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한의 컨셉충-44화 (44/140)

44화. Latte Is Horse

극한의 컨셉충 44화.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까.’

라떼 is 홀스 감옥에 무려 3시간 동안 갇혀 있던 천강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있는 천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건방진 놈들이 황제를 등에 업고 나타나 본좌를 핍박하려 들었지. 허나, 본좌는 황제가 앞에 있다고 해서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을 단번에 쓸어버리고 곧바로······.”

원래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나.

방송 때 이렇게 했으면 좀 먹혔을지도.

천마가 천마신교를 만들고 그 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장황하게 펼쳐 놓느라 천강은 진이 다 빠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본좌가 무림맹을 뒤엎어 버렸을 때 장백파에 있는 그 친구가······ 음.”

기세만 보자면 하루 종일 얘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갑자기 천마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

“장백파에 있는 친구가 누군데?”

“아니다. 그만 하자꾸나. 본좌가 생각도 없이 너무 떠든 모양이다. 피곤할 텐데, 그만 가서 쉬거라.”

“응? 뭐야. 기승전결도 없이 갑자기 끝내 버린다고?”

천마는 별다른 대꾸도 없이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이렇게 오늘 날밤을 까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끝내고 나니 뭔가 찝찝했다.

“똥 싸다 끊긴 기분이네.”

원래 사람을 화나게 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하던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천강아. 천웅아. 나와서 밥 먹어라!”

“아, 응!”

경희의 부름에 천강도 방 밖으로 나와 거실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천마는 묵묵한 얼굴로 경희가 차려 준 밥상에 앉아 국을 뜨고 있었다.

뭔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떠올린 건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풀리겠지 싶어 천강은 밥을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확인해 보았다.

“밥 먹을 때는 폰 좀 보지 말라고 했지.”

“아, 미안해. 근데 꼭 확인해야 되는 게 있어서.”

아까와 똑같이 포털 사이트는 천마가 받은 글로벌 퀘스트로 시끄러웠다.

[BJ 천마로부터 시작된 스노우볼. 과연 이번 글로벌 퀘스트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1년 만에 나타난 글로벌 퀘스트! 과연 그 주인공은?]

[네임드 길드들, 벌써부터 발 빠르게 움직이는 중.]

[어둠의 마법사 킬리야는 누구인가? 그가 부활하면 바실레이아 대륙은 어떻게 되는가?]

각종 추측이 난무하고 억측성 기사들이 나돌았다.

어떤 기사는 아예 노골적이기까지 했다.

[천마 신변의 위협?]

[글로벌 퀘스트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또한 여러 루머까지 떠돌았다.

[천마, 이대로 퀘스트 포기인가?]

[정화의 정수, 현재 경매에 올라와 있어. 플레이어들 실망.]

[천마, 그는 벌써 사망한 것인가?]

[주의! 가짜 정화의 정수 매물들이 판을 치고 있다!]

천마가 벌써 다른 길드 손에 죽었다느니, 퀘스트를 포기하고 정화의 정수를 경매장에 올려놨다느니 등등.

사람들은 갖가지 추측을 내놓으며 천마의 행방을 알고자 했다.

커뮤니티도 글로벌 퀘스트 때문에 시끄러웠다.

[나 마탑에 드나드는 마법사거든? 내가 오늘 어둠의 마법사에 대해 조사를 해봤는데 말이야.]

-사실 구라야. 제발 아는 사람 있으면 말 좀 해줘.

-ㅋㅋㅋ마탑에 드나든다고 했을 때부터 구라인 거 알았다.

-구라인 거 알면서 게시글을 클릭해 들어왔다? 흑우 인증

-응 그건 바로 너

[어둠의 마법사에 대해 모르는 병신들이 있었네.]

-바실레이아 대륙 역사서라도 읽어 봐라. 어둠의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 ㅈㄴ나온다. 여기서 찡찡 대지 말고 도시마다 있는 도서관이라도 가보셈

-꿀정보 추천 박고 간다

-추2

대체적으로 어둠의 마법사에 대한 궁금증이 깔려 있었는데, 천강도 사실 이 어둠의 마법사가 대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아본 게 없었다.

