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보법
극한의 컨셉충 20화.
천강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만 같았다.
천마가 보여 주는 움직임 하나 하나가 모두 그러했다.
스거걱-! 콰직-!
몸서리가 절로 처지는 절삭음마저도 아름답게 들릴 만큼, 천마는 춤을 추듯 도적들의 안을 파고 들며 칼을 휘둘렀다.
바람처럼 가볍게 파고 들어가 몸을 회전시켜 상대방의 공격을 흘려보낸다. 그런 뒤 곧바로 발검하여 상대방의 몸을 베어 버린다.
아슬아슬하게,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해내며 검을 휘두를 때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삼재검법에서 업그레이드된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모션 자체가 화려해 보였다.
특징이 있다면 몸을 두 바퀴 회전 시키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동시에 안으로 파고 든다는 것이다. 그런 뒤 이어지는 공격마다 크리티컬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크리티컬이 저렇게 계속 터진다고?”
모션은 화려해 보였으나, 천마가 날리은 검의 방향은 단순했다.
삼재검법의 그것처럼 세로로 베고, 가로로 베며, 때론 찌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물 흐르듯 열 명의 도적들을 차례대로 베어 버린 천마.
스르륵-.
그는 칼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그와 동시에 도적들의 피가 높이 솟구쳤다.
“쿠욱······.”
털썩-!
마지막으로 남은 도적이 무릎을 꿇고 쓰러지며 사라지는 것을 본 천강은 경악과 허탈함이 섞인 눈동자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
한창 시끄러워야 할 채팅창도 왠일로 매우 조용했다. 모두가 넋을 잃고 채팅치는 것도 잊은 채 천마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윽고 천강이 말문을 트면서, 채팅창도 다시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냥 말이 안 나온다 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저게 뭐야? 저것도 스킬 아니냐?
-스킬 아닌 듯
-스킬이 아니라고? 저 움직임이? 실화야?
-아냐. 저건 스킬일 거야. 그래 스킬일 거라고!!
-저게 스킬이 아니라 무빙이라면······ 천마 그를 신으로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에 봤냐? 천마 형이 검 딱 집어넣으니까 도적들이 파팍! 하면서 쓰러지는 거?
-ㅇㅇㄹㅇ씹간지
-엉엉 날 가져요
시청자들의 반응이 지금의 천강과 같았다.
그 뒤에 있던 플레이어들도 팔짝 팔짝 뛰고 있을 정도.
“와씨. 방금 뭐였냐?”
“그냥 빙빙 돌더니 다 죽었어.”
“저게 스킬이 아니라고?”
“스킬이 아니면 대체 뭔데?”
“버근가?”
“저게 피지컬이면 우리 같은 애들은 겜 하면 안 되겠다.”
천강도 저 말에 동감했다.
만약 저게 스킬이 아니라 피지컬이라면······.
‘난 대체 이제까지 뭘 하려고 게임을 하고 있었던가.’
순간 자괴감이 드는 천강이었다.
하지만 이 놀라운 일을 벌여 놓고도 천마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없었다.
“쯧. 아직 그것까지는 무리인가?”
“······예?”
“방금 검술을 잘 보았겠지? 이게 바로 풍월검법이라는 것이다. 삼재검법을 제대로 익힌다면 풍월검법으로 넘어갈 수가 있지. 풍월검법을 제대로 익힌다면 풍혼검법으로 넘어갈 수가 있고, 최종적으로 천성검법을 익힐 수가 있게 되지.”
“······.”
천마의 말을 천강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니까 방금 하신 게 풍월검법이라는 겁니까?”
“그래. 풍월검법의 핵심은 바로 보법에 있다. 본좌가 바람이 불 듯, 가볍고 빠르게 적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았을 터. 그리고 발검하여 휘두르는 모습이 마치 달의 그것과 같다고 하지. 그래서 풍월검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삼재검법 다음으로 익히는 게 확실한 건가요? 난이도 자체가 달라지던데요?”
“삼재검법은 내공이 필요하지 않아. 그야 말로 검의 기본기라고 할 수 있지. 그러나 그 다음 단계인 풍월검법부터는 삼재검법의 3가지 초식에 내공을 실어 넣는 것이다. 그리고 보법을 밟는 거지. 삼재검법은 검의 기본을, 풍월검법은 보법의 기본을 배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의 연속에 천강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여러분. 도움을 좀 주십시오. 이게 다 무슨 얘기입니까?”
-ㅉㅉ PD야. 넌 공부 좀 해라
-ㅇㅇ무협의 무자도 모르다니! 그래 놓고도 네가 강호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모를 수도 있지.
-나도 모름.
-무협충들 설명 좀 해 봐라.
-그러니까 천마 형이 말하는 건 삼재검법은 검의 기본기를 다루는 거고, 풍월검법은 보법의 기본기를 다루는 거래. 보법은 쉽게 말해서 이동기라고 할 수 있음.
