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형이 왜 거기서 나와?
극한의 컨셉충 21화
“아무튼, 지금 본좌는 몹시 불쾌하구나.”
이번엔 또 뭐가 불쾌한지 천마의 얼굴빛이 좋지가 않다.
“예? 또 뭐가요?”
“본좌의 힘이 조금이라도 돌아왔다면 방금 전 초식으로 도적들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을 것이다. 아우도 보지 않았느냐? 본좌가 마지막에 칼을 뽑으려다 다시 집어 넣은 것을.”
“예. 그랬었죠.”
“원래 그때 검기나 혹은 검강을 발산했어야 했다. 그렇게 하면 완벽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가 있지.”
-ㅋㅋㅋㅋㅋ자자 무협충님들 검기와 검강까지 등장했습니다.
-와 진짜 나중에 검강까지 쓰는 거 아님?“
-검기랑 검강이 뭐임?
-장풍 같은 거라고 보면 됨. 칼로 장풍 쏘는 거?
-검기에서 발전하면 검강이 되는 겁니다. 소설마다 설정이 다르긴 한데, 보통 고수는 검기가 아니라 검강을 쓰죠. 아무튼, 검기와 검강의 수준 차이는 꽤 납니다. 요약: 검강이 짱이다.
-그래서, 좀만 힘을 키우면 저 말도 안 되는 동작으로 검기까지 쏟아낸다는 거여? 말이 안 되는데?
-이미 충분히 말이 안 됨. 초보자가 스킬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
-그건 ㅇㅈ
천마는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에 반해 천강은 그저 어이가 없다는 듯 천마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여러분. 천마님을 보면 진짜 자괴감 들지 않습니까? 도적들을, 그것도 초보자가 무 썰 듯이 베어 버렸는데 불쾌하다니요.”
-진짜 트루 공감한다 ㅋㅋㅋ
-자괴감들자너
-그니까. 도적들을 혼자 다 죽여 놓고 저러다니. 뫄뫄뫄······.
-천재는 뭘 해도 불쾌함이 든다······ 메모.
-천마, 그는 만족을 모르는 사나이.
-난 데스 크리티컬 한 번도 못 터트려봤는데, 천마형은 숨쉬듯이 터트리는 거 실화냐?
“끙. 본좌의 힘이 1할만 돌아왔어도 저까짓 도적들은 그냥······.”
천마는 계속해서 중얼거리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천강은 연이어 올라오고 있는 후원금에 입이 찢어지는 중이었다.
[cjsak님이 100,000원을 투척하셨습니다!]
[형은 진짜 최고야!!]
[네가뭘알아님이 50,000원을 투척하셨습니다!]
[하- 이건 후원을 안 할 수가 읍네]
[김치맛있어님이 10,000원을 투척하셨습니다!]
천마가 도적들을 단숨에 쓸어버린 것을 보고 자극을 받은 시청자들이 멈추지 않고 후원금을 보내고 있었다.
적게는 1,000원.
많으면 100만원까지!
정말 다양하게 들어오는 후원금에 천강은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pd야. 근데 천마하면 천마신공 아니냐?]
어떤 후원인이 던진 질문에 다른 시청자들도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맞지!! 천마하면 천마신공이지!!
-으데 3류 따까리들이 부둥부둥하는 풍월검법 따위를 가져오누!!
-비빌 걸 비벼야지!!
저 말이 맞다.
천마하면 무공의 신이자, 천마신공의 주인이지 않은가. 워낙 많은 소설에서 천마신공을 다뤘고 심지어 무협과 관련이 없는 분야에서도 천마신공이 언급될 때가 있다.
“천마님. 시청자분들이 궁금해 하는 게 많으세요.”
“쯧. 궁금한 것도 많구나. 4살 먹은 애들도 아니고. 하지만 배움이란 끝이 없는 법이지. 그래. 뭐냐?”
시청자들을 4살 먹은 애들로 비유한 천마의 말에 순간 당황했지만, 천강은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천마님 하면 천마신공이잖아요. 그런데 왜 풍월검법 같은 걸 쓰시는 거죠? 혹시 천마신공이란 게 없는 건가요?”
천강의 말에 천마는 버럭 화를 내며 대꾸했다.
“허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천마신공은 하늘과 땅을 뒤집어 놓을 만큼의 위력을 가진 무공이다! 어찌 다른 무공들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 주신 것들은 그것과 관련이 없는 거잖아요.”
