는다. 마치 마실 나왔다가 자리 잡고 서 있는 구경꾼마냥 누구 하나 발을 떼지 않고 있었다.

‘왜들 저러는 거지?’

사실 이들에게도 이들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천마의 발언에 이들 모두 흠칫했던 것이다.

‘무언가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나올 수가 없지.’

‘뭐지? 우리가 모르는 아군이 있는 건가?’

‘다른 길드에 들어갔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설마, 안전을 위해 길드에 가입이라도 한 걸까?’

천마가 저렇게 당당한 건 분명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여기 있는 누군가가 천마의 아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

그러므로 저것은 함정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중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이들은 조용히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 좋은 놈이군.’

‘괜히 저런 컨셉으로 방송을 해서 순식간에 뜬 게 아니겠지.’

‘이거 뭔가 우리가 유인을 당한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슬쩍 빠져야 하는 건가.’

그런 그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마는 이런 고요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림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피 터지는 싸움을 기대했건만.

“쯧쯧. 멍청한 것들. 그런 쥐똥만한 각오로 본좌를 치려했던 것이냐. 너희들은 사파 나부랭이들보다 더 심각하구나.”

그래서 천마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섰다.

“좋다. 오지 않겠다면, 본좌가 직접 가주마.”

그 말에 그들은 더더욱 긴장했다.

‘오는 건가?’

‘어디냐. 어떤 놈이 저놈과 한 패인 것이냐!’

‘제길. 이러다가 뒤에서 공격이 날아오기라도 한다면······!’

순간 패닉에 빠진 암살자들은 재빨리 눈알을 굴리며 서로가 서로를 경계했다.

어디서 공격이 날아올지 모른다.

그 미칠 듯한 긴장감에 숨이 턱 차오르기까지 했다.

그리고 천마가 발을 떼는 찰나.

“헉!”

“윽!”

나무 위에 있던 암살자가 움찔거리는 걸 스킬 모션이라 생각해 반대편에 있던 암살자가 반사적으로 스킬을 써버렸다.

그렇게 신호탄이 터졌다.

“쳐, 쳐라!!”

“그냥 눈에 보이는 건 전부 죽여!!”

“우오오오!!”

그렇게 예고도 없이 싸움이 시작되었다.

물론, 천마는 쏙 빼고 말이다.

“으아악!”

“크헉!”

분명 자기를 잡으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놈들은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천마는 비명을 지르면서 죽어 가는 자객들을 바라보며 턱을 긁적였다.

천강도 허탈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뭐지, 저 병신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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