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판테온
극한의 컨셉충 26화.
“여러분. 차원이 다르다는 게 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제 막 방송을 시작한 신입 BJ들은 화제몰이로 이목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천마의 방송은 딱 좋은 아이템이었다.
-레벨 15따리가 도적단 퀘스트를 도전한다라?
-아 이거 또 천마충이네
-천마 따라하는 놈들은 다 천마충임ㅋㅋㅋ
-요즘 천마 형 카피하는 애들 ㅈㄴ많네
천마가 아쿰리아스에 도전했을 때도 상당히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적단 퀘스트다. 거기다가 히든 퀘스트까지 발동 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시청자 숫자가 목마른 신입 BJ들이 놓칠 리 없지 않은가?
“형님들! 제가 꼭 해내 보겠습니다!”
천마의 방송을 보고 나서 BJ들은 나도 저걸 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한번씩 가지게 되었다.
저 사람도 하는데, 왜 나라고 안 되겠어? 라는 생각. 그 아이디어의 시작이 이런 무모한 모험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흠. 자네 레벨이 영 마뜩찮아 보이지만, 내가 아는 모험가도 자네보다 낮은 레벨로 도적단을 쓸어버렸지. 그러니 편견은 버리겠네.”
퀘스트를 주는 켈리그의 대사가 바뀌었다. 그것을 보고 BJ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켈리그가 이런 말을 하던가요?”
-워······ 이것이 천마 효과인가?
-천마 형 때문에 켈리그가 대사 치는 것도 바뀐 거 같은디?
-미친ㅋㅋㅋ 실화냐
“아무튼! 꼭 클리어해 보겠습니다!”
-오냐.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진짜 만약에 성공하면 내가 평생 구독한다.
-난 내 월급 통장 줄게
걸려 있는 미션 금액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퀘스트를 받은 BJ들은 무작정 도적단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결과는 뻔했다.
“흐흐. 이놈을 감옥에 가둬서 가진 걸 모두 빼앗아 버리자!”
“아주 좋은 생각이야.”
“평생 노예로 부려주마!”
“으, 으아악!”
천마의 영상만 보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대책 없이 달려든 BJ들은 그렇게 강제 로그아웃을 당해 버렸고, 방송도 쫑이 나 버렸다.
하지만 더 잔인한 건 시청자들이었다.
-그럼 그렇지.
-으데 감히 천마 형한테 비비려 그러누?
-야 따라할 수 있는 걸 따라해라. 천마 형 따라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다니까?
-그건 쌉인정. 천마 형 따라하려는 걸 보아하니, 벌써부터 이 BJ 싹수가 보이네
-손절각 ㅃ2
이런 사태가 계속 되면서 시청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역풍을 맞게 된 BJ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컨텐츠를 잘 활용해 이득을 챙기는 BJ들도 있었다.
“천마님은 말이죠. 그냥 신입니다. 그저 빛이에요. 이제까지 그 누구도 천마님과 같은 업적을 세우진 못했습니다. 만약에 천마님이 판테온과 같은 시기에 게임을 시작했다면? 현 랭킹 1위는 판테온이 아니라 천마님이 됐을 수도 있어요. 아니. 확실합니다!”
천마 찬양.
천마의 영상을 리플레이하며 그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그냥 앞뒤도 없이 찬양을 하는 것이다.
“이 무빙을 보십시오. 이 나노 무빙! 이게 정말 인간의 플레이란 말입니까? 여러분. 제가 게임을 참 오래해 왔지만, 이 정도의 무빙을 치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그러니까 뭐다? 천마님이 최고다! 그러므로 랭커들은 슬슬 긴장 타야 합니다.”
좀 억지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만큼 천마의 플레이가 워낙 뛰어나 전혀 과장되어 보이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찬양 영상은 생각보다 시청자들에게 잘 먹혔다.
-크 천뽕에 취한다
-나도 같은 생각임. 천마 형이 판테온이랑 비슷한 시기에 겜 시작했으면 백퍼 1위였다.
-음. 아무리 그래도 판테온은 좀······ 넘사벽이 아닌가?
-ㄴㄴ판테온도 하지 못 한 업적들을 지금 천마 형이 세우고 있잖아. 상대가 안 됨. 무조건 천마형이 앞선다.
-근데 판테온은 워낙 뒤에서 밀어 준 게 많으니까.