“끙. 그거야 본좌의 힘이 아직 부족해서지. 본좌의 힘이 돌아왔다면 보여줬겠지만, 지금은 무리다. 어쭙잖게 시도를 하려 했다가는 내력이 손상되어 영영 복구할 수 없을지도 몰라. 주화입마라는 게 그 정도로 무서운 것이거든.”
-ㅋㅋㅋ천마 형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것. 그것은 주.화.입.마!
-내력이 뒤틀려 피를 토해 봐야 정신을 차리지!!
-바실레이아 대륙에서 주화입마에 걸린 플레이어가 있다? 하와와···.
-우리 같은 4살 꼬마들은 그런 게 뭔지도 몰라용
-ㅋㅋㅋ근데 컨셉 한결 같이 지키는 거 실화냐?
-나중에 저러다가 레벨 좀 오르고 나서 천마신공 못 쓰면 어쩌려고 그러지?
-아냐······ 왠지 진짜 쓸 거 같아
-미친··· 존버한다
-나도 222
-나도 333
천강도 궁금했다.
천마가 저리도 확신하며 말하는 천마신공.
정말로 쓸 수 있는 것일까?
시청자들의 우려대로 만약 저게 허세라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큰일인데.’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 준 업적을 본다면 왠지 믿음이 간다는 게 문제였다.
아냐. 정신 차려라, 이천강!
지금 네 눈앞에 있는 건 천마가 아니라 네 형, 천웅이다!
천강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천마신공에 대한 이야기거 더 깊숙이 나오기 전에 화제를 돌리려 했다.
“지금의 본좌는 아직 부족하다. 힘을 더 키워야 한다. 본좌의 힘이 돌아온다면 그때 보여 주마.”
하지만 천마가 한 발 앞섰다. 그리고 그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결의에 천강도 순간 감성적으로 반응해 버렸다.
“약속······ 하시는 겁니까?”
“그래. 지금 본좌를 보고 있는 모두에게 약속하지. 천마신공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 그대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 줄 것이다.”
-크으 형님 믿습니다!
-천마 형 약속까지 했다
-크 싸나이의 약속
-닥치고 존버
-ㅇㅇ기대하는 중이라구!
-진짜 천마신공 보여 주면 그땐 ㄹㅇ컨셉충이 아니라 정말 무협 세계에서 21세기로 떨어진 천마 형이라고 믿을 거임
-난 이미 믿고 있는데?
-너두? 야 나두!
‘이렇게 되면 빼박인데.’
천강은 천마가 말하는 천마신공도 보고 싶고 질풍보에 이은 환영보법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실현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누구라도 천강의 입장이 되면 그렇게 생각할 터.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것들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땐 천강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일까?
천강은 복잡한 생각을 잠시 뒤로 미루고 천마에게 물었다.
“알고 계신 무공이 풍월검법과 천마신공만은 아니겠죠?”
“물론이지. 본좌가 어떻게 천하를 군림했는지 아느냐? 본좌의 노력도 있었지만, 타고난 능력도 한 몫했지. 그 어떤 무공이든 눈으로 보면 금방 익힐 수가 있었거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익힐 수가 있었다고요?”
“그래. 그것이 본좌의 능력이었다. 상대방의 무공을 빠르게 흡수해 버리는 것. 원래 서로 성질이 다른 무공을 배웠다가는 운행이 역행하여 충돌을 일으키기 마련이지. 그래서 무공을 여러 개 익히지 못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 거였습니까?”
천강은 슬쩍 채팅창을 확인해 보았다.
-맞아. 원래 다른 무협지에도 보면 꼭 먼치킨 애들이 다른 문파 무공도 다 익히고 있더라
-ㅇㅇ원래 설정상 다른 문파의 무공을 익히면 기가 역류해서 몸이 망가진다고 되어 있음
-하지만 우리 천마 형은 그딴 걸 무시하는 것이다 이 말이야
-그니까 지금 자기가 ㅈㄴ 먼치킨이라고 하는 거지?
-ㅇㅇㅋㅋㅋ
“천마신공도 그렇게 탄생을 한 것이지. 수많은 무공이 하나로 모인 집대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천마신공이 천하 최강의 무공이란 건 변함이 없다.”
천강도 보고 싶었다.
저것이 자신의 형이라는 걸 알고 있고, 의사한테 기억상실증이라는 진단까지 받은 사람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기대가 되었다.
그래서 믿어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업적은 모두, 오롯이 제 형이 만들어낸 것이니까.
“예. 믿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감성적인 나눔이 아니었다.
“자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직진입니다, 직진!”
