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끝인 줄 알았냐?
극한의 컨셉충 40화.
천강이 뭐라 말할 새도 없었다.
천마는 마력의 흔적을 땅바닥에 남기며 오크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풍보. 그건가?’
저번 날 천마가 익혀 놓은 보법.
그 스킬의 영향인지, 바람처럼 흐르듯 마력의 흔적이 남았다. 그리고 한층 더 빨라진 천마의 속도는 너도 나도 상대를 먼저 죽이기 위해 달려드는 오크들 안을 파고 들었다.
“취이익-!! 비켜라!! 내가 먼저 죽인다!!”
“역겨운 인간은 나의 것이다!! 전부 꺼져라! 취익!!”
그들과의 거리가 코앞까지 다다른 순간.
천마는 쏜살 같이 안쪽으로 들어가 칼을 휘둘렀다.
서거걱-!
거친 절삭음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그 뒤에는 푸른 빛깔의 마나가 검의 흐름에 따라 넘실거리며 흔적을 남긴다.
천마현신-섬.
천마삼검은 삼재검법처럼 기본기를 다룰 것처럼 들리지만, 천마라는 이름이 들어간 순간부터 기본기라고 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각 무공의 초식마다 가진 일격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한 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마는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닌, 다수의 적을 한꺼번에 침묵시키기 위해 무공을 익히고, 또 만들어냈다.
이 천마현신-섬은 지금처럼 다수의 적이 몰려 있을 때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한다.
쉬아아악-!
마치 앞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는 듯 빠르게 앞으로 질주한 천마는 신들린 듯 휘두르던 검을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발자취와 칼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온 마나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취익?”
“취췩?”
천마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오크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검이 자신들의 몸을 베고 지나갔는데, 아무 것도 느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마가 검을 비틀자.
콰직-! 콰콰콱-!
퍼펑-!!
“취이이익-!!”
“취익!! 아프다!!”
오크들의 몸에 붉은 빛이 새어 나오면서 동시에 폭발해 버렸다.
그것을 보고 천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부족하다.’
지금의 몸으로 완전한 천마현신을 이뤄낼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만약 본래의 힘으로 천마현신을 썼다면 눈에 보이는 모든 오크들이 동시에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천마는 스스로의 몸 상태가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몸으로는 온전한 천마현신의 위력을 드러낼 수 없다. 그러나 이 몸에 맞는 천마현신을 보여 줄 순 있다.
‘아직 부족해.’
이 몸이 가진 힘으로 저것보다 더 큰 위력의 천마현신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취이익-!!”
천마에게 검을 맞고 분개한 오크들은 서로 동료들을 밀쳐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천마는 그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해내다 정확히 급소를 노려 한 명씩 칼을 찔러 넣어 주었다.
“취익-! 인간 강하다! 강한 인간, 맛있다!”
동료가 개죽음을 당했는데도 오크들은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가 강하다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약해 보였는데, 사실은 강하다 인간!”
“취이익-! 내가 죽여주겠다!”
이곳 바실레이아 시스템에는 몬스터에게도 공포가 먹힌다. 즉, 동료가 처참하게 당하는 걸 보면 다른 몬스터들이 주춤거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싸움을 좋아하는 오크들에게는 해당이 되는 얘기가 아닌 모양이다.
“방금 전에 터진 건 일반 크리티컬이었죠?”
천강은 천마가 천마현신으로 오크들을 베었을 때 터졌던 이펙트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황금색이 아닌 붉은색의 이펙트.
-나도 봤음. 일반 크리티컬임
-근데 저게 정말 스킬이 아니라고? 장난 까냐? 내가 쓰는 거 보다 더 세잖아
-ㄹㅇ클라스 도라따
천강은 천마의 표정만 봐도 속마음을 알 것 같았다.
만족스럽지 않다는 저 얼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만족스러운 검무가 나오는 것일까. 천강은 천마가 진정으로 만족스러워 하는 검무를 직접 보고 싶었다.
‘다시 한번 간다.’
천마는 비틀 거리는 오크들의 목을 베어 버리고 자세를 잡았다. 방금 전 천마현신을 본 시청자들은 오두방정을 떨며 난리를 치고 있었지만, 정작 천마에게는 실패에 가까운 검무였다.
당연히 그로써는 자존심에 상처가 갔을 터.