-ㅇㅇ풍월검법이란 건 나도 처음 들어보는 거긴 한데, 풍혼검법은 들어봄. 아무튼, 검의 기본기를 익혔으니 내공을 주입해서 검을 쓰는 법과 동시에 이동기를 배워는 거지. 저 풍월검법이란 걸로.
“오. 그러니까 저게 기본기라는 겁니까?”
-믿기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하는 거 같음
-미친 ㅋㅋㅋ 저게 기본기면 시바 ㅋㅋㅋㅋㅋ 나중에는 하늘을 날라 다니면서 싸우냐
-나중에는 손가락 하나 튕기는 걸로 다 죽이겠네.
-앗! 그건 타노··· 읍읍!
-의문의 고수 보라돌이 쨩
-5252 미키 쥐새끼가 우릴 지켜보고 있다구!
-모두 조용히 하자. 법무팀 출동한다.
-무인도에서 탈출하는 법? 그냥 쥐 그림만 그리면 되요!
천마의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보여 준 건 모두 기본기였다. 저게 기본기라니. 천강은 어이가 없었다.
“저게 정말 기본기라면 도대체 고급 무공은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 걸까요?”
-진짜 레알 궁금하다
-근데 저거 컨셉 맞아요? 어떻게 저런 검술을 할 수 있는 거죠?
-나도 그게 궁금함. 저런 걸 어떻게 아는 걸까?
[나만보는방송님이 10,000원을 투척하셨습니다!]
[천마형 혹시 무술 같은 거 배웠음? 아니면 무협 작가인가? 대체 정체가 뭐임?]
“나만보는방송님. 10,000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천마님의 정체요? 원래는 무림 세계에서 사시다가 잘못된 의식을 하는 바람에 이 세상에 떨어지게 된 거랍니다. 사실 굉장히 슬픈 사연을 가지고 계신 분이세요. 제가 올린 영상을 보시면 그 사연이 나와 있습니다!”
-미친 ㅋㅋㅋ
-둘이 형제 사이인 거 다 알고 있음 ㅋㅋㅋ
-컨셉 지키는 거 봐라 ㅋㅋㅋㅋ
-PD 그는 컨셉충인가?
-그렇취! 끝까지 컨셉 유지 해야지!
사람들은 여전히 컨셉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천강은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게 정말 컨셉일까?’
사실 저 형은 정말 천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일단 복잡한 생각은 지우고, 천강은 방송에 집중했다.
“천마님의 말씀대로라면 삼재검법을 다 익히고 나서 이 풍월검법을 익혀야 한다는 건데······ 방금 보니까 쉽게 익힐 수 없을 거 같던데요?”
“쉽다.”
“예?”
“쉽다고. 칼을 잡은 무인이라면, 제 아무리 3류 무사라고 해도 이 정도는 기본이지. 하지만 그 이상부터가 어렵다. 풍혼검법부터는 익히기가 어려워. 본좌가 저 도적들을 베었을 때 마지막으로 칼을 뽑지 않고 집어넣은 건, 본좌의 무공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 무렵에 투덜거린 거였나?
천강은 그렇게 생각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 풍혼검법이란 건 뭔데요?”
“삼재검법이 검의 기본을 다루고, 풍월검법이 보법의 기본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풍혼검법은 검기의 기본을 다루는 것이지.”
“검기의 기본?”
“그래. 만약 검기의 기본까지 익힌다면 그 다음은 천성검법. 그땐 검강을 쓰는 것이다. 천성검법까지 간다면, 아니. 풍혼검법까지만 가도 도적 수백 명의 목이 순식간에 달아나 버리지. 검기로 사방을 베어 버리는 무공이니까.”
“그, 그렇게나 세요?”
“검기라는 것이 그렇다. 저런 도적들한테는 아까운 무공이지. 하지만 풍혼검법을 넘어 천성검법까지 익힌다면 그땐 검강을 쏟아내 수천의 적을 한꺼번에 날릴 수 있게 된다. 아무튼, 중요한 건 역시 기본기라는 것이지.”
듣기로는 도저히 기본기로 들리지가 않았다.
[무협충님이 100,000원을 투척하셨습니다.]
[천마형님 존경합니다. 그런데 그 보법이라는 거 보여 주실 수 있나요?]
“앗! 무협충님! 10만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보법이요? 당연히 보여 드려야죠! 자, 천마님. 방금 보여 주신 게 풍월검법이고, 그게 보법의 기본이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그 보법이 뭔지 좀 보여 주시겠어요? 아니. 잠깐만. 그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약 천마가 보여줬던 것이 보법이 맞다면, 그에 따른 스킬도 생겨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추측을 한 천강이었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천마의 히스토리를 체크하니, 스킬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 이름을 정해 달라는 요청이 떠 있었다.
-아니!!!
-나니!!!
-왓더!!!
-??????
-저게 뭐시당가?
-뭐야. 또 새로운 스킬이야?
-미친ㅋㅋㅋㅋㅋㅋ이정도면 스킬 제조기 아닌가?