그래서 그도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어둠의 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긁어 모았다.

[바실레이아에 있는 5개의 제국 중 2개의 제국이 어둠의 마법사에 의해 멸망 당했다.]

이것만 봐도 어둠의 마법사 킬리야의 힘이 얼마나 미칠 정도로 강했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재 바실레이아에는 3개의 제국이 있다. 그 외 여러 왕국들이 존재하지만, 메인이 되는 건 3개의 제국이다.

물론,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 세운 나라는 여러 군데가 있기에 종족들 간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150년 전에는 5개의 제국이 있었고, 2개의 제국이 어둠의 마법사에 의해 박살이 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 당시 어둠의 마법사가 가진 힘은 마법의 신조차 감당하지 못했을 정도이며, 그가 부리는 죽음의 군단이 200만 군대를 쓸어버렸다.]

듣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숫자다.

한 개의 제국이 운용할 수 있는 군대는 보통 50만. 하지만 그 제국에 속한 플레이어들이 참여한다면 50만은 금방 100만이 되고 200만도 훌쩍 넘을 수도 있다.

그만큼 바실레이아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숫자가 전 세계적으로 많으니까.

“그런데 어둠의 마법사라는 놈이 그 많은 대군을 쓸어버렸다는 거지.”

지금 다시 부활한다면 나머지 3개 제국도 씹어 먹을 놈이라는 건 충분히 알겠다.

[대륙은 그대로 멸망을 당할 뻔하였으나, 신들의 가호를 받은 천상의 영웅이 나타나면서 대륙은 구원을 받았다. 천상의 영웅, 헬리오르는 어둠의 마법사를 무찌르고 마침내 그를 지옥으로 빠뜨렸다.]

헬리오르라는 이름은 천강도 몇 번 들어보았다.

가끔 도시를 지나다닐 때면 헬리오르를 본 따 만든 동상이 있을 정도니까.

모든 영웅의 표상이 되는 인물이지만, 그는 어둠의 마법사를 없애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바쳤다고 한다.

[그렇게 대륙은 평화를 맞이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둠의 마법사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킬리야의 부활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 말고도 어둠의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를 쓴 연대기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볼 필요는 없었다.

“당장 지금이 중요하다.”

어둠의 마법사가 드럽게 세다는 기본적인 정보는 알아 두었다. 이제 중요한 건 어떻게 도시 안으로 들어가 루리프 신전으로 가냐는 것이다.

“암살자들이 쫙 깔려 있겠지.”

커뮤니티에 글만 봐도 지금 바실레이아 대륙 안 상황이 얼마나 흉흉한지 알 수 있었다.

[우리 형이 세니아 길드원인데, 지금 마타하니 도시에 고레벨 고수들이 죄다 모였다고 하더라.]

-ㅇㅇ맞아. 암살자들도 ㅈㄴ많이 대기 중임.

-혹시라도 깝치다가 끔살 당하지 말고 다들 마타하니 도시는 들어가지 마라

-길드끼리 전쟁날 분위기라고 하더라.

여러 길드들이 마타하니 도시로 모여 전초전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들은 천마가 나타나면 즉시 행동에 들어가게 될 터.

천강은 짧게 침음을 흘리며 다음 글도 읽어 보았다.

[이렇게 보면 참 천마 대단하지 않냐?]

-데뷔한지 6개월도 안 됐는데, 벌써 바실레이아 대륙에서 가장 핫한 사람이 됐음. 이 정도면 진짜 클라스는 인정해야 된다고 본다.

-ㅇㄱㄹㅇ 천마 컨셉을 잡은 것만 봤을 땐 그냥 개그캐릭인가 싶었는데, 무협풍 스킬들을 여러 발견하고 히든 직업부터 퀘스트, 거기다가 글로벌 퀘스트까지 발견하는 거 보면 진짜 미친 사람임.

[아냐. 너희들은 지금 다 속고 있어.]

-이 모든 건 사실 천마의 PD가 계획한 일이다. 우리 모두 PD 놈 손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지. 후후후.

-PD 그림자 정부설?

-PD는 사실 일루미나티였다?

