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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컨셉충-35화 (35/140)

35화. 본좌는 도망친 게 아니다.

극한의 컨셉충 35화.

쿵-! 쿠쿵-!

콰콰쾅-!

“그렇지!!”

“꺄아아아! 오빠!!

“누나!! 저 근돼를 아주 박살내 버려요!!”

멀리서도 들리는 환호성.

천강은 두 신관의 치열한 싸움을 직접 보지 못 한다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짧다 짧아!!

-더 방송을 하지 못할까!!

-님들 그래도 몇 시간 하긴 했음

-그래도 짧다!! pd는 각성하여 24시간 방송하라!

-신관들 맞짱 뜨는 거 보여 주면 안 됨?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더 길게 방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

-ㄲㅂ...

-천바

-천바!!

-신관들 싸우는 거 생방 떴냐?

-ㅇㅇ그거 보러 가야징

천강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방송을 끝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서 있는 천마에게 말했다.

“방송 껐어. 됐지?”

“그래.”

“근데 왜 방송을 끄라고 한 거야? 그리고 신관들 싸움도 봤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한심한 놈들이 싸우는 걸 왜 보려고? 방송을 끄라 한 이유는 검술 연습을 좀 하기 위해서였다. 괜히 방송을 하면 주변이 시끄러워지고 어수선해서 집중도 잘 되지가 않는다.”

방송을 하면 천강이 시청자들과 소통하느라 정신이 없고 천마를 보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모여 든다. 그것 때문에 천마는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방송을 종료한 지금이 천마에게는 수련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본좌가 칼을 들지 않은지가 꽤 돼서 말이야. 검술을 다시 절정으로 끌어 올릴 필요가 있어. 오늘 겪어 보니 이 세계에는 참 갖가지 종류의 괴물들이 많더군. 조금이라도 약하다면 금방 죽을 게 뻔해.”

“뭐, 그거야 당연하지. 바실레이아는 아직 정복하지 못 한 곳도 많고 이 대륙의 끝에는 뭐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래. 오랜만에 무언가를 탐험한다는 기분이 드는 건 참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약한 몸으로는 절대 그 짜릿한 성취감을 느낄 수가 없을 터. 그렇기에 수련을 해야 한다.

천마는 점점 스스로가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무림에서는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경지가 없어 한 계단씩 넘어선다는 느낌을 잊어 버린지 오래였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매일 그 통쾌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은 플레이어들이 잘 찾지 않는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천마가 조용한 곳에서 수련을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점점 천마를 알아보는 플레이어들이 늘어나 그들의 시선을 피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긴 했다.

그럴 때마다 천마는 짧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 이놈의 인기란.”

그런 천마를 이제 천강은 그러려니 넘어갔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우야.”

“응?”

“본좌와 한번 칼을 섞어 보겠느냐?”

“나, 나랑?”

수련을 한다기에 또 2시간 동안 운기조식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대련 요청을 해 온다.

이제까지 한번도 저런 적이 없어 천강은 살짝 당황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형. 내 레벨이 120인 건 알고 있지?”

“그래.”

“으음. 그래도 괜찮다면 한번 해 보자. 근데 난 형의 실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 할 거야.”

“바라는 바다.”

“스킬을 써서 형이 죽을 수도 있어.”

“그건 요령껏 잘 피해 주마.”

왠지 천강은 자존심이 팍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상대는 직업 하나 없는 레벨 30. 그에 반해 자신은 레벨 120에 달하는 전사였다.

천강은 등 뒤에 있던 큰 칼을 뽑아 들었다.

“내 대검을 막는 것도 힘들 텐데. 그 검이 금방 부러져 버릴 걸?”

“상관없다.”

“난 분명 경고했어.”

“말이 많구나. 얼른 들어오기나 해라.”

콰아아-!

천강은 쇠뿔도 단김에 뺀 다는 듯 냅다 천마에게 달려 들었다.

슈아아악-!

