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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의 컨셉충-23화 (23/140)

23화. 그저 빛

극한의 컨셉충 23화.

촤아아악-!

콰앙-!

아름답게 뻗어 나가던 푸른빛의 초승달이 도적 우두머리의 목을 강타했다.

“컥-!”

우두머리도 큰 데미지를 받았는지 비틀 거리다 이내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잠깐 정적이 흐르고.

플레이어들이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우, 우와아아!!”

“와 시발! 방금 뭐야?!”

“봤지? 너도 봤지?”

“미친! 뭐가 번쩍 하고 나갔잖아!”

“방금 또 이상한 스킬을 쓴 거 아니야?”

천강이 봤던 그 아름다운 장면을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그리고 시청자들도 똑같이 보았다.

-아니 미친? 저게 뭐야?

-??????????

-내가 지금 뭘 본 거임??????

-저게 설마 검기라는 그거임?

-도대체 저 양반 정체가 뭐야?

-또 무슨 스킬을 쓴 건가? 진짜 뭔데?

방금 전 장면을 천강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저런 걸 쓸 수 있는 것일까?

“음······.”

멋들어지게 기술을 보여 준 천마는 뭔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럴 때마다 천강은 더 어이가 없고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처, 천마님. 방금 그건······.”

“뭐, 검기겠지.”

“검기겠지?”

“그 투신인가 뭔가 하는 놈이 가호를 줬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분노가 차오르면 그것을 분출시킬 수 있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그 영향으로 검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자, 잠시만요!”

천강은 얼른 천마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 투신의 가호

분노하고 또 분노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의 힘이 될 것입니다. 전투를 하게 되면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100회 분노가 쌓이면 다음 공격에는 모든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습니다.

*현재 분노 수치 (0/100)

*모든 분노 수치를 사용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이었나?

투신의 가호가 이렇게 적용되는 것이었다고?

-개씹 사기 패시브였네

-다른 것도 아니고 투신이 강제로 준 스킬이자너

-미친ㅋㅋㅋㅋ저 정도 정성이면 사겨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겨라 짝! 사겨라 짝!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슨 스킬이 저래?

-분노 100 쌓이면 방금 전처럼 검기 같은 거 날릴 수 있는 거임?

투신의 가호라는 패시브가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던 천강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적용이 될 줄이야.

“뭔가 갑자기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게 올라오는 것 같았지. 이 정도 기운이라면 충분히 그걸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거라면······.”

“방금 전 보여주었던 그것. 쉽게 말해 검기라는 것이다. 뭐, 내가 기존에 쓰던 검기보다는 색깔이 좀 더 화려해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건 아마도 천마의 몸에 있던 마력이 섞여 들어가 푸른빛을 띠게 된 것이리라.

“하지만 분노가 끝까지 차오르지 않으면 쓸 수 없는 것 같구나. 지금의 몸으로는 말이지.”

분노가 100까지 차오르면 투신의 가호가 발생해 천마가 검기를 발현할 수 있게 된다.

즉, 이걸 잘 이용하면 도적단은 물론, 도적 우두머리까지 해치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감히 이 몸에게 상처를 내다니!!”

잠시 쓰러져 있던 도적 우두머리가 크게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온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것으로 보아 본격적으로 전투에 나설 모양인 것 같았다.

-우두머리 분노 모드 ON

-오우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놈인가?

-저렇게 빨갛게 익은 건 좀 위험한 거임.

-ㅇㅇ사리는 게 좋음

-저 빡침 상태가 되면 모든 게 2배로 올라감. 속도, 공격력, 체력까지.

-아씨 저거 개빡치는데. 나도 싸우다가 뭘로 성질을 건드렸는지, 저 새끼가 저렇게 변해서 내 파티원들 끔살 당함

-나도22

-저건 걍 랜덤임. 저럴 땐 걍 튀는 게 상책 ㅇㅇ

일명 카이저 모드, 빡침 모드, 홍시 모드 등등.

여러 가지 수식어로 불리는 보스몹만의 특징적인 상태였다. 모든 보스몹이 그렇진 않지만, 갑자기 저렇게 변해 버려 파티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 때가 있다.

발동 조건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

그날그날마다 달라서 랜덤 확률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플레이어들의 추측이다.

즉, 지금 천마는 그 랜덤 확률에 걸렸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지금 카이저 모드라니!’

그렇지 않아도 한창 분위기가 좋았는데, 산통을 깨듯이 우두머리 분노 상태가 맥스로 치달았다. 저렇게 되면 일단 뒤로 빼는 게 정석이다.