-물량전 ㅆㅅㅌㅊ잖누
-뭐니뭐니 해도 역시 돈이 좋아
-돈도 돈이지만, 판테온 플레이가 미치긴 했지.
현재 바실레이아 온라인 랭킹 1위 판테온.
소문에 의하면 판테온은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즉, 돈이라면 차고 넘친다는 것.
거기다가 판테온은 바실레이아가 출시되기 전부터 가상현실게임을 하나씩 휩쓸고 다녔던 플레이어다.
가상현실게임 하면 판테온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 그리고 바실레이아가 출시되자마자 다른 게임에 있던 길드원들을 죄다 데리고 와 바실레이아를 플레이했다.
넘치는 자원이 있으니, 필요한 아이템은 전부 돈으로 해결해 버리고 길드원들과 함께 여러 던전을 정복하면서 히든 직업까지 찾아냈다.
판테온은 황실 기사단이면서 동시에 네브레 길드의 길드장이며, 사상최초 히든 직업인 태초의 전사다.
현 랭킹 1위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는 바실레이아를 차근차근 점령해 나가고 있었다.
-우리 천마 형은 밑바닥에서부터 다 이뤄내고 있잖아. 판테온은 솔까 현질로 그렇게 된 거지.
-이거 또 게알못이 입을 터네. 판테온이 단순히 현질로 그렇게 된 거라고? 그럼, 다른 놈들은? 돈 쓴 게 판테온 하나뿐이었냐?
-ㅇㅇ석유 재벌들부터 뭐 대기업 회장까지 현질이란 현질은 다 하는 게 바실레이아임. 그런데도 판테온이랑 격차를 벌리지 못 하고 있음
-돈도 돈이지만, 걍 클라스가 다른 거지
-하지만 천마 형이 으뜸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으.
판테온은 결국 돈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며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돈뿐만이 아니라 실력도 최고라고 인정해 주는 플레이어들도 많았다.
그러나 천마와 판테온을 비교할 때는?
-당연히 천마지!
-아직도 천마 뽕에 안 취한 흑우 없제?
-뭐, 단연코 천마 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판테온은 미국인이고, 천마는 한국인이니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던가.
당연히 판테온이 우위라고 말하는 유저들이 있지만, 천마가 훨씬 낫다고 추켜 세워주는 국내 플레이어 숫자가 압도적이었다.
-네브레 길드 개씹 극혐임
-ㅇㅇ씨발롬들 ㅈㄴ던전도 자기들 거라고 돈받고 ㅅㅂ. 이게 나라냐?
-네브레가 진짜 다 점령하면 겜 접어야 됨.
네브레 길드의 평판도 한 몫했다.
판테온이 랭킹 1위라는 것에 열광하기도 하지만, 그가 이끌고 있는 네브레 길드에 불만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꽤 많았다.
네브레 길드에 소속되지 않은 플레이어는 일정 구간에서 사냥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했고, 통행세에 세금까지 내야 했다.
또한 네브레 길드의 눈 밖에 나는 플레이어는 척살령이 내려져 계속해서 살해를 당하게 된다.
1번 죽을 때마다 24시간 게임을 이용하지 못 하는데, 그걸 수십 번 반복한다고 생각해 보라.
자기가 키우던 아이디를 버리고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해 내는 수밖에 없다.
“이거······ 괜찮으려나.”
영상을 올리고 나서 주변 반응을 확인하고 있던 천강은 BJ들이 천마를 따라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걸 보며 내심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형이 저렇게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훨훨 날아오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좀······.”
불편한 게 있다면 자꾸만 사람들이 판테온과 천마를 비교하려 든다는 것이다.
“네브레 길드에서 이걸 두고 문제 삼으면 골치 아파지는데.”
네브레 길드의 악명은 천강도 잘 알고 있었다.
마타하니 도시는 아직 네브레 길드의 손이 뻗치지 않았지만, 지금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길드를 하나씩 점령해 나가며 세력을 넓히는 중이다.
만약 그들이 바실레이아에 있는 대형 길드를 전부 손에 넣게 되면 그땐 정말 네브레의 세상이 되고 말 터.
그렇지 않아도 요즘 네브레의 세력 확장이 눈에 띄게 늘어나자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뭐, 지금은 그쪽에서 우릴 신경 쓸 겨를이 없으려나.”
하지만 당장은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네브레 길드는 큰 전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판테온은 미국 사람이다.