-스킬을 막 찍어 내는 플레이어가 있다? 뿌쓩빠쓩뿌쓔쓩!
-와 진짜 뭐냐?
“처, 천마님. 스킬이 또 발견됐다고 하던데 왜 말씀을 안 하셨습니까?”
“음? 본좌가 도적들을 심판하고 있는데, 뭐가 자꾸 귀찮게 뜨긴 했다만. 중요한 것이더냐?”
“다, 당연히 중요하죠! 무려 스킬 하나가 더 발견된 건데!”
천마에게는 바실레이아 여신이 내린 퀘스트가 있다. 스킬 10개를 발견하게 되면 새로운 직업이 열리게 된다.
“쯧. 그놈의 이름을 왜 자꾸 정해 달라고 하는 것인지. 이것은 ‘풍보’라고 한다.”
[스킬명이 ‘풍보’가 맞습니까?]
“그래. 바람처럼 가볍고 빠르게 걷는다고 하여 풍보라고 하지.”
[축하합니다! 새로운 스킬을 생성해내셨습니다!]
* 풍보
-바람처럼 가볍고 빠르게 달려야 적의 심부를 찌를 수가 있다!
-스킬을 발현하게 되면 이동속도가 3배 빨라집니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하게 되며 지속시간은 2초입니다. 대기시간은 없습니다.
-이 스킬은 업그레이드가 가능합니다.
축하를 알리는 효과음과 함께 새로운 스킬이 만들어졌다. 시스템 창을 보던 천강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이동속도가 3배 빨라진다고?”
소량의 마나를 소모하고 지속시간 2초, 거기다가 대기시간이 없다.
“이거 사기 스킬이잖아?”
마나를 별로 잡아먹지도 않는데, 이동속도가 3배나 빨라지는 스킬이라니. 거기다가 대기시간까지 없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였다.
스킬 업그레이드는 솔직히 천강도 뭘 의미하는 건지 몰랐다.
-저게 또 뭐시당가?
-또 스킬 발견 개꿀 ㅋㅋㅋ
-대박!! 호우!!!
-호우? 이 시국에?
-아니. 그냥 좋다고 하는 거지 ㅅㅂㄹ아
-와. 스킬이 왜 저래. 이동속도 3배에다가 대기시간도 없어.
-그래서 아까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었구나.
-스킬 업그레이드는 또 뭐임?
시청자들도 이번 스킬이 갖는 사기성을 깨달았다.
이동 스킬은 원래 거의 모든 직업이 갖는 기본 스킬이다. 하지만 대부분 마나를 좀 잡아 먹고 대기 시간까지 있기 마련.
그런데 저건 그런 단점들이 아무것도 없다.
-이제 5개 남았다.
-ㅈㄴ기대된다
-빨리 다른 스킬도 열었으면
이것으로 천마가 발견한, 아니. 만들어낸 스킬이 총 5개가 되었다.
‘앞으로 5개를 더 발견하게 된다면······?’
그땐 모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던 새로운 직업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풍보라는 것은 말이다. 간단하다. 몸 안에 있는 내력을 발 끝에 집중시켜 걷는 것이지. 모든 보법이 이러하다. 얼마만큼의 내력이 들어갔느냐, 또 그것을 얼마만큼 조절을 하느냐에 따라 보법이 달라지지. 풍보는 기본적인 보법에 속한다.”
천마는 풍보를 밟으며 3배 빨라진 걸음걸이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속력을 이용해 검을 휘두르니, 당연히 검의 위력이 더 해지는 것이다.
“아직 본좌의 내력으로는 풍보 밖에 쓸 수가 없지만, 여기서 조금 더 성장을 한다면 질풍보를 쓸 수가 있게 된다.”
“질풍보?”
“그래. 풍보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지. 거기서 또 발전을 하게 되면 그땐 순보. 그 다음으로는 환영보법까지 쓸 수 있게 된다.”
연이어 나오는 보법 이름에 천강은 눈을 껌뻑였다.
“천마님. 혹시 그 순보라는 건 순간이동 같은 건가요?”
“그렇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동하는 보법이다.”
순보라고 하면 천강도 알고 있는 이름이다.
몇몇 직업은 순보라는 스킬이 존재하니까.
그야 말로 순간이동.
짧은 거리를 눈에 보이지 않는 스킬로 이동해 상대방의 뒤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풍보를 발전시키면 그걸 쓸 수가 있다는 건가?
그래서 풍보 스킬 설명란에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쓰여 있던 것 같다.
“천마님. 그럼, 그 환영보법이라는 건 대체 뭡니까?”
“환영보법은 말 그대로 환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순보를 뛰어넘는 속도로 달려 내 분신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예?! 부, 분신이요?”
“그래. 보법만으로 분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동시에 5명이 되고 10명이 되는 것이지.”
분신술이란 스킬은 바실레이아 온라인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보법으로, 그것도 무지막지한 스피드로 만들어내는 분신이라고?
‘만약 그 환영보법까지 업그레이드가 된다면?’
상상만 해도 천강은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