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한의 컨셉충-29화 (29/140)

29화. 기이한 울음소리

극한의 컨셉충 29화.

“지금 뭐라고 했느냐?”

눈동자 안에서 불이 지글지글 타고 있는 듯한 천마를 보고 천강은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어··· 저, 저기 그러니깐 말이죠. 시청자들이 천마님의 놀라운 검술 실력을 보고······.”

“그래서, 본좌가 검황이다? 검황? 다른 것도 아닌 검.황?”

“그······.”

천강은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지만, 일단 용서를 빌어야 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감히 검황의 이름을 본좌에게 들이대다니. 본좌의 아우만 아니었다면 단칼에 목을 쳐도 이상할 게 없었을 것이다!”

지금껏 한번도 본 적 없는 천마의 모습에 천강은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뭘 잘못한 거지?

-마! 으데 감히 천마 형한테 검황 따까리를 들이대누?

-검황은 모욕이쥨ㅋㅋㅋㅋㅋ

-검황은 모욕마따

-다른 것도 아닌 거어엄황???

“검황이 모욕이라고요?”

-모욕 마찌

-무협지를 보면 백교에는 검황이, 마교에는 천마. 이렇게 라이벌 구도가 자주 만들어져요.

-쉽게 말해서 천마 형이 젤 싫어하는 이름을 갖다 붙인 거다, 이 말이야.

-나는 처음부터 이상했다. 왜 검황검황 거리는지.

-무협도 모르는 새끼들이 나댄 거임 ㅇㅇ

-얼른 사과해라

-PD 사과 방송하셈

언제는 검황이라고 난리를 치던 시청자들이 지금은 천강 탓으로 몰아가며 사과 방송을 하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알려줘야 할 거 아닌가!

하지만 결국 천강은 대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 음······. 천마님.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 PD가 모자랐습니다. 더욱 가르쳐 주십시오.”

“흠. 다음부터는 조심하거라. 그리고 시청자들 중에 검황의 이름을 들먹이는 놈은 바로 쫓아내 버리고. 알겠느냐?”

“옙. 천마님.”

천마의 번뜩이는 눈빛에 천강은 깨갱거리며 수긍했다.

“여러분. 들으셨죠? 앞으로 검황 이름만 꺼내면 바로 벤이라고 하십니다.”

-그따위 이름을 꺼내면 바로 벤 해야지.

-ㅇㅇ참된 벤 인정합니다.

-모두 입 조심하셈ㅋㅋㅋ

-시른데? 검황검황검황

[마이웨이23님이 강퇴 당하셨습니다.]

-엌ㅋㅋㅋ

-바로 벤픽 갈겨 버리넼ㅋㅋㅋㅋ

천강은 방금 전 보인 천마의 반응이 꽤 신선했다.

단순히 자신이 검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뭔가 사연이 있는 것만 같았다.

검황 자체를 싫어하기보다, 그 이름을 듣고 싶지 않다고 해야 할까.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저 상태로는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았다.

-검황 말고 검마는 어떰?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하나? 천마 그 자체로 끝이지

-그렇긴 함

-검마라는 이름도 나쁘진 않은데

-그걸로 또 천마 형이 벤픽 갈긴다 ㅋㅋㅋ

“검마요? 천마님. 검마라는 별명은 어떠세요?”

“본좌는 천마다. 무슨 수식어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 천마는 뭔가 만족한다는 듯 슬몃 미소를 지었다.

“응? 검마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신 것 같은데? 살짝 흐뭇해 하신 것 같은데요?”

“아니다. 잘못 본 거다.”

“아닌데. 분명히 봤는데.”

“어허! 아니라니깐!”

-ㅋㅋㅋㅋㅋㅋㅋㅋ귀엽누

-진짜 극한의 컨셉충ㅋㅋㅋㅋㅋ

-레알 단 한순간도 컨셉을 버리지 않는구낰ㅋㅋ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지? ㅋㅋㅋ

천강은 이따 녹화된 영상을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멈춰라. 이곳은 기사단장님이 계신 곳이다.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검황 문제로 투닥 거리다 어느덧 천마는 마타하니 기사단장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구로 들어서려 하자 보초병이 앞길을 막았다.

천마는 그런 보초병을 보고 이빨을 드러냈다.

“감히 본좌의 길을 막다니. 네놈이 미친 게로구나.”

“뭐야?”

“자, 잠시만요!”

보초병과 한 바탕 칼부림을 벌일 기세를 보이자 천강이 후다닥 나섰다.

