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히든 직업
극한의 컨셉충 9화.
-어, 어케 했누?
-어케 했누 천마 놈아!!
-뭐야? 어떻게 한 거지?
-왜 아쿰리아스가 무릎을 꿇고 있누?
채팅창은 그야 말로 폭발!
3분 만에 아쿰리아스가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곧 아쿰리아스의 패배를 뜻한다.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무릎을 꿇게 되면 패배를 인정하겠다고.
아쿰리아스 본인도 믿기지가 않는지 실 없이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천강도 그냥 입을 쩍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PD 넋 나갔누
-나라도 그러겠다.
-영상이 아니라 현장에서 봤으면······ 어후.
천강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뉴튜브각을 잡았으니, 좋은 건가.
아니면 천마가 영영 직업을 얻지 않을 테니, 오히려 나쁜 건가?
지금은 그냥 머리가 하얗게 비워진 것만 같았다.
* * *
“허허. 한번 해 보자니깐? 정말 후회하지 않는다고!”
“싫다. 본좌는 본좌만의 길이 있다.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을 만큼 약하지 않다.”
“아, 물론이지. 자네의 잠재력은 매우 놀라울 정도야. 그러니까 나와 같이 이 길을 가 보자니깐?”
아쿰리아스가 원래 이런 이미지였나 싶을 정도로 그는 질척임이 심했다. 벌써 30분째 천마에게 들러붙어 있는 중이었다.
그러는 동안 천강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3분을······ 3분을 버텼어······.”
-PD 죽었냐? 아직도 저러네.
-근데 지금 나도 딱 저 심정이다.
-저게 진짜 깰 수 있는 퀘스트였다니. 난 그냥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초보자로 깨라고 만든 거였어?
-그게 가능하겠냐? 저런 나노 무빙 칠 거 아니면 진짜 아무도 못 한다 ㅇㅇ
시청자들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아우. 이제 그만 돌아가자. 내기는 본좌가 이겼으니, 앞으로 본좌에게 어떤 말도 하지 말거라.”
“······.”
천강은 힘 없이 일어나 천마와 공유되어 있는 정보창을 확인해 보았다.
“잠깐. 천마님. 이게 뭡니까?”
“뭐가?”
“여기 히스토리를 보면 천마님에게 히든 직업을 권유한 게 뜨는데요?”
-히든 직업!!??
-진짜야?????
-그냥 투사만 하는 거 아니었음?????
시청자 숫자는 70명밖에 되지 않지만, 채팅방은 무슨 700명이 모인 것처럼 시끄러웠다.
“여러분도 보세요. 이거 히든 직업이지 않습니까?”
천마의 히스토리를 보면 그에게 떴던 시스템 창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쿰리아스가 당신을 진정한 싸움꾼으로 인정했습니다.]
[히든 직업이 발생합니다. 아쿰리아스는 당신이 용맹한 투신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히든 직업: 투신.]
“투, 투신?”
투사도 아니고 무려 투신이다.
인간이 아닌, 신의 능력을 가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회라는 것!
[투신 킬리오스가 당신을 매우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는 당신이 꼭 후계자가 되어 주길 바랍니다.]
투신 킬리오스까지 등장해 천마를 자신의 세상으로 끌어 들이려 했다.
아쿰리아스가 스카우트 제의를 하는 것도 대단한데, 아예 신까지 나타나 천마를 꼬드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마의 대답은 단호했다.
“본좌는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이제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처, 천마님. 이건 다시 생각을 해 보셔야 할 거 같은데요?”
“시끄럽다! 아우는 본좌와 약속을 하지 않았더냐! 본좌는 절대 직업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시발 이건 좀 다르잖아요!!”
천강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PD 개빡쳤닼ㅋㅋㅋㅋㅋ
-와ㅋㅋㅋㅋㅋ 약속은 약속인데, 이건 ㄹㅇ 깨야 하는 약속인 거 같은데
-마! 남아일언 중천금 모르나! 우리 천마 행님은 천금 같이 말을 지키시는 분이다!
-와······ 근데 저건 진짜 아깝다. 히든 직업이 얻기 쉬운 게 아니잖아.
-그건 쌉인정
시청자들도 이 직업을 놓치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천강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형이 투신 직업을 가져 봐. 히든 직업 하나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영상 조회수가 얼마나 많이 올라가는데. 구독자 숫자는 또 어떻고!!’