“천마님! 일단 부딪히지 마시고 뒤로 빠지셔야 해요!”

하지만 천강의 조언은 천마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본좌에게는 퇴로란 없다! 오직 앞에만 길이 있을 뿐!”

“아니! 지금은 빼야 한다고요!!”

“시끄럽다! 본좌가 이자들을 심판하지 않으면 과연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심판이고 나발이고 일단 뒤로 빼자니까!!”

-PD도 빡침 모드 들어감 ㅋㅋㅋ

-ㄹㅇ노빠꾸 ㅋㅋㅋㅋㅋㅋ

-저 정도면 폭주 기관차 수준인데?

-PD도 빡칠만 하다.

-PD가 욕해도 난 이해한다 ㅋㅋㅋ

-차마 방송이라 욕은 못 하겠고······

-쌍욕 장전 중이누ㅋㅋ

-참된 일침 ㄷㄷㄷ

-하지만 천마 형은 듣지 않지.

-이대로 청와대까지 달린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청와대까지는 달려야지!

천강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천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감하게 도적 우두머리를 향해 질주했다.

“아······.”

천강도 포기했다.

지금 분노 게이지가 0인 상태에서 검기를 다시 한번 날릴 순 없을 터. 그런데 저렇게 무작정 뛰어가다니.

그래. 될 대로 되라.

거의 득도한 수준으로 천강은 천마의 행각을 지켜만 보았다.

그런 천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뒤에서 구경 중이던 플레이들이 소리쳤다.

“천마님 파이팅!!”

“검기 한번 더 쏴줘요!!”

“천마 오빠!! 다 죽여 버려!!”

“누구 보고 오빠래!”

그런 플레이어들을 보며 천강은 생각했다.

‘세상이 말세구나.’

원래 저런 걸 보면 응원하기 보다는 말리거나,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네놈의 머리를 터트려 주마!”

이젠 아예 쌍도끼를 들고 난리를 치는 우두머리였다. 놈은 달려오는 천마를 향해 도끼를 내리 찍었다.

콰아앙-!

“죽어라!”

콰쾅-!

이어지는 또 한번의 공격!

하지만 빠른 발놀림으로 천마가 공격을 피하자, 도끼는 애꿎은 땅만 때릴 뿐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그 다음이었다.

쉬아악-!

날렵하게 회피를 한 뒤 칼을 휘두른 천마.

그가 노린 곳은 도적 우두머리의 왼쪽 다리였다.

아니. 정확히 발하자면 발목 쪽을 노렸다는 것이 맞으리라.

“이 쥐새끼 같은 놈!”

우두머리는 들고 있던 도끼 하나를 천마에게 던졌다. 그러나 바로 코앞에서 공격을 해도 피하던 천마가 저런 걸 그냥 맞아 줄 리 없었다.

오히려 이것을 기다렸다는 듯, 천마는 우두머리가 자세를 무너뜨렸을 때를 노렸다.

콰직-!!

황금빛 이펙트가 크게 터져 나왔다.

‘미친. 또야?’

그 광경에 천강은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크리티컬을 그냥 터트리는 것도 힘든데, 매우 희박한 확률로 터진다는 데스 크리티컬을 천마는 밥 먹듯이 터트리고 있었다.

“커헉-!”

아무리 쪼렙의 공격이라도 저 정도의 크리티컬이 터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두머리는 휘청거리는 것 같더니, 이윽고 발로 쿵! 땅을 때리면서 무너졌던 자세를 다 잡는다.

‘젠장. 좀 죽어라!’

속으로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지만, 우두머리의 기세는 잘 꺾일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저렇게 때려도 레벨 차이는 무시하지 못 하는 건가?’

괜히 보스몹이 아니다.

그리고 레벨 차이라는 건 어느 게임에서나 적용되는 것.

결코 무시할 만한 게 못 된다.

레벨 낮은 플레이어가 레벨이 높은 몬스터나, 혹은 보스몹을 잡지 못 하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운영자들이라는 것.

그 운영자가 제 아무리 AI라고 해도 패턴은 똑같다.

만약 레벨 낮은 플레이어가 레벨 높은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고 다닌다면 그건 게임 밸런싱을 망가뜨리는 행위가 될 테니까.

‘그런데 이건 대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는 거지?’

콰앙-! 콰쾅-!

스거걱-!!

“크아아악-!”