“여기 켈리그 수비대장님의 추천서가 있습니다.”

“음?”

보초병은 추천서를 받아 보더니, 아까와는 달리 공손하게 말투를 바꾸었다.

“추천장을 받아오신 모험가님이셨군요. 안으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음. 그래.”

천마는 횡하니 들어가 버렸고, 천강은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어후. 히든 퀘스트 두 번 했다가는 심장 떨어지겠네.”

-ㅋㅋㅋㅋㅋ와 나는 기사단장이랑 맞짱 뜨러 오는 줄 알았자너

-ㅋㅋㅋ미친ㅋㅋㅋ 보초병한테 싸움 거는 거 실화냐?

-ㅈㄴ컨셉 미쳤냐곸ㅋㅋ

-으데 감히 천마님의 앞길을 막누?

시청자들은 이 상황을 매우 재밌게 받아들였지만, 천강은 심장이 다 쫄깃해지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내 동생에게는 들었다. 매우 용맹한 모험가라고 하던데, 내 동생이 누구를 추천하고 그러지 않는 녀석이거든. 반갑다. 나는 마타하니의 기사단장 아르헨이라고 한다.”

금발 머리의 아르헨 기사단장이 건네는 인사에 천마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본좌는 천마라고 한다.”

“오. 그래. 역시, 모험가답게 윗사람에 대한 예의는 찬물에 말아 먹었나 보군.”

“본좌가 누구를 섬기려고 온 게 아니라서.”

“하하!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겠지. 어디 한번 두고 보겠어. 내 동생이 추천해 준 사람이니, 토벌 중에 죽지는 않을 거라 믿네.”

“그러든가.”

뭔가 첫 만남부터 두 남자의 신경전이 팽팽했다.

둘 사이에 파직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 것 같아 천강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우 위험한 거 아님?

-어떤 기사단장은 좀만 말 싸가지 없게 하면 칼부터 뽑아 버린다고 하던데

-기사단장마다 성격이 다르긴 한데, 대부분 성격 더러움

-ㅇㅇ 가끔 퀘스트 받아도 기사단장 잘못 걸리면 끔살 당함.

-저게 뭔 패기냨ㅋㅋㅋ

-사스가 천마 형인가

-보초병한테 싸움 걸 때부터 알아봤닼ㅋㅋㅋㅋㅋ

-히든 퀘스트가 사실 기사단장이랑 맞짱 뜨는 거였음?

-네가 그렇게 따움을 잘해? 욕땽으로 따라와

천강도 천마가 기사단장과 초장부터 기싸움을 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여기가 우리 형제의 무덤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르헨 기사단장이 동생의 추천서 때문인지, 천마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막 출발을 하려던 참이었어. 밖에 기사단이 기다리고 있으니, 같이 가지.”

아르헨이 먼저 집무실 밖을 나섰다.

천마는 그런 아르헨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따라나서지 않고 있었다.

“천마님?”

천강이 부르자, 그제야 말문을 여는 천마였다.

“저자가 그 수비대장과 형제라고?”

“예. 맞습니다.”

“흠······. 배다른 동생인가?”

“예?”

“생김새가 달라서.”

-ㅋㅋㅋㅋㅋㅋ이번에는 수비대장 까기인가

-근데 좀 많이 다르긴 하네. 아르헨은 금발에 잘 생겼는데, 동생은 머리도 검고 피부도 까무잡잡하잖아. 생긴 것도 걍 그렇고

-오호 여기에도 설마 콩가루 집안인가?

-소문으로만 듣던 콩가루 맛집임?

천강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괜히 크게 웃었다가는 아르헨의 눈총을 살 게 뻔하기 때문이다.

“모두 모였나.”

“예, 단장님!”

아르헨은 정렬하고 있는 기사단을 바라보며 말 위에 올랐다. 그리고 천마에게 눈을 흘겼다.

“잘 따라오시게. 설마, 낙오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무섭다면 지금 나가도 좋아.”

“아까부터 말이 많구나. 출발이나 하거라.”

“그러지.”

천마가 마음에 안 들어서 놀리는 건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저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기사단 말고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번 토벌단에 섞인 것 같았다.

“목적지가 어디라고 했지?”

“개미 군단 동굴이라고 하잖아.”

“아씨. 개미 징그러운데.”

“어? 근데 여기 플레이어들이 왜 이렇게 많아 보이냐?”

“그러게. 별로 인기 없는 토벌단 퀘스트 아니었나?”