차마 겉으로 말하지 못 하는 응어리.
천강은 발을 동동 구르며 계속해서 천마를 설득했다.
“천마님. 이건 절호의 기회에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무려 투신이잖아요, 투신!”
[투신 킬리오스가 당신의 말을 지지합니다.]
덕분에 신의 지지까지 얻는 천강이었다. 그러나 천마는 도무지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허. 본좌는 필요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투신이니, 뭐니 그만 얼쩡 거리거라. 본좌는 네게서 배울 게 없으니까.”
[투신 킬리오스가 당신의 자신감에 희열을 느낍니다. 그는 더욱더 당신을 원하고 있습니다.]
매몰차게 차고 있는데도 투신은 오히려 그런 천마의 모습을 더욱 좋아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ㅋㅋ 투신 양반 설마 그쪽이었냐?
-앗 아아··· 투신에게 그런 비밀이
-하,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천마 쨩은······.
-아 니뽄 새끼들 극혐.
천강은 천마의 몸을 붙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제발 좀 받으라고!!”
“남아일언 중천금! 아우는 본좌와 했던 약속을 깨려는 것인가! 그것으로 형제간의 우애와 신뢰가 깨진다는 것을 모르다니!”
“그게 다 무슨 상관이야! 투신이라잖아요, 투신! 그럼 넙죽 엎드려서 받아야지!”
“치우거라! 본좌는 필요 없다! 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올 일도 없고!”
천마가 차갑게 뿌리치고 나가자 천강은 절규를 터트렸다. 그런 천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쿰리아스가 중얼거렸다.
“멋있어······.”
천강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상인 새끼가 없다고 생각했다.
* * *
[야. 오늘 천마 컨셉충 방송 본 커뮤충들 있냐?]
-오늘 진짜 개역대급이었음. 주작 논란 많았던 늑대도 잡아 주고 갑자기 명상 때리더니 마력증강이라는 스킬을 발견함. 거기다가 마법의 신까지 등장해서 흥미를 드러냈다는 시스템 창도 뜸. 근데 더 웃긴 건 아쿰리아스와 대련했는데, 레벨 10도 안 된 초보자가 이겼음. 그래서 아쿰리아스가 투신이란 히든 직업을 줬는데도 천마가 시크하게 차 버림.
방송이 끝나고 나서 커뮤니티는 어떤 글로 인해 시끄러워졌다.
-뭔 소설을 쓰려면 제대로 써야지.
-어디서 주작질이누?
-님아 쓰려면 좀 믿을 만한 걸 써라 ㅋㅋㅋㅋㅋ
처음에는 회원들이 비웃음을 터트리며 어그로 글이라 무시했지만, 연이어 올라오는 글들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야. 저 위에 커뮤충이 쓴 거 진짜야. 나도 봤었어.
-ㅇㅇ 레알임. 내가 보고도 못 믿겠는데, 진짜임. 아마 곧 영상 올라올 텐데, 이따 다시 보려고. 그거 보면 님들도 지린다. 100퍼
-뭐야. 왜 이렇게 주작충들이 많아?
-또 물타기 하고 지랄들이네 ㅋㅋㅋㅋㅋ
-요즘 잠잠하다 싶었는데, 또 어그로충들이 날뛰네.
다들 어그로를 끄는 회원들을 비난하며 동조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확히 1시간이 흐르고 나서 여론이 갑작스레 바뀌었다.
[야. 방금 영상 떴다.]
[ㅇㅇ나 지금 보고 옴. 님들도 가서 봐보셈. 개쩜ㅋㅋㅋ]
[진심 뉴메타인가? 운기조식이라는 게 가능했던 거였어?]
천강은 오늘 하루에 찍은 영상을 한꺼번에 올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뉴튜브각을 잡은 소재들이 많아 분할해서 올리기로 한 것이다.
그러는 편이 수입 창출도 되고 더 많은 구독자들을 끌어 당기게 될 터.
첫 영상은 바로 이것이었다.
[바실레이아에서도 운기조식이 가능하다?]
제목은 크게 어그로를 끌고 있지 않지만,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어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리고 영상에는 천마가 늑대를 잡아 주작이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갑자기 명상에 돌입해 있다 마력증강 스킬을 발견해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운기조식?