거센 바람 소리를 내며 휘둘러지는 대검이 허공을 베었다. 천강은 천마가 피할 것을 미리 예상했기에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 찍었다.

‘형이 재빠르다는 건 알고 있어.’

콰앙-!

민첩하게 몸을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을 모조리 피한 뒤, 틈을 노려 카운터를 치는 것이 천마의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천강은 천마의 움직임을 예상하며 검을 휘두르는 중이었다.

‘많이 봐왔기 때문이야.’

아쿰리아스와 천마가 대결하는 것부터 그 외 여러 번 보여 준 천마의 몸놀림.

영상을 편집하면서 그것을 수십 수백 번이나 지켜봤던 천강이었다.

‘그러니까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천강은 천마의 다음 움직임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저쪽이다!’

천마가 왼쪽으로 움직일 것을 간파한 천강은 망설이지 않고 스킬부터 썼다.

슈우웅-!!

초록빛 마나를 머금은 대검이 호쾌한 궤적을 그리며 천마에게 치달았다.

쿠웅-!

스킬을 쓴 동작이기 때문에 천마가 공격을 피해도 곧바로 다음 공격이 이어진다.

쿠웅-! 쿠쿵-!

회심의 일격처럼 들어간 3연타 콤보가 허망하게 땅만 찍어댔다.

‘어디 간 거지?’

천강은 순간 천마의 모습을 놓쳤다. 이윽고 그의 위에서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보고 반사적으로 몸을 앞에 날렸다.

촤아악-.

땅을 끌으며 밀려난 천강은 말도 안 된다는 눈빛으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천마는 가볍게 땅에 착지하며 제법이라는 듯 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거냐.’

게임이란 건 어찌 보면 단순하다.

레벨이 높으냐 낮으냐에 따라 그 힘의 차이가 달라진다. 간소한 차이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레벨에 10정도만 차이나도 상대를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천강과 천마의 레벨 차이는 무려 90.

거기다가 아이템도 천강 쪽이 훨씬 좋다.

‘그런데 한 대도 맞지 않았어.’

본인이 알아서 검을 휘두르는 것과 스킬을 쓰는 건 차원이 다르다. 스킬을 쓰는 순간, 공속이 빨라지고 움직임도 굉장히 유연해진다.

평소에는 하지 못 하는 동작을 스킬을 통해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대도 맞추지 못했다. 스치지도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피지컬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저런 게 가능할 줄이야.’

바실레이아 온라인은 순수한 피지컬 게임이다.

플레이어가 직접 게임 안으로 들어가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부린다. 그러나 피지컬에도 한계가 있다.

스킬이라는 걸 피지컬로 극복할 수가 없다는 것. 그런데 방금 천마는 그렇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 주었다.

개인의 순수한 피지컬만으로도 상대방의 스킬을 전부 씹어 버리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방금 네가 쓴 것이 스킬인가 뭔가하는 것이냐?”

“응? 아, 응.”

“그랬군. 갑자기 예상치 못 한 움직임을 보이기에 조금 의아했다. 이곳 스킬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리고 생각 외로 네 공격이 날카로워서 놀랐다.”

누가 들으면 레벨 300짜리가 120따리를 칭찬해 주는 걸로 착각할 것이다.

“형은 어떻게 다 피한 거야?”

“음? 뭐, 널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 공격은 전부 피할 수 있다. 아우, 너는 스스로의 기를 숨길 줄을 모르니까.”

“기를 숨겨?”

“그래. 저번에도 말했지? 상대방의 기를 볼 줄 안다면 다음 공격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알 수 있다고. 그래서 고수는 스스로의 기를 숨기는 법을 알지. 때론 그것으로 상대방을 속일 때도 있고.”

천강도 천마가 저런 얘기를 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형한테 당한 놈들은 꽤 화가 나긴 했겠구나.’

뭔 공격을 하려고 하면 이리저리 전부 피해 버리니, 아쿰리아스도 어지간히 화가 나긴 했을 것 같다.

“이제 본좌가 공격을 날려 주지.”