‘역시, 정상 위에 있다가 내려오니 더 힘든 거 같군.’
손가락 한번만 튕겨도 천지가 요동치는 무공을 갖고 있다가 지금은 일류 무사에게도 비비지 못 하는 스스로의 상태에 허탈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렇기에 다시금 검을 들었다.
이번에야 말로 기필코.
“죽어라 인간!! 취이이익-!!”
천마는 바람에 몸을 맡기듯 오크들의 안으로 깊게 들어갔다.
“취이익-!”
놈들이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도끼를 내리찍기 전에 천마가 먼저 그들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당연히 놈들은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헛방질을 날릴 뿐이다.
쉬아아악-!
그렇게 방금 전과 같이 한 차례 춤사위가 끝났다.
이번에도 검이 베고 지나간 자리에 마나의 흔적이 남아 천마에게까지 연결되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황금색이 아닌, 붉은 빛을 띠며 폭발했다.
“취익!! 아프다 아파!!”
오크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무릎을 꿇었지만, 천마는 입술에 피가 날 것처럼 깨물었다.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
연습에 연습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그래도 천마는 조금만 더 하면 천마현신의 위력이어느 정도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
‘레벨업이 빨리 되고 있으니, 자연스레 내력도 증가하고 있다.’
저번에 도적을 잡았을 때와 비슷하게 레벨업이 쭉쭉 되고 있었다. 한 마리를 잡았다고 해서 바로 레벨업을 하진 않았지만, 벌써 35렙까지 껑충 뛰었다.
몇 번만 더 반복하면 레벨 40이 될 테고 그에 따라 상승한 마나로 인해 제대로 된 천마현신이 나올 것 같았다.
‘내력의 소비가 큰만큼 운기조식을 멈춰서는 안 돼.’
천강과 시청자들은 아직 모르고 있지만, 천마는 지금 전투를 하면서 동시에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천마현신을 쓰면 몸 안에 있는 내력을 바깥으로 내보내야 되기 때문에 소모가 빠를 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 운기조식을 쉬지 않고 돌려 계속해서 기술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무한 동력.
천마의 특이한 운기조식은 전투 중에도 활용할 수가 있어 내력이 마르지 않게 해 준다. 그래서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도 쉽게 지치지가 않는 것이다.
예전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하나, 지금도 그때와 같이 무한 동력으로 마나를 유지 중이었다.
“취이익-!”
“캬오오!!”
끊임 없이 오크들을 베어 나가며 천마는 천마현신의 위력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아직이다. 여기서 조금 더···!’
“취이익!! 살려 달라 인간!”
“이 인간은 너무 강하다 취이익!”
“무서운 인간! 독종이다! 취익!!”
얼마나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지, 그렇게 싸움을 좋아하는 오크들마저 고개를 절레 흔들어댔다. 몇몇 오크들은 아예 슬금슬금 천마 곁을 피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마는 도망치는 오크들까지 따라잡아 연습용으로 썼다.
“······.”
완전히 혼자 무쌍을 찍고 다니는 천마를 멍하니 바라보던 천강.
순간 방송이라는 것도 잊은 채 넋을 잃고 있었다.
-와······
-ㅅㅂ······
-할 말이 읍다
시청자들도 연이어 감탄사만 터트릴 뿐.
누구도 두 줄 이상의 글을 쓰지 않고 있었다.
모두 한 마음으로 천마의 검무를 멍하니 지켜만 볼 뿐.
그들의 시선에는 천마가 아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완벽한 검무를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천마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한심한!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느냐!’
‘이런 멍청한 놈! 방금 전에는 내력을 좀 더 쏟아 부었어야지!’
‘이래 가지고 무공을 되찾기나 하겠느냐!?’
천마는 스스로를 다그치고 또 다그쳤다.
그런 버릇이 매우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본인에게 너무나도 엄격하고 철저했기에 무림의 최강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조금 더 빠르게!’
‘더 강하고 날렵하게!’
‘더··· 더···! 아직 더 할 수 있다!’
아무리 무한 동력이라고 해도 그건 무림 지존이었을 때의 천마를 두고 하는 얘기다. 지금처럼 오버 페이스 내력을 소비하며 다시 재충전하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그로 인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몸이 점점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으나, 천마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극한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그것에 굴하지 않고 넘어선다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수백 마리의 오크를 홀로 베어 없앴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천마 형 좀 쉬게 하면 안 될까?