-아니. 컨셉이 너무 충실한 거 아니야? 진짜 운기조식을 하고 있다가 스킬을 발견하네 ㅋㅋㅋㅋㅋ
-진짜 역대급 컨셉인 듯
-와. 나도 가서 해 봐야지.
-나 방금 하고 왔는데, 안 되던데 나는.
-아니 설명이 너무 부족해요. 마나를 대체 어떻게 느끼라는 겁니까?
-진짜 저게 가능하긴 한 건가요? 마나라는 게 아예 느껴지지가 않는데.
시청자들은 아우성을 치며 비법을 풀어 달라 요청했다. 커뮤니티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매우 심도 있는 토론이 이어졌다.
-바실레이아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잖아. 현실에서 못 하는 스킬들을 쓸 수 있고. 그걸 쓰는 타이밍에 마력이 소진되니까, 그때 느끼면 되려나?
-나도 여러 가지를 시도해 봤는데, 아무리 해도 안 되더라. 저게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어.
-주작 아니야?
-주작 아님. 생방에서도 보여줬다고 하잖아.
-진짜 컨셉인지, 아니면 진짜 천마인지. 사실은 정말 천마가 21세기에 떨어져서 게임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응 다음 소설충.
어떤 커뮤니티 회원은 바실레이아 사이트에 정식으로 문의를 넣기까지 했다.
[너무 답답해서 내가 문의까지 넣어 봤다.]
-바실레이아 회사에다 문의를 넣어 봤음. 마나라는 걸 우리가 느낄 수 있게 만든 거냐고. ‘본좌는 천마다’라는 플레이어가 마나를 느끼고 그걸로 운기조식을 해서 새로운 스킬을 열었다니깐 운영자들은 이 게임에 한계란 없다는 설명을 함. 절대 버그는 아니라고.
-야. 거기 운영자들 모르냐? 그것들 ㅈ도 몰라. 바실레이아는 전부 인공지능이 만든 게임이잖아. 운영도 인공지능이 하고 있고. 인공지능 이름이 헬라였나? 아무튼, 그걸로 운영되고 있어서 운영자들은 세밀한 시스템까지는 접근할 수가 없다고 하더라 ㅇㅇ
-아 진짜임? 우리가 인공지능 손에 놀아난 거임?
-ㄹㅇ임 ㅇㅇ
다른 게임들과는 다르게 바실레이아 게임이 여전히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매우 클린한 시스템 덕분이었다.
핵도, 버그도 없는 꿈만 같은 게임.
인공지능 헬라를 통해 운영되고 있는 이 게임은 아직 어떤 해킹 프로그램에도 뚫리지 않았다.
“와······ 이, 이건 정말······.”
영상을 올리고 나서 다른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던 천강. 그는 영상 조회수를 확인하고 나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15만이라고?”
영상이 올라간지 12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15만이란 조회수를 돌파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100~200에서 웃돌던 과거 영상들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성장이었다.
다른 유명 BJ들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건 맞지만, 이제 막 시작한 채널이 조회수 15만을 돌파했다는 건 굉장한 일이었다.
이것이 점점 더 크게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영상이 올라가면 난리나겠는데?”
마력 증강 다음은 바로 천마와 아쿰리아스가 대련을 펼치는 영상이다. 아직 업로드 하진 않았으나, 이게 올라가면 기록 갱신을 또 하게 될 것이다.
천강은 벌써부터 두근거렸다.
이런 대박 영상들이 쌓이면 정산 날이 되었을 때 액수가 커지지 않겠는가?
“어, 얼른 다음 영상 편집해야지!”
지금 이렇게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돈이다, 돈! 물 들어왔을 때 실컷 젓는 거야!”
천강은 영상 편집에 집중하며 눈을 부릅 떴다. 그러다 영상 마지막에 뭔가를 발견했다.
천마가 아쿰리아스의 품에 파고 들었을 때.
그때 천마의 두 손이 푸르게 변했다.
“이건 대체 뭐지?”
거기다가 천강은 천마의 히스토리를 살펴봤을 때, 정말 중요한 걸 놓치고 말았다.
“뭐, 뭐야? 새로운 스킬이 하나 더 생겼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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