하지만 그런 시스템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는 듯, 천마는 물결이 흐르듯 우두머리의 안을 파고 들며 칼을 휘둘렀다.

마치 춤사위를 부리는 것처럼 천마의 칼날이 사정없이 적을 공격한다.

분노가 맥스를 찍은 우두머리는 계속해서 도끼를 휘둘러 봤지만, 천마의 몸에 스치지도 못 하고 있었다. 그렇게 천마는 아주 어려워 보이면서도 단순한 공격을 이어 갔다.

상대의 다리를 공격하고 자세가 무너지면 곧바로 목을 쳐 버린다. 그럼, 자연스럽게 크리티컬이 터진다.

이 반복된 작업으로 우두머리는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위에 붉은 표식 하나가 나타났다.

“저건!?”

“오! 드디어!?”

“떴다!”

“진짜 떴어!”

“미친!?”

천강이 알아보는 것을 다른 플레이어들이 못 알아 볼 리 없다.

-뭐야. 실화냐?

-진짜 떴다고?

-이게 된다고?

-아니?!

그래. 저것은 이제 이 레이드의 끝을 알려 주는 신호와도 같다.

보스몹을 마지막 결정타로 끝낼 수 있는 표식.

사람들은 저것을 최후의 표식이라 부른다. 하지만 최후인 만큼 그에 따른 대가가 있기 마련.

“내가··· 내가 여기서 쓰러질 것 같으냐!!”

누구나 최후의 발악을 하지 않던가.

보스몹에게도 최후의 표식이 뜬 만큼, 마지막 발악이 남아 있었다.

표식이 떴다고 해서 좋다고 달려가면 오히려 역관광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잘해야 돼.’

승리에 다가선 것은 맞지만, 그 승리가 끔찍한 패배로 직결될 수도 있다.

‘문제는 형이 그걸 모른다는 거야.’

저 표식이 뭔지도 모르고, 저 표식이 생겨나면 보스몹이 생각 이상으로 강한 힘을 보여 준다는 것도 모른다.

‘그래서 대부분 뒤로 빠져서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지.’

그게 일반적인 공략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천강은 뭐라 조언을 하려 했으나, 그만 두었다.

어차피 말해봤자 천마는 들을 생각도 보였으니까.

‘형의 표정을 보면 아무 말도 안 나와.’

완전히 이 전투에 몰입한 듯한 얼굴.

그 어떤 말을 해도 전혀 들릴 것 같지가 않은 집중력이 느껴졌다.

싸움이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해서 천마가 방심을 하는 건 아니었다.

매순간, 그 어떤 싸움이 벌어져도 천마는 최선을 다 했다. 밑바닥에서부터 최정상의 자리까지 올라오면서 천마는 직접 부딪혀 오지 않았던가?

실력 격차가 커도 어떤 변수에 의해 싸움의 승패는 뒤집어지기 마련.

천마도 바로 그 변수를 활용해서 승리한 적이 있고, 그 변수로 인해 패배할 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천마에게는 방심이란 없었다.

오로지 적을 쓰러뜨리겠다는 고도의 집중력만 함께할 뿐!

“오너라.”

천마는 올곧게 칼을 잡고 상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최후의 표식이 머리 위에 뜨면서 지금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달아오른 도적 우두머리.

놈은 두 도끼와 함께 괴성을 지르며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쿠오오-!!”

“흐읍-!”

천마도 상대가 다가오는 것에 맞춰 허공 위로 높이 비상했다. 그리고 두 남자의 무기가 파공음을 내며 부딪쳤다.

콰직-! 콰콱-!!

쇳덩이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 파편들이 위로 솟아올랐다. 누구의 무기가 깨졌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파앗-!

하지만 그 뒤에 터지는 황금빛 이펙트가 이번 대결의 승패를 알려 주었다.

“아······.”

천강은 짧게나마 탄성을 내질렀다.

비록 PD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천강도 어느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감상을 하는 입장이었다.

매우 덤덤하게 칼을 검집에 넣으며 걸어 나오는 천마의 모습이 건방져 보이면서도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다른 이가 했다면 허세로 보였겠지만, 천마가 하면 이상하게 멋진 그림이 나온다.

‘저게 진정한 컨셉충이라는 거겠지.’

본판을 뛰어넘는 컨셉충이라는 게 바로 저걸 두고 말하는 것일 터.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채로 있을 때, 천마의 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천강은 그것을 보고 생각했다.

그는 그저 빛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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