-와씨 벌써 학원 갈 시간이네. 님들. 천마 형 저렇게 신들린 듯 사냥한지 2시간이 넘음.
-헐 진짜네?
-나 왜 모르고 있었지
천강과 시청자들은 벌써 시간이 2시간이나 흘렀다는 것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천마의 레벨은 이제 49.
-2시간 만에 20을 올렸다고??
-거의 버그 수준 ㄷㄷㄷ
바실레이아는 레벨을 올리는 게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런데 2시간 만에 레벨을 20단계나 올려 놓는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그야 당연하지. 누가 미쳤다고 레벨 30때 솔플로 오크 사냥터에서 무쌍을 찍고 다니겠어.’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결코 빠르게 올릴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여러분. 오해하실까봐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여기 80~100레벨 플레이어들이 파티 맺고 오는 사냥터에요.”
이런 말을 하는 천강도 스스로가 믿겨지지 않았다.
아마 30레벨 때 70레벨이나 차이나는 사냥터를 솔플하는 건 천마 밖에 없을 것이다.
이건 그야 말로 전무후무한 일이라는 것.
“오. 이제 보스인가 봅니다.”
그렇게 오크들을 무참히 베고 다니다 보니, 어느덧 천마는 보스몹 앞에 서게 되었다.
벌써 보스전이라니. 굉장히 빠른 템포였다.
'방송을 키지 않았다면 레벨 30이 혼자 여기까지 왔다고는 상상도 못하겠지.'
천강은 그리 생각하며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보스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취이익-! 인간! 감히 나의 땅에 침범하다니. 용기가 가상하구나. 내 특별히 네놈을······ 캬악!”
보스몹이 등장하면 저렇게 멘트를 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천마에게는 그저 다른 오크들과 똑같이 보일 뿐이었다.
“비겁하다 인간! 아아악!”
정예 오크 대장은 천마에게 정말 흠씬 두들겨 맞고 있었다. 어떻게든 반격을 하려고 양도끼를 휘둘러 댔지만, 천마의 몸에 전혀 닿지 않았다.
쉬이익-! 푸욱-! 서걱-!
검을 드라이버처럼 회전시키며 보스몹의 몸을 사정없이 찌르던 천마.
-ㅗㅜㅑ
-ㅈㄴ아파 보인다
-보스몹 수듄...ㅋㅋㅋ
-아아 천마 형 앞에서는 보스몹도 하찮은 단백질에 불과하단 말인가.
“취이익-! 두, 두고 보자 인간!!”
그는 검을 거두자 오크 대장은 한 맺힌 절규를 터트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천마는 깔끔하게 놈의 목을 날리면서 싸움을 싱겁게 마무리 지었다.
“와아-.”
천강은 의도치 않게 박수를 쳐댔다.
-ㅅㅂ진짜 내가 뭘 보고 있는 거냐?
-우리 같은 겜 하는 거 맞지?
-뭘 그리 놀라시는 거죠? 천마 형이 천마했을 뿐인데
시청자들도 연이어 후원금을 보내며 믿겨지지 않는 천마의 업적에 감탄을 터트렸다. 하지만 천마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아직도 부족한가.”
계속해서 시도를 했지만, 제대로 된 천마현신-섬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아직 사냥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놈들이라도 연습용으로 써봐야겠군.”
천마는 대장이 죽자 우우 소리를 내며 뒷걸음질 치는 오크들을 바라보았다.
“우우. 두, 두렵다!”
“취익-! 무언가··· 무언가가 오고 있다! 취이익-!”
“위험한 냄새가 난다! 취익!”
천마는 오크들이 자신을 보고 두려움에 떠는 줄 알았다. 물론, 천마에게 겁을 먹은 것도 있지만 전혀 다른 요소가 끼어 있었다. 그 요상한 기류를 천마는 느꼈다.
쿠웅-!
“음?”
갑자기 땅이 미세하게 진동을 퍼뜨린다.
쿠쿵-!
이윽고 땅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쿠쿵-! 쿵-! 쿵!!
그리고 무언가가 쿵쾅 거리며 땅을 부술 듯이 가르고 있었다.
천마와 천강. 그리고 남은 오크들도 모두 뒤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어떤 형체를 보게 된 천강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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