7명의 플레이어들이 천마와 그 주변에 모여 있는 구경꾼들을 보고 쑥덕거렸다. 그러다 그들 중 하나가 천강과 천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플레이어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도 전부 토벌 퀘스트 받으신 건가요?”

“이거 퀘스트로 받을 수 있는 거였나요?”

“예. 병사들이 토벌단을 구하더라고요. 그래서 지원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모였네요.”

“어머. 그럼, 그쪽도 히든 퀘스트?”

“히든 퀘스트요? 그냥 일반 토벌 퀘스트인데?”

천강은 그들을 보며 이번 퀘스트가 다른 플레이어들도 참가할 수 있는 퀘스트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천마처럼 히든 퀘스트로 뜨는 건 아닌 모양이다.

이윽고 퀘스트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은 지금 천마가 히든 퀘스트를 진행 중이라는 걸 듣게 됐다.

“예?! 저 사람이 그 유명한 컨셉충이라고요?”

“헉! 뭐야. 진짜?”

“대박. 저 사람이었어?”

“누군데?”

“넌 영상도 안 보니? 그 있잖아. 요즘 천마 컨셉으로 유명한 플레이어.”

처음에는 구경꾼으로 나서던 플레이어들은 이것이 토벌단 퀘스트와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너도 나도 퀘스트를 받기 위해 나섰다.

“저도 퀘스트 주세요!”

“이 토벌단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 삽시간에 100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이 토벌단에 참가하게 되었다.

천마는 자신의 방송을 보기 위해 어디라도 따라오는 플레이어들을 보고 참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들도 각자 할 일이 있을 텐데, 이걸 보자고 따라오다니.

아아. 역시, 이놈의 인기는 무림에서 그치지 않고 여기까지 뻗치는 것인가.

“여기다. 모두 전투 준비.”

“예!!”

“방패병 앞으로!”

개미 군단 동굴에 도착하기 무섭게 미묘한 웃음을 보이던 아르헨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리고 동굴 안에서 기이한 울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키이이익-!!

맹수의 울음소리와는 조금 다른 위협적인 괴성이었다. 그 소리에 기사단이 살짝 흔들렸다.

“음. 저런 소리는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군.”

“설마, 드래곤 새끼라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 그럴 리가.”

천강도 방어력이 조금 내려간 것을 보고 보통 울음소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데도 방어력이 조금 내려갈 정도면, 바로 앞에서 들었을 땐 공포에 걸릴 수도 있겠는데요?”

보스 몬스터들 중에 포효만으로 상대에게 공포를 걸어 버리거나, 아예 움직이지 못 하게 속박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바로 앞에서가 아닌,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만으로 방어력을 저하시킨다는 건 보통 몬스터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여기서부터는 저도 조심해야겠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저도 퀘스트 받아 놓을 게요.”

천강도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퀘스트를 받아냈다.

[개미 군단 토벌]

-기사단장 아르헨의 주도하에 개미 군단을 토벌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퀘스트에 참여하면 몬스터를 해치운 숫자만큼 보상을 받게 됩니다.

-기사단이 당신의 노고를 아주 조금 고맙게 여길 겁니다.

“아주 조금은 뭐야······.”

그래도 이런 기사단 퀘스트를 언제 또 받아보겠는가.

-다른 플레이어들도 받을 수 있는 건데, 천마 형만 왜 히든 퀘스트라고 뜨는 거지?

-뭔가 있는 건가?

-조금 이상하긴 하네.

-더 이상한 건 왜 개미 군단 동굴에 저런 울음소리가 들리냐는 거임

-ㅇㅇ 울음소리만으로 저주를 걸 수 있다는 건 보스몹 레벨이 꽤 높다는 건데

천강도 그게 이상했다.

왜 개미 군단에 저런 보스 몬스터가 있는 것일까.

거기다가 천마에게만 히든 퀘스트가 주어졌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반 퀘스트로 진행되고 있었다.

천강은 어두컴컴한 동굴 안을 응시하고 있던 천마를 불러 보았다.

“천마님. 방금 전 들린 그 울음소리,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누군가가 길을 잃은 모양이구나.”

“예?”

“그 울음소리가 마치 그렇게 들렸어. 길을 잃어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천마가 아직 말을 다 끝맺지 않았을 때였다.

콰직-! 콰콱-!!

“공격이다!!”

“막아라!”

사람만한 크기의 개미들이 우르르 동굴 밖으로 나오더니, 방패를 들고 있던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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