-ㅁㅊ새끼들

이상한 글들도 있고 쓸모 있는 글들도 있었다. 그중 천강의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번 글로벌 퀘스트에 네브레 길드가 움직이고 있다는데, 들어봄?]

-ㄴㄴ루머 사절

-지금 거기 정복 전쟁하느라 바쁘지 않냐?

-빵테가 잘 만든 빵이 먹고 싶어서 전쟁 일으켰다고 하던데. 진짜임?

-근데 글로벌 퀘스트면 네브레 길드에서도 눈독 들이만 하지

50% 이상이 미국인 플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네브레 길드.

일단 판테온이 미국인이라고 알려지면서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바실레이아 대륙 안에서도 은근히 국가간의 마찰이 있어서 길드끼리의 전쟁이 아니라 국가전으로 번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네브리 길드까지 움직인다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그냥 히든 퀘스트도 아니고, 대륙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글로벌 퀘스트인데.

네브레 길드에 대한 악명은 상당히 높아서 천강은 슬몃 걱정이 됐다. 이러다가 고래들 싸움에 괜히 새우등이 터지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근데 판테온도 과연 우리 방송을 보긴 볼까?”

점점 외국인들의 유입이 많아지고 있는 천강의 채널이었다. 왠만하면 방송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판테온이지만, 그도 결국 사람이기에 다른 이의 방송은 볼 수 있을 터.

“에이. 설마, 우리 방송을 보겠어?”

잠시 기대를 했으나, 이내 고개를 젓는 천강이었다.

* * *

“재밌는 녀석이군.”

천마의 영상을 오늘도 꼬박 챙겨본 판테온은 왕좌에 앉은 채로 턱을 쓸어 내렸다.

글로벌 퀘스트를 받는 영상은 아직 천마 쪽에서 올리지 않았으나, 그날 생방송을 보던 몇몇 회원들이 녹화해 둔 영상을 뉴튜브에 올려 두었다.

물론, 저작권 문제로 금방 삭제가 되었지만 판테온은 운 좋게도 그 영상을 볼 수가 있었다.

“글로벌 퀘스트라······.”

판테온도 글로벌 퀘스트에 인연이 깊었다.

태초의 전사라는 사상 최초의 히든 직업을 얻게 된 것도 글로벌 퀘스트를 통해서였으니까.

놀라운 피지컬도 있었지만, 태초의 전사라는 직업이 주는 사기적인 스킬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천마도 글로벌 퀘스트의 주인공이 되었다.

“되도록이면 안 올라왔음 했는데.”

천마의 성장세를 유심히 지켜보던 판테온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지만, 점점 발전해 가는 천마를 보며 판테온은 자신의 초창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아니. 그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 판테온은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왔으나,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지 않던가.

거기다가 만약 천마가 저 상태로 계속 성장을 이어 간다면 어디까지 그 영향력을 끼칠지 모른다. 그럼, 이 대륙 최강의 황제가 되겠다는 판테온의 위상은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다.

비록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해도, 판테온은 그마저도 허용하기가 싫은 것이다.

“너도 그거 보는구나?”

“음?”

레이피드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얼른 웹을 꺼 버린 판테온이었다.

“뭘 말이냐. 난 아무것도 본 적이 없다. 그냥 여기 빵을 먹고 있었을 뿐.”

“모른 척 하지 마라. 사실, 20분 전부터 네가 뭐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

판테온은 감시자의 눈이라는 스킬로 주변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미리 감지할 수가 있다. 하지만 레이피드는 반역의 암살자라는 히든 직업을 가지고 있어 판테온의 감시에 벗어날 수 있는 스킬을 가졌다.

“내가 저번에 말했을 텐데. 인기척을 내고 다니라고.”

“응. 싫어. 꼬우면 네가 뒤에 눈깔을 달던가.”

“······.”

레이피드는 자연스럽게 판테온 옆에 앉아 웹을 킨 다음, 천마의 채널에 들어갔다.

“글로벌 퀘스트.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우리 길드원들도 시끄러워.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음······.”

판테온이 별 말을 하지 않자 레이피드가 음흉하게 웃으며 제안을 건넸다.

“글로벌 퀘스트. 그거, 우리가 확 뺏어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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