“뭐······ 때리고 싶으면 마음껏 때려도 좋아. 내가 탱커 직업이라 잘 안 죽거든.”

“탱커?”

“몸 딴딴한 애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무튼, 이번에는 내가 막아 볼게.”

천강은 천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딱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천마에게 두드려 맞는다고 해도 탱커 특성상 잘 죽지 않는 게 특기였다.

전사 계열에서도 강철 속성을 선택한 건 게임 안에 있는 험한 아르바이트를 할 때 괜히 죽어서 경험치와 아이템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오늘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일지도.

“응?”

그런데 또 다시 천강은 눈앞에 있던 천마의 모습을 놓치고 말았다.

‘맞다. 보법이 있었지.’

천마가 가진 스킬 ‘풍보’.

무려 이동 속도를 3배나 늘려주는 사기적인 이동 스킬이다.

채앵-!!

“히익!”

이번에도 역시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만약 막지 못했다면 천마의 칼끝이 천강의 목덜미를 찔렀을 것이다.

쉬아아악-!

채채챙-!

허공에 조금 떠 있는 채로 검을 찔러 넣었던 천마는 공격이 막히자 몸을 회전시켜 연달아 공격을 날렸다.

마치 천마의 검이 천강의 대검을 갈아 버리는 듯, 불똥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다.

‘저렇게 하면 검이 깨져 버릴 텐데.’

천강이 천마에게 준 건 똥검으로 악명이 높은 검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부셔지지 않고 잘 쓰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쓰면 조금 더 좋은 검이라고 해도 무리가 가서 깨져 버리지 않을까?

‘근데 안 깨지네?’

그러나 천마의 검은 깨지지 않았다. 그리고 천마의 몸이 천강의 사방을 쏘아 다니면서 검을 찔러 온다.

“억-! 윽-! 컥!”

연달아 쏟아지는 공격을 천강은 모두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천강은 스킬을 써서 몸의 보호막을 덮어 씌웠다.

“음?”

마구 공격을 퍼붓던 천마도 이상한 걸 느꼈는지 슬쩍 뒤로 빠지는 건가 싶더니, 검을 회전시키며 천강의 몸 한 부분을 파고 들었다.

콰직-!!

“엥?”

범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터지는 황금색 스파크.

천강은 쭉 내려가는 자신의 HP 바에 기함을 터트렸다.

“으헉!”

그래서 본능적으로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까닥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와씨. 진짜 뒤질 뻔했네.”

천마는 뒤로 물러나고 천강은 경악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HP가 이제 25% 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계속 했다면 천강은 그대로 로그아웃 되었을지도 모른다.

“응? 죽을 뻔한 것이냐?”

“어. 갑자기 크리티컬이 터져서 죽을 뻔했어. 그래도 살았네.”

“위, 위험했던 것이냐.”

천마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위험하긴 했지. 지금은 괜찮아.”

“······.”

그리고 천마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하다, 아우. 그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어.”

“아니. 이제 괜찮다니······ 응?”

천강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자신의 몸에서 푸른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던 까닭이다.

“뭐, 뭐야 이건.”

“···미안하구나.”

“뭐, 뭐가 미안한데?”

천마는 애써 시선을 회피했고, 천강은 왜 천마가 뜬금없이 사과를 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퍼펑-! 퍼퍼펑-!

“꽥!”

천강의 몸이 연달아 폭발하면서 그는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마, 말도 안 돼.”

천강은 25% 순식간에 0%로 떡락하는 HP바를 바라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윽고 화면이 온통 회색빛으로 변해 가더니, 시스템 창 하나가 나타났다.

[사망하셨습니다. 24시간 동안 플레이가 불가합니다.]

“으, 으이이잉-!! 이게 뭐야!!”

시스템 창을 보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천강이 캡슐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바로 옆 캡슐에 있어야 할 천마는 언제 빠져 나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혀어어엉-!!!”

천강의 서글픈 절규가 캡슐방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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