천강은 시청자들이 왜 이 방송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막힘 없이 시원하기 때문이다.
초보자가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잡고 스킬까지 익히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말끔히 해결해 버린다.
이것이야 말로 사이다가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질질 끄는 것 없이 곧바로 진행을 이어 간다.
‘후후. 물론 내 편집도 한 몫을 했지.’
혼자 방송을 하면서 동영상 편집을 배운 게 큰 도움이 됐다.
“자. 천마님. 보여 주신 무공은 잘 봤습니다. 하지만 아직 퀘스트를 완수한 건 아니에요.”
“그렇군. 100명의 도적을 잡고 도적의 우두머리까지 잡으라고 했으니까.”
이제 고작 15명의 도적을 잡았을 뿐이다.
아직 85명의 도적이 천마를 기다리고 있다.
‘그 이후에 나오는 도적 우두머리도 있고.’
문제는 우두머리와 싸울 때, 우두머리 혼자 천마와 싸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바실레이아는 난이도 밸런싱이 필요해.’
분명 도적 우두머리의 레벨은 50인데, 레벨 50짜리 플레이어가 혼자서 잡을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파티를 맺고 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적들이 또 어디에 있는 것이냐? 고작 이놈들 밖에 없는 것인가?”
“아니요. 도적들이 우글 거리는 본채로 가면 됩니다.”
“흠. 그래. 이왕 도적들을 소탕하려면 본채를 쓸어 버려야지.”
“그럼, 본채로 이동을 할까요?”
“그래. 그러자꾸나.”
-pd 이 악마 녀석!
-바로 그냥 본채로 데려가 버리기!
-원래 그냥 띄엄띄엄 사냥하다가 들어가지 않나?
-PD가 작정하고 스파르타 하려는 모양인데?
시청자들의 반응도 이해가 됐다.
보통 도적 우두머리를 치기 전에 이렇듯 길목에 나오는 도적들을 처리한다. 그리고 나중에 길을 우회해서 우두머리가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 그렇게 해야만 우두머리와 함께 있는 도적들에게 협공을 받지 않을 수가 있다.
그리고 우두머리를 처치하러 가기 전에 레벨업을 미리 해 놓는 건 덤이다.
하지만 지금 천강은 약간 무리수를 던지고 있었다.
“여러분. 보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보고 싶습니다. 천마님이 얼른 레벨업을 해서 보여 줄 무공을 말이죠.”
천강은 천마가 어서 레벨업을 하여 자신이 시청자들과 했던 그 약속을 지키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천마이지 않습니까! 우리 천마님에게는 일반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삼류 무사들이 할 법 한 행동을 천마님이 한단 말입니까!”
-응? 우리 PD 갑자기 왜 성장한 거 같지?
-흑흑 그동안 뒤에서 쫄긴만 했던 PD가 언제 저렇게 자랑스러운 악마 새끼가 되었을까?
-ㅋㅋㅋㅋㅋ죽어도 자기가 죽는 게 아니다 이거지?
-미친 ㅋㅋㅋ 내가 볼 땐 천마형 위기에 몰아 넣고 자기가 나서려고 저러는 거 같은데?
-PD야 컨셉이 지나치면 게임 오바다.
시청자들은 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천강은 천마를 얼른 성장 시키고 싶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바실레이아 대륙에는 수많은 몬스터들이 있으니까.’
지금의 천마가 가진 잠재력이라면, 어쩌면 아직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 한 던전도 천마가 클리어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인가? 생긴 것부터가 도적들의 소굴로 보이는구나.”
천강을 따라 도적 본채 입구에 도착한 천마.
그 안에 도적들이 우글거리고 있음에도 그는 앞으로 나아감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 본채 입구에서부터 차근차근 도적들을 쓸어버리고 저 끝에 있는 우두머리를 상대하면 된다.
“빨리 쓸어버리고 나오자꾸나. 이런 곳에 오래 머물러봤자 좋을 건 없다.”
“예. 천마님. 기대 하겠습······ 응?”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천마를 따라가던 천강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들의 뒤를 졸졸 따라오던 플레이어들도 이상함을 느끼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사방에 드리워지는 그림자들.
그 위에 우뚝 선 그림자가 유독 눈에 띈다.
“흐흐. 우리 애들이 어디서 당했다고 하기에 직접 찾아가 보려고 했는데, 그게 네놈이었냐?”
육중한 몸과 천마보다 2배는 더 커 보이는 키.
두꺼운 칼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건 누가 봐도······.
“보, 보스몹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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