한국에서 화제가 되는 걸 관심 있게 보지 않을 것이다. 원래 방송도 잘 안하고 언론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형 타입이니까.
“쪼잔하게 이런 걸로 뭐라 하진 않겠지.”
아마 이런 방송이 있다는 것도 모를 게 확실하다.
* * *
“요즘 핫한 영상이라니깐? 한국에서는 이거 때문에 난리인가봐. 너랑 비교하는 사람도 꽤 있고.”
네브레 길드의 부길드장을 맡고 있던 레이피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판테온에게 말을 걸었다.
“봐. 대단하지 않아? 네가 레벨 다 채우고 나서 눕혀 놓았던 아쿰리아스가 글쎄 이 남자한테는 히든 직업을 줬다니깐?! 너한테는 그 뭐야, 투사인가 뭔가 하는 건만 휙 던져줬었잖아.”
다른 나라에서 바실레이아 관련 영상을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실레이아는 자동 번역이라는 기능이 있어 언어의 장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튜브에서도 그 기능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 때문에 어떤 영상이라도 모국어로 금방 번역이 가능했다.
천강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해외에서도 천마의 영상은 차츰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건 또 뭔지 알아? 초보자가 스킬을 만들었어. 맙소사! 이게 정말 말이 된다고 생각해? 한 개가 아니야. 벌써 5개가 넘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거기다가 바실레이아 여신이 퀘스트까지 내렸다니깐?”
“······.”
“만약 스킬 10개를 배우면 새로운 직업이 열린다고 해. 난 그게 뭔지 매우 궁금하다고, 판테온.”
“그래. 그렇군.”
“이건 컨셉이 아니야. 이건 그야 말로 바실레이아 역사의 혁명이라고! 알아 들어?”
한창 떠들어댔지만, 판테온은 여전히 관심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자 레이피드도 김이 샜다는 듯 켜 두었던 인터넷 창을 내려 버렸다.
“쯧. 그래. 관심 없다, 이거지? 그냥 나 혼자 미친놈처럼 떠들어대라 이거지?”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니까.”
저 말이 맞다.
부길드장 레이피드가 워낙 긴장감 없는 사람이라고는 하나, 지금 이곳은 전장 한복판이었다.
“오늘 전쟁은 중요해. 다른 건 생각할 겨를이 없어.”
판테온은 옆에 있던 투구를 들어 머리에 착용하며 말을 이었다.
“난 오늘 이 전쟁에서 승리해 왕이 될 거다.”
태초의 전사에게만 주어진다는 불멸의 검을 천천히 꺼내 들던 판테온.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부길드장도 그냥 딱딱한 분위기를 풀 생각이었다며 그 뒤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척-! 척-! 척-!
대기 중이던 수천 명의 정예 기사들이 뒤를 따르면서 그 위용을 더했다.
그들은 모두 네브레 길드를 상징하는 황금색 깃발을 휘날렸고, 판테온이 검을 높이 들자 저 먼발치에서 방어진을 치고 있는 군단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태초의 전사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전쟁의 신이 우리를 보호하리라!!”
“적들을 죽음으로!! 우리에게는 승리로!!”
판테온은 백마에 올라 기사단의 사기를 드높였다.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판테온은 새로운 왕국을 세울 수 있게 된다.
그는 기사단장들과 함께 선두에 나서다 문득 레이피드가 보여 주었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천마라······.’
그 누구도 자신의 호적수가 되지 못 한다는 것을 판테온은 자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신성처럼 나타난 천마.
레이피드에게 구태여 표를 내진 않았으나, 사실 판테온도 이미 천마의 영상을 전부 다 봤었다.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천마의 영상에 그냥 빨려 들어갔다고 해야 할까. 그만큼 흥미로운 영상들이었다.
그리고 일부 BJ들이 자신과 천마를 비교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애교는 거기까지다.’
중요한 건 천마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였다.
만약 거기 이상으로 천마가 기어오르려고 한다면 언젠가 판테온과 부딪히게 될 터.
판테온은 천마라는 씨앗이 무슨 열매를 낳을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뭔가 높이 날아오르려는 기미가 보인다면, 그 날개가 자신의 야망에 위협이 된다면 언제든지 미리 싹을 잘라 버릴 생각이었다.
‘그냥 조금 신기한 플레이어가 돼라. 이 전쟁터에 발을 들이진 말고.’
그것이 판테온이 천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충고였다.
그리고 그는 병사들과 함께 적들을 향해 용맹히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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